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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잃어버린 영혼을 찾아라! (눅 15:1~10, 출 32: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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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강석공 목사 (2004년9월12일 설교) 
 
  이 세상에는 엄청나게 많은 종류의 세균들이 있고, 우리 몸의 안과 밖에도 많은 세균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는 꼭 필요한 것들도 있지만 우리 몸에 질병을 가져오는 아주 나쁜 세균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 나쁜 세균들이 우리 몸에 질병을 일으킨다고 해서 우리는 그것을 병균이라고도 부릅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우리 몸에는 병균이 침입했을 때 물리칠 수 있는 면역 체계라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 몸의 안보를 책임지고 있는 군대와도 같은 것입니다. 그 중의 대표적인 것이 바로 우리 피 속에 있는 백혈구입니다. 우리 몸에 병균이 침입하면 백혈구는 그 침입자를 막아내는 역할을 하는데 그 처리 과정이 참으로 신비하다고 합니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신기하고 놀라울 뿐 아니라 심지어 아름답다는 생각까지 든다고 합니다. “넌 왜 그렇게 더럽니? 넌 정말 쓸모없는 존재야!” 백혈구는 침입자인 병균을 향해서 그렇게 심한 욕설을 퍼붓지도 않는다고 합니다. 무자비하게 싸워서 무찔러버리지도 않는다고 합니다. 다만 백혈구는 병균이 침입하면 그 병균을 포근하게 감싼다고 합니다. 그러면 그 병균은 마치 따뜻한 사랑에 감동한 것처럼 스스로 녹아버린다고 합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창조의 신비를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가정에서도 그렇고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손가락질하는 손에 의해서는 그 누구도 결코 새롭게 변화될 수 없습니다. 독설을 퍼붓는 입술을 통해서도 사람은 결단코 새롭게 바뀔 수 없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우리는 너무나 쉽게 남을 비방하고 단죄하지만 그렇게 해서 문제가 해결된 적이 과연 얼마나 있습니까? 거의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따뜻하게 품어 주고 포근하게 감싸 줄 때 문제아도 변화될 수 있고, 또한 어려운 문제도 해결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 당시 종교 지도자들은 잃어버린 영혼에 대한 사랑과 열정이 없었습니다. 참으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는 일에는 무척 열심이었습니다. 그들은 율법의 조항들에 대해서는 아주 정통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 속에 영혼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 없었습니다. 때문에 독생자까지 이 세상에 보내시는 하나님의 열심을 그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그들은 하나님의 독생자를 배척하는 몹쓸 사람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잃어버린 영혼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에서 구원의 역사가 시작되었지만, 정작 예수님의 제자들도 그 마음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말씀을 듣기 위해서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가까이 나와왔을 때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고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처럼 드러내 놓고 수군거리지는 않았지만 그와 같은 예수님의 태도를 제자들도 별로 달갑게 여기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뿐 아니라 제자들도 듣고 깨달아 알게 하려고 이 비유의 말씀을 들려 주셨습니다.

  해가 저물자 양을 치던 목자가 우리 안에 양떼를 들였습니다. 그런데 유난히 말을 안 듣고 딴 길로 가기를 좋아하던 양 한 마리가 보이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날은 어두워가는데 큰일이구나, 이대로 두면 분명히 맹수의 먹이가 될 텐데...” 목자는 양떼를 남겨 두고 그 양을 찾아 나섰습니다. 산을 넘고 물을 건너 이리저리로 잃어버린 양의 이름을 부르며 찾아 다녔습니다. 애타게 부르는 목자의 음성은 온 골짜기 안에 퍼져 나갔습니다. 한 시간이 넘도록 찾아 헤매던 목자는 마침내 처량하게 우는 양의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가시덤불에 걸려 꼼짝하지 못하고 있는 양은 얼마나 심하게 몸부림을 쳤는지 온통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습니다. 가시에 찔리는 것도 상관하지 않고 목자는 그 양을 꺼내어 품에 안으며 기뻐했습니다. “내가 너를 드디어 찾았구나!”

