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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공하라(1) (요 4: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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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고신일 목사

<목회기도>
 
"예배하라" 명하시고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 하라시고 예배하는 자를 찾으시는 하나님,
오늘 드리는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는 줄 믿고 감사드립니다.
이런 저런 세상의 삶에 지친 심령들이 모였으나
성령의 능력을 주실 줄 믿습니다.
하나님을 만난 기쁨과 감사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확신으로…
나날이 변해 가는 세상 풍조에서도 믿음을 지키게 하옵소서.
하나님, 여기에 모인 우리들… 주의 은총을 충만히 받았음을 고백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두 세 사람이 모였어도…
성령으로 함께 하심을 믿는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우리 속에 계심을 믿습니다.
세상이 줄 수 없고 세상이 알 수도 없는 평안을 회복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복된 자리에 함께 있지 못하는 기둥교회 성도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병든 이들을 긍휼히 여겨 주시옵소서.
의무를 감당하기 위해 고난의 시간을 보내는 젊은이들 군대에 나가 있습니다.
객지에 나가 사는 이들도 있습니다.
험해 가는 세상에, 무서운 세상에…
외국에 여행중이거나, 외국에 사는 이들이 있습니다.
하나님 저들에게서 평안의 소식이 오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귀한 시간 악한 마귀 틈타지 않도록 성령께서 주장하여 주실 줄로 믿고
존귀하신 예수님 거룩하신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할렐루야!
옆의 분과 인사합니다. "교회에서 만나 반갑습니다."
한번 더 인사합니다. "이상한 데서 만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예전에는 할아버지와 아버지, 아들이 같은 옷을 입었고,
같은 음식을 즐겼고, 같은 일을 위해 땀흘리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요즘 같은 세대에서 조금만 나이 차이가 나도 어울릴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지금 단절의 시대, 문화적 격변과 부적응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 집에 살아도, 같은 교회에 다녀도 세대가 다르고 문화가 다릅니다.
이렇게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하나 될 수 있겠습니까?
하나 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될 수 있습니다.
말씀으로, 기도로, 예배로 하나 될 수 있습니다.
오늘도 우리가 한 마음으로 드리는 이 예배를 하나님께서 받으실 줄 믿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예배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요4:23~24) 말씀 앞 부분에(20~22) 보면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께 예배에 대해 질문을 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어디에서 예배하는가' 하는 외적인 것 보다는
'왜 예배해야 하는가, 어떤 마음으로 예배해야 하는가'
그것이 중요하다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에는 하나님 마음에 드는 바른 것이 있고
하나님 마음에 들지 않는 그른 것이 있습니다.
히브리서 12장 28절에 보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기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라 했습니다.
"경건함"이라는 것은 '우러러 공경하는 마음'(with reverence)을 말하고
"두려움"이라는 말은 경외(fear, awe)라는 뜻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라고 했습니다.
 
오늘 보문 24절에는
"신령과 진정"(~, worship in spirit and in truth)으로 예배하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신령"이라는 말은 우리의 순수하고 영적인 자세를 말하는 것입니다.
"~worship Him in the true way and with the right spirit." - The Simple English Bible -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God is spirit)
영이신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은 반드시(must), 해도 좋고 안해도 좋은 것이 아니라
순수하고 바른 영으로(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향해, 하나님 받으시라고 표현하는 마음과
그 마음을 담은 행위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예배는 예배 받으시는 분의 만족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즐기기 위해, 여러분의 기분이 좋기 위해 예배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예배 시간에 말씀을 듣는 이들은
'하나님께서 오늘 말씀을 통해서 내게 무엇을 말씀 하시려는가' 하는 생각으로
말씀에 집중해야 하는데 조금 마음에 상처가 되거나 찔리는 설교를 들으면
"또 나를 씹는구만" 하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만사삐딱증'에 걸린 분들이 있습니다.
모든 일을 삐딱하게 바라보고 삐딱하게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 분들은 하나님 중심의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자기 중심의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 예배는 사람들이 모여 정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계명입니다.(출20:3~6)
- 예배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최상의 방법입니다.(롬12:1)
-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는 예배하는 자를 찾으십니다.(요4:23)
그러므로 우리는 예배 할 수 있음에, 
예배드림에 감사하며 감동하고 기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고,
우리가 예배 드릴 때 우리의 예배에 함께 해 주신다고 했고
예배하는 자를 찾으신다고 했으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며칠 전에 인천공항에 갔습니다.
시간의 여유가 있어서 의자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옆에 일본 여자 관광객들이 앉아서 일본말로 얘기를 하는데
제가 일본어를 모르는데도 무슨 말을 하는 지 이해가 되는 것입니다.
그들이 무슨 사진을 보고는 좋아서 어쩔 줄 몰라하는 데
가만히 보니 지금 일본에서 유명하다는 우리나라 탈렌트였습니다.
그 배우가 영화를 촬영했던 장소를 관광하기 위해 온 것 같습니다.
사진을 들고는 볼에 비비고 아주 굉장했습니다.
바로 옆에 멋진 제가 앉아 있는데…  관심도 없이…
 
