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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삶으로 믿는 믿음 (히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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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이영기 목사

지방의 한 세무서 9급 공무원으로 있던 어떤 사람이 부인과 사별하고, 외동딸과 함께 서울로 상경했습니다. 그 외동딸은 고등학교와 대학 입학할 때 ‘수재’라는 칭찬을 들을 정도로 우수한 성적을 유지했습니다. 그리고 직장에서도 제법 승진했습니다. 팀장을 맡았습니다. 그런데, 큰 프로젝트를 담당하는 자리에서 여러 번 밀려났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한계라고 속단하고 퇴직을 했습니다.

퇴직금 5천만 원. 옥탑 방에서 사는 그들에게 가진 거라고는 그게 전부였습니다.
미스 김 10억 만들기라는 드라마가 있었고, 네티즌 사이에 10억 만들기 비결 등등이 인터넷에 떠오르던 때, 이들도 10억 만들기로 했습니다. 아버지와 딸은 “이 돈으로 앞으로 1년간 10억 못 벌면 같이 죽자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5천만 원 중 반은 주식을 사고, 반은 로또 복권을 사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주식도 뜻대로 안 되고, 2천만 원 어치의 복권은 금년에 3등 두 번해서 150만원 정도가 전부였습니다.
결국 지난 22일 오후, 동반 자살을 하기로 했습니다. 딸이 먼저 목매 죽으면 아버지가 시신을 수습한 후 죽기로 했고, 그렇게 그 딸은 목매어 죽었습니다. 딸의 시신을 수습한 후 아버지는 술을 치사량까지 마시고 잠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월세 받으러 온 집 주인이 발견했고, 병원으로 옮겨 목숨을 건졌습니다. 그리고 그 아버지는 어제 4일, 자살방조혐의로 구속되었습니다.

만든 이야기가 아니고 실제 있었던 일입니다.
여러분은 이 이야기를 듣고 무슨 생각이 듭니까?
허무하다 싶습니까? 이처구니 없나요? 화가 납니까? 전 아무 생각도 안 나더라구요. 그냥 머릿속이 멍해지는 겁니다. 조금 지나니까 뭐 이런 사람들이 다 있나 싶고, 화가 나더라고요.
도대체 이 사람들은 산다는 걸 어떻게 생각하고 사는 건가? 사람 산다는 것이 그렇게 간단한가요? 그렇게 쉬운가요? 산다는 게 그렇게 밖에 보이지 않았다는 말인가 싶은 겁니다.
그리고 사람은 무엇으로 사나 싶었습니다.

지방이지만 세무서 공무원이었습니다. 사별하기는 했지만 아내와 딸이 있었습니다. 그 딸은 고등학교 다닐 때와 대학입학 때 “수재” 소리를 들을 만큼 공부도 잘했습니다. 서울 상경해서도 직장생활 잘 했고요.
우리들은 한번 돌아다보십시다.
어떤 부인은 “우리 남편이 세무서 공무원이라면 걱정도 없겠다” 그리 말씀할 것입니다.
어떤 부모님은 “우리 아이들이 그 정도 공부하면 걱정도 없겠다” 그리 말씀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우리는 5천만 원은커녕 5만원도 없는데” 그리 말씀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가진 사람들이 그렇게 죽었다는 겁니다. 딸은 아버지 보는 앞에서 목매어 죽고, 아버지 역시 죽으려다 살아서 자살방조혐의로 구속되었다는 겁니다.
그래요. 직장도 있어야지요. 공부도 잘 해야지요. 돈도 있어야지요. 그러나 그것만으로 되는 거 아닙니다. 세상사는 게 그것 다 가졌다고 행복한 게 아니랍니다.

시편 127편 1절에,
“주님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집을 세우는 사람의 수고가 헛되며, 주님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있음이 헛된 일이다.”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집을 세워 주셔야 그 집이 든든히 서있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그 성을 지켜 주셔야 그 성이 든든히 서있는 겁니다. 믿으십니까?
아멘, 안 하신 분들은 못 믿겠다는 거지요?
사실, 아멘 하신 분도 사실은 껄끄름하지요?
왜냐하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도 잘 되니까요. 하나님을 믿지 않아도, 그 집에 잘 되고, 사업도 잘되고, 아이들은 공부 잘하고 그러잖아요? 하나님을 믿지 않는데도 하나님께서 그 집을 세워주셨다면……? 하나님을 믿지 않는데도 하나님께서 그 성을 지켜 주셨다면……?
오히려 하나님을 믿는 우리 집인데 웬 문제는 그리 많은 지……. 오히려 하나님을 믿는 우리 사업인데 왜 그리 안 풀리는지…….
그런데도 아멘 할 수 있겠어요?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왜 온 힘 다해 하나님께 매달리는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고 어정쩡한 모습으로 신앙생활 하는지 아세요?
하나, 다 내 힘으로 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먹고 사는 거 내가 노력한 대가라는 겁니다. 전혀 하나님의 도우심 없이도 오늘까지 살아왔다는 겁니다.

