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최초의 한 방울에서 최후의 한 방울까지! (히 5:7)

  • 잡초 잡초
  • 417
  • 0

첨부 1


- 설교 : 신삼철 목사

시작하는 말 

평생을 최고의 시계를 만드는 데 헌신했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아들의 성인식 날 손수 만든 시계를 선물하였습니다. 그 시계는 특이하게도 "시침은 동(銅)으로, 분침은 은(銀)으로, 초침은 금(金)"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아들은 시계를 받아들고 아버지에게 물었습니다. "아버지,시침이 가장 크니까 금으로 장식하고 가장 가는 초침을 동으로 만들어야 하지 않나요?" "아니다. 초침이야말로 금으로 만들어져야 한단다. 초를 잃는 것이야말로 세상의 모든 시간을 잃는 것과 마찬가지지."

그는 아들의 손목에 시계를 채워주며 이런 말을 덧붙였습니다. "초를 아끼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시간과 분을 아낄 수 있겠니? 세상의 흐름은 초에 의해 결정되는 것을 명심하고 너도 성인이 되는 만큼 1초의 시간에도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해라."

1초를 소홀히 하는 사람은 하루를 잃고 일생을 잃습니다. 인생의 승패는 순간순간에 달려 있습니다. 

전 세계의 핵무기 확산 금지 조약에 위배가 되는 고농축 우라늄은 핵물질인 우라늄235가 20%이상인 우라늄을 말합니다. 

천연 우라늄은 핵분열을 일으키는 우라늄 235가 0.7%에 불과합니다. 우라늄 235가 90%이상인 고농축 우라늄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농축설비가 필요합니다.

작은 핵이 모여 그 핵이 분열을 일으킬 때 실로 엄청난 위력을 발휘합니다.

바야흐로 지금 세계는 지극히 적은 량 우라늄 235의 0.2g을 가지고 싸우고 있습니다. 0.2g은 눈에 보일락 말락 하는 소량입니다.

문제는 우라늄 0.2g을 농축할 수 있는 설비가 돼 있으면, 우라늄 235를  몇 Kg도, 몇 톤도 만들어 핵무기를 제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액체 "한 방울" 이라 함은 지극히 적은 소량을 말합니다. 그러나 지극히 적은 소량이라 할지라도 질에 따라서 가치는 엄청나게 달라집니다.

예수님의 "부자와 나사로" 비유에서 우리는 물 한 방울의 가치를 알 수 있습니다. 부자는 죽어 음부에서 고통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부자는 나사로를 품에 안고 있는 아브라함에게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눅16:24)라고 말했습니다. 음부의 부자에게는 한 방울의 물이 영원한 소망이었습니다. 

최초의 한 방울도 중요하지만 최후의 한 방울은 더욱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한 방울" 입니다.

"한 방울을" 아끼지 않을 때, 망설이지 않을 때 우리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무엇이든지 성공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승리 할 수 있습니다. 

1. 땀 한 방울까지라도 !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창3:17-19)고 말씀하셨습니다.

땀이라는 말은 히브리어"제아(zeah)"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주아(zuah)" "즉 움직이다. 활동하다. 노동하다"라는 동사에서 나왔습니다.

아담은 엉겅퀴를 삶아 먹을 수 없었고, 가시덤불을 뜯어 먹을 수 없었습니다. 못 먹을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뽑아내고 채소를 심고 가꾸어 먹고 살아야 했습니다.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캐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중노동입니다. 중노동은 항상 땀이 나게 마련입니다. 사람은 땀을 흘려야 먹고 삽니다.

그러므로 땀을 흘리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의 대가인 동시에 노동의 대가요 또 다른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스포츠 선수들은 올림픽에서 메달 하나 따기 위하여 마지막 한 방울의 땀까지 쏟아 냅니다. 연습을 다 마치면 온 몸의 기운이 다 소진되기 때문에 일어날 기력조차 없다고 합니다. 그 대가는 영광의 월계관입니다.

사람들이 과거에는 먹고 살기 위하여, 현대에는 건강을 위하여 땀을 흘리기 위해 안간 힘을 쓰고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땀을 흘린다면 그것은 더 큰 하나님의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땀은 신진대사에 의한 배출 물로서 체온 조절의 작용을 합니다. 물론 정신적인 긴장에 의해 나오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매운 것이나, 식은 밥을 먹으면서도 땀을 흘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땀에는 염분, 지방산, 요소(尿素)가 들어 있습니다. 그러한 것들은 몸에 필요한 영양을 챙기고 난 후 몸에 축적되어 있는 노폐물입니다.

몸 안에 축적되어 있는 노폐물을 적당한 방법으로 몸 밖으로 배출시키지 않으면 안 됩니다. 몸 밖으로 배출시키는 작업을 생리현상이라고 말합니다.

