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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지혜로운 생활 (골 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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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김창인 목사

오늘 함께 읽으신 말씀 중에 5절을 보면 "외인을 향하여서는 지혜로 행하여 세월을 아끼라" 는 말씀이 나오는데 이 말은 바꾸어 말하면 지혜롭게 생활하라는 뜻도 되기에 오늘의 제목을 『지혜로운 생활』이라 정하고 함께 은혜 받고자 합니다.

어느 날 예수님께 한 청년이 찾아와서 하는 말이 "선생님! 저에게는 형님이 계시는데 부모님의 유산을 혼자서 다 가지고 저한테는 주려고 하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형님과 심하게 싸웠는데 아무래도 해결이 되지를 않습니다. 그러니 선생님께서 우리 형님을 만나서 좀 해결해 주십시오"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을 듣고 계시던 예수님은 그 청년에게 어리석은 농부의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알기 쉽게 이야기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어느 마을에 한 농사꾼이 살았는데 그 해에 농사가 얼마나 잘되었는지 추수할 곡식을 쌓을 창고가 좁아서 새로 지어야만 하게 됐지! 일년 농사를 지었는데 여러 해 먹을 것을 거두어 들였네. 그리고는 스스로 아주 만족해하면서 이 농부가 하는 말이 '내 영혼아 이제는 먹고 마시고 평안히 쉬자' 고 하였지! 그런데 하나님이 그 날 밤에 그 영혼을 불러 갔거든! 이렇게 말씀하시고는 이보게 청년, 자기에 대해서는 부요하고 하나님께 대해서는 가난한 사람은 바로 이런 꼴이 되고 말지!" 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것이 무슨 말씀입니까? 이 청년이 예수님 앞에 온 것은 돈 때문에 형제간에 싸우고서 온 것이 아닙니까? 첫 번째로 돈 때문에 형제간에 서로 싸우는 것은 참 어리석은 일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시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농사지을 때 농사란 하나님의 도움이 아니고는 지을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수리 시설이 잘 되었다고 해도 기상에 이변이 생기는 농사는 망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농사란 하나님의 도움이 없이는 절대로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한 해 농사를 지어 여러 해 먹을 것을 얻었으니 당연하게 감사해야 하는데 이 농부는 전혀 감사를 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감사를 할 줄 모르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는 "내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쌓아두었으니 평안히 먹고 마시고 쉬자!" 고 했는데 사람의 영혼이 물질 때문에 평안하고 부유해 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돈 많은 것, 즉 부자가 되는 것과 영의 부요와는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사람은 영혼에 대해서는 무식한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영혼이 그렇게 가난했는데도 돈만 모으면 되는 줄만 알았습니다. 이렇게 영적으로 무식한 사람은 아주 미련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네 번째로는 오늘밤에 죽는데 그 죽음에 대한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죽음에 대한 준비가 전혀 없는 사람은 미련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섯 번째는 자기를 위해서는 그렇게 돈을 잘 쓰지만 하나님을 위해서는 돈을 한 푼 안 쓰는 사람이 있는데 이런 사람은 이 다음에 하나님 앞에 가서는 영원히 미련한 사람이 된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본문이 가르쳐 주시는 지혜로운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그런 어리석은 자기 삶은 여러분과는 전혀 상관없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이 가르쳐 주는 대로 지혜로운 자의 삶이 무엇인가를 살펴보겠습니다.

I. 기도의 생활(2-4절)

성도 여러분! 우리가 예수 믿고 나서 배운 바로는 기도하는 사람이 제일 지혜로운 사람이고 기도하는 생활이 제일 지혜로운 생활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정이 두터워지고 또 하나님이 주시는 놀라운 축복과 능력을 체험하게 될 뿐만 아니라 믿음의 뿌리가 깊어지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 성도들에게는 기도 많이 하는 것이 큰 자산이 되는 것입니다.

