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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장 좋은 교회 (계 3: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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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백장흠 목사

지구상에 많은 교회가 있습니다.  그러나 완전한 교회는 없습니다.  왜 자신이 완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크로스비 지 채펄에게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나에게 한 번이라도 완전한 교회를 보여주십시오.  그러면 내가 그 교회에 가겠습니다.  물론 예수도 철저하게 믿겠습니다.  그때 채펄씨는 대답하기를 그런 교회를 소개할 수 없어서 미안하군요.  만약 그러한 교회가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들어가는 순간에 당장 완전성이 깨져 버릴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이 완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라고 하였답니다.  우리는 완전한 교회는 없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좋은 교회는 있습니다.  예를 들면 초대 예루살렘교회나 본문에 나오는 빌라델피아교회였습니다.  본문의 말씀은 소 아세아 일곱 교회에 편지하시는 중에 빌라델피아교회는 주님이 좋은 교회라고 하시기 때문입니다.  오늘에도 좋은 교회가 있습니다.  어떤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까? 건물입니까? 시설입니까? 세상적으로 큰 인물들이 있는 교회입니까? 아닙니다.

1.  칭찬 듣는 교회입니다.

예수께서 소 아세아 일곱 교회에 편지하시는 내용 중에 칭찬과 책망을 같이 하는 교회가 있었습니다.(에베소 교회, 버가모 교회, 두아디라) 그리고 책망만 있는 사데 교회와 라오디게아교회입니다.  그런데 칭찬과 약속만 있는 교회가 빌라델피아 교회가 있습니다.
정상적인 교회는 칭찬 들었습니다.  원형 교회인 사도행전에 나오는 예루살렘교회가 그러하였습니다.  사도행전 2:47절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고 하였습니다.  칭찬 듣는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다.

먼저, 좋은 교회라는 이미지를 가져야 합니다.  정확한 통계라고 할지 모르나 지난 5년 동안에 신자 감소율이 11.6%라고 합니다.  교회에 대한 이미지가 좋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오늘 교회 그러면 무슨 생각을 합니까? 어느 가정에서 형제가 싸웁니다.  그것을 지켜본 아빠가 얘 싸우려면 교회나 가라.  거기 가서 싸워라.  싸우는 교회 이지미가 화목하고 사랑하는 이미지로 바뀌어야 합니다.  교회는 선한 일을 많이 하는 곳이야.  교회 가면 친절하고 사랑이 많아.  이런 이미지가 되어야 합니다.

인도의 간디는 독실한 예수 숭배자였습니다.  그러면서도 기독교인은 아니었답니다.  그가 교인이 아니라는 것을 세상 사람들은 이상하게 생각하였습니다.  그런 이유가 있었습니다.  간디의 친구 중에 앤드류스 라는 영국 선교사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이 선교사가 간디에게 찾아와 교회에 가자고 하여 교회에 나갔답니다.  주일예배를 드리려고 앤드류스와 함께 교회당에 들어가려고 하는데 문 앞에 서있던 안내위원이 유색인종이라고 밖으로 쫓아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후로 간디는 교회에 나가지 않았습니다.  좋은 교회는 좋은 이미지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미지 관리를 잘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예루살렘교회에 대한 말씀을 보면 사도행전 2:42절에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였다고 했습니다.  서로라는 말과 교제라는 말을 관심 있게 보아야 합니다.  교제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만나고 즐기는 것만이 아니라 마음을 열고 서로가 관심을 가져 주는 것입니다.

