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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마침내 구원을 얻으니라 (행 27:2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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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유흥준 목사

아그립바 왕과 베스도 총독 앞에서의 재판이 끝난 다음에 바울은 드디어 로마로 향하게 되고, 바울의 로마 행에는 누가와 아리스다고가 동행하였습니다.
바울의 로마 행은 유쾌한 여행이 아닙니다. 죄수의 신분으로 재판을 받으러 가는 길입니다.
그런 길을 혼자서 간다면 얼마나 외롭고 힘들겠습니까? 물론 바울의 로마 행은 하나님이 함께 해 주십니다. 그러기에 동행자가 없다 할지라도 무사히 로마까지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만 동행자가 있다면 더욱 더 좋은 일이 아니겠습니까?

여러분도 하나님 일하는 사람들의 동행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일 하면서 지치고 힘들어하는 사람들의 곁에 서서 돕는 자의 역할을 하시기 바랍니다.
전도서 4:9-12절을 보십시오.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저희가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혹시 저희가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한 사람의 힘은 미약하지만 두 사람, 세 사람의 힘이 합해지면 그 힘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그러기에 서로서로 돕는 자가 되도록 합시다.
여러분 모두가 서로에게 동역자요 동행자가 되어진다면 이루지 못할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아래 모두다 하나 되어 위대한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 나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바울 일행이 로마로 가기 위해 배를 탔는데 책임자는 백부장 율리오였습니다. 지난 시간에 이미 살핀 것처럼 배를 타고 가는 도중 유라굴로라는 광풍을 만나면서 엄청난 시련을 겪었습니다.
왜 그런 시련을 겪었을까요? 지도자를 잘못 만났기 때문입니다. 만약 율리오 대신 바울이 지도자 역할을 했더라면 어려움을 겪지 않아도 됐습니다.
결국 율리오는 실패한 지도자로서 자신의 목숨을 포함해 276명의 목숨을 위기 속에 빠뜨리고 말았습니다.

어느 공동체, 어느 단체든 지도자의 역할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중요합니다.
대통령을 잘 선택하면 나라 전체가 좋아집니다.
경영자를 잘 세우면 기업이 든든해지고,
목사를 잘 세우면 교회가 힘있고 건강해집니다.
구역이 잘되는 것 구역장에게 달렸고, 가정이 잘되는 것도 가장에게 달려 있습니다.
여러분과 관계된 모든 곳에서 좋은 지도자가 세워지기 위해서 기도하시고, 또 이미 세워진 지도자들이 좋은 지도자가 되도록 기도하면서 뒷받침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 자신이 좋은 지도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지도자가 중요한 것처럼 선택하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의 삶 속에는 수없이 많은 선택의 기회가 주어집니다.
교회 선택, 직장선택, 사업선택, 학교선택, 할 것인가 말 것인가, 갈 것인가 말 것인가, 예배를 드릴 것인가 말 것인가, 순종할 것인가 말 것인가 … 선택을 잘 할 때 성공자가 될 수 있지만 잘못된 선택은 실패자가 되는 지름길입니다.
바울은 항해하기 위험한 때니 항해를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고 선장과 선주 그리고 뱃사람들 모두는 항해를 하자고 주장했습니다.
두 의견 중에 백부장 율리오는 경험자의 말을 선택하여 항해를 시작했고, 그 결과는 생명의 위협과 재산 손실 등등으로 나타났습니다.
여러분과 저에게는 바른 선택을 하는 지혜로움이 충만하기를 원합니다.