첫째, 힘쓰는 기도(2절 상반절)

그런데 오늘의 말씀을 보면 힘쓰는 기도를 말하고 있습니다. 2절 상반절을 보면 "기도를 항상 힘쓰고" 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을 보면 기도에도 힘쓰는 기도가 있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오늘날 성공한 사람 치고 쉽게 성공한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모두 애쓰고 노력하고 다른 사람 잠 잘 때 잠 못 자고 남이 쉴 때 쉬지 못하고 노력해서 성공한 것입니다. 공부하는 학생들을 보십시오. 얼마나 애쓰면서 공부하고 있습니까? 또 사업에 성공했다는 사람을 보세요. 놀면서 돼도 좋고, 안 돼도 좋다는 식으로 하면서 성공하는 사람을 보았습니까? 최선을 다해 힘쓰고 애써서 사업에 성공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성공에는 왕도가 따로 없습니다. 최선을 다해 힘쓰고 애쓰는 것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기도가 얼마나 힘든지 아십니까? 기도는 중노동입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는 모습을 성경이 무엇이라고 설명했습니까?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천사가 나타나서 힘을 도왔다" 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애쓰면서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 주셔서 도와 주신다는 가르침입니다. 그러므로 힘써서 기도하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둘째, 감사의 기도(2절 하반절)

2절 하반절을 보면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말씀입니다. 이것을 좀 쉽게 의역하면 믿음 생활에 잠자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깨어 있어 감사함으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할 때에는 억지로가 아니라 감사하는 마음으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목사님! 기도하기가 쉽지 않고 때로는 애쓰면서 기도하라는 것이라면 어떻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할 수 있습니까? 하고 물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에 보면 그 실례가 있습니다. 다니엘은 유대 나라 소년이었지만 포로로 끌려간 사람이었습니다.

바벨론 왕이 포로로 끌려온 다니엘을 보니 무엇인가 좀 느끼는 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불러다 가르쳐 보니까 기가 막히다 할 정도로 특출했습니다. 그래서 얼마 후에는 국무총리를 삼았습니다. 그런데 이때 다니엘이 자기는 출세했지만 자기 나라와 망한 자기 민족을 생각하니 너무 괴로워서 하루에 세 번씩 예루살렘을 향해 창문을 열어놓고 기도를 했습니다.

그러자 다니엘이 잘 되는 것을 시기하던 원수들이 그것을 가만 둘 리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니엘을 제거하려고 음모를 꾸몄습니다. 그것은 바벨론이 섬기는 신 외에는 다른 신을 섬기거나 기도하는 사람은 사자를 며칠 굶겨 놓았다가 사자 굴에 던져 넣자는 것인데 이것은 순전히 다니엘을 겨냥한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계획을 세우고는 왕의 허락을 받아내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다니엘은 이 어명이 자기를 겨냥한 것을 알면서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전과 똑같이 예루살렘을 향하여 창문을 열고 하루에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무슨 말씀입니까? 다니엘은 분명히 자기를 없애버리기 위해서 그런 음모를 꾸민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는 것입니다. 이 사건 속에 하나님의 엄청난 계획이 있는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우리를 궁지에 몰아넣고 우리로 하여금 그 상황 속에서도 기도하게 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큰 은혜를 준비해 놓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믿음 때문에 큰 시련이 닥치거든 "하나님! 무슨 큰 은혜를 예비하셨습니까? 라고 감사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다니엘은 사자 굴에서 단지 열린 곳은 하늘뿐임을 알고 위에 계신 하나님만 의지했습니다. 여러분! 이것은 우리도 막다른 궁지에 이르면 헤어날 길은 하늘밖에 없음을 알고 기도해야 하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상상하지도 못했던 큰 은혜를 준비해 두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를 할 때면 감사함으로 하라는 것입니다.

셋째, 중보의 기도(4-5절)

3절 상반절 말씀을 보면 "또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 주사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 고 하였는데 이 말씀의 내용은 바울 사도가 골로새 교인들에게 중보기도를 부탁하는 것입니다. 또한 4절에 "그리하면 내가 마땅히 할 말로써 이 비밀을 나타내리라" 고 하였습니다. 바울 사도가 기도를 안 하는 사람입니까? 기도를 너무나 많이 하였던 분입니다.