땀의 종류도 가지가지입니다. 매운 고추를 먹으면서 흘리는 땀, 식은 밥 먹으면서 흘리는 땀, 고달픈 잠을 자면서 흘리는 땀을 소위 "헛땀""식은땀"이라고 말합니다. 아무 소용없는 땀이라는 말입니다.

공동묘지나 어슥한 곳에서 헛것(도깨비)을 보고 흘리는 땀, 골목길에서 치한을 만나 흘리는 땀, 안방에서 잠을 자다가 들이닥친 강도를 만나 흘리는 땀을 우리는 "긴장성 땀, 진땀"이라고 합니다.

여름 무더위로 흘리는 땀, 사우나탕에서 흘리는 땀, 찜질 방에서 흘리는 땀은 "체온 조절용 땀"입니다. 물론 체중감량의 효과도 약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이외의 효과는 별로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운동하면서 흘리는 땀, 노동하면서 흘리는 땀, 봉사하면서 흘리는 땀, 남을 도우면서 흘리는 땀방울에는 노폐물이 훨씬 더 많이 섞여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한 땀은 육체의 건강에 가장 필요하다고 하겠습니다. 그것을 우리는 소위 "건강 유지땀""건강 증진땀"이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같이 되더라.(눅22:44)고 예수님의 땀 흘리시며 기도하시던 모습을 소개합니다.

예수님은 몸을 움직이시며 기도하셨습니다. 열렬하게 기도하셨습니다. 몸부림치시며 기도하셨습니다. 중노동의 기도를 하셨습니다. 몸에 열이 나도록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몸에는 땀이 스며 나오다가 나중에는 핏방울처럼 뚝뚝 떨어졌습니다. 코피가 쏟아지는 것처럼 얼굴에서 땀이 쏟아졌습니다. 

누가의 표현은 예수님께서 얼마나 긴장하시고, 애쓰시고, 힘쓰셨으면 그렇게 땀방울이 핏방울같이 되셨을까를 표현하기 위해서 노력을 한듯합니다.

피땀 흘리는 기도는 전인적인 스포츠요, 운동입니다. 온 몸의 운동, 마음의 운동, 정신의 운동, 영적인 운동입니다. 열렬한 기도는 전 인격에 쌓여 있는 모든 노폐물들을 쏟아 냅니다. 씻어냅니다. 훑어냅니다. 녹여 냅니다.

기도하면서 흘리는 땀방울에는 전인적인 모든 노폐물이 흘러나올 것으로 믿습니다.

마음에 가라앉은 노폐물, 정신에 끼어 있는 노폐물, 영혼에 붙어 있는 죄얼과 같은 쓰레기들이 전부 쏟아져 나오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열심히, 뜨겁게 기도하시는 동안 제자들은 한 마디의 기도도 없었습니다. 한 방울의 땀도 흘리지 않았습니다. 피곤을 인하여 졸고 있었습니다. 슬픔을 인하여 잠자고 있었습니다.

2. 눈물 한 방울까지라도 !

눈물은 생리적으로 "눈알위에 있는 누선에서 나오는 물"을 말합니다. 늘 조금씩 나와서 눈을 축이고 씻어주며 각막의 영양원의 구실을 합니다. 감동이나 자극을 받으면 더 많이 나옵니다. 2%정도의 식염과 단백질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눈물을 구약에서는 "디므아(dimah)", 신약에서는 "다크루온(dakruon)"입니다. 이 두 말은 공히 "주스(juice)"라는 뜻이 있습니다.

포도는 포도주스를 냅니다. 레몬은 레몬 주스를 냅니다. 올리브는 올리브유를 냅니다. 참깨는 참기름을 냅니다. 들깨는 들기름을 냅니다.

주스나 기름은 자기 몸이 터지거나 깨어지지 않으면 절대로 내지 못합니다. 반드시 깨어지거나 터져야 주스나 기름을 낼 수 있습니다.

눈물은 전인격의 주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온 몸, 온 마음, 온 정신, 온 영혼, 전 인격의 주스요, 기름입니다. 눈물이 난다는 것은 자신의 무엇이 깨어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마음이 깨어졌다든지, 정신이 깨어졌다든지, 인격이 깨어졌다든지, 몸이 깨어졌다든지, 감정이 깨어졌다든지 하여튼 무엇이 상처를 받고 깨어졌다는 증거로 눈물이 나오게 됩니다.

히브리서는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히5:7)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기도를 드렸다"는 것은 인류를 위해서, 하나님의 율법과 영광을 위해서 자신이 완전히 깨어지셨다는 증거였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는 예수님의 영육 즉 전인이 상처받고 깨어지는 통곡소리가 천지를 진동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운명하시는 순간에는 하늘도 터지고 하나님도 우셨을 것입니다. 천지가 진동하고 하늘의 눈물이라고 할 수 있는 비가 쏟아졌습니다.

