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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변화된 삶을 사십시오 (약 1: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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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박춘수 목사

요즘 오래된 건물들을 리모델링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제가 살고 있는 아파트도 이미 10년 전에 지어진 것으로 알고 있는데 요즘 돈을 들여서 리모델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우리 교회당도 얼마전에 리모델링을 했습니다. 여러분이 보듯이 이전모습은 간데없고 전혀 새로운 모습입니다. 같은 건물인데 새롭게 되어지는 리모델링을 보면 엄청난 변화를 느낍니다.

건물은 돈을 들이면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이 무엇일까요?
돈을 들이면 사람이 변화될까요? 법을 통해서 변화될까요?새로운 제도를 통해서 사람이 변화될까요? 물론 교육을 통해서 사람이 약간은 변화됩니다. 법을 통해서 사람이 달라지는 것도 있습니다. 제도를 통해서 우리의 삶이 좀 나아지는 면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삶의 깊은 곳에 감추인 죄의 문제를 해결하여 주지는 못합니다. 우리들의 삶의 죄,생활의 모든 죄성을 극복하여 주지는 못합니다. 법이 발달할수록 제도가 발달할수록 교육이 발달할수록 그래서 오히려 범죄는 더 지능화됩니다. 오히려 사회는 더 삭막하게 변화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복음의 능력은 우리를 변화시킨다는 것입니다.
복음은 우리에게 생명의 구원을 가져다 주는 변화를 줍니다.

여러분 구원이란 무엇입니까? 내가 죄로부터 건짐을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정 구원받은 하나님의 사람들은 죄된 삶을 버리고 변화된 삶을 살아갑니다.
지금까지는 마귀가 좋아하던 삶을 살고 육체가 좋아하던 삶을 살았지만 이제부터는 하나님이 좋아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건물로 따지만 같은 건물이지만 다른 건물로 다시 지어진 것같이 우리도 바로 그런 존재들입니다. 새로운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이 되었습니다. 새로운 하나님 아버지를 아버지로 모시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삶의 목적과 꿈이 생겼습니다. 건물로 따지면 우리는 같은 사람인데 복음으로 말미암아 전혀 새로운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났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함께 모여 예배드리는 저와 여러분들도 보면 예수님믿기 이전과 비교하여 우리의 신분 우리의 지위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건물로 따지만 우리는 새로운 삶으로 리모델링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새롭게 거듭난 주님의 사람으로서 이제 우리에게 오는 거룩한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가 이땅에서 살동안에 완전하지 못한 까닭에 자꾸 과거의 습관 변화되지 못한 문제들이 나타납니다.

야고보기자가 생활하던 초대교회도 완전히 변화되지 못한 미성숙한 삶의 문제가 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런 문제와 어려움을 쉬쉬하면서 속으로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직면하면서 바로 실천하기를 강조하고 있습니다.주님께서 우리에게 가장 원하는 변화의 모습은 무엇일까요?

1. 말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19-20절에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거니와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하고 말하기는 더디하며 성내기도 더디하라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하니라”고 합니다.
여기 말과 관련하여 듣기는 속히하고 말하기는 더디하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잘 듣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이 주신 귀로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습니다. 왜냐하면 믿음은 들음에서 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귀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에 주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라고 하시면서 “듣는자가 복있는 사람이다”말씀하셨습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에는 최대한 귀를 열고 집중하여 말씀을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이시간도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고 있습니까? 여러분 듣는 다는 것이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가 들을때 단지 귀로만 듣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생각으로 듣습니다. 우리의 마음으로 듣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마음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가? 이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이시간 하나님이 내게 말씀하시는 것을 잘들으려면 내 생각을 접고 들으려고 하는 마음을 모아야 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이사야55:8-9)고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지혜로운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아멘하면서 듣습니다. 아멘이란 “그렇습니다. 옳습니다. 동의합니다”의미입니다.

