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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행복의 본질 (화평케하는 자의 생활) (마 5: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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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신삼철 목사

시작하는 말 

어떤 부부가 행복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남편은 집한칸이나 마련하여 살겠다고 중동으로 돈 벌려 갔습니다. 그러나 부인은 이웃집 여인에게 속아서 나이트 클럽에 갔다가 제비족을 만나 모든 것을 탕진하고 말았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남편은 그 부인을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쫓아냈습니다. 그러나 어린 자식들은 엄마를 찾고 울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중학교에 다니던 딸아이가 엄마를 그리워하고 외로워하더니 그만 병이 들어 죽게 되었습니다. 그 병은 백혈병이었습니다. 임종 직전에 엄마를 찾아 침대 옆에 세웠습니다.

어린 딸은 아빠의 손을 꼭잡고 "아빠, 엄마하고 살아요, 저는 예수님에게 가기 전에 이 소식을 듣고 싶어요"라고 울먹였습니다.

그때 아빠는 엄마의 손을 꼭 잡고 "나를 용서하시오, 내가 당신에게 좋은 남편이 도지 못한 것 미안하오"...

아내는 "나의 허물을 용서해 주세요, 내가 비록 허물이 있어도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은 변함이 없어요"... 그들은 딸 아이 앞에서 서로 붙잡고 울었습니다. 그때에 딸아이는 마음놓고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인류의 역사에 화평만큼 요구되는 행복의 본질도 없습니다. 그러나 화평만큼 이루기 힘든 행복의 본질도 없습니다. 그 이유는 화평은 자기 희생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5:9)라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화평케 하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요, 하나님의 아들은 화평케 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반대로 불화케 하는 자는 마귀의 자식이요, 마귀의 자식은 항상 불화와 싸움과 투쟁을 조장한다는 말입니다.

1.  사탄은 싸움을 붙입니다.

유다서 6절을 보면은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라고 말씀했습니다.

사탄은 싸움쟁이입니다. 자기의 지위를 지키지 않았다는 말은 결국 하나님이 정해 주신 자기의 자리와 직책을 떠나 하나님을 도전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도전했다는 말은 하나님과 싸움을 벌였다는 말입니다.

사탄은 선한 천사들과도 싸웠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도 싸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와도 싸웁니다. 오늘 우리들과도 영적인 싸움을 걸어오고 있습니다.

사탄은 이간쟁이입니다. 하나님과 인간을, 남자와 여자를, 형제와 형제를, 이웃과 이웃을, 민족과 민족을, 나라와 나라를, 제국과 제국을 이간질하여 싸움을 붙입니다. 

교인과 교인을, 교회와 교회를, 교단과 교단을 이간질하여 싸움을 붙입니다. 그러므로 쟁투와 투쟁, 싸움과 전쟁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사탄이 역사하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베드로 사도는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니라"(벧전5:8-9)고 말했습니다. 

2. 인간은 사탄의 영향을 받아 왔습니다.

아담은 하나님과 하와를 원망했습니다. 하와는 하나님과 뱀을 원망했습니다. 뱀은 입이 열 개라도 할말이 없었습니다. 핑계와 원망 후에는 반드시 싸움이 일어납니다. 사탄이 배후에서, 속에서 부추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인이 그랬고, 라멕이 그랬습니다. 네피림이 그랬고 고대의 유명한 용사들이 그랬습니다. 사울이 그랬고 아합과 이세벨이 그랬습니다. 가룟 유다가 그랬고 니골라가 그랬습니다.

계시록을 읽어보면은 앞으로 다가올 모든 환난의 배후에는 붉은 용, 악마의 세력이 숨어 있습니다. 인류 최악의 "아마겟돈"전쟁은 사탄의 영향을 받은 자들이 일으키는 전쟁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사탄의 영향을 전연 받지 않았습니다. 탄생부터 죽음까지 사탄이 오만가지 장난을 했지만 예수님은 끄떡도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가끔 사탄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가룟 유다는 아예 사탄에게 넘어 갔습니다. 사탄에게 점령당했습니다. 베드로는 사탄에게 농락질 당했습니다.

우리들은 자주 사탄의 영향을 받습니다. 그 중에 가장 큰 영향은 이웃과 불화하며 지내게 되는 것입니다. 평화를 유지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3. 예수 그리스도는 평화를 위해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실 때에 천군이 천사와 함께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눅2:14)라고 노래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평화를 이루시기 위하여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그를 평화의 사신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동방의 박사들이 아기 예수님께 경배하러 왔을 때에 예루살렘에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이 가시는 곳곳마다 일이 벌어졌습니다. 사탄이 요동쳤고, 인간들이 날뛰기 시작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독을 품기 시작했고, 대제사장들이 시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율법사들이 앙심을 품었고, 교법사들이 기회를 노리고 있었으며, 헤롯이 벼르고 있었습니다.