또 하나, 예수 안 믿는 사람도 잘 살더라는 겁니다. 하나님 없이 살아도 부족한 거 없이 살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신앙이란,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이 다음 죽은 후에 천국 가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여기서 살아있는 동안에는 내 힘으로 살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는 겁니다.
그럴까요? 예수 믿는다는 것 단지 천국에 들어가는 티켓 인가요?
많은 성경 가운데, 시편 1편을 보면,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며, 오로지 주님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밤낮으로 율법을 묵상하는 사람이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함 같으니  하는 얼마다 잘 될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하는 일마다 잘 될 것이다.”
“그는 천국에 들어 갈 것이다.”로 끝난 거 아닙니다.
복 있는 사람에게 임하는 복은 “하는 일마다 잘 될 것”이라는 겁니다.
“하는 일마다” 그것은 모든 일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순간순간마다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 그 말씀대로 사는 사람에게는 그런 복을 주신다는 겁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을 안 믿는 사람들 가운데 잘 사는 사람이 있고, 왜 교회 다니는 사람들 가운데는 잘 못사는 사람이 있느냐 이겁니다.
그건 이렇습니다.

먼저 시편 1편을 인용했습니다만, 복 있는 사람, 곧 하는 일마다 잘 되는 은혜를 받는 사람이 누구냐 하면,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며, 오로지 주님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밤낮으로 율법을 묵상하는 사람입니다. 그야말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이며, 이 사람이 모든 일이 잘 되는 은혜와 복을 받는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 자신을 돌아다봅시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보고 그리고 순종했습니까? 지금도 그 말씀대로 살고 있습니까?
악한사람이 잘 되는 거는 신경 쓰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 형통하는 것은 관여치 마십시오. 그들의 결국은 멸망입니다. 죄의 삶은 사망이라고 하셨으니, 그들의 결국은 사망입니다.
우리는 우리대로 하나님 앞에서 살면 되는 겁니다.

간혹 그리스도인들조차도 안 믿는 사람같이 사는 사람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아무것도 안 하는 사람 따라 아무것도 안합니다. 불평하는 사람 따라 불평만 늘어놓습니다. 악을 행하는 사람, 아무것도 안하는 사람, 불평하는 사람, 그냥 두십시오. 그들을 본받지 마십시오. 우린 그냥 우리대로 말씀에 순종하며 살면 되는 겁니다. 그러면 분명, 하는 일마다 잘 되는 복을 받게 됩니다.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세상에 오셨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말씀 안에 있던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복은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그것이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하면 주신다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특권 안에 있는 겁니다.
시편 3편 8절에, “구원은 주님께만 있습니다. 주님의 백성에게 복을 내게 주십시오.” 그렇게 기도합니다.
그렇습니다. 구원은 주님께만 있습니다. 주님은 주님의 백성에게 복을 내려주십니다.
에베소서 2장 8절에, “여러분은 믿음을 통하여 은혜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이럴 때 믿음은 무슨 믿음입니까? 무엇을 믿었다는 겁니까?

마태복음 1장 21절에, “마리아가 아들을 낳을 것이니, 너는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 하셨고, 사도행전 4장 12절엔, “이 예수 밖에는 다른 아무에게도 구원은 없습니다. 사람들에게 주신 이름 가운데 우리가 의지하여 구원을 얻어야 할 이름은 하늘 아래 이 이름 밖에 다른 이름이 없습니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누구를 믿어야 합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2장 8절을 제대로 읽으려면,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은혜로 구원을 얻었습니다.”라고 해야 합니다.
한 마디로, 예수 믿으면 구원입니다. 그것은 동시에 예수 믿으면 복이라는 겁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하나님의 나라에 가는 보장인 것과 동시에, 사는 동안 하는 일마다 잘 되는 복을 받게 되는 겁니다. 그렇기에 중요한 것은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정말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여러분의 구원자 되심을 믿으십니까?
정말 예수그리스도 그분을 영접하셨습니까?
정말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 그분의 말씀대로 살고 있습니까?
왜 아멘 소리가 줄어드나요?

마태복음 16장 16절에 베드로의 멋진 고백이 나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입니다.” 예수님의 기쁨, 예수의 칭찬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을 말씀하시자, 예수님을 책망 하듯이 “절대로 그래서는 안 됩니다” 그랬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으로부터 사탄이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신앙고백과 정말 예수 믿는 믿음이 달랐다는 겁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다면, 그냥 그대로 예수님의 말씀도 믿어야 하는 겁니다. 정말 예수님이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다면 예수님이 죽으신다는 말이 받아들여지겠습니까? 어떻게 그리스도께서 죽습니까? 어떻게 하나님의 아들이 죽습니까?

