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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권고를 받는 삶(사6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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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김광일목사(벧엘감리교회)

  베스트셀러가 된 “나는 고백한다. 현대의학을” (원제:Complications)이란 책은 한 외과의사가 더 나은 의사가 되기 위해 의학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고백한 책입니다. 저자는 의료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아는가’ 가 아닌 ‘얼마나 많이 모르는가’ 를 중심 테마로 잡았습니다. 부제로 "불완전한 과학에 대한 한 외과의사의 노트" 라고 이름지은 이유도 의학계의 무지에 대한 겸허한 표현입니다. 사실 의학은 모든 과학을 집대성한 것이지만 병명을 모르는 병이 한 두 가지가 아니어서 장담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의사들은 수술을 집도할 때마다 "하나님, 도와주십시오!" 라고 기도합니다. 자기의 유한함과 무지를 고백하는 기도입니다. 현대의 최첨단 과학 국가인 미국은 광우병 하나를 잡지 못해 고생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한때 조류독감 때문에 농가에서 근심이 끊이지 않았었습니다. 하나님의 광대무변하심에 비하면 인간의 지식은 유한합니다. 사실 우리가 어떤 일을 안다고 하는 그 순간 우리는 실족하게 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살아 계신 주님 앞에 엎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고백하기를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시편 121:1-2)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야만 하는 인생들입니다.

  오늘 본문에 ‘권고’ 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영어성경은'돌보다’,'집중하다’는 의미의 look으로 번역하였습니다. 따라서 ‘권고하신다’ 는 것은 ‘돌보아 주신다, 관심을 갖고 도와주신다’ 라는 의미입니다. 권고의 반대는 ‘외면'입니다. 외면은 ‘얼굴을 돌려버린다. 포기해 버린다’ 는 것입니다. 가장 비참한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외면당한 사람이며 가장 복된 사람은 하나님께서 권고해주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권고해주지 않으시면 아무리 아침 일찍 일어나고 늦게까지 일을 한다해도 헛수고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가장 복 있는 사람은 하나님이 권고하는 사람입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외면당하는 삶을 살지 말고 하나님의 권고를 받는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버려짐을 당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돌보심을 받는 삶이 되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권고를 받는 삶은 어떠한 삶입니까?