그럼 어떤 선택이 지혜로운 선택입니까? 경험에 의한 선택, 환경에 맞는 선택, 지식에 의한 선택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찾아 그 뜻을 선택하는 것이 지혜로운 선택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확실하다면 그 일이 어떤 길이든 가야만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했을 때 결과는 항상 <합력하여서 선>임을 믿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순종을 몇 가지 살펴보겠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바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기에 이삭을 바쳤습니다. 아비가 어찌 자식을 칼로 찔러 죽여서 하나님께 바칠 수 있습니까?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아무리 하나님인들 어떻게 그런 명령을 내릴 수 있겠습니까? 순종하지 않는다 해도 아브라함이 잘못했다고 비난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순종했습니다. 왜 순종했습니까? 하나님이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이요 하나님의 뜻이라는 사실 앞에서 순종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고민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유 불문하고 순종하는 것 뿐 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넜을 때 그들 앞엔 여리고성이 버티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여호수아에게 명령을 내립니다. <너희 모든 군사는 엿새동안 하루에 한 바퀴씩 성을 돌고 7일 째 되는 날에는 7바퀴를 돌며 나팔 소리에 맞춰서 큰소리로 외치라 그리하면 성벽이 무너져 내리리라>
여러분 같으면 순종하겠습니까? <교회 건물을 7일 동안 한바퀴씩 돌아라 그러면 무너지리라>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셨다면 순종할 수 있겠습니까? 여호수아는 순종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터무니없는 명령입니다. 사기꾼의 말 같고 거짓말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명령이라는 한가지 이유 때문에 그냥 순종한 것입니다.

아람 왕의 군대 장관 나아만이 문둥병에 걸렸습니다. 그는 병을 치료하기 위해 엘리사를 찾아갔고 엘리사는 요단 강에 몸을 7번 담그라고 말을 합니다. 이치에 맞는 말입니까? 하지만 하나님의 선지자의 말이었기에 순종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예레미야야 내가 너를 선지자로 세웠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때 예레미야는 나는 어린 아이와 같기 때문에 말을 할 줄을 모른다고 사양합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다시 말씀하십니다. 예레미야 1:7절에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아이라 하지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
그 후로 예레미야는 하나님이 주신 모든 말씀 즉 그 내용이 무엇이든 또 말씀을 선포했을 때 어떤 어려움이 닥쳐오든 그것에 개의치 않고 주신 말씀 그대로 선포합니다.
조국이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한다는 말을 어찌 쉽게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말씀이기에 선포했습니다. 목숨의 위협을 받아 가면서까지 그는 하나님의 뜻대로만 순종한 것입니다.

빌립 집사가 사마리아성에서 대 역사를 일으키며 복음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표적이 나타나고 귀신이 쫓겨가고 많은 중풍병자와 앉은뱅이가 치료되면서 그 성에 큰 기쁨이 있었습니다. 복음 확장이 엄청나게 진행됐습니다.
그런 때에 빌립에게 광야로 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광야에 가서 모래와 돌들에게 예수님 믿고 구원받으라고 소리치라는 것입니까? 광야에 가야 할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광야엔 단 한사람도 살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지 돌들에게 필요한 게 아닙니다. 그러나 빌립은 순종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만 하는 것입니까?
27절 <열 나흘째 되는 날 밤에 우리가 아드리아 바다에 이리저리 쫓겨가더니 밤중쯤 되어 사공들이 어느 육지에 가까워지는 줄을 짐작하고>
이 말씀을 보시면 순종해야 하는 이유를 잘 알 수 있습니다. 잘못된 선택을 한 결과 14일 동안이나 죽을 고비가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X3 뒤돌아 서지 않겠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지혜로운 성도가 되시기 축복합니다. 늘 하나님 편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나의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 않고 나의 환경에는 맞지 않는다 할지라도 순종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승리요 축복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순종하는 자를 반듯이 책임져 주시고 순종하는 자를 더욱더 사용해 주십니다.

1. 사공들만 구명정을 타고 도망하려는 것을 바울이 저지시킵니다(27-32)

27절을 보면 사공들이 육지에 가까워진 것을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사공들이 이상한 행동을 합니다.
30절 <사공들이 도망하고자 하여 이물에서 닻을 주려는 체하고 거루를 바다에 내려놓거늘>
사공들이 도망치기 위해서 이물(=뱃머리, 고물=배 뒤편)에서 닻을 내리는 체하며 거루(=구명보트)를 바다에 내려놓았습니다. 자신들만 살겠다는 것입니다.
사공들은 승객들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의무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배가 침몰하는 그 순간까지 승객들을 단 한사람이라도 더 구해 내야 합니다. 