  한 여인이 동전 하나를 잃어버렸습니다. 그 여인은 등불을 켜고 온 집 안을 쓸면서 그 동전을 찾았습니다. 마침내 그 동전을 찾은 여인은 동네 사람들을 불러서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두 번째 비유는 비록 간단하지만 여인의 손길을 통해서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사랑과 열정을 참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 여인은 등불을 켜고 집안을 뒤지면서 온통 먼지를 다 뒤집어썼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동전은 반드시 찾아야 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하찮은 것일지 모르지만 그 여인에게는 생명과 같이 귀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유대의 여자들은 결혼할 때 실에 꿰어 묶은 드라크마 열 개를 신랑으로부터 선물로 받고는 했습니다. 요즈음 반지를 교환하는 것처럼 변치 않는 사랑을 약속하는 징표로 신랑은 그것을 신부에게 줬습니다. 여인은 그 중의 한 드라크마를 잃어버렸던 것입니다. 비록 동전 하나에 불과하지만 그 하나를 잃어버리면 신랑이 준 그 귀한 선물이 불완전하게 되지 않겠습니까? 부부 사이의 사랑과 신뢰에 금이 간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은 반드시 찾아야 했습니다. 과연 어떤 일이 있어도 그것을 기필코 찾고야 말겠다는 여인의 집념은 인간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사랑과 열정을 생각나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잃어버린 영혼을 찾고 계십니다. 잃어버리는 것은 교회 밖에서나 발생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꼭 그렇지 않습니다. 누가복음 15장 말씀에 나오는 세 가지 비유에는 잃어버린 장소가 각각 다르게 나타나 있습니다. 목자의 품을 떠나 깊은 산중에서 헤매다가 한 마리의 양은 길을 잃어버렸습니다. 탕자도 아버지의 집을 나가면서 잃어버린 바 되었습니다. 그러나 여인이 동전 하나를 잃어버린 장소는 집 안이었습니다. 집 안에서 잃어버린 동전 하나, 이 말씀은 오늘도 비록 예배당에 나와 앉아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잃어버린 상태로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예배도 잘 드리는 것 같고, 말씀도 잘 듣는 것 같지만 잃어버린 동전이 될 수 있습니다. 직분을 맡은 자일 수도 있고, 오랜 연륜 때문에 때묻은 동전처럼 되어 있을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잃어버린 상태일 수 있습니다. 십자가 대속의 은총에 대한 벅찬 감격이 없는 사람, 주님과의 인격적인 만남과 사귐을 통한 기쁨과 평화를 맛보지 못한 사람, 아직도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을 갖지 못하고 있는 사람일 수 있습니다. 혹시 내가 바로 잃어버린 그 드라크마가 아닙니까? 마땅히 있어야 자리를 이탈한 잃어버린 드라크마와 같은 신세는 아니냐고 묻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도 주님은 잃어버린 영혼 하나를 찾고 계십니다. 왜냐하면 천하와도 바꿀 수 없는 귀한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잃어버린 양을 찾은 목자, 잃어버린 동전을 찾은 여인은 그것을 다시 찾았을 때 무척이나 기뻐했습니다. 그들은 잃었던 양을 찾았다고, 잃었던 드라크마를 다시 찾았다고 해서 즐거운 마음으로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오백 원짜리 동전 하나를 찾기 위해서 그토록 애쓴 후, 드디어 그것을 다시 찾았다고 해서 잔치 비용으로 오 만원, 또는 오십 만원을 쓴다면 그처럼 어리석은 짓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경제 논리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위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더 큰 손실이 있더라도 반드시 다시 찾아야 할 소중한 것들이었습니다. 더 많은 희생을 치러서라도 반드시 찾아야만 하는 것들이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마음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출애굽기의 말씀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습니다. 시내 산 위에서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백성이 부패하였다. 그런즉 이제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겠다.” 그러자 모세가 대답했습니다. 아니 간절히 기도했다는 표현이 더 좋을 것입니다. “어째서 백성에게 진노하십니까? 맹렬한 노를 푸시고 뜻을 돌이키사 주의 백성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간청을 들으시고 그 뜻을 돌이키사 말씀하신 화를 그 백성에게 내리지 아니하셨다고 성경은 분명히 증거하고 있지 않습니까? 백성을 그토록 사랑하는 모세의 마음이 곧 잃어버린 영혼을 애타게 찾으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아니겠습니까?

  죄 가운데 있으면서도 그런 사실조차 알지 못하고 있는 불쌍한 영혼들을 찾아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보내셨습니다. 잃어버린 영혼들을 찾기 위해서 하늘의 영광스러운 보좌를 버리고 주님은 이 땅 위에 오셨습니다. 잃어버린 영혼들을 찾는 것은 주님의 최고의 관심사입니다. 교회의 건물보다, 교회의 행사보다 잃어버린 영혼을 찾는 것을 더 소중하게 여기십니다. 그렇다면 오늘 그 주님을 믿는 우리의 관심사는 과연 무엇입니까? 만약 교회의 관심사가 영혼을 살리고 말씀을 통해서 그 영혼을 온전한 주님의 사람으로 성숙시켜 나가는 일이 아닐 것 같으면 그 교회는 더 이상 온전한 주님의 교회라고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은 지금도 찾고 계십니다. 잃어버린 영혼들을... 그 영혼들도 반드시 안전한 우리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하시면서 지금도 찾고 계십니다. 그 주님이 또한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함께 잃어버린 영혼을 찾자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주님의 심장을 가지고 산울과 골짜기를 다 뒤져서 잃어버린 영혼을 하나라도 더 찾아내자고 지금 저와 여러분을 향하여 간절히 말씀하고 계십니다. 말씀에 순종하여 한 생명을 천하보다 귀중하게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잃어버린 영혼을 찾는 일에 끝까지 충성하기로 다짐하고 결단하는 여러분 모두에게 하늘의 놀라운 은혜와 복, 그리고 주님의 은혜와 사랑이 항상 넘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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