부부도 금실 좋은 부부를 뭐라고 합니까? 찰떡궁합이라고 합니다.  사랑도 같은 사랑이 아닙니다.  말로만 사랑하는 게 있습니다.  아니 만나고 대화하면서 괴로운 사랑이 있습니다.  고슴도치 사랑입니다.  고슴도치라는 게 있습니다.  쥐같이 생겼는데 온몸에 털이 있습니다.  그 털이 가시같이 생겼습니다.  그들이 이런 생각을 하였답니다.  날씨가 추운 날입니다.  추위를 타는 고슴도치가 말하기를  사람들이 말하기를 혼자 있는 것보다는 둘이 붙어 있으면 따뜻하다고 그러더라.  그래서 두 고슴도치가 꼭 껴안았습니다.  서로가 찔립니다.  덜 춥기는 한데 어떻게나 아픈지 참을 수 없더랍니다.  그래서 차라리 추운 게 낫지 더는 못 참겠다.  그리고는 떨어졌답니다.  상대방을 비난하고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면서 사랑한다는 것은 바로 고슴도치 사랑입니다.  앞에서는 사랑하는 것 같이 하고 뒤에서는 비판한다면 이는 교제가 아닙니다.  성도의 교제는 가족과 같았다는 것입니다.  가족이 무엇입니까? 가족은 떨어져 있을 수 없는 관계입니다.  떨어져 있으면 불편합니다.  비둘기 가족들을 보세요.  얼마나 불편합니까? 신앙공동체에서 느끼는 마음은 가족 같아야 합니다.

가족은 서로가 책임지는 관계입니다.  가족 중에 한 사람이 아픕니다. 다른 가족은 그를 위하여 치료하여 주려고 애씁니다.  마음에 상처를 입고 들어오면 위로하여 줍니다.  상대방을 위해 주어야 합니다.  나만 위해 달라고 하면 교제는 끊어집니다.  교제를 위하여 할 일이 있습니다.  항상 예의를 지켜야 합니다.  사랑은 무례히 행치 아니한다고 하였습니다.  약점을 들어내거나 책망하면 교제가 될 수 없습니다.  교제에는 진실하여야 합니다.  상대방을 속일 생각은 하지 않아야 합니다.  서로 짐을 져주어야 합니다.  교제가 있는 교회를 보면서 사람들은 부러워하면서 칭송하였습니다.
다음으로 칭송듣는 교회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초대교회는 기적이 일어나는 교회였습니다.  그 기적은 순수한 복음을 전하겠다는 마음으로 기도하다가 일어나는 결과였습니다.  병든 자들이 치유함을 받았습니다.  심지어 죽은 자들까지 살아났습니다.  귀신이 쫓겨갑니다.  기적은 지금도 일어납니다.  기도와 믿음이 있는 곳에 얼마든지 기적은 있습니다.  미국의 신자들 80%가 기적을 믿는다고 합니다.  한 번은 유명한 일본의 우찌무라 선생에게 어떤 대학생이 찾아와 심각하게 질문을 하더랍니다.  선생님 저는 성경에 나오는 모든 기적들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께서 물위로 걸었다는 말이나 부활하셨다는 말 등은 도저히 제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런 황당한 이야기를 빼놓고 성경을 공부할 수는 없을까요? 그때 우찌무라는 대답하기를 성경에서 사람의 이성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기적들을 다 제하고 성경을 공부한다면 성경에 꼭 두 가지만 남는다네.  성경의 앞표지와 뒤표지뿐이라네.  그러합니다.  성경의 전체가 기적의 이야기입니다. 

마가복음 16:17절에 “믿는 자에게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고 병든 자에게 손을 얹은 즉 나으리라” 하였습니다.  이 말씀대로 기적이 일어날 때 다른 이들이 칭찬하게 됩니다.  언제 기적이 일어납니까? 기도할 때 일어납니다.  자기가 훌륭한 사람이다.  경험이 많다.  예수를 믿은 지 오래 되었다.  나는 무슨 직분자이다.  그것과 기적은 관계가 별로 없습니다.  얼마나 기도하고 있느냐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고 있느냐 가 중요합니다.  약속을 붙잡고 기도하세요.  응답하시리라 구하라 주시리라 약속입니다.  회개하면서 기도해야 합니다.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기도하라” 고 하였습니다.(약 5:16)  우리는 기도하면서 기적을 일으키는 칭송 듣는 교회가 되어지기를 바랍니다.

