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바다 저 편으로 건너가야 하리 (마 8:18-27)

  • 잡초 잡초
  • 259
  • 0

첨부 1


- 설교 : 서호석 목사

  유난히 무더웠던 여름을 보내고 어느덧 계절이 바뀌어 가을의 문턱에 서서 여러분을 이렇게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뵙게 됨을 기쁘게 생각하고, 무엇보다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아울러 교우 여러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특별히 모두가 힘들어하는 이 때에 귀한 시간을 허락해주심으로 제 나름대로 유익하고 의미 있는 시간이 되도록 힘썼습니다.

  무엇보다 쉼을 통하여 새 힘을 얻을 수 있었고, 돌아봄을 통하여 그동안의 목회 사역을 점검할 수 있었습니다. 열방대학에서의 부부세미나 참여와 부흥하는 국내외 여러 교회 현장을 방문하며 많은 도전과 배움의 기회를 얻을 수 있었고,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는 시간을 통하여 우리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기대를 헤아려볼 수 있는 시간들이었습니다. 또한 우리 모두가 함께 꿈꾸며 이루어가야 할 미래교회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는 귀한 기회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다시금 하나님과 교회에 감사드리며, 이런 영적인 재충전과 배움의 내용들, 그리고 새롭게 부여해주신 영감과 비전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마음껏 쓰실 수 있는 교회를 우리 모두가 함께 이루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갈릴리 바다 서편 가버나움에서 동편 가다라 지방으로 건너가라고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명령하십니다. 이 명령은 그 길이 우리 교회들, 우리 성도들이 택해야 할 생명의 길을 제시하는 것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첫째, 왜 한참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는 중인데 예수님은 건너가자고 하시나요?
  이것이 우리가 택해야 할 길입니다. 그것은 성도가 성도다워지고, 교회가 다시 교회다워지려는 개혁과 갱신의 몸부림을 주님이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오병이어 기적을 일으키시고, 병든 사람을 고치시는 기적을 베푸시자 사람들이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려고 몰려 왔습니다. 주님은 유명한 사람이 되셨고, 소위 사람들을 많이 움직일 수 있는 동원능력이 있는 지도자가 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들이 원하는 욕심을 만족시켜주시는 것이 목적이 아니셨기 때문에 그곳을 떠나시고자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된 삶을 추구하는 우리도 그와 같은 길을 걸어야 합니다.

  일본의 도요타 자동차회사가 우직하게 “카이젠 (改善)하고 또 카이젠”함으로써 세계 제1위의 자동차가 회사가 되었던 것처럼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우리도 카이젠하고 카이젠해야 될 줄 믿습니다. 개선이 있으려면 변화의 아픔도 있겠고, 무엇보다 교회를 더 깊이 사랑하는 헌신이 요구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마음껏 쓰시는 교회되고, 성도가 되기 위해 또 개선하고 개선할 수 있게 되기를 빕니다.

  둘째, 건너가자고 명령하셨는데 누가 찾아왔습니까?
  먼저 서기관이 찾아와 “선생님이여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좇으리. 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는 그에게 예수님은 “머리 둘 곳도 없다.”하셨습니다. 그가 예수를 따르기 원한 것은 사실이지만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감수해야 하는 자기 부정, 희생, 고난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또 두 번째 제자 중에 한 친구가 찾아왔습니다. “주여 나로 먼저 가서 내 부친을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라고 말을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죽은 자들로 저희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좇으라.”하셨습니다. 이 말씀의 뜻이 무엇입니까? 불효하라는 말씀이나, 교회 일이 가정일 보다 중요하다는 말씀이나,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보다 교회가 먼저라는 차원의 말씀이 아닙니다. 이 말씀의 진의는 세상 그 어느 중요한 것보다 생명을 위한 일이냐 죽은 것에 관심 가지느냐의 우선순위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복음전파가 우선순위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교회일 한다고 하면서도 바리새인들처럼 죽은 일에만 관심가질 수도 있기에 우리에게 경계가 되는 말씀입니다. 예수의 제자는 생명을 택하고 진리를 택하고 사랑을 택하는 우선순위를 분명히 하라는 것입니다. 건너가야 합니다. 거듭 거듭 건너가야 합니다. 이 말씀에 순종하는 여러분 되시길 빕니다.

  셋째, 건너가는데 무엇을 만납니까?
  건너가는데 거센 풍랑을 만납니다. 갈릴리의 풍랑은 ‘큰 풍랑’이지만 포기하지 않고 건너가야 합니다. 우리 삶의 근본을 뒤흔들어 놓는 풍랑이지만 건너가야 합니다. 이 풍랑을 지나야 믿음의 승리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풍랑은 어려움이고, 시련이고, 고통, 고난입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야고보가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기쁘게 여기라.”고 합니다. 베드로는 “너희가 만약 불 시험을 당하거든 이상히 여기지 말라.”라고도 했습니다. 지난 날 여러분의 삶의 발자취를 돌아보시면서 여러분이 만난 풍랑과 비바람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물론 그것들이 없었으면 편하고 좋았을 것들도 많이 있을 것이지만, 그러나 지금 돌아볼 때 우리가 견뎌내야 했던 어려움들이 결국은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큰 사랑과 은혜라고 고백하게 되는 것들을 발견하실 것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풍랑이 있어도 건너야 한다고 예수님은 명령하십니다.

  넷째, 풍랑이는 바다를 건너는데 누가 건너자고 했나요?
  예수님이 건너자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기쁜 소식, 복음입니다. 예수님이 건너라고 하셨고 예수님이 함께 건너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다시 확고히 하라는 것입니다.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신대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
  우리와 함께 건너가시는 예수님이 누구인가요? 바람과 바다를 순종시키는 분이십니다. 오늘 우리를 좌절시키고 낙심케 하고 소망을 끊어지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성경은 이것을 때로 악령이라고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악령들을 꾸짖어 잔잔한 평화를 주시는 분이 주님이라고 증거합니다. 함께하시는 주님과 더불어 동행하는 가운데 우리의 자리를 떠나 믿음의 항해를 하시는 여러분 되시길 주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