시대마다 부흥이 일어났던 때의 한결같은 증거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었습니다. 성경에서 이스라엘에 큰 부흥이 일어난때가 있었는데 바벨론 포로에서 이스라엘이 조국으로 돌아오고 난 뒤였습니다. 그때 느헤미야라고 하는 선지자가 예루살렘성을 52만에 재건합니다. 그리고 난 뒤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수문 앞 광장에 모입니다. 그때 학사 에스라가 그 광장에서 특별히 지은 나무 강단에 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습니다. 학사 에스라가 이스라엘 백성 목전에서 성경책을 펴서 읽습니다.그때 모든 백성들이 일어섭니다. 그리고 모든 백성들이 손을 들고 아멘 아멘 응답합니다. 그리고 온 백성들이 그 말씀을 듣고 웁니다. 말씀을 듣게 되면 마음에 찔림이 오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에서 초대 예루살렘 교회가 부흥되어질때 보면 말씀을 듣는 가운데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베드로가 기탄없이 말씀을 증거할 때 모여있던 사람들이 그 말씀을 들었습니다. 듣는 가운데 믿음의 사람들이 남자의 수만 5천명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말씀대로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아멘으로 듣는 자마다 말씀의 능력들이 나에게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의 역사들이 나타나게 되는 줄 믿습니다.

다음에 하나님의 사람은 말을 더디하며 성내기도 더디하라고 합니다.
왜 말을 더디하라고 하는 것입니까? 우리 인간의 죄성은 말을 빨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보통 말을 빨리 하는 사람들을 보면 성질이 급한 사람입니다. 성질이 급한 사람은 보통 분노도 빨리 합니다. 이렇게 해서 말을 빨리하면 실수를 많이 하기 때문입니다. 말을 빨리 한다는 것은 말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키 어려우니 그 입술을 제어하는 사람이 지혜가 있습니다. 잠언10:19에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키 어려우니 그 입술을 제어하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고 합니다. 잠언29:20 “네가 언어에 조급한 사람을 보느냐 그보다 미련한 자에게 오히려 바랄 것이 있느니라”고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보통 언제 말이 빨라지고 말이 많아집니까? 내 속에 분이 찰 때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도 말하기도 더디하며 성내기도 더디하라고 합니다. 말과 나의 분노와 관련이 있음을 전제합니다. 아마 우리들 중에는 급한 분노에 의해서 실수할 말들 해가 될 말들을 막 쏱아놓고 난 뒤에 후회한 경험들이 있을 것입니다. 특별히 교회생활에서 우리가 말의 실수와 상처로 인해서 공동체가 하나되지 못하고 지체들끼리 연합하지 못하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특히 분노를 품고 감정적으로 말을 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한 모습입니다.그것이 아무리 의로운 말이라고 해도 벌서 독기를 품고 있으면 그 말은 의를 발휘하지 못합니다.

혹시 지금 내삶에 있어서 분노하고 있습니까? 우리의 삶에서 이 분노를 잘 다스려야 합니다. 분노하는 사람의 경우에 그 원인이 다양합니다. 어떤 분들은 태어날 때 기질적으로 예민하여 분노를 잘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삶의 과정이 너무 많은 상처로 인해서 항상 신경질적이고 다른 사람에게 대해서 수용하지 못하고 분노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자기의가 강한 완전주의 성격 때문에 쉽게 분노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분노하는 삶은 지혜롭지 못한 모습입니다. 20절에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니라”고 합니다.성경은 우리가 아무리 의로 인한 분일지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룰 수 없다라고 합니다.