좋은 교회는 칭송 듣는 교회입니다.  마음이 하나였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하나일 때 일치가 가능한 것입니다.  동상이몽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같이 있다고 하나라고 볼 수 없습니다.  마음이 하나이어야 합니다.  어떻게 마음이 하나일 수 있을까요? 목적이 같아야 합니다.  방향이 같아야 합니다.  비전이 같아야 합니다.  사랑함이 같아야 합니다.
하나되지 못하고 분열하고 불화 하는 교회는 칭찬 듣지 못합니다.  그리스도는 몸이요, 우리는 지체입니다.  지체간에는 서로 돕는 것입니다. 손이 항의합니다.  나는 항상 음식을 만져보기만 하고 맛도 보지 못한다.  그때 발이 손 너는 만져나 보지 나는 음식 있는 데로 가주는데 음식을 만져 보지도 못한다.  나는 음식 있는 곳으로 가지 안을 거다.  손은 나는 음식을 집어주지 않을 거다.  입만 좋으라고 그런 짓 안 한다. 그랬습니다.  입은 쉽니다.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니까 편합니다.  얼마 있으니까 손이 떨립니다.  발이 힘이 없어 넘어지려고 합니다.  입이 일하는 것이 입만 위한 게 아니라 발도 손도 위함인 것을 몰랐습니다. 서로를 위한 것입니다.  한국교회 이제는 싸우지 맙시다.  우리 교회는 마음을 하나로 묶어야 합니다.  그때 칭송을 듣는 좋은 교회가 됩니다.

2.  좋은 교회는 적은 능력으로 말씀을 지키는 교회입니다.

식사시간에 가족이 함께 식사를 합니다.  그런데 아버지 집사님이 바쁘다고 서둘다가 식사기도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딸 유치부에 다니는데 아빠 기도하고 밥 먹어 그럽니다.  이 가정에는 어린 딸이 말씀을 지킨 것입니다.
오늘날 말씀이 지켜지지 아니합니다.  자기들 마음대로입니다.  말씀중심, 예수 중심, 교회중심으로 가야 신앙이 건전하고 교회가 건강한 교회가 되어집니다.  왜 교회가 잘못되어 갑니까? 말씀을 지키지 않아서 그럽니다.  지금 말씀을 지키는 교회가 얼마나 됩니까? 말씀을 지키려고 한다면 먼저  * 말씀의 소중함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 돈은 소중한 거라고 알고 있습니다.  돈이 소중하다고 알고 있는 사람은 낭비하지 않습니다.  자기 자신이 소중한 존재라는 것은 압니다.  그런 사람은 자기 자신에 대하여 존경심을 갖습니다.  나라가 소중하다고 알고 있는 사람은 애국자가 됩니다.  사람이 복되게 살려고 하면 나는 소중한 것을 너무 많이 갖고 있다고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람에게 중요한 것 중에 젊음이라는 것은 참으로 소중합니다.  우리에게는 소중한 가정이 있습니다.  나는 귀한 것을  많이 갖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성도들이 교회의 소중함을 알고 있다면 교회를 사랑하게 됩니다.  영혼의 소중함을 알아야 전도하게 됩니다.  내가 받은 사명이 소중함을 알아야 충성을 하지요.  직분의 소중함을 알고 있는 바울은  나를 충성 되이 보사 직분을 주셨다고 평생 감사하면서 사역을 수행하였습니다.

