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믿음의 역사 (히 11:33-40)

  • 잡초 잡초
  • 393
  • 0

첨부 1


- 설교자 : 한용근 목사

  주후 32년경인 네로 황제 시대에 이런 일이 있었답니다. 네로 황제는 기독교를 아주 심하게 박해하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비밀리에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였습니다. 네로는 믿는 사람들을 장작불에 태워 죽이거나 굶주린 사자를 풀어 사자 밥이 되게 했습니다. 당시에 네로는 레슬링 선수들을 40명을 훈련시켰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날 누군가가 네로 황제에게 레슬링 선수들 중에도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 있다는 정보를 주었습니다. 네로는 레슬링 선수들을 훈련하고 있는 책임자를 불러 레슬링 선수들 중에 있는 기독교인들을 찾아내어 당장에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감독은 그가 훈련시키고 정이든 사랑하는 선수들 중에 기독교인들이 있다는 소리를 듣고 충격을 받았지만 왕의 명령이라 순종해야만 했습니다. 그 때가 마침 추운 겨울이었기 때문에 감독은 바닷가로 40명의 레슬링 선수들을 모아놓았습니다. 그리고, "너희들 중에 기독교인이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말이 떨어지자 40명의 레슬링 선수들 모두가 손을 들었습니다. 그는 한 두 명도 아니고 그가 가르친 선수 모두가 기독교인이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오랫동안 함께 땀 흘리며 훈련하고 조련해서 만들어낸 그 정든 선수 모두를 죽일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때문에 그는 강가에 따뜻한 장작불을 피웠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기독교를 버리고 돌아오는 자는 살려주겠다. 그렇지 않는 자는 저 추운 겨울 바다에 들어가게 해서 얼어죽게 하겠다"고 위협했습니다. 40명 모두는 "그리스도를 부인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감독은 선수들에게 옷을 벗고 바다로 들어가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버리고 돌아오는 자에게는 따뜻한 불이 있고 또 장래에 성공을 보장을 해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의 회유에도 불구하고 40명의 레슬링 선수들은 하나같이 옷을 벗고 추운 바다를 향해 걸어 들어갔습니다. 그들은 바다  속에서 "위대한 주님의 레슬링 선수들이여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 싸우라"고 힘을 다해 외치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늘 "위대한 로마의 레슬링 선수들이여 위대한 황제와 그의 나라를 위해 싸우라"는 구호를 외쳤습니다. 감독은 따뜻한 모닷불 옆에 앉아 바닷에 들어간 그들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밤새도록 추운 바다 가운데서 "위대한 주님의 레슬링 선수들이여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 싸우라"고 외치고 있었고, 드디어 그 외침 속에서 한사람 한 사람 죽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새벽이 가까워졌습니다. 견디다 못한 한사람이 따뜻한 장작불을 향하여 나오며 자신은 그리스도를 믿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감독은 자기의 옷을 그에게 벗어주며, "그래 너는 이 옷을 입고 장작불에 몸을 녹이고 출세해라. 나는 저 사람들과 함께 주님을 믿고 하늘나라에 가겠다"라고 말한 후 발가벗은 몸으로 바다를 향해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그는 바다를 향해 나가며 "위대한 주님의 레슬링 선수들이여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 싸우라"고 외쳤습니다. 그 날밤 그들 모두는 그 추운 바다 속에서 하늘나라와 그분의 영광을 위해 싸우다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것이었습니다.

