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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비판하지 맙시다. (롬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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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박충웅 목사

여러분은 남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죄인이 아니라고 변명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도 그들과 똑같은 일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정의의 심판이 내린다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자기도 같은 일을 하면서 남을 판단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자비로 인해서 사람이 회개하게 된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오히려 그 분의 넘치는 자비와 너그러움과 참으심을 업신여긴단 말입니까? 이런 사람은 고집이 세고 회개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의 정의의 심판 날에 받을 형벌을 스스로 쌓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그 행위대로 갚아 주실 것입니다. 참고 꾸준히 선한 일을 하며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않는 것을 구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영원한 생명으로 갚아 주시고 이기적이며 진리에 순종하지 않고 불의를 따르는 사람에게는 분노와 형벌로 갚으실 것입니다.(롬 12:1-7 현대인의 성경)

바울사도는 앞에서 이방인의 죄를 말했습니다. 정죄 받은 이방 세계의 무서운 밑그림을 그렸습니다. 유대인들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이방인(유대인 이외의 사람)은 인간 취급을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지옥의 땔감으로 쓰신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자기네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선택받은 백성이었습니다. 거룩한 민족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정죄를 받지 않는다고 믿었습니다. 여간 죄를 지어도 하나님이 이방인과 같이 심판 하시지 않으신다고 믿었습니다. 그들은 유대인으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바울은 놀라운 선포를 합니다. 유대인도 그 행위에 대해서는 이방인과 꼭 같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한 유대인의 반발이 폭발했습니다. 그들은 아브라함의 후손임을 자랑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지옥문 곁에 앉아 있다가 유대인으로서 지옥에 가는 사람을 번쩍 들어 천국으로 보내준다고 믿었습니다. 이것이 유대인의 특권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씨는 비록 죄인이요 하나님을 믿지 않아도 천국에 들어간다고 믿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설마 우리에게 오랴.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의 심각성이 여기 있습니다. 설사 선민이면 선민답게 살아야지요. 그런데 남을 비판했습니다. 여기서 유대인들에게 남을 비판하지 말라고 합니다. 남을 비판하는 것은 죄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바울은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무론 누구든지 네게 핑계치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Ⅰ. 비판하지 맙시다.

예수님은 마태 7장에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어라.”(마 7:1-5)하셨습니다. 오늘 이웃의 도덕적 결함을 찾는 것보다 더 발달된 기능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남을 비판하는데서 쾌감을 갖습니다. 남의 허물을 들추는 것이 자기 위치가 더 올라가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이방인의 잘못을 지적했습니다. 그랬더니 이상하게도 유대인들이 “아멘”합니다. 옛날 아모스 선지자가 그랬습니다. 이방인의 죄를 꾸짖었습니다. 그리고는 유대인의 잘못을 책망했습니다. 바울 사도가 그랬습니다. 유대인들은 이방인에 대한 애정이 털끝만치도 없었습니다. 바울은 그게 잘못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정말 어리석습니다. 내가 한 생각, 말, 행동을 아무도 모른다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모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 보시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다 듣고 계십니다. 그래서 남을 흉봅니다. 헐뜯습니다. 난도질합니다. 우리는 남을 비판하는 것이 아무런 도움이 안 됩니다. 칭찬에 인색하지 맙시다. 칭찬이 보약입니다. 칭찬을 듣고 자란 사람과 욕을 듣고 자란 사람은 차이가 많다고 합니다. 지금 사람들은 남을 흉보고 헐뜯는 것을 취미로 여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남이 내게 대해 좋지 못한 말을 한다는 말을 들으면 속상하지요. 젊은이들은 열 받는다고 합니다. 당연하지요. 그런데 우리는 너무 쉽게 남의 말을 합니다. 우리는 남을 비판할 때 꼭 설탕물을 마시는 것처럼 재미를 느낍니다. 그러나 남을 욕하는 그 사람이 돌아서면 나를 욕할 사람입니다. 언제나 우리는 남을 칭찬하는 일에 앞장서야 합니다. 한국 사람은 모이면 남 이야기하는 재미를 느낍니다. 저는 중앙일보(2004.9.1) 김서령 칼럼니스트가 이런 글을 섰습니다. 그가 아블로씨를 만났답니다. 그는 이상한 병을 앓고 있습니다. 유전성 병입니다. 바람만 불어도 뼈가 우두둑 소리를 내며 부러지는 병이랍니다. 이 병을 그는 태어날 때부터 앓고 있었답니다. 그는 가난 때문에 병원에는 한번도 가보지 못했습니다. “죽는 병을 앓았다면 반드시 죽었을 것이다.”고 합니다. 이런 고통을 혼자서 수십 년을 견디었습니다. 그런데 아볼로씨를 만나러 갔습니다. 또 한번 놀랐답니다. 얼굴은 죽을상을 하고 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싱글벙글 웃고 있었답니다. 너무 이상해하는 방문자에게 “믿지 않으실지 모르지만 부족한 것이 아무것도 없어요.”라고 했답니다. 그의 키는 평생 자란 것이 1M가 못된답니다. 누가 계단에서 휠체어를 놓치는 바람에 고관절마저 부러져 7년째 바깥출입은커녕 일어서지도 못합니다. 그런데도 그는 뱃속에서 우러나는 흔들어진 웃음을 연방 웃었습니다. 그를 찾아간 사람이 오히려 쩔쩔 맨 것입니다. “건강한 사람은 당연히 행복해 하지요.” 정 반대였습니다. 그는 침대에 엎드려 하루에 50통의 편지를 쓴답니다. 재소자, 환자, 장애인, 소년가장, 거리를 방황하는 사람, 그 밖에 온갖 불행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는 지금까지 이런 사랑과 용기의 편지를 30만 통을 섰답니다. 그는 늘 힘과 용기를 주는 글을 쓴다고 합니다. 어떤 경우도 남을 욕하거나 탓하지 않고 행복에 겨운 삶을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맑은 정신, 건강한 몸이 있습니다. 나를 통해 남을 좀 행복하게 합시다. 한마디 말로서도 얼마든지 남을 기쁘게 하실 수 있습니다. 남을 비판하거나 흉보는 말은 절대하지 맙시다.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한 마디로 사람을 죽게도 합니다. 말 한마디로 사람을 살릴 수도 있습니다. 말도 버릇이 됩니다. 쉽게 남을 비판하다 보면 습관이 됩니다. 그러니 늘 내가 하는 말이 하나님의 좋아 하실까? 내가 하는 말이 다른 사람에게 덕이 되는지를 몇 번 인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긍정적인 말을 합시다.