여러분, 팬들이 배우를 좋아하는 것과
하나님 사랑하는 것을 비교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만날 수 있고
하나님이 우리의 예배를 받으신다고 했고
우리의 예배에 임하신다고 했는데 우리는 과연 얼마나 감사하며 기쁜 마음을 갖습니까.
여러분의 예배가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예배가 되기를 바랍니다.
 
 
예배에 성공해야 합니다.
 
창세기 4장 1~8절에 보면,
처음 사람 가인과 아벨이 하나님께 예배 드림으로 인생이 달라졌습니다.
가인은 하나님 마음에 합당치 못한 예배로,
아벨은 하나님 마음에 합한 예배로 인생이 달라졌습니다.
가인과 아벨은 예배 때문에 자신과 후손의 삶이 달라졌습니다.
 
가인은 농사를 지었고, 아벨은 짐승을 기르는 목축업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가인도, 아벨도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며 예배를 드렸습니다.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드렸습니다.
"아벨은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아벨의 것은 받으시고, 가인의 것은 받지 않으셨습니다.
가인의 예배는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가인은 그냥 추수한 것 중에서 드렸고,
아벨은 첫 새끼를 드렸습니다. 생각해 보고 잘 골라서 첫 것을 정성껏 드렸습니다.
이에 대해서 히브리서 11장에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히11:4)
 
아벨은 하나님이 기뻐하실 만한 예배를… 가인은 자기 편한대로 예배를 드렸습니다.
오늘 여러분이 드리는 예배는 어떤지요?
예배는 하나님이 정하신 것이고, '주일'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날입니다.
초대교회부터 예배를 드리는 날이 '주일'이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안식 후 첫날'이라는 것이 '주일'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한 주일 동안 잘 살다가 주말에 예배드리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주일은 한 주일의 시작입니다. '주일'은 주말이 아니라 '주초'입니다.
예배드리고 한 주간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교회에 오셔서 예배 드림으로 이 주간의 시작을 하셨으니 잘 하셨습니다.
 
신앙생활 하는 사람이 이유 달고 핑계삼아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소홀히 한다면 결국 자신에게 손해 되는 일입니다.
성도 여러분, 가인처럼 되는 대로, 적당히, 아무렇게나가 아니라
첫 새끼 양을 고르는 정성을 보인 아벨처럼
"보다 나은" 섬김 / "보다 나은" 드림 / "보다 나은" 예배
"보다 나은" 삶을 위해 가정에서, 교회에서, 일터에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삶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며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 모두 아벨처럼 예배의 승리자가 되어야 합니다.
 
가인과 아벨의 삶이 예배 때문에 달라졌다면…
가인과 아벨의 그리고 그 후손의 운명이 '예배'로 결정되었다면…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 예배가 한 개인과 그 후손의 운명을 갈라놓는 것이라면…
우리는 분명히 예배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예배에 목숨을 걸어야합니다.
예배시간을 지키는 것, 정성스런 예물을 준비하는 것,
몸과 마음을 단정히 하고 예배에 합당한 복장을 갖추는 것,
찬송을 부르는 것, 설교말씀을 듣는 것 …등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말씀이 중심 되어야 합니다.
 