<타이타닉>이라는 영화를 보셨습니까? 승객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 배가 물 속에 잠기는 그 순간까지 최선을 다하다가 배와 함께 삶을 마감하는 선원들의 모습이 너무 감동적이었습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구명보트를 타지 못해 죽어 가고 있을 때, 그 배의 연주단원들이 자신들의 탈출을 포기하고 찬송가 연주를 통해 절망에 빠져 있는 사람들에게 위로와 소망을 주다가 배와 함께 바다 속에 빠져 들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는지 모릅니다.
내가 살겠다고 도망칠 때 나는 살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내가 도망침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이 죽는 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선원들이 구명보트를 타고 도망치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살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무산시키는 것과 같습니다. 만약 본문의 뱃사람들이 몰래 도망쳤다면 살 수 있었을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이 배 안의 276명을 살려주시는 것은 바울 때문에 살려주시는 것입니다.
즉 바울 곁에 함께 있어야 살 수 있는데 바울 곁을 떠난다면 결코 살 수 없습니다. 어려울 때 힘을 합하면 함께 살지만 나 혼자 살겠다고 흩어지면 모두다 죽습니다.

여러분의 사명이 무엇입니까? 주신 사명을 충성스럽게 잘 감당하고 있습니까?
여러분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잘 살아나고 있습니까?
여러분 때문에 교회가 부흥되고 복을 누리고 있습니까? 
사명을 감당해 나가는 과정에서 누군가 희생할 사람이 필요하다면 여러분이 그 짐을 짊어져야 합니다. 내가 죽겠다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내가 속해 있는 구역에 많은 문제점이 보이고, 구역을 이끌어 가는 게 힘들다고 하여 주신 직분을 포기하고 도망친다면 남아 있는 구역원들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비록 내 구역이 침몰하는 배와 같을지라도 구역원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다가 나는 배와 함께 희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광성교회를 여러분에게 맡겨 주셨음을 믿습니까? 이 교회는 목사에게만 맡기신 게 아닙니다. 믿음이 좋은 OO에게만 맡기신 것도 아닙니다.
나에게 맡겨 주셨음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이 교회를 맡겨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어린이주일 학교(학생회 …)를 맡겨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구역을 맡겨 주셨고, 찬양대를 맡겨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성전 청소를 맡겨 주셨고, 성전 꽃꽂이를 맡겨 주셨습니다. 기도를 맡겨 주셨고 전도를 맡겨 주셨습니다. 운전을 맡겨 주셨고, 화장실 청소를 맡겨 주셨습니다.
주일 낮 점심 준비를 맡겨 주셨고 설거지를 맡겨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맡겨 주셨는데 힘들다고 도망치면 되겠습니까? 나 혼자 편하겠다고 그만 둘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이 교회를 여러분에게 맡겨 주셨음을 확신한다면 교회와 함께 살고 함께 죽으시기 바랍니다.
교회를 위해 살고 교회를 위해 죽으시기 바랍니다. 교회의 힘든 짐을 여러분이 짊어지고 교회의 문제를 여러분이 짊어지시길 간절히 축복합니다. 

31절 보세요. <바울이 백부장과 군사들에게 이르되 이 사람들이 배에 있지 아니하면 너희가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 하니>
바울이 백부장과 군사들에게 도망치는 선원을 붙잡으라고 말합니다. 그들을 붙잡아 두어야 배 안에 있는 사람들이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배 안에 있는 사람들의 생명을 지켜 주시겠다고 바울에게 분명히 약속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뱃사람들이 도망간다고 해도 구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이 구원해 주신다고 약속하셨다는 것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해도 된다는 게 아닙니다.

만약 하나님이 약속하셨기에 하나님이 다 해 주신다면 기도할 필요가 어디 있습니까? 전도할 필요도 없고 공부할 필요도 없습니다. 심지어 밥 먹을 필요도 잠 잘 필요도 없습니다. 먹고살기 위해 돈 벌 필요도 없고 건강을 위해 운동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기 위해선 하나님이 해주신다는 믿음 아래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성경에 소개되고 있는 훌륭한 신앙인들을 보십시오. 그들이 하나님만 바라보면서 아무 것도 하지 않았습니까? 그들은 죽도록 충성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아니하고 열심히 땀 흘려 일을 했습니다.

