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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 모세 (히 11: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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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김이봉 목사

□ 하나님이 쓰신 사람, 모세

(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석달 동안 숨겨 임금의 명령을 무서워 아니하였으며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주심을 바라봄이라) (히브리서 11장 23절-26절)
                 
하나님은 어떤 사람들을 들어 쓰시는가?
절대적인 주권으로 당신의 뜻과 계획을 성취해 가지만, 그때 그때마다 하나님은 사람을 들어 쓰십니다.
역사의 흥망성쇠를 볼 때마다 그 시대를 이끌어갔던 인물들을 보면, 하나님은 분명히 사람들의 생각과는 다른 경우를 보게 됩니다.
사람들이 사람을 뽑아 쓰는 것과는 판이하게 다르다는 점입니다.
오늘은 두번째로 하나님이 쓰신 모세를 통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모세는 어떤 인물이었습니까?

1. 모세는 기구한 운명의 소유자이었습니다.
그는 먼저 나라 잃은 망국 백성으로 태어났습니다.
즉 시대를 잘못 태어났다는 말입니다.
나라의 주권이 상실된 백성처럼 불쌍한 백성은 없습니다.
430년 간 이스라엘은 애굽의 식민지로 살았습니다.
또 모세는 노예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악한 왕 바로의 학정 밑에서 태어났습니다.
생명의 위협 중에 6개월간 숨어서 젖을 먹여야 했습니다.
그러나 더 이상 키울 수 없어 나일강에 버림을 당해야 했습니다.
이 얼마나 비참한 일입니까!
이번에는 너무나 극적인 반전이 일어났습니다.
바로의 공주의 양아들이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친 생모에게 유모 양육을 받으며 젖줄을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신앙이 전 수 되었습니다.
이 얼마나 기구한 운명입니까?

하나님은 바로 이런 사람을 들어 쓰셨습니다.
우리들 중에도 남에게 말못할 운명적 존재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부모를 모르고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남의 집에서 자란 사람들도 있습니다.
죽음의 골짜기에서 거의 죽을 순간에 구출된 사람도 있습니다.
지나온 세월을 책으로 쓰라면 몇 권의 책이 될 수 있는 그런 기구한 운명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바로 이런 사람들을 들어 쓰신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사람들의 생각과 다른 점입니다.
사람들은 그렇게 기구한 운명의 소유자들을 멀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요즘도 외국으로 입양하여 눈물 젖은 빵을 먹고 자란 사람들을 들어 쓰시는 하나님을 종종 보게 됩니다.
국제적으로 명성을 떨치는 사람들 중에는 모세와 같은 그런 기구한 운명적인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온실에서 자란 사람들만 쓰시는 하나님이 아니란 말입니다.

2. 모세는 온유(溫柔)한 성품으로 변한 사람입니다. 
민수기 12:3절에 보면,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 보다 승하더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즘 현대말로 번역한 것을 보면, "모세는 실상 매우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땅 위에 사는 사람 가운데 그만큼 겸손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라고 번역되었습니다.

모세는 처음부터 그렇게 겸손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40세까지의 모세의 성격을 보면 의협심이 강하였습니다.
조국과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이 강했습니다.
그 결과 불타는 애국심으로 애굽인을 쳐죽이고 도망쳤습니다.
어쩌면 용기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치 윤봉길이나 안중근 의사와 같은 그런 성격의 소유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용기만으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에는 부족하였습니다.

오늘도 정의감과 의협심으로 차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젊음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4.19/5.16 혁명을 일으킨 주역들이 모두 의협심이 강한 젊은이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이 하나님의 쓰기에는 모자랐습니다.
그래서 광야 40년 동안 하나님은 그에게 시련과 연단을 시키었습니다.
이것이 성품의 변화를 갖게된 인격 수양의 훈련이었습니다.
만일 모세가 애굽인을 쳐죽이던 그런 성품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해 내는 길에 올랐다면, 아마 수많은 사람을 죽게 만들었을지도 모릅니다.

광야 40년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시킨 신학교 교육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오늘도 이런 광야 시련기에 있는 분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과격한 사람보다 온유한 사람을 들어 씁니다.
여기 온유하다는 말은 온순하다는 그런 단순한 뜻만이 아닙니다.
외유내강(外柔內剛)을 의미합니다.
만일 모세가 이렇게 철저하게 광야 훈련을 거치지 않았다면, 민족의 지도자는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시련이 그에게 있었습니까?