우리는 그 실례를 구약에 모세를 통해서 볼 수 잇습니다. 광야를 여행하던 중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물이 없다고 모세를 원망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모세와 다투게 됩니다. 민수기 20장에 보면 지면에서 가장 온유하다고 하는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과 다툽니다. ‘어찌하여 우리를 광야로 인도하여 죽게 하느냐’ ‘어찌하여 이 악한 곳으로 우리를 인도하느냐’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를 공격합니다. ‘우리가 차라리 형제들이 죽을때에 함께 죽으면 좋을 뻔 하였다’라고 합니다. 모세가 얼마나 상처가 되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만 목이 마르고 힘이 든 것이 아닙니다. 모세는 더 힘이 들고 더 마음 고생이 많습니다. 이런 모세를 향해서 하나님께서 응답하십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지시합니다. “지팡이를 가지고 네 형 아론과 함께 회중을 모으라. 그리고 너는 회중의 목전에서 반석에게 명하여 물을 내라 하라.네가 그 반석에서 물을 내게 하여 회중과 그들의 짐승에게 마시울 것이다‘라고 합니다.

그래서 모세는 이 명령대로 합니다.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을 반석 앞에 모으고 말을 합니다. “패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외칩니다. 이 말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말이 아닙니다. 그리고 모세는 손을 들어 그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칩니다. 하나님은 반석에게 명령하하라고 햇는데 모세는 지팡이를 갖고 반석을 향해 두 번 치면서 명령한 것입니다. 결국 모세는 이 불순종으로 인해서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못하였다‘책망을 듣습니다. 그리고 그 벌로 가나안땅을 밟지 못하는 벌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어린아이같이 감정에 포로가 되지 않고 그 감정을 믿음으로 다스릴수 있는 사람입니다. 성숙한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온유한 사람입니다. 자기의 마음과 입술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스리는 사람입니다. 우리 모두 변화된 말의 실천자가 다되시기를 바랍니다.

2. 말씀을 순종하는 변화가 필요합니다.

22절 너희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23절 누구든지 도를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으니
물론 우리가 말씀을 듣는 것도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듣기만 하고 행하지 않는 것은 자기를 속이는 일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말씀을 들었다면 그 말씀대로 실천할 수 있어야 합니다. 행하는 믿음이 진짜 믿음이요 지혜자의 모습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7장에서 진짜 믿음의 사람들은 행하는 믿음 순종하는 자의 믿음이라고 합니다. 종종 사람들은 자기들의 믿음의 능력을 잘못된 기준에서 찾기도 합니다.주님께서는 이것을 지적하십니다. “그날에 많은 사람들이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면서 주님께서 누가 진짜 지혜자인가?진짜 믿음의 사람인가?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바로 말씀을 듣고 행하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누가 어리석은 사람입니까?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오른 본문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거울에 비유합니다.
거울이란 우리 자신을 비추어주는 도구입니다.오늘 교회당오실때에 거울을 보았을 것입니다. 거울을 보고 우리는 머리도 고칩니다. 옷차림도 고칩니다. 거울을 보고 우리의 몸가짐을 바르게 합니다. 그런데 만약에 거울을 보았는데 자기를 고치지 않는다라고 해봅시다. 그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일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마음을 비쳐주고 우리의 인격을 보여주는 신령한 거울입니다.
가끔 설교말씀을 듣고 어떤 분들은 ‘우리 목사님은 우리 집에 왔다 가신 것같아,어쩜 나에게 꼭 말씀하시는 것같아’라고 하면서 말씀을 받는 분들이 있습니다. 상황과 환경이 다르고 나이가 많든 적든 간에 이 말씀은 모든 경우에 다 맞는 마치 요술거울같이 우리들을 알 고 말씀하십니다. 중요한 것은 그 말씀을 나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받고 내 삶에 적용하는 것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종종 자기를 볼 줄 모르는 분들이 있습니다.하나님께서 지금 나에게 말씀하시는데 그 말씀을 남에게 아무개 권사 아무개 집사에게 적용하려고 하는 분들입니다. 우리가 명심할 것은 남을 고치기 이전에 내가 먼저 고치고 내가 먼저 변화되어야 합니다.