  기독교의 역사는 순교와 죽음과 피의 역사입니다. 왜 그렇다면 기독교의 역사가 이렇게 피와 죽음이라는 고난으로 이루어진 것일까요? 그 대답은 아주 간단합니다. 그들이 이렇게 죽음을 넘어서면서까지 순교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는 죽음보다 더 귀한 것이고 더 값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들을 보십시오. 느브갓네살 왕이 높이가 60규빗이요 넓이가 여섯 규빗이나 되는 우상을 바벨론의 두라 평지에 세웠습니다. 1규빗은 약 50Cm로 60규빗이면 30m나 되는 엄청난 높이의 우상이었습니다. 아무 것도 없는 벌판에 30m의 거대한 건물이 세워졌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느브갓네살 왕은 우상을 만들어 놓고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모든 소리 나는 악기를 시간에 맞추어 소리 나도록 불고, 그 악기 소리에 맞추어 모든 일을 멈추고 우상을 향해 절하도록 명령했습니다. 만일 이것을 어기는 사람은 뜨거운 풀무불에 던저 뼈까지고 태워 죽인다는 것이 왕의 명령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라는 다니엘의 친구들은 왕의 이러한 명령을 거부했습니다. 그들이 이것을 거부한 것은 세상을 다스리는 왕보다 더 위대한 창조자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즉시로 느부갓네살 왕 앞에 손과 발이 묶힌 채로 붙들려 왔습니다. 그들은 왕의 명령을 거부한 반역자들이었습니다. 왕은 그들이 자신의 명령을 거부한 것에 대해 매우 분노했고, 평소보다 7배나 더 뜨겁게 불을 지피게 했습니다. 그 불이 얼마나 뜨거웠던지 그 불을 지피던 사람조차 그 불에 타서 죽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불에 던져졌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그 풀무불에서 놀라운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그 풀무불 속에 네 번째 사람이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그곳에서 꺼내졌을 때 그들의 몸은 머리털조차도 그슬리지 않았습니다. 그 뜨거운 열기는 그들이 입고 있는 옷조차 조금도 변화시키지 못했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 30m의 높은 우상은 파괴되었고, 그들을 모함했던 사람은 칼로 몸이 쪼개지는 죽고, 그 집은 똥과 오물을 버리는 거름 터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가장 귀하게 여기는 영혼을 사랑하십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믿음은 세상의 어떤 힘이나 권력이나 위협도 이길 수 없었던 진실로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믿음이었습니다. 그들은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믿음으로 역사를 역전시켰습니다. 믿음은 지금의 상황을 역전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는 33절과 34절에서 "저희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맹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라고 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모두 살해의 위협과 죽음의 위협과 악한 세력의 위협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오직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으로 역사를 다시 쓰게 했습니다. 기독교의 역사는 페르시아 시대의 에스더처럼 "내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죽으면 죽으리라"는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설 때에 승리하게 되는 역사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이 인생의 위기를 맞이하고 있습니까? 고난을 맞이하고 있습니까? 그러나, 우리에게는 위기와 고난을 넘어설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믿음입니다. 아직 어린아이였던 다윗이 3미터 가까이 되는 골리앗 앞에 설 때에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삼상17:45). 여러분은 지금 누구의 이름으로 세상에서 골리앗과 싸우고 있습니까?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믿음은 오직 하나님의 이름에 의지해서 그분의 손을 붙잡고 앞으로 나가는 믿음인 것입니다. 그분이 함께 하심으로 죽으면 죽으리라는 믿음인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믿음인 것입니다. 세상에서 성공하고 승리하기를 원한다면 죽으면 죽으리라는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믿음이 있어야 성공하고 세상에서 승리하는 것입니다.

  혹시 이레전자라고 들어 보셨나요? 이레전자의 사장님은 정문식이라는 분입니다. 그분이 사업을 시작할 때 단돈 50만원으로 출발해서 지금은 매출이 1000억원의 기업되었습니다. 얼마전 자서전 '다섯평 창고의 기적'이 나왔는데 그곳에서 "아내와 단둘이 50만원으로 차고를 얻어 회사를 세웠다. 17년 동안 반지하 셋방에서 살았고 중고 기계로 작업하면서 그만두고 싶은 충동도 느꼈다. 그때마다 허름한 차고에서 출발해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한 휴렛 패커드와 애플컴퓨터. 마이크로소프트를 떠올리며 '나도 차고에서 세계로 뻗어나갈 것'이라고 다짐했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특히, 그분은 꿈과 용기. 희망이란 세 단어가 오늘의 자신을 만들었다고 강조하면서 "어릴 적 닭 모이를 준다며 시장에서 배춧잎을 얻어다 반찬을 해 먹고 수박껍질로 도시락 반찬을 싸가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다. 중학교에 다닐 때는 신문을 배달해 모은 돈으로 이발기구를 구입해 친구들 머리를 깎아주며 생활비를 벌기도 했다. 성적은 꼴찌에 가까웠지만 경찰서 심부름과 공장 일을 하면서도 야간 공고에서 기술을 배웠다. 나는 좌절과 시련이란 단어는 애써 외면했다."라고 말합니다.

