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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관계 (사 1: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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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장경동 목사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배반했으며, 온 땅이 저주를 받았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돌아오라고 말씀하십니다.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가 범죄 할 때나 범죄 하지 않을 때나 동일하십니다. 즉, 잘못해도 사랑하니 우리는 더욱 더 하나님을 경외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부모 자식간의 사랑과 비슷합니다.  하나님이 이런 시각으로 우리를 대하시니, 우리는 하나님 보시기에 두고 보기에도 아까운 사람입니다.

이사야는 귀족출신의 선지자 입니다. 그는 4명의 임금을 걸쳐 오랫동안 예언을 합니다. 그의 예언의 핵심은 다음과 같습니다.
1)유다가 짐승도 안하는 배신을 했다는 것입니다.
2)그 결과로 성한 곳이 없이 얻어 터졌다는 것입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안 아픈 곳이 없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몸이 무겁습니까? 가볍습니까? 몸이 가벼워야 컨디션이 좋은 것입니다. 영혼도 범죄 하면 무거워지고, 회개하면 가벼워집니다.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독수리 같이 올라갑니다. 똑같은 새인데도 기러기와 독수리는 다릅니다. 독수리는 바람을 타기에 날기가 수월합니다.
3)사람으로 인해 땅까지 황폐해졌다는 것입니다. 아담이 범죄 했을 때와 유사합니다. 몸이 안 좋으면 영혼이 아픈 것입니다. 밥 먹는 것을 보면 건강을 금방 압니다. 음식 먹을 때 투정하는 사람은 아픈 사람입니다. 말하기는 쉬워도 음식 만들기는 어렵습니다. 설교도 평가하기보다 은혜 받는 사람이 건강한 사람입니다.
4)이쯤 되면 하나님은 그들을 포기 할만 하신데, 그렇지 않고 끝까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언제까지? 끝까지. 그러나 “살아 있을 때”가 그 한계입니다.

성경의 응답 없는 기도는 다음과 같습니다.
1)의심하는 기도입니다. 비가 안 오는 마을에서 비가 오도록 기도회로 모였습니다. 그때, 초등학생 하나가 우산 하나를 들고 나왔습니다. 이것이 진짜 믿음입니다. 좋은 대학 나오면 잘살지만, 좋은 유치원 나와야 바르게 살수 있습니다. 요즘은 잘사는 과목만 인기가 있고, 바르게 사는 과목은 인기가 없습니다. 즉, 어려운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기본이 중요합니다. 가장 기본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인 것입니다.
2)중언부언하는 기도입니다.
3)죄인의 기도를 듣지 않습니다.
4)하나님과의 관계가 잘못된 사람의 기도입니다.

관계는 기쁘고 즐거워야 합니다. 하나님은 기도하지 않아도 어떤 것들은 그냥 주십니다. 그런데, 오늘은 기도해도 안주시겠다고 하십니다. 관계가 잘되면 기도 안 해도 그냥주시고, 관계가 잘못되면 구해도 안 주십니다. 그럼 바른 관계는 어떤 것입니까?
1)관계는 주님께, 주님 안에 붙어 있는 것입니다. 아벨이 아벨된 것은 제사의 성공 때문입니다. 아브라함도 이삭도 제사, 예배에 성공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엄청난 제사를 드렸는데 하나님은 그것을 열납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멸망했습니다. 오늘날도 숱한 예배 속에 멸망해가는 것입니다. 관계를 생각지 않은 기도와



예배는 하나님이 응답하지 않으십니다.
2)관계는 회개가 바로 되는 것입니다. 회개 없는 관계는 바르지 않습니다. 우리 손의 피가 가득할 때 하나님은 들으시지 않습니다. 회개는 기도보다 먼저 가야 합니다. 깨끗해진 상태에서 기도해야합니다. 잘못된 길에서 돌아 서야합니다. 탕자처럼 그 자리를 박차고 아버지께로 돌아와야 합니다. “예수만 안 믿지 회개했다”고 하는 사람은 회개한 것이 아니라 후회한 것입니다. “회”만 하지 말고 “개”까지 해야 합니다. “회”만 하는 사람 중에 자살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후회했으면 돌아와야 합니다.
3)관계는 삶이 바로 되야 합니다. 기독교가 중요한 것은 “기독교는 삶을 요구 한다”는 것입니다. 목사와 의사의 차이는, 목사는 영혼을, 의사는 몸을 구원합니다.  의사는 술 먹고 담배 펴도 수술만 잘하고 사람 잘 고치면, 명의입니다. 목사는 설교를 잘해도 삶이 잘못되면 안됩니다. 그래서 좋은 것입니다. 크리스챤은 세상에서 잘살아야 합니다. 법사는 점만 잘치면 됩니다. 그의 삶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삶이 없는 종교는 미신입니다. 기독교는 기도만 강조하는 종교가 아니라 변화된 삶을 요구하는 종교입니다.
“네가 악업을 버려라” 악한 직업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술집이나 러브 호텔하면 안됩니다. 전매청 신우회를 어떻게 축복할까 고민 했던 적이 있습니다.
“악행을 그쳐라” 도둑놈이 형통한 길을 기도할 수 있습니까? 어떻게 악행의 기도가 성립될 수 있습니까?
“선행을 배워라”
“공의를 구하라”
“학대받는 자를 도우라”
“고아를 위해 신원해라” 가슴에 맺힌 원한을 풀어주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 이십니다.
“과부를 위해 변호하라” 하나님은 과부의 재판장입니다. 세상은 힘없는 사람을 무시하지만 교회는 그런 사람을 잘 돌봅니다. 이것이 교회의 사명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없어도 있는 척하는 것은  무시당하지 않으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스스로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높아져야 합니다. 자격지심을 극복하기 위해서도 우리는 잘 되야 됩니다.
  삶이 있는 기독교가 좋은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기도를 요구하십니다. 그런데도 응답이 안 될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제발 와라”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애절한 사랑입니다. 어머니의 사랑과 유사합니다. “변론하자” 뭐가 잘못 되었는지 따져보자는 것입니다. “주홍 같은 죄라도  진홍 같은 죄라도,  양털같이 흰눈 같게 하겠다” 하나님은 겹쳐진 죄를 반드시 용서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관계가 바로 되면 기도 응답이 그냥 옵니다. 관계가 회복되어 하나님과 서로 미소 짓는  관계가 되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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