그런데도 바울 사도는 골로새에 있는 교인들에게 너희들이 기도할 적마다 한마디씩 꼭 나를 위해서 기도하라고 요청하였던 것입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이것은 기도의 능력이 얼마나 위대하고 크다는 것을 아는 사람만이 이런 기도를 부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도의 능력을 아는 사람은 다른 것을 부탁하지 않습니다. 꼭 기도를 부탁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의 손, 기적의 손, 축복의 손이 기도하는 때에 기도하는 사람에게 나타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본문을 보면 바울 사도가 기도를 부탁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려고 할 때에 거기에는 아브라함의 조카인 롯이 살고 있었습니다. 롯은 하나밖에 없는 아브라함의 조카였습니다. 처음에는 함께 살았지만 롯이 소돔으로 가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킨다고 하신 말씀을 들은 아브라함은 그 성을 위해서 아주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기도를 생각하시고 롯의 가족을 구원하셨습니다(창 19:29). 여러분! 이것이 바로 중보의 기도입니다. 중보의 기도는 이렇게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며 하나님의 생각을 바꾸어 놓기도 합니다. 우리가 기도의 능력을 알고 있다면 다른 것을 부탁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봉사 중에 최고의 봉사는 너를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도 다른 사람을 위해서 기도해 주는 기도의 역군, 기도하는 봉사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II. 교제의 생활(5-6절)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 혼자 살도록 만들지는 않으셨습니다. 다 어울려 함께 살도록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제를 잘하는 사람이 성공적인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제를 도외시하고 원수를 만드는 사람은 실패하고 맙니다. 세상에 미련한 사람 치고 원수 안 맺는 사람이 없습니다. 여기 가도 원수 맺고, 저기 가도 원수를 만듭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여기 가서도 교제를 잘하고 저기를 가도 잘 어울립니다. 이처럼 우리가 교제해야 하는 이유는 어울려 살도록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들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교제를 잘 하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첫째, 전도의 교제(5절)

5절을 보면 "외인을 향하여서는 지혜로 행하여 세월을 아끼라" 고 하였는데 여기에서 외인이란 무엇입니까? 이것은 믿지 않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믿지 않는 사람을 향하여 지혜롭게 행하여 세월을 아끼라는 말씀은 믿지 않는 사람과 사귀는 기회를 만들어 전도하라는 뜻입니다. 즉 전도를 위한 교제를 의미합니다. 단지 교제를 위한 교제는 의미가 없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을 구원할 목적으로 교제해야 합니다. 초대 예루살렘 교회가 하던 교제입니다.

저는 국민학교 5학년 때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그 해가 바로 1945년 해방되던 해 가을이었습니다. 외가는 한 30리 밖에 있었는데 외가는 다 예수를 믿었고 외삼촌은 집사였습니다. 그런데 그 해 가을에 막내 외삼촌이 그렇게 열심히 우리 집에 오시곤 하였습니다. 그런데 토요일이 되면 꼭 돌아가시는 것입니다. 나중에 예수 믿고 보니 본 교회로 제자리를 지키러 가시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교회 집사는 어디를 갔다가도 토요일 날에는 돌아와서 제 자리를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 봉사는 출석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어느 한 주일에는 돌아가지를 않고 우리 가족을 모두 교회로 인도하였습니다. 그때부터 우리 가정은 예수를 믿게 된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외삼촌이 자기 교회를 꼭 한번 빠진 것은 자기 누님의 가정을 구원하려고 빠졌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를 믿고 보니 외삼촌이 그렇게 열심히 우리 집에 왔던 까닭은 우리 가정을 인도하는 목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외삼촌은 나만 보면 그렇게 좋아 하셨습니다. 나에게는 외삼촌이지만 외삼촌 이상의 의미가 있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믿지 않는 사람을 만나는 기회를 만들어 그 기회는 반드시 전도하는 기회로 만드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지혜로운 생활입니다.

둘째, 변치 않는 교제(6절 상반절)

6절 상반절 말씀을 보면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고르게 함같이 하라" 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혼자 사는 데는 말이 필요 없습니다. 하루 종일 가도 혼자 사는데 무슨 말이 필요합니까? 말이라는 것은 상대방이 있을 때 필요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하는 교제는 항상 은혜롭게 하라는 것입니다. 즉 만나서 저 사람과 이야기 주고받으면서 내가 은혜를 받고 또 은혜를 나누어주는 교제가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오랜만에 만나면 목사 흉을 보고, 교회를 헐뜯고, 장로를 욕하고 시어머니에 대한 불평을 하고 나서 헤어질 때는 뭐라고 말합니까? 오늘 은혜 많이 받았다나요! 그러나 여러분! 착각하지 마세요. 그것이 어째서 은혜입니까? 만났다하면 정말로 은혜가 되는 말을 나누어야 합니다. 은혜로운 교제가 되려면 "소금으로 고르게 함같이 하라" 는 것이 이 본문의 가르침입니다.