또 죽으신다 하더라도 사흘 만에 부활하신다는 말씀은 왜 귀에 들어오지 않겠습니까?
말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고백 했지만, 정말 예수님이 그런 분이심을 못 믿고 있는 겁니다. 그냥 예수님은 기적을 일으키는 분, 그리고 남다른 능력을 가지신 분, 그래서 곧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실 왕이 되실 거라는 믿음이 이들의 믿음이었습니다.
예수님을 향한 신앙고백과 우리의 삶이 너무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마치 초점이 안 맞은 사진과 같습니다. 초점이 맞지 않는 사진은 흐릿합니다. 도대체 무엇을 찍었는지 조차도 알 수 없습니다. 신앙고백과 삶이 맞지 않은 신앙 역시 흐릿합니다. 정말 예수 믿는 건지 아닌지 조차도 알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면서 지금 이 예배하는 시간에 몸이 좀 피곤하다고 집에서 잠을 자고 있다면 그 믿음이 의심스럽지 않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면서 말씀을 읽지도 듣지도 않는다면 역시 그 믿음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의심스럽지 않겠습니까? 예수는 그리스도이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는다면서도 기도하지 않는다면 과연 그가 믿음의 사람이겠습니까?

열왕기하 4장에 보면, 예언자 수련생들의 아내 가운데서 남편을 잃은 어느 한 여인이 엘리사에게 부르짖으면 호소합니다.
“예언자님의 종인 저의 남편이 죽었습니다. 예언자님께서도 아시다시피 그는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빚을 준 사람이 와서 저의 두 아들을 자기의 노예로 삼으려고 데려가려 합니다.”
그 말을 들은 엘리사는 “내가 어떻게 하면 도움이 되겠는지 알려주시오. 집 안에 무엇이 남아 있소?” 하고 물었습니다.
그 여인은 “집안에는 기름 한 병 말고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엘리사가 말했습니다. “나가서 이웃 사람들에게 빈 그릇들을 빌려 오시오. 되도록 많이 빌려와서, 두 아들만 데리고 집으로 들어가 문을 닫고, 그 그릇마다 모두 기름을 부어서 채워지는 대로 옆으로 옮겨 놓으시오.”
그래서 그렇게 했습니다.
그릇마다 가득 차자 그 여인이 아들들에게 물었습니다. “그릇이 더 없느냐?” 아들들은 그릇이 이제 더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기름은 더 이상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 여인은 하나님의 사람인 엘리사에게 가서 이 사실을 말했습니다.
“가서 기름을 팔아 빚을 갚고 나머지는 모자의 생활비로 쓰도록 하시오.”
이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고백과 삶이 어떻게 하나가 되는가를 봅니다.
두 아들과 사는 이 여인은 하나님의 사람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믿었습니다. 그래서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람이 말씀하시자 그대로 했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가진 거라고는 기름 한 병뿐입니다. 그런데 그릇을 빌려 오라니요!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아들 수도 없는 겁니다. 그런데 그 여인은 그대로 했습니다. 그러자 그 모든 그릇에 기름이 가득 찼습니다.
그 여인은 말씀대로 그대로 했습니다. 여기에는 그 여인의 “믿습니다.”하는 말이 없습니다.
“이렇게 이렇게 해라”는 말씀과 그대로 했다는 것 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아멘하고 그대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왜 예수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믿는 사람에게 약속하신 “하는 일에다 잘 되는” 은혜와 복을 누리지 못합니까? 분명히 하나님은 하나님을 믿고 그 말씀대로 사는 사람들에게 복을 약속하셨습니다. 하는 일마다 잘되게 해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왜 그런 은혜를 받지 못 하는 겁니까?
그냥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게 아니라 자기가 판단하고 자기가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우선,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기도하지 않습니다. 기도한다고 되느냐는 거지요
또 하나, 드림이 없습니다. “집안에 무엇이 남아 있소?”하고 물으면 감춥니다. “이게 이제 남은 마지막인데 이것 내놓으라면 어떻게 하나?”싶어,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진 게 없다고 합니다.
더욱이 빈 그릇을 빌려다가 기름을 부어 그 그릇들을 채우라는 말씀에는 화를 낼 겁니다.
“이 사람이 누굴 놀리나” “그렇게 빈 그릇마다 기름을 채울 수 있을 정도로 우리 집에 기름이 많다면, 뭐 하러 빚을 지며, 뭐 하러 당신한테 와서 부르짖으며 호소했겠는가 말입니다.” 그래서 아마 “거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도 마이소” 그리고 벌떡 일어 날 겁니다.
아마, 조금 신앙에 있는 사람은 “그래도 해보자.” 그러나  이웃에 가서 그릇을 빌려 올 것 까지는 없고, 집에 있는 그릇에다가 한번 해 볼 겁니다.
요렇게 신앙생활 하는 사람이 많아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려 해도 사람들이 가진 그 생각에 막힐 때가 많아요. 아예 복을 못 받든지, 받아도 집에 있는 그릇을 채울 정도 밖에 안 되는 겁니다.
“그릇을 빌려 오시오. 되도록 많이 빌려와서” 엘리사는 그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이 말씀도 그렇습니다. 이 그릇이 무엇입니까?
어떤 분은 “큰 꿈을 가져라.”하고 말합니다. 그런데 대부분이 자기 욕심입니다.
“네 입을 크게 열라.” 그래서 입을 크게 열었습니다. 크게 열면 큰 것 넣어 주실 거라는 생각입니다. 그런데 큰 입에 큰 거 넣어 보세요. 오히려 숨 막혀 죽습니다. 큰 입은 기도의 큰 그릇을 의미합니다.
분명 이 그릇은 복 받기 위한 그릇들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겠습니까?
오늘 여기 주님 앞에 나와 예배하는 여러분은 이미 복 받을 그릇을 하나 준비해 놓으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겁니다. 성경 읽는 것, 기도 하는 것, 주일 오후예배, 수요예배, 속회예배, 새벽기도회, 성경공부, 전도, 구제 등 이 모든 것이 하나의 그릇들입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속회 한 번 빠지면 복 받을 그릇 하나 잃어버린 겁니다. 다음 주에 속회가 또 있으니까 괜찮다고요? 아닙니다. 이미 그 그릇은 없어졌습니다. 그 그릇에 담길 복 또한 없어진 것입니다. 다음 주 속회는 또 다른 그릇 입니다.
지난 주일예배와 오늘 예배가 같은 그릇이 아닙니다. 다릅니다. 그 그릇에 담기는 복 또한 같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그릇을 크게 하는 겁니다. 그래서 될 수록 많은 그릇을 준비하라고 하신 겁니다.