인간들은 평화를 위해 오신 하나님의 아들과 싸우기 위하여 싸움준비만 하고 있었습니다. 인간들은 인간의 수단과 방법으로 자기들 중심으로 만들어 놓은 평화를 깨트리는 자로 오해를 했었습니다.

실제로 예수님께서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비와, 딸이 그 어미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니라"(마10:34-36)고 말씀하셨습니다.

진정한 평화는 인간을 중심한 평화가 아니었습니다. 인간 중심의 평화는 절대 불가능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평화는 하나님 중심, 예수 그리스도 중심의 평화를 말합니다.

4. 그리스도인들은 화평케 하는 자여야 합니다.

화평에는 네 가지 형태가 있습니다. 첫째는 로마식 화평이 있습니다. 이 화평은 라틴어로 "팍스(pax)"인데 권력에 의한 평화를 말합니다. 싸움과 투쟁, 전쟁과 죽임으로 말미암아 얻은 승리로 인하여 평화로워지는 것을 말합니다. 겉으로는 조용한 것같지만 그 속에는 억압이 있고, 노예가 있으며, 폭력이 난무합니다.

둘째는 헬라식 화평 "에이레네(eirene)'입니다. 이것은 개인적이요, 철학적인 것으로 마음속에 존재하는 평화를 말합니다. 스스로 이루어 나가야 할 평화입니다. 누가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닙니다.

셋째는 히브리식 화평입니다. 히브리어로 "샬롬(shalom)"입니다. 아 화평은 하나님과 인간과의 자유로운 평화, 사람과 사람과의 바른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평화, 자연 만물과의 관계에서도 원만하게 이루어지는 번영과 충만과 안정을 말합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이 평화를 누리기 위하여 팔레스틴 사람들을 지금도 죽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팔레스틴 사람들이 제일 싫어하는 말이 "샬롬"입니다.

넷째는 기독교식 화평입니다. 기독교 용어로 "엑스 샬롬(X shalom)"입니다. 이 화평은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평화를 말합니다. 예수님은 이 일을 위하여 세상에 오셨습니다. 우리들은 이 평화를 이루어 내야 합니다.

리델보스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화평케 하는 자는 "세상에 있으면서 자신을 위해서만 살지 않는 사람들을 가르친다. 그들은 할수만 있다면 화평을 구한다. 그럼으로써 그들도 그들의 하늘 아버지를 반영하며, 그의 아들들이라는 인정을 받는다."(Herman N. Ridderbos)라고 말했습니다.

옛날에는 아궁이에 불을 땠습니다. 서투른 자들은 활활 타오르는 장작불을 쑤석거려 연기만 나게 합니다. 그러나 숙달된 자들은 생나무 장작이라도 잘 지펴서 활활 타오르게 합니다.

평화는 불길과 같습니다. 사탄의 아들들은 평화로운 곳에 끼어 들어 쑤석거려 연기만 나게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은 연기만 나는 곳이라도 불을 잘 지펴서 화평의 불길이 잘 타오르게 합니다.

끝맺는 말

바클레이는 "화평이나 평화는 상대방에게 악한 일이 없기를 바라는 것만이 아니라 그에게 좋은 것이 있기를 바라는 의미가 있다. 성경에서 화평이란 단순히 모든 분쟁이 없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모든 선한 것을 즐기는 것을 의미한다."(William Barclay)고 말했습니다.

화평케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습니다. 아직은 공식적인 인정을 받지는 못했습니다(롬8:23, 요일3:1-2). 그렇다고 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미래의 문제만은 아닙니다(마5:16, 45, 48).

독수리 눈으로 세상과 이웃을 바라보지 말아야 합니다. 비둘기 눈으로 세상과 이웃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사탄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지 말아야 합니다. 성령의 눈으로, 예수님의 눈으로, 하나님의 눈으로, 하나님의 아들의 눈으로...

온 세상은, 온 교회는, 교인들은 누구나 평화로운 분위기를 그리워합니다.  평온한 주님의 모습이 그리워 교회를 찾아 나오는데 주님의 모습은 보이질 않고 분위기를 잡치는 맹수같은 인간들이 날뛰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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