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율법과 예수(9) - 장대 위에 달린 놋뱀 (민 21:4~9)

  • 잡초 잡초
  • 523
  • 0

첨부 1


- 설교 : 손상률 목사

4. 백성이 호르산에서 진행하여 홍해 길로 좇아 에돔 땅을 둘러 행하려 하였다가 길로 인하여 백성의 마음이 상하니라
5.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올려서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고 이 곳에는 식물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박한 식물을 싫어하노라 하매
6. 여호와께서 불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은지라
7. 백성이 모세에게 이르러 가로되 우리가 여호와와 당신을 향하여 원망하므로 범죄하였사오니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 뱀들을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매
8.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9.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마다 놋뱀을 쳐다본즉 살더라 

이스라엘의 광야 여행길에는 사건도 많고 사연도 많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베풀어주신 특별한 은총의 기억들과 함께 백성들의 감격과 감사, 그리고 순종과 헌신입니다. 그런가 하면 때때로 일어나는 시험의 소용돌이에서 백성들은 모세를 원망하며 불신앙의 행동을 저지르기도 하고 그때마다 하나님께서는 백성에게 진노하시며 징벌하는 일이 반복되었습니다.
본문 말씀은 백성이 호르산에서 홍해로 진행하던 도중 일어난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얼마전 대제사장 아론의 죽음으로 슬픈 일을 당했습니다(민 20:28-29). 또 아다림에서는 아랏 왕과 한판 전쟁을 치렀는데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승리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잠시 후 홍해 근처 에돔 땅으로 들어섰을 때 길을 잃고 방황하다가 하나님께 불평하며 원망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일은 마침내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 하였고 이로 인하여 많은 백성들이 독이 있는 뱀에게 물려죽었습니다.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하자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높이 매달게 하였습니다. 뱀에게 물려 죽어 가는 사람이 장대 위에 달린 놋뱀을 쳐다보았을 때 살아났습니다. 이 사건도 이스라엘의 광야 교회를 주도하시는 분이 그리스도이심을 교훈해 주는 상징적 계시입니다.


Ⅰ. 징벌의 도구로 쓰인 불뱀

모세가 하나님의 분부에 따라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게 된 것은 백성들이 불뱀에게 물려 죽어가기 때문입니다. 본문 말씀 6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불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은지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에게 베풀어주신 은혜를 망각한 채 하나님을 원망하는 행위를 보시고 징벌하였습니다.

(1) 마음 속에 일어난 시험 때문입니다.

4절에 “백성이 호르산에서 진행하여 홍해 길로 좇아 에돔 땅을 둘러 행하려 하였다가 길로 인하여 백성의 마음이 상하니라”고 하였습니다. 백성이 하나님을 원망하게 된 것은 그들의 마음이 상했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상하게 된 이유는 길을 잘못 들어 광야를 헤매는 등 고생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일이 순조롭게 잘 풀려 지고 형통케 되었더라면 마음이 상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제 마음대로 안될 때 속이 상하고 짜증이 나게됩니다. 그렇지만 따지고 보면 그것은 하나님께 원망할 일이 아닙니다. 길을 둘러 행한 것도 저희들의 불찰이거나 또는 의도적으로 행한 일일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이 자기의 판단과 계산에 따라 행동을 하고도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하나님께 돌리는 잘못된 버릇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제시해 놓은 바른 길을 두고 자기가 원하는 길로 둘러 가는 사람은 결국 자기가 잘못 걸은 그 길 때문에 후회하거나 시험에 들게 되고 맙니다(렘 18:15).

(2) 하나님께 대한 불신앙의 죄 때문입니다.

5절에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올려서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고 이곳에는 식물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박한 식물을 싫어하노라”고 하였습니다. 이들은 지금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애굽에서 불러내어 주신 출애굽 사건 자체를 불신하고 있습니다. 수백 년 간 종살이하던 애굽으로부터 해방되어 나와 자자손손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하나님의 주시는 축복을 누리게 하려는 출애굽의 의도를 망각해 버렸습니다.
유월절과 피뿌리는 절기,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은혜와 기적적인 체험들을 애써 무시해 버렸습니다. 조그마한 문제가 생기거나 고생이 되어도 하나님의 의도를 의심하면서 지도자 모세에게 반항하였습니다. 홍해 앞에 이르렀을 때도 “그들이 또 모세에게 이르되 애굽에 매장지가 없으므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뇨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내어 이같이 우리에게 하느뇨”하고 모세에게 원망하였습니다(출 14:11).

