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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은혜로 살자 (고전 1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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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이중표 목사

2천년 교회사에서 가장 위대한 그리스도인을 사도 바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뜻을 따라 그의 일생을 마감한 위대한 그리스도인으로 이 땅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가장 큰 사역을 이룬 위대한 분으로 역사가 존경하고 흠모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를 정확하게 파악해서 우리에게 깨닫게 해 준 학자요, 목회자였습니다. 그는 가는 곳마다 교회를 세우고 교인들을 바르게 섬겼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교통이 불편한 당시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걸어서 선교여행을 했습니다. 아시아와 유럽을 오가며 복음을 전했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순교자로 그의 생을 마감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토록 위대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갔던 비밀은 은혜받은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은혜로 살고 은혜로 죽었습니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10절)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로 일생을 살았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로 살면 사도 바울과 같이 될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모든 삶이 은혜받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은혜는 거저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너무 커서 값으로 환산할 수 없기 때문에 거저 받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은혜로 살고 있습니다. 사람의 은혜든 하나님의 은혜든 다 은혜로 사는 것이지 자기 노력으로 사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은혜로 살았고, 미래에도 은혜로 살 것이며, 현재도 은혜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은혜는 크게 보이는 은혜와 보이지 않는 은혜로 구분됩니다. 보이는 은혜는 햇빛을 비춰주시고, 바람을 불게 하시고, 때를 따라 비와 이슬을 내려주시는 것입니다. 보이는 은혜는 일반적인 은혜입니다. 보이지 않는 은혜는 신령한 은혜요, 내적인 은혜입니다. 천국은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 마음속의 평화도 보이지 않습니다. 양심이 보이지 않습니다. 사랑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특수한 은혜입니다.

보이는 은혜는 비교되는 은혜요, 보이지 않는 은혜는 비교할 수 없는 은혜입니다. 일반적으로 은혜를 더 받았다 덜 받았다 하는 것은 눈으로 보이기 때문에 비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 속에 있는 하나님의 신령한 은혜와, 천국의 은혜와, 사죄의 은총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아무 것과도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보이지 않는 은혜는 성령께서 우리 마음을 감동하시므로 받는 은혜입니다.

우리가 부모님의 은혜를 말할 때도 내가 머릿속에 기억하는 은혜, 세 살 이후에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은혜는 기억된 은혜요, 세 살 이전의 은혜는 깨닫는 은혜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은혜는 세 살 이전의 은혜입니다. 부모님이 나를 낳은 것을 모릅니다. 나를 길러준 것을 모릅니다. 그래서 세 살 이전의 은혜는 절대적인 부모님의 은혜요, 내가 깨달아야만 알 수 있는 은혜입니다. 세 살 이후는 내가 스스로 밥 먹고, 옷 입고, 걸어다녔기 때문에 부모가 조금 도와준 것 뿐입니다. 이 은혜는 기억하는 은혜입니다. 기억하는 은혜를 받을 때 부모님의 효자가 되고 깨닫는 은혜를 받을 때 하나님의 효자가 됩니다.

은혜받은 자의 겸손한 삶

우리는 모든 것이 주께로부터 왔다고 고백할 때 겸손해집니다. 내 생명, 용모, 건강, 재산 모든 것을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받을 때 겸손해집니다. 모든 것을 은혜로 받았다고 생각하지 않고 자기 노력으로 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교만해집니다.
한신교회 비전 선언문 첫째가 뭡니까? "우리는 하나님께 예배하는 영광스러운 성도가 된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는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우리가 예배드리면 하나님의 은혜를 받게 되고 은혜를 받으면 겸손해지면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때 우리도 영광스러운 존재가 됩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을 가리켜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사도 중에 작은 자, 성도 중에 작은 자보다 더 작은 자, 죄인 중에 괴수라고 표현했습니다.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8절)

사도 바울은 다른 사도들처럼 주님께 직접 세움을 받아 사도가 된 것이 아니라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난 후에 부르심을 받아 사도가 되었기 때문에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나는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 내가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을 받기에 감당치 못할 자로라"(9절)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엡 3:18)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딤전 1:15)

원래 사도 바울은 자랑거리가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당시에 최고의 학문을 자랑하는 가말리엘 문하에서 공부한 지성인이요, 헬라 철학을 통달한 사람이요, 팔일만에 할례를 받은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에 히브리인이며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며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은혜를 받고 난 후에는 자신이 교만하게 생각했던 모든 육체의 자랑을 배설물처럼 여기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보니 자기가 자랑거리로 여겼던 모든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겸손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겸손하면 모든 사람이 우러러 봅니다. 겸손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돌리기 때문입니다. 내게 있는 것을 남들에게 자랑하면 사람들이 시기하고 질투합니다. 그런데 '나는 부족한 사람인데 하나님의 은혜로 이렇게 되었다'라고 할 때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면서 모든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게 됩니다.