  첫째로 마음이 가난한 삶이 되어야 합니다

  영국 런던에 웨스트민스터사원은 유명한 사람들이 많이 묻힌 국립묘지입니다. 그 곳에 실낙원을 쓴 존 밀턴의 무덤과 흉상이 있답니다. 그런데 그 흉상 밑에 설명이 있는데 존 밀턴을 설명하는 것은 한 줄이랍니다. ‘실낙원의 작가 존 밀턴’ 이라고 한 줄 그런데 그 밑에 흉상을 세운 사람 윌리엄 밴손이라는 사람에 관해서는 33개의 단어로 잔뜩 써 놓았답니다. 별 것도 아닌 흉상 만든 사람은 33단어, 진짜 알고 싶은 밀턴은 한 줄, 그것도 다 아는 실낙원의 작가 존 밀턴을 말입니다. 오늘 우리의 모습이 아닙니까? 하나님이 누구입니까? ‘천지를 창조하신 분’ 딱 한 줄, 그래 놓고 쓰임 받는 우리는 33장의 설명을 하고 살아간다면 하나님의 권고를 받을 수 없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마음이 가난하다’ 는 것은 겸손함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자를 축복하십니다. 하나님은 마음이 가난한 자를 좋아하십니다. 그리고 그를 뒤에서 돌보아 주십니다. 옛날에 우리나라에 과거시험이 있었습니다. 여러 시험지가 나오는데 그 중에서 제일 잘된 시험지를 맨 위에 딱 올려놓았다고 합니다. 이렇게 맨 위에 올려놓았다고 해서 압권(壓卷)이라고 합니다. 모든 것을 다 눌렀다는 뜻입니다. 압권은 장원급제한 시험지라는 뜻입니다. 교만은 자기가 모든 것 위에 올라서려고 하는 것, 다시 말해서 하나님까지도 밟고 올라서려고 하는 것입니다. 인류 최초의 원죄가 바로 교만입니다. 교만은 인류 최초부터 마지막 시대까지 수많은 사람들을 넘어뜨리는 악한 마귀적 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만을 버리고 겸손함 가운데 서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권고해 주십니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인 사울 왕은 겸손할 때에 하나님께서 그를 권고하셔서 그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워주셨습니다. 그러나 그가 교만하여 제사장이 드려야 할 제사를 드리고 ‘아말렉을 쳐서 진멸하라'고 명령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아니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를 외면하셨습니다. 사울에게서 얼굴을 돌리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권고를 받기 원하신다면 가난한 심령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겸손함으로 허리를 동이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 주시며 권고하여 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심령에 통회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마틴 루터가 성당앞에 붙인 95개조 항의문 안에 이런 구절이 들어 있습니다. '신앙인의 삶이란 끊임없는 회개와 참회를 하는 것이다.' 용서받은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우리 안에 성령을 모시고 사는 사람이기에 우리에게는 매일 죄를 씻는 눈물이 필요합니다. 구원의 확신이 없어서 애통하는 것이 아닙니다. 항상 기뻐하라는 말씀을 몰라서 애통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거룩하신 임재를 가까이서 느끼기 때문에 애통하는 것이고 눈물을 흘리는 것입니다. 한 청교도는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살아있는 신앙을 가진 사람은 눈물이 마르지 않습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 앞에서 내 부족함을 발견할 때마다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영혼이 메말라 가는 사람은 억지로 눈물을 짜려고 해도 눈물 한 방울 나오지 않습니다. 수많은 세월 동안 교회에 와서 십자가를 바라보아도 아무런 마음의 움직임이 없습니다. 눈에 눈물이 마른 사람은 살아있는 신앙의 사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신앙 생활에서 눈물과 애통이 차지하는 비중은 거의 절대적입니다. 눈물을 통과하지 아니한 신앙은 하나의 값싼 장식품에 지나지 않습니다. 여러분, 예수 믿고 나서 웃기만 했습니까? 아직은 값싼 신앙입니다. 예수 믿고 나서 하나님 앞에 진지하게 울어 보셨습니까? 그 사람은 차원이 있는 신앙 생활을 하는 사람입니다. 애통이 신앙을 본질로 향하게 만듭니다. 눈물이 신앙을 본질로 인도합니다. 눈물이 고인 눈에 십자가의 주님이 보입니다. 젖은 눈에 부활의 주님의 영광이 나타납니다. 애통하는 심령에 우리를 찾아오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발걸음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눈물을 먹고 자랍니다. 그러므로 신앙 생활이 무엇인가를 제대로 아는 사람은 눈물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습니다. 애통을 무조건 싫은 것으로 두려운 것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2절에'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의 손이 이 모든 것을 지어서 다 이루었느니라.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나의 말을 인하여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권고하려니와'. 여기에서'심령에 통회한다'는 것은 회개하는 것을 말합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아는 사람이 하나님의 권고를 받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심령을 통회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다윗은 사울과 똑같이 실수했고 범죄 했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사무엘 선지자의 책망을 듣고 회개하지 않았지만 다윗은 달랐습니다. 나단 선지자의 책망을 듣고 철저하게 회개했습니다. 침상이 뜨도록 통회하며 회개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께 통회하며 간구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시며 권고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심령의 눈물이 말라가지 아니하고 통회함으로 하나님의 권고를 받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말씀 앞에서 떠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성 프랜시스가 농사일을 하고 있는데 젊은 청년 두 명이 제자가 되겠다고 찾아왔습니다. 마침 프랜시스가 배추를 심고 있던 중이라 두 청년에게 모종을 주면서 "잠깐 다녀올 데가 있으니 이 배추를 내 대신 심게나. 뿌리를 하늘로 하고 줄기를 땅으로 하여 심으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한 지망생은 "선생님이 말씀한 것이니 그렇게 해야지" 하고는 거꾸로 심었습니다. 그러나 한 지망생은 한참 심다가 '이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하고 뿌리를 땅속으로 하여 심었습니다. 프랜시스가 저녁에 와서 보고는 뿌리를 땅에 심은 젊은이에게 "자네는 배추 뿌리를 땅으로 하여 잘 심었네. 합리적이고 똑똑한 사람이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에는 합당하지 않네." 그리고 거꾸로 심은 사람에게 "자네는 무조건 순종하는 젊은이로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에 합당한 사람이네. 자네가 나의 제자 되기를 허락하네." 상식에 맞느냐 안맞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누가 말했느냐가 중요합니다. 순종한 청년은 프랜시스의 인격을 믿은 것입니다. 그러나 불순종한 청년은 프랜시스의 인격을 무시한 것입니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살고 있습니까? 그러면서도 순종하지 못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인격을 믿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순종을 기대하시고 계십니다.

  본문 2절에'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의 손이 이 모든 것을 지어서 다 이루었느니라.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나의 말을 인하여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권고하려니와'. 여기에서 '말씀 앞에서 떠는 사람'은 말씀에 순종하는 자를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면 나의 머리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내 경험과 맞지 않는다 할지라도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 나를 권고해 주십니다.  일반적으로 자신의 견해를 펼치고 자존심을 세우는 일에는 재빠르지만 주님의 말씀은 소홀히 여깁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주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믿음의 사람들이 바로 ‘말씀을 인하여 떠는 자’입니다. 하나님께서 교회에 하신 말씀을 이루기 위해서는 그 말씀 앞에 떨어야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향해서 하신 말씀이라면 우리의 견해를 앞세울 것이 아니라 아멘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권고하시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권고를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리에 있는 사람이 하나님의 권고를 받을 수 있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도우심과 축복을 바라지만, 진정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을만한 합당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이 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권고해 주시고, 우리의 삶을 책임져 주실 줄로 믿어야 합니다. 부디 하나님의 마음에 들도록 겸손함으로 회개하고 순종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여 하나님께서 권고해 주시고 책임져 주시는 삶을 살아가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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