Ⅱ. 심는 대로 거둡니다.

우리는 농사를 잘 아시지요. 들판에 벼들이 익어가고 있습니다. 온갖 탐스러운 과일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사과나무에 사과가 열립니다. 배나무에 배가 열립니다. 이와 같이 사람도 그 행동에 대한 결과는 분명합니다. 세계는 지금 테러의 위험에 떨고 있습니다. 2002년 9월11일 미국의 자랑인 쌍둥이 빌딩이 비행기 자살 테러로 무너졌습니다. 뉴욕은 물론 세계는 공포에 떨었습니다. 우리 미국 가시려면 보안 검사를 받습니다. 신발도 벗고 허리끈도 풀고 짐검사도 받아야 합니다. 비자 받을 때 지문도 찍어야 합니다. 그 당시 뉴욕 시장이 줄라아니였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이탈리아에서 이민 왔습니다. 배운 것도, 가진 것도 없었습니다. 그는 무명 권투선수였습니다. 그런 그가 그 아들에게 얻어맞을수록 침착하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는 9.11사태가 나서 세계의 눈이 뉴욕 시장 줄리아니에게 쏠렸습니다. 그는 침착했습니다. 기도했습니다. 무서운 공황상태에서 일찍 그 어려움을 수습했습니다. 그때 세계적인 시사 잡지 TIME지는 “올해의 인물”로 뉴욕시장 줄리아니를 뽑았습니다. 뉴욕은 시장이 연임할 수 없습니다. 이 법을 고쳐 시장으로 남아 있기를 바랐습니다. 그는 아버지로부터 배운 데로 실천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일을 보고 놀란 것이 있었습니다. 미국은 뉴욕시작 미국의 CIA국장, FBI 미국 대통령에게 물러가라. 책임져라 는 말 한마디가 없었습니다. 모든 신문 방송이 한결같았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시계를 60-100년으로 되돌려 갈길 바쁜 우리를 붙잡고 있습니다. 일본시대 일본에 협조한 사람, 이런 역사를 청산하자, 말자고 정부, 국회, 시민단체가 야단들입니다. 우리는 좀 냉정했으면 합니다. 저는 9월 1일 밤 MBC방송 토론을 몇 시간 들었습니다. 거기 나온 정치인, 교수, 기자가 다 일등 애국자 같이 보였습니다. 그들의 말대로라면 우리나라가 벌써 선진국이 되었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너무 남을 심하게 비판만 한다는 것입니다. 남을 비판하는 것은 죄라고 했습니다.(롬2:2) 이런 사람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반드시 있다고 했습니다. 자기도 잘못이 많으면서 남만 비판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롬2:3)고집에 세어 회개하지 않으면 이것은 심판 날에 하나님의 정의의 심판에 그 형벌을 쌓는 일이라고 했습니다.(롬2:5) 지금은 위기시대입니다. 우리 그렇게 오래 사는 것 아닙니다. 어렵지요. 힘들지요. 그러나 남을 비판하지 맙시다. 입이 근질근질하고 참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기도합시다. “하나님 제 눈에 남의 허물이 보이지 않게 해 주세요.” 우리도 억울하고 섭섭한 일이 있습니다. 악을 악으로 갚지 맙시다.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하라 하셨습니다. 왼편 뺨을 때리면 오른편을 대주라. 오리를 짐 지고 가자거든 십리까지 가주라. 원수를 위해 기도해 주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말이 너무 많습니다. 이 말들이 어떤 사람에게는 평생 상처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한 한마디 말이 사람을 살릴 수 있습니다. 사랑이 담긴 칭찬과 위로의 말입니다. 성경은 남을 비판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맺는 말 : 저는 오늘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바울 사도는 유대인들에게 이방인을 너무 정죄하지 말라. 비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남을 비판하지 말라. 그러면 너도 똑같이 비판을 받는다고 하셨습니다. 남을 비판하는 사람은 정말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아무런 유익이 없습니다. 여러 사람이 모이면 이야기꺼리는 꼭 다른 사람입니다. 이런 것에 재미를 붙이면 누군가를 씹어야 직성이 풀립니다. 그런 사람이 자기 이야기를 남이 하면 분해서 못 견딥니다. 아예 우리는 남을 칭찬하는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남의눈에 티를 보지 말고 네 눈에 들보를 먼저 빼라고 하셨습니다. 여기 들보는 “말뚝”이라는 뜻입니다. 사람은 심는 데로 거둡니다. 남에게 칭찬하면 내게 칭찬이 돌아옵니다. 남을 욕하면 욕이 돌아옵니다. 그러니 우리는 예수님의 가르치심대로 삽시다. 늘 입에 파수꾼을 세웁시다. 입에 재갈을 먹입시다. 늘 말조심하여 경건하게 살아 주 안에서 승리합시다.

2004.9.12 -충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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