3년 6개월의 가뭄으로 인해 메말라 버린 이스라엘 땅위에 하나님께서 비를 내려 주시겠다고 약속하시자 엘리야는 머리를 무릎에 처박고 일곱 번이나 기도했습니다. 약속이 이루어지기까지, 비가 오기까지 간절한 기도를 계속했다는 뜻입니다.

배 안의 사람들이 살기 위해선 선원들의 기술과 경험들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선원들의 기술과 경험을 사용하시어 배 안의 사람들의 생명을 구해 주십니다. 그러니 선원들이 도망가서는 안될 일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광성교회에 부흥과 축복을 주십니다. 주시는 방법은 어느 날 갑자기 수많은 사람이 몰려오고 하늘에서 축복이 쏟아져 내려오게 하시는 게 아니라 여러분의 믿음과 재능과 가진 모든 것을 사용하시어 이 교회를 부흥케 하시고 든든하게 해주십니다.

그러니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고 있어서는 안되고 도망쳐서도 안되며 포기해서도 안됩니다. 그리고 도망치고 포기하면 그 것이 실패의 길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세워 놓으신 곳에서 뿌리를 내리며 충성하는 자 만이 살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2절 <이에 군사들이 거룻 줄을 끊어 떼어 버리니라>
바울의 경고를 듣고 군사들이 구명보트의 줄을 끊어 버렸습니다. 도망치지 못하도록 보트를 바다로 떠내려가게 했다는 것입니다.

2. 바울이 무리를 권하여 음식을 먹게 하며 위로합니다(33-38)

33절 <날이 새어 가매 바울이 여러 사람을 음식 먹으라 권하여 가로되 너희가 기다리고 기다리며 먹지 못하고 주린 지가 오늘까지 열 나흘인즉>
열 나흘 동안 먹지 못했습니다. 바울의 말을 듣지 않은 결과입니다. 불순종의 대가가 너무 큽니다.
34-35절 <음식 먹으라 권하노니 이것이 너희 구원을 위하는 것이요 너희중 머리터럭 하나라도 잃을 자가 없느니라 하고 떡을 가져다가 모든 사람 앞에서 하나님께 축사하고 떼어먹기를 시작하매>

하나님께서 너희 머리카락 하나 상하지 않도록 모두들 구원해 주실 터이니 힘을 내고 음식을 먹으라고 권면하면서 떡을 앞에 놓고 하나님께 기도한 뒤 함께 먹습니다.
배 안에 있는 275명이 바울의 말에 안심을 하고 떡을 먹으며 힘을 얻습니다. 이제는 배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바울의 말에 적극 순종합니다. 백부장도, 군사들도 나머지 모든 사람들도 오직 순종뿐입니다.

왜 순종할까요? 바울에 대한 신뢰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처음부터 순종했으면 좋았으련만 그러나 늦게라도 순종해서 다행입니다.
여러분이 과거부터 순종해 오셨다면 너무너무 감사한 일입니다. 앞으로도 계속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아니면 과거에 순종하지 않은 경험이 많다 할지라도 이제 깨달았다면 지금부터라도 순종의 길을 걸으십시오. 그러면 구원입니다.
열 나흘 째 되는 날 밤 바울을 통해 275명의 사람들이 음식을 먹고 힘을 얻으며 구원에 대한 소망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날이 밝았습니다.

3. 날이 샌 후에 한 육지에 상륙을 시도하다가 배가 난파되었습니다(39-41) 