그리고 그 준비는 우리가 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확신, 실상, 보증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믿습니다.”냐? 그건, 아니라는 겁니다.
2절에, “선조들은 이 믿음으로 살았기 때문에 훌륭한 사람으로 증언 곧 인정 되었습니다.”
선조들은 이 믿음으로 살았다고 합니다.
노아는 그 믿음으로 산꼭대기에 배를 만들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믿음으로 부르심을 받았을 때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하나님께서 가라 하시는 대로 길 떠났습니다.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그의 외아들 이삭을 바쳤습니다.
“그들은 믿음으로 나라를 정복하고, 정의를 실천하고, 약속된 것을 받고, 사자의 입을 막고, 불이 위력을 꺾고, 칼날을 피하고, 약한데서 강해지고, 전쟁에서 용맹을 떨치고, 외국 군대를 물리쳤습니다.”(히 11:33-34)
고문당하면서도 구태여 놓여나기를 바리지 않은 것도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는 믿음이었고, 조롱을 받기도 하고, 채찍으로 맞기도 하고, 심지어 결박당하기도 하고 감옥에 갇히기까지 하면서 시련을 겪은 것 또한 부활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히 11:35-36)

믿음은 결코 막연한 것 아닙니다.
누군가 여러분에게 믿음이 뭐냐고 물으면 뭐라 대답하겠습니까? “믿음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거다”그리 대답하시겠습니까?
믿음은 주님의 말씀대로 사는 삶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하는 일마다 잘된다는 주님의 약속대로 복을 누리며 사는 삶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우리 삶에 나타나고 보여져야 합니다.
바라는 것들, 그것은 오직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실상, 실재, 보증, 확신으로 나타나게 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들, 그것 역시 아직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확실한 증거로 나타나게 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은 막연히 어떻게 되겠지 하는 것 아닙니다.
믿음은 그냥 “믿습니다.” 그렇게만 하는 것도 아닙니다.
믿음은 믿는 대로 사는 것입니다.
믿음은 주님의 말씀을 믿고 그대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은 끝내 멸망입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믿으십시오. 그들이 잘 된다고 부러워하지 마십시오. 그들과 같이 악해서도 안 됩니다. 끝내 그들은 멸망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들에게는 은혜와 복 입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믿으십시오. 때로 꼭 이래야 하나 하는 인간적 생각이 들더라도 믿으십시오. 그리고 믿는 대로 사십시오. 끝내 여러분들에게는 하나님의 은혜와 복이 있을 겁니다. 하는 일마다 잘 되는 겁니다.
모든 예배에 참석 하십시오. 기도 하십시오. 말씀을 읽고, 들으십시오. 전도하고, 구제하십시오. 그래서 많은 그릇을 준비 하십시오. 큰 그릇을 준비 하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이 준비한 그릇에 은혜와 복을 충만하게 채워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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