은혜받은 자의 행복한 삶

행복한 사람은 감사가 많은 사람이요, 불행한 사람은 불평이 많은 사람입니다. 저주받은 사람은 감사를 잃어버린 자요, 행복한 사람은 어떤 환경에서든지 감사하는 자입니다. 은혜를 깨달으면 행복해집니다. 감사가 많아지기 때문입니다.
감옥과 수도원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공통점은 한번 들어가면 죽을 때까지 나오지 못합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엄격한 훈련과 규율을 따라야 합니다. 그런데 한가지가 다릅니다. 감옥은 불평과 불만으로 가득 차 있고, 수도원은 감사로 가득 차 있습니다.
똑같은 세상을 살지만 예수 믿는 사람들이 안믿는 사람들 보다 더 행복한 이유가 뭡니까? 감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은혜라고 생각할 때 감사가 나옵니다.
오스카 햄머스타인의 시 가운데 이런 시가 있습니다.

    종은 누가 그걸 울리기 전에는 종이 아니다.
    노래는 누가 그걸 부르기 전에는 노래가 아니다.
    당신의 마음속에 있는 사랑도 한쪽으로 치워놓아선 안된다.
    사랑은 주기 전에는 사랑이 아니니까

복은 우리가 감사하기 전까지는 복이 아닙니다. 감사할 때만 복입니다. 돈을 많이 벌었어도 감사하지 않으면 복이 아닙니다. 감사한 마음을 가질 때만 복이 됩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자는 하나님의 복이 됩니다. 그러나 감사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복이 아닙니다. 부모님께 감사하면 그 부모가 내게 복이 되지만 감사하지 않으면 원망이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땅에 살면서 자기 자신을 행복한 인간으로 만들기 위해서 끊임없이 감사로 채워야 됩니다.

어떤 아버지가 시골에서 피 땀흘려 농사지은 돈으로 아들을 대학까지 공부시켰습니다. 다행히 아들은 공부를 잘해서 서울대학에 들어갔고 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고시에 합격해서 판사가 되었습니다. 고시에 합격하니까 서울에 내노라하는 규수들이 몰려와 좋은 집안 규수와 결혼을 해서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집도 60평짜리 아파트에 살았습니다. 아버지는 결혼한 아들이 어떻게 사나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시골에서 농사짓느라 분뇨 냄새, 땀 냄새에 찌든 몸으로 괴나리봇짐 하나 짊어지고 아들네 집에 상경을 했습니다. 시아버지가 집에 오시자 며느리는 시아버지를 반기기는커녕 코를 벌름거리며 "이상한 냄새가 난다. 어디에서 이렇게 이상한 냄새가 나지" 하면서 일부러 시아버지 들으라고 큰소리로 말했습니다. 시아버지는 기분이 나빴지만 눈을 지그시 감고 화를 꾹 참고 시골로 내려왔습니다. 다음날 미숫가루 일주일치와 물을 준비해서 다시 서울로 상경했습니다. 그리고 아들네 아파트 앞에 자리를 깔고 "아무개 아들은 들어라. 나는 너에게 어렸을 때부터 먹여주고, 업어주고, 갈아주며 길러준 값,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까지 공부시켜 준 값 1억 5천만원을 청구한다. 그 돈을 받기 전까지 나는 절대로 이곳을 떠나지 않겠다. 그리고 오늘로서 너는 내 자식이 아니다." 이런 벽보를 붙이고 데모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며느리가 시장에 가다가 그 광경을 보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아들도 퇴근해서 보고는 기가 막혀서 말이 안나왔습니다. 두 내외가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아버지, 용서해 주십시오. 다시는 안그러겠습니다." 하고 용서를 빌었습니다. 아버지는 완강하게 거절했습니다. "안된다. 1억 5천만원 내놓고 얘기해라"  "아버지 아들을 생각해서 좀 봐주세요."  "너는 내 자식 아니니 아버지라고 부르지도 마라. 나는 냄새나는 농부일 뿐이지 네 아버지가 아니다."  "아버지, 저희가 잘못했습니다. 다시는 안그러겠으니 한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두 내외가 진심으로 사죄를 했습니다. 아버지의 화가 조금은 누그러지셨는지 "좋다, 너희가 진심으로 사죄를 하니 내가 용서해 주겠다. 단 조건이 있다. 네 아내를 시골로 내려보내라. 그래서 3년동안 나하고 같이 살면서 외양간 청소도 하고, 밭에서 일도 해야 한다."  "아버지 절대 순종하겠습니다." 할아버지는 자리를 철수하고 그날로 며느리를 데리고 시골로 내려갔습니다. 며느리는 그곳에서 지내는 동안 시아버지의 힘든 고초를 몸으로 체험했습니다. 그리고 남편이 이렇게 되기까지는 시아버지의 땀과, 눈물과, 정성의 은혜가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며느리는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요즘 노인정에서 할아버지들 사이에 유행하는 말이 있습니다. "자네도 며느리가 말 안들으면 군기를 잡게. 일주일치 미숫가루를 준비해서 돗자리를 깔면 되네"
은혜는 우리가 성령의 능력으로 깨달아야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엡 1:17-19)
똑같은 것을 보더라도 성령께서 우리 마음 눈을 밝혀주시면 깨닫는 은혜가 다릅니다. 자연만물을 보면서 창조의 신성을 봅니다. 부모를 부모로 보지 않고 하나님의 대리자로 봅니다. 아내를 아내로 보지 않고 그리스도의 신부로 봅니다. 남편을 남편으로 보지 않고 주님의 대리자로 봅니다. 자식을 자식으로 보지 않고 하나님의 선물로 봅니다. 이 깨달음이 바로 은혜입니다. 깨닫는 자에게는 감사가 샘물처럼 흐릅니다.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딤전 1:12-13) 
사도 바울은 자기 자신을 잘 알았습니다.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을 때 증인들의 옷을 들고 곁에 서서 그 광경을 관망했던 악한 자이기 때문에 그는 자신을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은혜를 알았기에 어떠한 형편에 처하든지 늘 감사했습니다.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빌 4:12)
일체의 비결이 뭡니까? 은혜로 사는 비결을 배웠다는 것입니다. 그는 몸에 고질병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어떤 사람은 간질이라고 말하고 어떤 사람은 안질이라고 말하는데 이것이 사도 바울을 괴롭히는 가시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병이 떠나기를 하나님께 여러번 기도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에게 준 응답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후 12:9)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욥은 가장 풍요한 삶을 누릴 때 갑자기 재앙이 닥쳐서 자식도 잃고, 재산도 잃고, 가정도 잃고, 건강도 다 잃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욥 1:21) 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성공하고, 잘되고, 형통하고, 건강하면 하나님께 감사하고 실패하고, 잘 안되고, 건강이 나빠지면 불평하면서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한가지 기억해야 할 것은 어떤 일이 잘못되어 실패할 때도 하나님이 나에게 은혜를 주셨다고 믿어야 됩니다. 만약 억울한 일을 당할 때 사람을 원망하면 나는 그것으로 망합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다' 하면서 그것을 족하게 받아들일 때