(3) 은혜를 망각한 행위입니다.

백성들은 지금 자기들의 마음이 상하고 힘이 드는 것 때문에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가나안 운동의 목적을 왜곡하거나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를 모독하고 있었습니다. 새로운 가나안 시대의 꿈과 희망을 포기한 채 애굽으로 되돌아가자고 선동하는가 하면 지금까지 그들이 체험했던 기적 같은 은혜들을 망각하였습니다.
매일 아침 하나님께서 내려주시는 하늘의 양식을 은혜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우리 마음이 이 박한 식물을 싫어하노라”고 하며 공식적으로 거부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 중에는 처음부터 가나안 여행에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면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백성을 선동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민수기 11:4에는 이들을 “이스라엘 중에 섞여 사는 무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의 말에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외와 수박과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이제는 우리 정력이 쇠약하되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 것도 없도다”고 하였습니다(민 11:5-6).
언제나 불평을 일삼는 불신앙의 눈에는 하나님의 은혜보다 세상 적인 욕구 충족이 더 귀하게 보여지는 법입니다. 성도가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면 징벌을 받게 됩니다.


Ⅱ. 치유하는 놋뱀

사람이 사는 곳에는 언제나 질병이 있고 그것을 치료하는 병원이 있습니다. 간혹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에 감염되거나 전염병으로 인해서 많은 사람이 희생되었을 경우 곧이어 그 병을 치료할 수 있는 백신을 개발하거나 새로운 의술이 발달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 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고 하시고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고 하였습니다(눅 9:12-13).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불뱀의 습격을 받고 죽어 가는 사람들을 위해서 치유하는 놋뱀을 만들게 하였습니다.

(1) 자기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스라엘의 광야 여행길에는 처음부터 하나님의 특별한 간섭과 은혜로 이루어지는 일이 많았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의  나아가는 노정에 고비마다 일어나는  문제들을 예견하고 계셨고, 또 거기서 새로운 도전의 기회로 삼을 수 있도록 신비로운 체험을 하게 하였습니다. 불뱀에게 물린 사람들이 뱀의 독으로 인해 신음하며 죽어갈 때 하나님께서는 즉시 치유하는 놋뱀을 만들게 지시하였습니다.
본문 말씀 8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백성들은 전혀 예기치 못한 사건 앞에 죽어가면서도 어찌할 방도가 없어 발만 동동 구를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였습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전혀 살아날 길이 없는 최악의 상황이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 주십니다.
죽음 앞에선 인간은 자신의 무능을 실감하게 되고 어디든지 절대적인 권세자에게 의존하려고 허둥대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이 지경에 이른 다음 모세에게 자기들의 범죄를 자인하고 하나님께 기도해 달라고 하였습니다(7절). 죽음 아래 놓인 인생이 살아 날 수 있는 유일한 소망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된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엡 2:8).

(2) 성육(成肉)하신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모세가 만든 놋뱀은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상징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 육체를 입고 세상에 오신 그리스도의 성육신(Incarnation)을 복음으로 믿습니다. 요한복음 1:14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뱀을 사탄의 도구로 표현하거나(계 20:2), 하나님께 저주받은 동물로 나타나는데(창 3:14) 거룩하신 예수님을 뱀으로  표현하는 것은 문제가 있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을 신령한 의미로 생각할 때 마치 불뱀에게 물린 사람을 치료하기 위하여 놋뱀을 만들어 세웠던 것처럼 범죄한 인간의 죄를 치유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을 죄 있는 인간의 모습으로 세상에 보내셨다는 사실입니다. 로마서 8:3에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하였습니다. 한편 놋뱀은 불뱀과 모양이 같았지만 그 안에 독이 없는 것처럼 예수님께서도 죄 있는 인간의 형체를 입으셨으나 그 속에 죄가 없는 순결하신 분입니다.