몇 년 전부터 우리에게 소개된 [열린 예배], [○○예배]… 등
그럴듯한 이름에 예배를 붙인 특별한(?) 모임이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의 얘기를 듣다 보니
우리 기둥교회는 닫힌 예배를 드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시대의 흐름과 사람들의 변화된 욕구를 충족시키려고…
구원의 소식을 많은 사람에게 전한다는 이유로… 예배의 거룩함, 예배의 구별성과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의 참 뜻을 외면하는 것 같은 불안함이 있습니다.
사실 그런 모임들은 예배라고 하기보다는
그냥 [집회]라고 표현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자리를 마련하는 사람들과 그런 자리에 참석하는 사람들 중에는
'예배'라는 이름을 앞세워 자기들의 특별한 취향을 만족시키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미국의 Willow Creek, Vineyard, Saddleback, The Church On the Way 교회 등은
미국에서 사람이 많이 모이는 큰 교회입니다.
저와 우리 교회 부목사님들도 그 교회들을 가 보았습니다.
소위 '열린 예배'를 지향하는 이 교회들은
교회 역사 중에 좀처럼 없었던 토요일 오후 예배를 시작했습니다.
The Church On the Way에서는 자신들의 토요일 저녁예배를 '주일 예배'라고 소개합니다.
그 이유는 토요일 오후에 드리는 예배지만
주일 아침에 드리는 예배의 내용, 찬양과 성가, 설교본문과 내용이
정확하게 동일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렇기에 굳이 토요일 예배라 하지 않고, 주일 1부 예배라고 부르며,
그 안내문은 다음의 말로 끝을 맺습니다.
"나오셔서 토요일을 주일의 일부로 만드십시오."
 
여러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금요일 심야 시간에 주일 예배와 동일한 순서와 내용의 찬송, 설교로 예배드린다면
그것이 주일 예배가 될 수 있습니까? 주일날 예배 드리지 않아도 됩니까?
수요일에 주일 예배와 동일하게 드린다면 주일날 예배 드리지 않아도 되나요?
그런 논리대로라면 여름에 해수욕장에 가서 양복도 벗고 수영복 입고 찬양하고
주일 낮예배 순서와 내용이 똑같게 예배 드리면 주일 예배가 되는 것입니까?
'열린 예배'가 우려되는 이유는,
하나님 중심에서부터 지나치게 회중 중심으로 바뀌어졌다는 것입니다.
'회중이 요구하기에', '회중이 좋아하기에', '회중이 늘어나니까'
마치 TV 시청율을 높이듯이 사람들에 의해 예배가 움직입니까. 아닙니다.
가인의 예배는 '인간 편의주의적인 예배'였기에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아벨의 제사는 하나님을 먼저 생각하는 '하나님 중심의 예배'였기에,
하나님이 그의 예배를 받으셨습니다.
<2004. 4. 3. 기독교타임즈 17면  김종환목사 글  "열린, 그러나 너무 열려 버린" 참조>
 
 
간혹 전통적인 예배의식을 탈피하는 것을 자랑거리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예배의 찬송을 줄이고 기도를 줄여 무언극이나 무용으로 대신합니다.
예배전체를 연극처럼 꾸며 설교도 연극사이에 끼워 넣기도 합니다.
형식이나 예전이 전혀 없는 집회를 예배라고 할 수 없습니다.
물론 어떤 특정한 예배의 형식이 절대적인 것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형식이 없는 예의는 없습니다. 형식이 없는 것은 예절과 상관이 없습니다.
차 한잔을 마셔도 '다도(茶道)'라는 예법이 있고
식사를 하면서도 예의가 있습니다. 아무렇게나 먹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데 예의가 없다면, 형식이 없다면, 전통이 없다면
그것은 말이 안됩니다.
교회는 성경말씀을 중심으로 신앙의 전통 속에서
나름대로의 예배 형식을 이어왔습니다.
 