실패할 때 한가지 기억할 것은 하나님께서 가져갔다고 믿는 것입니다. 만약 실패할 때 사람에게 빼앗겼다고 생각한다면 견딜 수 없습니다. 병들어 죽습니다. 억울해 죽습니다. 여러분들이 어떤 일이 잘못되어 실패할 때에도 하나님께서 나에게 은혜를 주셨다고 믿어야 됩니다. 그때 내가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억울한 일을 당할 때 사람에게 원망하면 나는 그것으로 망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다' 하고 그것을 족하게 받아들이면 다시 형통한 은혜를 받게 됩니다.
은혜를 받으면 인생을 새롭게 창조하는 존재가 됩니다. "우리는 성령의 능력으로 복음을 전하며 세상을 살리는 별세의 사도가 된다" 은혜를 받으면 세상을 살려놓는 존재가 됩니다.

은혜받은 자의 능력있는 삶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10절)
사도 바울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 수고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는 과정에서 겪은 고통이었습니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 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고후 11:24-27)

사도 바울은 은혜를 받았기에 그 어떤 고통을 당하더라도 복음으로 세상을 살려놓는 사역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자기 인생을 새롭게 해석하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이 이방 땅 길리기아 다소에서 태어난 것은 이방인의 사도가 되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뜻임을 알았습니다. 가말리엘 문하에서 수학한 것도 복음을 전하기 위한 하나님의 뜻임을 알았습니다.

고생할 때 고생으로 끝나지 말고 그것을 은혜로 재해석하십시오. 인생의 모든 문제가 다 극복됩니다. 가난하게 살았습니까 가난을 재해석하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가난을 배우라고 주셨구나' 이렇게 받으십시오. 남편에게 학대를 받고 있습니까 "나는 어찌하여 부족한 남편을 만나 이 고생을 하는고"라고 탄식하지 말고 신랑되신 예수를 사모하도록 그랬다고 재해석 하십시오. 부모님으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랐습니까 하나님 아버지에게 더 큰 사랑을 받으라고 그랬다고 재해석 하십시오.

저는 요즘 제가 눈물이 많은 이유를 새롭게 깨달았습니다. 어렸을 때 너무 가난한 집에 태어나 물만 마시고 살았기 때문에 이 물이 눈물로 바뀌어 나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어렸을 때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고생했다면 고생한 것을 원망하지 말고 예수의 가난을 배우도록 하셨다고 재해석 하십시오. 그리고 부모님이 나 때문에 가난하게 사신 것에 대하여 내가 불효했다는 마음을 가지십시오. 그때 아버지는 하나님의 대리자가 됩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가 받은 은혜를 예수 그리스도가 죄인 된 자기를 구원해 준 것으로 받았습니다.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딤전 1:13-16)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인하여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값없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길은 다른 사람이 구원받도록 전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사람들로부터 받은 은혜는 갚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는 갚을 수가 없습니다. 십자가에 피흘려 나를 구원하신 그 은혜를 뭘로 갚겠습니까 그런데 갚을 수 있는 길이 딱 하나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은혜를 알았기에 목숨을 바치는 것으로 빚진 자의 생을 마쳤습니다. 이 은혜가 여러분 모두에게 임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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