이런 모세에게도 실수는 있었습니다.
반석을 향하여 물을 내라고 하였는데, 그만 모세는 반석을 두번 두드리면서 물을 냈습니다.
그 결과 모세는 이 일로 느보산 꼭대기에 서서 멀리 보이는 약속의 땅만 바라보고 들어가지는 못한 채 하나님이 불러갔습니다.
하나님이 쓰는 사람들은 성품이 변해야 합니다.
완고하고, 고집 세고, 교만한 마음에서 온유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온유함이 겉으로 표현될 때 겸손으로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교만하면 물리치고 겸손하면 들어 씁니다.

3. 모세는 상(賞)주실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살았습니다.
현실의 안일을 추구하지 아니했습니다.
그러기에 그는,
① 바로의 공주의 신분을 거절할 수 있는 용기가 있었고,
②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 보다 동족과 함께 하기를 원했고,
③ 그리스도를 위해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귀하게 여길 수 있었습니다.
이런 면에서 모세처럼 위대한 인물이 어디 있겠는가?
사람들은 나이 들면 스스로 안주하게 된다고 합니다.
또 젊어서도 민족관과 애국 사상이 없는 젊은이들에 비하면 모세는 투철한 민족주의자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이번 노회 교육/선교 세미나를 통하여 도문과 용정을 방문하게 되었는데, 거기서 대성 중학교의 옛 건물과 그 학교에 오늘의 모습을 비교해 보았습니다.
우리나라 애국지사들 중에 많은 분들이 그 학교 출신이었습니다.
지금도 이민 5세가 되어서도 한국어를 조금도 잊어버리지 않고 있음을 보았습니다.
제가 일부러 가이드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의 조국은 어디인가 하고 물었더니, 내 조국은 조상들이 핏줄을 이어오는 조선이고, 고향은 내가 태어나 자라난 중국이라고 하였습니다.
철저한 민족 정신의 교육의 결과라고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한국의 오늘의 교육 정신과 우리의 젊은이들을 비교해 보았습니다.
모두 출세 지향주의, 배금사상에 물들고 개인주의에 몰두하는 현실을 보면서 한편 조국의 장래를 걱정해 보았습니다.
모세는 고통받는 자기 민족과 함께 고난받는 것을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며 사는 것 보다 더 귀하게 여겼고,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하나님 앞에서 상 받는 것을 더 값있게 여겼다고 하였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모세와 같은 인물이 절실히 요구되는 때라고 봅니다.

우리의 현실에서 보면 자녀들 교육에서부터 실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모세는 어머니를 통하여 그런 위대한 인격으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어렸을 때 신앙 교육이 무엇보다 필요합니다.
그래서 식탁에서부터 바른 가치관을 심어 주어야 합니다.
기도하는 법도 식탁에서부터 배워 주어야 합니다.
어른 공경하고, 동생과 형을 존경하고 사랑할 줄 아는 것을 식탁에서부터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저는 이번에 중국을 보면서 큰 위기 의식을 느꼈습니다.
첫째 느낌은 땅 덩어리처럼, 거대한 중국이라는 점입니다.
13억 인구라고 하지만, 그보다 훨씬 더 많은 16억 이상일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거대한 인구의 나라가 이제 눈을 뜨고 움직이기 시작한 모습을 보는 듯 하였습니다.
2008년 올림픽을 계기로 하여 앞으로 21세기는 중국이 문자 그대로 지구촌의 중심이 되지 않을까도 생각해 보았습니다.
앞으로는 중국과 미국의 블럭 형성으로 나라들이 모이게 될 것 같았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소망을 두게 하는 것은 철저한 청교도적인 교육을 통한 인재양성에 있다고 보았습니다.
흐리 멍텅한 오늘과 같은 교육으로는 나라를 이끌어 낼 지도자들이 배출할 수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한국 교회와 기독교인들이 해야할 몫이라고 봅니다.
오늘의 오염되고 속화된 자본주의 시장경제 사상으로는 나라를 바로 세워 나갈 수 없다고 봅니다.
사실 서구의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는 그 근본  바탕이 성경 위에서 이루어진 사상이었는데, 그것이 물질만능 사상으로 바뀌면서 하나님이 도태되어 버렸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사상을 가지고는 21세기의 나라를 바로 이끌 수 없고, 개혁을 아무리 부르짖어도 그런 사고 방식으로는 나라를 바로 세울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민족혼을 불러 일으킬 모세와 같은 인물을 배출해 내는 교육에 있다고 확신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젖줄 교육과 식탁 교육에서부터 청교도적인 정신으로 키워내야 할 것이라고 봅니다.
우리 모두 모세와 같은 인물을 키워 낼 수 있는 부모들이 다 되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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