변해 가는 세상과 세대(changing world and generations)라 하여
복음까지 변할 수는 없습니다(the unchanging gospel).
그리고 예배에서는 어떤 것도 '말씀'보다 앞서거나 중요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말씀이 배제된 예배가 진정한 예배라고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말씀이 없는 예배는 있을 수 없습니다.
기독교는 말씀의 권위를 회복한
마틴 루터(M. Luther)의 종교개혁 전통을 이어 받은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의 모든 근거는 성경입니다.
성경은 절대적 권위, 즉 1차 권위의 자료입니다(authoritative source). 
보조적인 자료 즉 2차적 자료로서 가능한 것은
전통에 의해 정리된 신조, 경험… 등입니다(subsidiary source). 
 
이에 대해 웨슬리(Wesley) 목사님은
"궁극적 지식과 귄위의 1차적 원천은 성경(scripture),
  그리고 보조자료로서의 2차적 자료는 전통(tradition), 이성(reason)
  경험(experience)"으로 정리하였습니다. 
그리고 웨슬리 목사님은
  "나의 근거는 성경이다. 그렇다 나는 성경 고집쟁이다.
  나는 모든 일에 있어서
  그것이 큰 일이건 작은 일이건 성경을 따른다"고 했습니다. 
    (My ground is the Bible. Yea, I am a Bible-bigot.
    I follow it in all things, both great and small. 1766년 6월 5일 일기)
 
이것이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가져야 할 기본적인 자세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가장 중심의 자리에 있어야 하고
가장 기초가 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있어야 합니다.
 
 
예배는 받으시는 하나님의 만족을 추구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쉽게 '시대가 달라져서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 는 이야기를 하지만,
제가 묻고 싶은 것은 '얼마나 예배를 소중히 여기냐'는 것입니다.
예배의 중심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입니까? 설교하는 목사입니까? 아니면 예배 드리는 청중입니까?]
예배는 받으시는 하나님 중심이어야 합니다.
 
구약성경의 말라기 전체를 한번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말라기 전체의 주제는 예배는 받으시는 하나님의 만족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드리는 예물 조차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배를
성경을 통해, 기독교 역사를 통해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교회는, 예배드리는 사람은 새로운 이야기,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으러 교회 오거나 그런 마음으로 예배 드려서는 안됩니다.
제가 설교할 때 가끔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설교 내용의 이해를 돕기 위한 예화일 뿐입니다.
교회에 재미있는 것을 위해 온다면 그런 사람은 교회를 공연장으로 착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만족을 위해, 하나님께 드리기 위해 예배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배가 반드시 모인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만족을 주어야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은
진정한 의미의 예배를 포기했거나 예배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입니다.
 
물론 예배는 자기 세대, 자기 문화에서…
최고의 기쁨과 정성을 담은 표현을 하나님께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의 본질을 변화시키지 않는 한
새로운 방법과 기술, 장비, 악기, 음악적 다양성…  등을 적극 수용해야 합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예를 갖추어 절하는 예배(禮拜)는 [받으시는 분이 누구인가?]에 대한 초점을
절대 잊지 말아야 합니다.
 
교회마다 담임목사의 목회이념에 따라 교회의 분위기에 차이가 있습니다.
각 가정마다 가장의 생활 철학에 따라 가풍에 차이가 나는 것과 같습니다.
물론 같은 교회라도 예배에 따라
주일낮예배, 주일밤예배, 수요일예배, 새벽예배, 금요심야 예배 또는 철야기도회…등
조금씩 스타일이  다릅니다.
그러므로 어떤 한 예배를 참석해 보고 그 교회 전체의 분위기와
예배에 대해 평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사실 어떤 스타일의 예배를 드리는가 하는 것은
그 교회의 전통과 목회자의 목회이념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예배에 대해, 교회에 대해 좋고 나쁘다는 평가나
우열을 구별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 입니다. 
 
 
예배의 성공자가 범사의 성공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우리 기둥교회의 예배가… 우리의 예배가…
하나님 마음에 합한 예배가 되기를 원합니다.
주보의 틀과 예식의 전통에 얽매인 예배가 아니라
주의 인도하심 따라, 성령의 인도하심 따라 드리는 예배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예배를 준비하고, 예배를 드립니다.
여러분, "예배의 성공자가 범사의 성공자입니다"
따라서 합니다. "예배의 성공자가 범사의 성공자입니다."
가인과 아벨을 다시 말하지 않더라도 예배에 성공해야 범사에 성공할 것입니다.
 