여러분! 소금이 얼마나 고른지 잘 아시지요. 옛날 아브라함 때 즉 4천년 전의 소금이나 지금의 소금이나 짜기는 똑 같습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한국 소금이나, 미국 소금이나 짜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소금이 생각할 때 이 집은 못된 집이니까 이 집에 가서는 좀 싱겁게 하겠다 해서 소금이 싱거워 집니까? 또 이 집은 광성교회 일등 집사이니 좀 짜게 해주어야 하겠다고 해서 갑절이나 짜게 됩니까? 아닙니다. 언제나 변함 없이 짠 것이 소금입니다. 그래서 "소금으로 고르게 함같이 하라" 는 말씀은 변함이 없는 교제가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오늘은 살을 발라서 줄 것처럼 하다가도 며칠 안 가서는 변덕을 부리고 싫증을 내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참 미련한 사람입니다. 우리가 살다 보면 그 사람을 언제 또 만날지 모릅니다. 이 세상에 원수 맺고 담쌓는 사람 치고 미련하지 않은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한 번 만났다 하면 또 만나고 싶을 만큼 은혜로운 교제, 변함이 없는 교제를 하는 사람은 지혜로운 삶을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 말씀의 교제(6절 하반절)

6절 하반절을 보면 "그리하면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리라" 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대답할 것을 알리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만약에 너희에게 묻는 사람이 있다면 꼭 대답해 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을 물어볼 때 대답해 주라는 것입니까? 예를 들면 구역 예배에 모여서 아파트 시세에 대해서 말하다가 값이 좀 좋으니까 아파트를 빨리 팔아야 되겠다, 당신도 빨리 팔지 그래! 하며 말합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묻고 대답하라는 것은 이런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것은 안 믿는 사람들이 더 잘하지 않습니까? 성경에서 묻고 대답하라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구역장님! 내가 성경을 읽다가 이 말씀이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는데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 이렇게 물으라는 뜻이고, 그 물음에 대답해 주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경에서 말하는 교제라는 것은 다방에서 커피 마시면서 하는 교제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서로 배우고 가르치면서 말씀을 통해서 서로 교제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런 관계로 교제를 맺어 보십시오. 그러면 이 교제는 변함이 없습니다. 자기한테 이로울 적에는 삼키고, 손해가 될 때에는 뱉어 버리는 것이 교제입니까? 이해 관계로 맺어진 교제는 누구나 다 할 수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교제는 말씀을 가지고 서로 사귀는 것과는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말씀으로 하는 교제가 하나님이 보실 때 가장 지혜로운 일인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신앙도 잘 되고 인생도 성공하며 승리하게 됩니다. 그래서 교제의 생활은 전도를 위한 교제, 변치 않는 교제, 말씀으로 하는 교제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III. 일꾼의 생활(7절)

7절 말씀을 보면 "두기고가 내 사정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리니 그는 사랑을 받는 형제요, 신실한 일군이요 주안에서 함께 된 종이라 내가 저를 특별히 너희에게 보낸 것은 너희로 우리 사정을 알게 하고 너희 마음을 위로하게 하려 함이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사랑 받는 일꾼이요, 두 번째는 신실한 일꾼 즉 믿음의 일꾼이요, 세 번째는 주안에서 함께 된 종이라는 것인데 이것은 서로 협력하는 종이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우리가 살아가면서 죄인 줄 모르고 죄를 짖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첫 번째가 모르면서 아는 척하며 배우지 않는 죄입니다. 우리 성도 중에는 성경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척하고 성경공부 시간에 배우려 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모르면 배워야 하는 것인데 도대체가 배울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할 수 있는데도 일을 하지 않는 죄입니다. 일할 수 있는데 일을 하지 않습니다. 구역장을 하면 참 잘할 것 같은데 이리 빼고 저리 빼면서 안 하는 것입니다. 물어보면 시간을 내기가 어렵고, 또 피곤하다고 하면서 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이것이 죄인 줄을 아셔야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하나님의 일꾼으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지혜롭고 복된 삶입니까?

첫째, 사랑 받는 일꾼(7절 상반절)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우리는 본문의 말씀처럼 사랑을 받는 형제요, 사랑을 받는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성도 중에는 교회 안에서는 열심히 일하고 수고를 많이 하는데도 안타깝게도 사랑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일은 일대로 하면서도 미움받는 사람이 있습니다. 일은 아주 열심히 하고 또 잘하는데, 에이! 저 사람 보기 싫어서 자기가 싫다, 저 사람 일 좀 안 했으면 좋겠다고 하는 소리를 듣습니다. 이것은 참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것은 교회에서만이 아니라 집안에서도 회사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사랑 받는 형제, 사랑 받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옛날 헬라 나라 중에서도 제일 크고 부유한 나라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하루는 임금님이 왕비와 후궁들을 다 모아놓고 하는 말이 너희들이 원하는 것을 다 써내면 원하는 대로 다 주겠는데 그것을 가지고 다들 집으로 돌아가게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모두 저마다 가지고싶은 것, 욕심나는 것을 다 썼습니다. 그런데 한 왕비는 쓰지를 않고 가만히 있습니다. 그래서 임금님이 보기에 답답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왜 너는 갖고 싶은 것이 없느냐 이제 집으로 돌아가는데 어서 적어라 원하는 대로 다 주겠다. 그러자 이 왕비가 하는 말이 나도 가지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다른 것은 다 필요 없고 딱 하나만 필요합니다. 정말 약속하신 대로 주시는 겁니까? 암 주고 말고 어서 말이나 해봐라! 그러자 이 왕비가 하는 말이 "저는 필요한 것이 꼭 하나 있는데 임금님 자신을 주십시오" 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다 돌려보내고 그 왕비하고 살았다고 합니다.