  세상 사람들도 이렇게 좌절과 시련과 고난을 외면하면서 오직 소망과 희망과 꿈을 향해 나가는데 하물며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며 돕고 있는 믿음의 사람들이야 더욱 큰 믿음으로 승리의 발걸음을 걸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문제는 여러분 마음 속에 있는 믿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믿음의 선조들은 고난 중에도 희망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위기 속에서도 언제나 소망을 가졌습니다. 그것은 그들 속에 역사하고 계신 그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죽으면 죽으리라는 믿음 이것이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믿음인 것입니다. 이것이 인생을 역전시키고 승리하게 하는 믿음입니다. 우리들에게도 이러한 담대한 믿음의 역사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로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믿음은 고난을 피하는 믿음이 아니라 기쁨으로 받아들이는 믿음입니다. 36절에서 38절까지의 말씀에 보면 "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를 부활로 받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악형을 받되 구차히 면하지 아니하였으며 또 어떤 이들은 희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에 죽는 것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 저희가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가 전파되는 것을 막고 있습니다. 예수 믿는 것을 큰 잘못된 것처럼 말하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우리들이 믿는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의 어떤 것으로도 바꿀 수 없는 것이며, 값으로도 계산할 수 없는 큰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6.25 때에 인천에서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인천에서 목사님 식구들이 공산당에게 붙들려서 인민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목사님 가정도 마찬가지로 인민재판을 받고 반동으로 몰려 사형선고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구덩이를 파고 목사님과 사모님과 아이들을 그 속에 집어넣었습니다. 그리고는 "목사, 당신은 여러 해 동안 거짓말로 사람들을 잘못 인도했소. 이제라도 당신이 우리 앞에서 하나님을 부인하고, 거짓을 뉘우치고 용서를 빌면 당신과 아이들과 아내를 살려 주겠소. 그러나, 당신이 계속 예수를 믿고 거짓을 받아들이면 당신과 가족은 모두 생매장 될 것이요. 자 이제 결정하시오" 그 때, 아이들이 "아빠, 무서워요. 제발 우리를 살려 주세요!"라고 울면서 목사님의 옷을 잡고 매달리며 외쳤습니다. 아이를 가진 아빠라면 아이들이 매달려 울부짖는 소리에 마음이 흔들릴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목사님 역시 그만 마음이 약해지고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손을 높이 들고 "예수님을 내가 부인하겠소"라고 말하려는 순간이었습니다. 그 때에 옆에 있었던 사모님이 목사님의 소매를 붙들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애들아 조용히 해라. 오늘 밤 우리는 왕 중의 왕이시고, 만주의 주님이신 예수님과 함께 천국에서 식사를 하게 될 것이다." 이 말이 마치자 사모님은 "하늘가는 밝은 길이 내 앞에 있으니 슬픈 일을 많이 보고 늘 고생하여도 하늘 영광 밝음이 어둔 그늘 해치니 예수 공로 의지하여 항상 빛을 보도다...."라고 찬양을 시작했습니다. 사모님이 찬양을 부르자 목사님과 아이들도 함께 이 찬양을 따라하기 시작했고, 화가 난 공산당들은 삽을 들어 구덩이에 흙을 퍼 넣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목사님의 가족들은 찬양을 멈추지 않고 계속했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키가 작은 어린아이들의 머리가 먼저 흙구덩이 속에 파묻히고 말았습니다. 이제 목사님과 사모님의 목만 흙 위에 나와 있었지만, 두 분은 눈물을 흘리면서 찬양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목사님의 가족들이 그렇게 죽어갈 때에 주위에는 많은 사람들이 그들이 찬양하면서 죽어 가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지켜보는 사람들의 마음은 어떠했겠습니까? 그들 모두는 마음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에 대해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찬양을 들은 많은 사람들이 나중에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교회에서 신실한 일군들이 되었습니다.

  믿음의 선조들은 예수 믿는 것 때문에 희롱도 받았습니다. 채찍에도 맞았습니다. 돌로도 맞았습니다. 옥에서 갖혔습니다. 톱으로 몸이 잘려서 죽기도 했습니다. 배고품과 가난함 속에서도 살았습니다. 학대도 받았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고난 중에도 즐거워하면서 하나님을 오직 기뻐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이들이 이런 핍박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세상보다 우리들에게 더 좋은 것을 예비하고 있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40절에는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이라고 했습니다.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믿음은 이처럼 더 좋은 것이 예비 되어 있다는 사실을 믿고 오직 하나님의 나라는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전라남도 영광군 염산면에 염산교회가 있습니다. 6.25 전쟁을 통해 영광군에서 한국 기독교 역사상 가장 많은 196명의 순교자를 내었는데 그 중에 염산교회는 77명이 공산당에게 학살당했습니다. 1953년 9월 28일 인천 상류작전을 통해 수도가 수복되자, 염산지방을 장악하고 있던 공산당원들이 마지막 발악으로 기독교인들을 살해하기 시작했고, 10월 8일 염산교회 노병일 집사님의 가족 23명이 제방공사 수문 턱에서 목에 돌을 단 채로 바닷물로 던져졌습니다. 10월 26일에는 지하교회에서 숨어 예배 드리고 있는 김병호 목사님의 가족들을 붙들고, 목사님의 아들에게 몽둥이를 주면서 "아버지를 때려죽이면 대신해서 살려주겠다"고 했습니다. 이 때 아들은 '주여! 주여! 내가 이 일을 어떻게 합니까?"라고 외치면서 함께 죽여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아들을 군화발로 걷어차면서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김목사님을 때리고 대나무로 만든 창으로 찔러 죽였고, 사모님과 다섯 아들과 여덟 살과 다섯 살 된 손자까지 차례로 죽이고 말았습니다. 그 때에 여자들은 목을 쳐서 죽었는데 여자들의 긴 머리카락으로 인해 칼이 잘 들어가지 않자 여자들의 긴 머리채를 붙잡고 목을 쳐서 죽였다고 합니다. 심지어 기록에 따르면 살아 있는 갓난아기들조차 믿음의 자식들이라고 해서 살아 있는 채 땅에 묻어 버리는 생매장까지 했다고 합니다.

  이들이 이렇게 고난을 받은 것은 하늘 나라에 우리를 위해 예비 된 더 좋은 것이 있다는 확고한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따라서,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믿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은 저 하나님의 나라를 마음에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여러분 속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며, 우리를 위해 예비된 저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그 마음에 품고 살아가기를 진실로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