날이 새어 오니 어느 땅인지 모라도 경사진 항만이 보입니다(39),
선원들이 의논한 후 닻을 끊고 돛을 올려 바람을 이용하여 해안에 접근합니다(39-40).
그러나 두 물살이 합해지는 지점에서 선두는 모래톱에 박히고 선미는 물살에 부스러져 난파됩니다(41)
39절을 보세요 <날이 새매 어느 땅인지 알지 못하나 경사진 해안으로 된 항만이 눈에 띄거늘 배를 거기에 드려다 댈 수 있는가 의논한 후>
육지가 눈앞에 펼쳐져 있습니다. 이제 살게 됐습니다. 그러나 육지(=멜리데섬)에 상륙하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방법은 헤엄 쳐서 상륙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또 문제가 있습니다. 헤엄 쳐서 상륙한다면 죄수들이 도망칠 염려가 있습니다.
그래서 군사들은 죄수들을 죽이려고 합니다(42). 죄수들이 도망칠 경우 지키던 군사들이 자신의 생명을 내어놓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만약 죄수들을 처형한다면 바울도 죄수의 신분이기에 처형당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로마를 보고야 말리라는 바울의 꿈과 하나님의 계획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백부장이 바울을 살리기 위해 군사들의 제안을 받아 들이지 않습니다
43절을 보십시오. <백부장이 바울을 구원하려 하여 저희의 뜻을 막고 헤엄칠 줄 아는 사람들을 명하여 물에 뛰어내려 먼저 육지에 나가게 하고>
백부장이 바울의 생명을 구해 줍니다.
바울이 가는 곳엔 언제나 생명의 위협이 뒤따랐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하나님은 돕는 자를 세우셨습니다.
사도행전을 살피면서 제가 자주 강조했던 내용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이요 해야 될 일이 있는 사람은 그 일을 다하기까지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신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를 보게끔 되어 있습니다. 그 계획은 하나님이 세우신 것입니다. 그러니 군사들이 하나님의 계획을 깨뜨릴 수 있습니까?
그들은 절대로 하나님의 계획을 방해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기어이 바울을 로마에 세우고야 마십니다. 그래서 백부장을 통해서 바울의 목숨을 지키게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도 안심하시고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최선을 다 하시기 바랍니다. 세상이 아무리 어지러워진들, 심지어 전쟁이 일어나고 천지개벽의 사건이 생길지라도 하나님은 여러분을 지켜 주시고 책임져 주십니다.
어떤 때는 믿는 자를 통해서, 또 어떤 때는 불신자를 통해서 지켜 주십니다. 어떤 때는 아는 사람을 통해서, 어떤 때는 전혀 모르는 사람을 통해서 도와주시고 함께 해 주십니다.
우리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교회는 해야 될 사명이 있는 교회입니다. 이 땅에 수많은 교회가 있지만 우리 광성교회에만 주신 특별한 사명이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 교회를 반듯이 지켜 주십니다.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부흥도 주시고 재정의 축복도 주십니다. 돕는 자를 곳곳에 세워 놓으십니다.

그럼으로 우리 교회의 미래에 대해서 걱정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우리 교회는 하나님의 보호의 품안에 있습니다. 사단이 넘보지 못하고 침투하지 못하도록 지키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4. 난파선을 버린 선원과 승객들이 모두 무사히 상륙합니다

44절 <그 남은 사람들은 널조각 혹은 배 물건에 의지하여 나가게 하니 마침내 사람들이 다 상륙하여 구원을 얻으니라>
백부장이 각각 헤엄을 치거나 배의 파편을 이용하여 바라다 보이는 육지에 상륙할 것을 명령하므로 모두다 구원을 얻었습니다. 배 안에 타고 있던 276명 가운데 한 명의 희생자도 없이 다 구원을  얻었습니다.

여러분 놀라지 않습니까? 광풍이 몰아쳤고 해와 달과 별조차 보이지 않았습니다. 14일 동안 먹지 못했습니다. 배는 앞뒤가 깨어지고 파선 직전입니다. 살 소망이라곤 1%의 가능성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모두다 살았습니다. 운이 좋아서가 아니라 바울 때문에 살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광풍과 암흑 속에서 하나님을 찾던 바울에게 하나님은 배 안에 타고 있는 모든 사람의 생명을 지켜 주시겠다고 응답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약속하신 대로 276명 모두다 멜리데 섬에 상륙을 하였습니다.
선원들의 도망 계획도 있었고, 군인들의 죄수 살해 계획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고비를 넘기고 결국엔 하나님이 약속해 주신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뜻이 주어졌습니다. 또한 여러분 개개인이 하나님께 받은 약속도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을 것입니다.
그 약속이 어떤 약속이든 반듯이 이뤄짐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모든 약속을 이루시는 하나님께 신뢰를 보내면서 믿고 기다리십시오.

그리고 주어진 사명에 충성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우리도 머지않아 광풍과 어두움과 굶주림을 벗어나 구원의 멜리데 섬에 이르게 됨을 믿습니다.
여러분이 바울과 같은 하나님의 일꾼이 되시어 이 시대의 구원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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