여러분! 왕에게서 무슨 온갖 보물과 밑천을 떼어간들 그것이 얼마나 귀하겠습니까? 왕의 사랑 받는 것이 귀하지요. 그러니까 사랑 받는 일꾼이 귀한 것입니다. 사랑하기도 해야 되지만 사랑 받을 줄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 성도님들도 일을 많이 하시기도 하지만 꼭 사랑 받는 일꾼의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신실한 일꾼(7절 중반절)

신실하다는 말은 믿음이라는 말과 똑 같은 말입니다. 그래서 이 말을 저보고 번역하라고 하면 믿음의 일꾼이라고 하겠습니다. 믿음의 일꾼은 참 좋은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회사에 아주 일류 기술자가 있다고 합시다. 그런데 그 기술자에게서 그 기술을 빼 보십시오. 그 사람 사용할 데가 어디 있습니까? 그러니 그 회사에 발 붙을 데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회사에서는 기술자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기술이라는 말입니다. 그렇지만 우리 교회에서는 기술을 가지고 봉사하는 데가 아닙니다. 세상의 돈과 물질을 가지고 봉사하는 데가 아니라 믿음으로 하는 곳이 아닙니까? 기술자에게 기술을 빼면 사용할 데가 없듯이 아무리 많이 배웠고 아무리 많은 것을 가졌다 할지라도 믿음을 빼놓으면 그 사람 교회 안에서는 쓸데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으로 봉사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참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바라시는 것은 믿음으로 봉사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이렇게 믿음으로 봉사하는 사람이 참된 일꾼이요, 가장 지혜로운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믿음으로 일하시고 믿음의 일꾼이 되셔서 꼭 승리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셋째, 협력하는 일꾼(7절 하반절)

두기고는 바울과 함께 하면 바울과 짝을 잘 맞추면서 협력을 기가 막히게 잘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믿고 골로새 교회에 두기고를 보냈더니 그곳에 가서도 협력을 아주 잘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두기고는 누구하고 짝을 만들어 주어도 협력을 아주 잘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교인들 중에는 협력을 잘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큰 문제입니다. 연초에 구역장과 권찰을 묶어 주면 얼마 못 가서 구역장이 권찰을 바꿔 달라고 합니다. 그래서 바꿔 주었는데 얼마 못 가서 또 바꿔 달라고 합니다. 그래서 알고 보니 그 구역장이 아주 별스러운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구역장이 있는가 하면 또 좀 별스런 권찰은 구역장하고 마음이 안 맞아서 못 하겠으니 구역장을 바꿔 달라는 권찰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누구하고도 서로 협조를 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서로 패거리를 만듭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을 보면 두기고는 주안에서 함께 된 종이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을 만나면 바울 하고, 시몬과 짝을 하면 시몬하고 서로 협력을 아주 잘 하였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누구하고도 잘 어울리고, 또 어디를 가든지 서로 손잡고 협력하면서 봉사를 잘하니 얼마나 귀한 일꾼입니까? 이런 사람이 어떻게 실패할 수가 있겠습니까? 여러분! 우리는 사업을 성공하기 전에 먼저 인생을 성공해야 하겠습니다. 가정에서 성공을 이루기 전에 먼저 내 인생을 성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에게 성공하는 사람만이 그 인생을 성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야만 진짜 성공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하면 성공은 지혜로운 생활에 있습니다. 먼저 기도의 생활이 가장 지혜로운 것이요, 그 다음에는 이웃과 잘 어울리는 교제의 삶이 지혜롭고 마지막으로 열심히 일하는 일꾼의 삶이 지혜로운 것입니다. 여러분도 지혜롭게 살아서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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