신앙생활 잘 하던 사람이 영적으로 병이 들면
가장 먼저 나타나는 징조가 예배를 드리지 않는 것입니다.
예배의 자리에 오지 않고 예배를 소홀히 합니다.
병들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삶의 일부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 모두, 영혼 모두, 생각 모두
그리고 우리의 힘과 가진 모든 것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께 영광돌리며 살기를 원하십니다. 온전한 헌신을 원하십니다.
 
여러분 중에 [목사님, 참 답답하시네요. 누가 그것을 모릅니까?
예배가 귀중하니까 여기 나와 앉아 있습니다]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귀한 것 아시는 여러분께 다시 한번 더 알려드립니다.
학교 선생님이 한 얘기 또 하고 한 얘기 또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중요하기 때문에, 잊어 버리면 안되기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저는 제 아들들을 만나고 헤어지든지, 전화 통화를 하다가 끊을 때면
늘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매번 같은 얘기를 했더니 하루는 제 아들이
"아버지 무슨 말씀을 하실 지 저도 아는데요."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래도 또 같은 말을 했습니다.
중요한 말은 100번이라도 들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너무 너무 중요하고 잊어 버리면 안되기 때문입니다.
빌립보서 3장 1절에 사도 바울이 빌립보 교회를 향해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 했습니다.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예배가 얼마나 중요한 지 다시 한번 깨닫기를 바랍니다.
성경말씀에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여러분에게 가르치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이, 가정생활 중에, 부부관계, 가족관계,
사회생활에서 소홀함이 없어야 합니다.
좋은 사람들과 틈새가 생기지 않도록 노력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먼저 하나님과 여러분 사이에 틈이 생기지 않아야 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가장 중요한 것이 "예배"입니다.
 
여러분이 자녀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것, 가르칠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좋아하는 음악, 맛있다고 먹는 음식, 멋있다고 사주는 옷…
아이들이 좋아하지 않습니다. 여러분과 자녀들이 다릅니다.
여러분과 아이들이 같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조그마한 여자 아이들이 옹기 종기 모여서 무엇인가를 하고 있었습니다.
무엇을 하는지 재미있어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무엇을 하는가 하고 봤더니 화투장을 들고
한 아이가 다른 아이들에게 숫자를 가르쳐 주고 있고
다른 아이들은 열심히 그것을 배우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하도 어이가 없어서 "넌 그걸 어디서 배웠냐?"고 물었더니
엄마가 가르쳐 줬다는 것입니다.
아니, 아이에게 가르쳐 줄 것이 그렇게 없습니까?
아이와 함께 할 것이 그렇게 없습니까?]
 
여러분이 여러분의 자녀들과 가족들이 함께 어울려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입니까?
가정에서 가정 예배를 드리며 함께 찬송을 부르고,
하나님의 성경말씀을 봉독하고, 손을 잡고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가정에서 가정예배를 드리며 사십시오.
신앙생활에 승리해야 범사에 승리할 수 있습니다.
예배에 성공해야, 범사에 성공할 수 있습니다.
예배에 승리해야, 성공해야 범사에 바른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기둥교회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이 시간 어디에 있든지, 무엇을 하든지…
피치 못할 사정으로 컴퓨터 앞에 앉아 인터넷으로 예배를 드린다 할지라도…
여러분이 예배에 실패자가 되면 영원한 실패자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예배에 성공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신앙생활하는 여러분, 하나님과의 관계에 틈새가 생겨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삶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예배를 명하셨고, 예배를 받으신다 했고,
예배하는 자를 찾으신다고 했습니다.
여러분의 평생이 하나님 마음에 합한 예배를 드리며 사는
믿음의 승리자, 성공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예배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세상은 점점 예배의 기회를 빼앗아 갑니다.
하나님께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마음을 빼앗아 갑니다.
하나님 어떤 일을 당해도
하나님께 예배하는 일에 실패자가 되지 않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예배에 성공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귀한 시간에도 하나님 마음에 합한 예배를 드리며
정성껏 준비한 예물을 드립니다. 하나님 받아 주시옵소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2004년  9월 12일 주일 낮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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