다윗은 "내가 탄식함으로 곤핍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시6:6)라고 탄식했습니다. 다윗이 밤마다 눈물로 침상을 띄웠다는 말씀은 다윗이 침상에서 깨어져 눈물로 쏟아져 나왔다는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를 시켜서 히스기야에게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너를 낫게 하리니 네가 삼일 만에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겠고"(왕하20: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의 깨어진 것을 보셨다는 말씀입니다.

현대 교회는 깨어지는 자들이 많지 않습니다. 자신이 깨어져서 하나님의 뜻이 녹아내리는 진정한 눈물의 기도 자들이 흔치 않습니다.

기드온의 항아리 깨어지듯이 깨어져야 눈물이 쏟아지고 눈물이 쏟아져야 복음의 횃불이 밝혀 집니다.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됩니다.

마리아가 예수님의 발치 앞에서 자신이 깨어지면서 흘린 눈물과 옥합에서 흘러나오는 향기가 어우러질 때에 주님이 기뻐하시고 힘을 얻으셨습니다.

마리아의 옥합이 깨어지듯이 깨어져야 그리스도의 향기가 스며 나옵니다. 깨어지지 않기  때문에 인간의 악취가 납니다. 깨어지면 그리스도의 향기가 반드시 스며 나옵니다.

3. 피 한 방울까지라도 !

피는 "사람이나 동물의 몸 안을 돌며 영양을 공급하는 붉은 액체"를 말합니다. 우리 몸의 피에는 적혈구가 있습니다. 폐에서 산소를  받아서 온 몸에 운반하고 온 몸의 노폐물을 받아오는 혈색소 "헤모글로빈 HB"를 운반하는 트럭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우리 몸의 피에는 적혈구와 달리 핵을 가지고 있는 백혈구가 있습니다. 이들은 외부에서 침입한 세균들을 죽이는 군대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백혈구는 아메바 운동을 하면서 혈관 안팎을 출입하면서 막강한 조직력으로 침입자들을 막아 냅니다.

종기가 곪아서 흰 고름이 나는 것은 백혈구가 세균과 싸워서 전사한 시체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기 전에 주사와 약으로 다스려 든 나지 않게 하는 것을 소위 우리는 "치료"라고 말합니다.

현대인들이 허약해지는 이유 중의 하나는 백혈구가 움직이기 전에 약을 투입하여 치료를 하기 때문에 약화시켜 면역체계를 약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우리 몸에는 미장공과 같은 혈소판이 있습니다. 주로 혈관 벽에 상처가 났을 때 초기에 손상된 혈관 벽으로 달려가 서로 엉겨 붙어서 혈액응고 인자를 불러냅니다. 혈액 응고 인자로 혈관 벽을 미장합니다. 지혈 작용을 합니다.

우리 몸에는 혈장이 있습니다. 약 90%가 물로 되어 있습니다. 그 속에는 생명 유지에 꼭 필요한 각종 단백질, 아미노산, 전해질, 탄수화물, 무기염류 등이 용해되어 있습니다.

그 안에 있는 혈장 단백질은 운반작용과 혈압을 조절합니다. 혈액응고 인자는 지혈 작용을 하고, 글로불린은 면역 작용을 합니다.

성경에서 피는 "생명과 희생"을 상징합니다. 피를 흘린다는 것은 생명을 버린다는 것이요, 희생을 바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마지막 피 한 방울을 인류를 위하여, 우리를 위하여 쏟으셨습니다. 요한은 "예수께 이르러서는 이미 죽은 것을 보고 다리를 꺾지 아니하고 그 중 한 군병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요19:33-34)고 당시의 상황을 소개합니다. 

예수님은  "피 한 방울까지" 우리를 위하여 바치셨습니다. 쏟으셨습니다.

우리의 신앙의 선배들은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 십자가 위에서 흘렸습니다. 장작더미 위에서 태웠습니다.  원형경기장에서 맹수들에게 핥였습니다.

끝맺는 말

우리 모든 직분 자들이 한 방울의 땀, 한 방울의 눈물, 한 방울의 피를 주님을 위하여, 교회를 위하여, 맡은 직분을 위하여 바칠 각오를 가져야 합니다.

그렇게만 한다면 안 될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못할 일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축복받지 못할 이유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작은 핵이 모여 큰 위력을 발휘하는 핵탄두가 되고, 작은 물방울이 모여 시내와 강, 바다를 이룹니다.

작은 땀방울이 모여 노아의 방주를 지어냈고, 작은 눈물방울이 모여 성군 다윗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성전 지을 준비를 하게 했습니다.

작은 핏 방울이 모여 인류의 영혼을 다시 살려 영원한 날의 백성이 되게 하셨습니다.

오늘도 이 이 땅위에는 한 방울의 땀을, 한 방울의 눈물을, 한 방울의 피를 하나님께 드려 하늘나라를 건설해 가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 분들이 바로 우리 자신들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