성경에 보면 우리에게 순종을 명령할 때 ‘하라’는 명령이 있고 ‘하지 말라’는 명령이 있습니다. 지혜로운 믿음의 사람은 하라는 것은 하고 하지 말라는 것은 하지 않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대표적인 말씀의 계명 중에 십계명을 보면 하라와 하지 말라의 말씀인 것을 봅니다.
왜 하나님은 우리에게 순종하라고 합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순종하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입니다. 신명기10:13 “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것이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율법을 주신 것 말씀을 주신 것은 자유하고 행복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25절에서도 “자유하게 하는 율법”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 율법의 형식을 보면 ‘하지마라’‘하라’는 그 형식들이 우리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같습니다. 그러나 율법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우리에게 자유를 주기 위함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유의 주이십니다. 그리고 자기 백성들에게 자유를 주기 원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말씀을주시고 자유하는 법인 순종의 길을 알려주셨습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이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한 인생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고기가 물을 떠나서 살 수 없듯이 나무가 흙을 떠나서 살 수 없듯이 우리 인생은 하나님께 순종할 때 살고 자유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우리의 삶에서 느낄 수 있는 일들입니다.
우리가 매일 차를 운행합니다. 차를 운행하는데 있어서 반드시 교통신호를 준행해야 합니다. 교통신호에는 하라는 신호와 하지말라는 신호가 있습니다. 파란불이 켜지면 가야합니다. 빨간 불이 켜지면 가지 말아야 합니다. 만일 이 신호를 무시하고 파란불에 내 필요에 의해서 차를 몰고 간다고 하여 보십시오.그러면 차도 사람도 모두가 불행하여 집니다. 누가 지혜로운 사람입니까? 자기 마음대로 신호를 어기고 마구 가는 사람이 아닙니다. 좀 바쁘고 힘들어도 교통신호대로 행하는 사람입니다. 이것은 교통신호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법은 우리를 힘들게 하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보호하고 자유하게 하기 위해서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법인 말씀도 그렇습니다.
만약에 우리가 교통신호를 어기면 어떻게 됩니까? 벌금이 나오고 더 위험하게 어길 경우에는 면허취소가 주어집니다. 나 한사람의 불순종으로 인해서 다른 사람의 자유와 행복에 해가 되기 때문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생각할 때 운전을 하면서 생각하는 것은 음주운전을 하는 사람들은 정말 엄격하게 치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기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 가족모두의 행복을 빼앗아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자가 그 복을 받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순종할때마다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합니다.순종할때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알게 될 것입니다. 순종할때마다 보는 것같은 주님과의 만남을 체험할 것입니다.
비록 나의 생각은 아니어도 주님의 말씀 앞에 아멘하면서 순종하는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비록 고통이있지만 순종하기를 바랍니다. 비록 지금 여기의 자리에서는 아무 결과가 없지만 순종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말씀대로 순종하는 자에게 하나님이 은혜를 주십니다. 하나님이 나타나십니다. 하나님이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주시는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3. 참된 경건의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27절에 소개합니다.“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고 합니다.
여기 참된 경건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소개합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인정하시는 진정한 믿음의 사람의 모습은 이런 경건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경건의 핵심은 2가지입니다. 하나는 약자를 돌보는 신앙입니다.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는 것입니다. 다음은 자기를 세속으로부터 지키는 것입니다.
여기 우리가 생각하는 경건의 기준과 하나님이 생각하는 경건의 기준이 다릅니다. 요즘은 우리가 경건이란 말대신 영성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합니다. 진정한 영성 경건은 얼마나 행하는가? 달려 있습니다.무엇보다도 얼마나 “주고 있느냐”와 연관성이 있습니다. 여기 고아,과부와 같이 가난하고 어려운 자들에게 얼마나 베푸는가 하는 것이 경건이요 영성이라고 합니다. 우리 주님께서 이땅에 오셧을때 우선적인 관심은 바로 가난하고 힘든 사람들이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주는 삶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 함을 본보여주신 것입니다.