(3)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

본문 말씀 9절에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마다 놋뱀을 쳐다본즉 살더라”고 하였습니다. 장대 위에 높이 달린 놋뱀은 십자가 위에 못박히신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불뱀에게 물려 그 독으로 인하여 죽어 가는 사람들에게 장대 위에 달린 놋뱀 말고는 그들을 치유할 방법이 전혀 없던 것처럼 죄로 인하여 죽음 아래 놓인 인생들에게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 말고는 구원의 길이 없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고 하시고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하였습니다(요 3:13-15).

Ⅲ. 기독교 복음의 특수성

불뱀의 현장에 놋뱀이 등장한 것은 하나님 사랑의 극치인 기독교 복음의 특수성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는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롬 8:3-4)고 하신 말씀으로 설명되는 내용입니다.

(1) 죄와 죽음 아래 있는 인간

뱀에게 물린 사람은 모두 다 뱀의 독에 감염된 사람들입니다. 6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불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시므로”라고 하였습니다. 이사야 14:29에 보면 “…뱀의 뿌리에서는 독사가 나겠고 그 열매는 나는 불뱀이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본래 뱀은 에덴 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를 꾀어 범죄 하게 한 사단의 실체입니다. 여기 “나는 불뱀”이란 그 당시 사람을 물어 해치는 뱀의 특징을 묘사한 것입니다. 곧 나는 듯한 날쌘 동작과 불을 뿜는 듯한 독기(毒氣)를 지닌 것으로써 그것들에게 물리기만 하면 순식간에 독이 퍼지고 독기운에 의해서 죽음을 당하고 마는 강력한 세력을 뜻합니다. 이런 독뱀은 몸집은 아주 작지만 모래 속에 숨어 다니고 있어서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도 않았으나 이스라엘이 진을 쳤던 신 광야에는 많이 서식하고 있었습니다. 더욱이 그것들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진중으로 들여보냈다고 했으니 그 당시의 백성들은 예외 없이 뱀에게 물려서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성경은 아담이후 모든 인간은 다 죄 아래 죽어간다고 하였습니다. 로마서 3:10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하였습니다. 로마서 3:23에는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고 하였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는 것과 그들에게 스스로 살아날 방법이 없다는 사실 때문에 하나님께서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셔야만 했습니다. 이것이 기독교 복음의 당위성입니다. 세상은 예수 그리스도 외에 희망이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하는 것입니다.

(2) 구속자 예수

욥기 19:25-26에 보면 “내가 알기에는 나의 구속자가 살아 계시니 후일에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 나의 이 가죽, 이것이 썩은 후에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고 하였습니다. 욥은 인간이 감내하기 어려운 최악의 고통을 겪은 사람입니다. 그는 당대에 의인이요 명망가였으며 많은 재물이 있었고 행복한 가정의 조건을 갖추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조건이 그에게 부딪힌 재난을 면하게 해 주지는 못했습니다. 마침내 그가 생일을 저주하며 인생 문제에 회의를 품고 있을 때 그에게 다가온 유일한 소망이 저의 구속자라고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
구속자(救贖者)는 자기의 죽음을 대신해 주는 속량자를 뜻합니다. 그는 자기의 가죽 곧 그의 육체가 썩어져 내려앉는 회복불능의 상황에서도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는 환희를 맛볼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와 죽음 아래 서 있는 인간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길을 열어 놓았습니다. 성령 안에서 신령한 눈이 열린 사람은 이 신비로운 구원의 도리를 붙들고 감격에 넘치는 고백을 하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고 하였습니다(롬 8:1-2).

(3) 믿음과 영생의 도리

예수님께서는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하였습니다(요 3:14-15). 곧 모세가 놋뱀을 장대 위에 달아 올린 것처럼 예수님도 십자가에 매달리게 된다는 사실을 시사한 것입니다.
또한 거기에는 놋뱀을 쳐다 본 사람이 살아난 것처럼 예수님의 십자가 속죄의 도리를 믿고 주님을 바라보는 자에게 영생이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뱀에게 물린 사람들 중에 치유하는 놋뱀을 알고 이를 쳐다보는 사람은 누구나 다 살아났습니다. 그러나 쳐다보지 않는 사람에게는 회복이 이루어 질 수 없었습니다. 이것은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의 구분입니다. 요한복음 3:16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