초대예루살렘교회를 보면 부흥의 새로운 변화를 봅니다.
사도행전에 소개되는 예루살렘교회를 보면 엄청난 부흥의 모습이 소개됩니다.
그들 속에는 변화의 모습이 나타나는데 우선적인 모습이 물질의 변화에서 봅니다. 자기의 재산들을 자기 것으로 여기지 않고 우리의 것으로 공유할 줄 아는 모습이었습니다. 사도행전 2장 5절에 보면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고”라고 합니다. 그 력과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 결과로 초대교회가 날마다 구원받는 사람이 더해졌다고 합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초대교회의 부흥은 단지 성령님께서 역사하심만이 아니었습니다.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감동되어진 사람들의 삶의 결단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얼마가지 않아서 변질됩니다. 사도행전의 초대 예루살렘교회가 얼마가지 않아서 구제의 문제로 분쟁이 일어납니다. 변화의 삶에서 뒤로 물러가게 했던 요인이 무엇입까? 바로 죄의 영향력으로 인한 것입니다. 우리의 본성은 “더”많은 것을 갖으려고 하는 욕심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나의 삶에 주는 삶이 있습니까? 진정한 영성,진정한 경건은 바로 주는 삶의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돌아올 것을 기대하지 못하는 어떤 대상을 향해 조건없이 주어야 합니다. 조건없이 나의 호주머니를 열고 하나님이 주신 물질을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이미 그런 삶을 우리 성도들 중에 많은 분들이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특별한 어떤 사람들만이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다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교회는 참된 경건의 교회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우리모두가 주는 영성 나눔의 경건으로 변화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개인경건이 세속에 물들지 않는 정결함의 변화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살아야 합니다. 여기 세상이란 하나님을 보르고 주님을 모르는 사람들의 삶의 세계를 의미합니다.
먼저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살고잇는 세상은 분명히 부패한 세상입니다. 어두운 세상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부패하고 어두운 세상에 우리를 살라고 하실까요? 주님은 우리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라고 하십니다. 부패한 세상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소금같은 역할을 해야 한다고 하십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라고 하십니다. 어두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들은 빛을 비추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하십니다. 카톨릭신학자 중에 카톨릭의 개혁을 외치는 유명한 신학자 중에 한스 쿵이라고 하는 분이 있습니다. 그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사역자들 사제들 목사들과 같은 사람들이 교회를 향해서 파송된 성직자라고 한다면 성도들은 세상을 향해 파송된 성직자들이다”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주님은 제자들을 그리고 오늘 우리들을 향해 “너희는 세상으로 가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세상에 있는 것은 주님의 뜻이요 소명인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빛으로 소금으로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우리가 가는 곳마다 부패한 곳이 정결하게 되고 우리가 가는 곳마다 어두운 곳이 밝아지는 역사가 있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소금과 빛이 맛을 내고 빛을 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희생되어야 합니다. 초가 자기를 녹여야 주위를 밝힙니다 .소금도 스스로 녹아야 음식의 맛을 낼 수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빛을 발하기 원하고 맛을 내기 원한다면 좀 손해보고 희생해야 합니다. 십자가의 주님이 우리에게 감동을 주시는 것은 바로 생명을 내주시면서 희생하셧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지는 것이 이기는 것입니다. 누가 질 수 있습니까? 정말 강한 사람만이 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정결하게 거룩하게 무장되어서 세상에서 멋있게 희생할 수 있는 삶으로 날마다 세워져가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이 세상에서 변화된 삶으로 이제는 살아가야 합니다.복음의 능력으로 죄에서 구원받은 우리들은 이제 더 이상 과거의 악습관에 매여서 살면 안됩니다. 이제는 새로운 말로 살아야 합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이제는 세상에서 영향력을 줄 수 있는 경건의 사람으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 모두하나님의 나라의 귀한 변화의 도구로서 날마다 승리하면서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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