말씀을 소중하게 여길 때에 지키게 됩니다.  예전에 나라 위하여 임금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는 신하가 있습니다.  그를 모함하는 간신 배들에 의하여 죄를 뒤집어쓰고 귀향 살이를 하게 되었습니다.  심히 억울합니다.  충신도 억울하다고 느끼니까 측근들과 연락을 하면서 복수의 칼을 갑니다.  이것을 안 간신 배들은 다시 왕에게 아룁니다.  귀향간 신하가 나라의 반역을 계획하고 있사옵니다.  속히 처리하심이 옳은 줄로 아뢰오.  귀가 엷은 왕은 그 말을 그대로 믿고 사약을 내립니다.  사약을 받은 신하는 임금이 사는 궁궐을 향해 절을 하고 사약을 받습니다.  무슨 역사에 나오는 한 구절같이 긴 이야기를 합니다.  요즈음 같은 시절에 사약을 내린다고 하면 욕을 버럭 버럭 하면서 약사발을 집어 던질 것입니다.  왜 사약을 받으면서 절합니까? 임금님을 사랑하였다는 것입니다.  임금이 주신 것은 사약도 귀하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소중하게 여기는 성도 말씀을 지키는 교회가 좋은 교회였습니다.

* 말씀을 그대로 믿는 것이 지키는 것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말씀을 그대로 믿고 있다고 보십니까? 어떤 목사님이 택시를 탔더랍니다.  운전기사의 핸들에 이상한 카드가 달려서 너풀거리고 있었습니다. 운전수는 노래를 부르면서 시내 복잡한 곳을 이리저리 비집고 속도를 내면서 달립니다.  그러자 목사님은 너무 속력을 내기에 불안합니다.  여보시오.  천천히 갑시다.  그러나 운전수는 미소를 지으면서 당당하게 말합니다.  괜찮습니다.  염려 마세요.  저는 겨우 초등학교를 졸업한 사람으로 아는 것도 없고 모든 것이 시원치 않아 한때는 무가치한 존재라고 비관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나 성경말씀을 통하여 저는 확신을 갖고 살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대학총장도 대통령도 부럽지 않습니다. 만족하게 그리고 용기 있게 살고 있습니다.  그 원동력이 여기 카드에 적혀 있습니다.  운전 수가 보여주는 운전대에 달려있는 카드에는 이런 것이었습니다.  1) 네 믿음대로 되리라.  2) 너희가 못할 것이 없느니라. 3) 누가 나를 대적하리요.  4)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였습니다. 이런 사람이 말씀을 지키는 사람입니다.

*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지키는 것입니다.  건전한 신앙인이라고 한다면 말씀을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듣는다는 말이 귀로 듣는 Hearing 이 있습니다.  교회에 나와서 듣습니다.  들어봅니다.  목사님들이 방송을 통하여 말씀을 듣습니다.  야 저 사람 설교 잘하네 들었기 때문입니다.  진정으로 듣는다는 것은 Listen 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듣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고 합니다.  하나는 너무 분주하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바쁜지 모릅니다.  사람들의 말에 바뻤지.  그래 너무 바빠서 그럽니다.  생각하고 뛸 수가 없어서 뛰면서 생각해야 한다고 말할 정도입니다.  그리고 너무 시끄러워서 듣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시끄럽습니까? 그러면서도 바쁜 게 좋고 시끄러운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와중에서도 말씀을 듣는 사람은 지키는 것입니다.  말씀대로 살려고 듣는 것입니다.  순종하려고 듣는 것을 말합니다.  목적을 가지고 기쁨으로 순종하려고 듣는 것이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말씀을 주신 것은 들고 다니라고 준 게 아닙니다.  그대로 순종하고 실천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순종하면 축복입니다.  좋은 교회가 건물이 좋은 것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좋은 신자가 있는 교회입니다.  좋은 신자가 누구입니까? 부자들이 많다고 좋은 교회입니까?  물론 좋지요.  지식이 있고 사회적인 지위가 있는 교인 물론 좋지요.  그러나 말씀대로 믿고 지키며 순종하는 교인이 좋은 교인입니다.

3.  그리스도를 위하여 일 하는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다.

적은 능력으로 큰일을 하는 이가 있습니다.  배운 것은 얼마 되지 아니하는데 그것을 적용하여 모든 이들에게 영향력을 주는 이들이 있습니다.  항상 긍정적입니다.  웬만하면 화내지 아니합니다.  일이란 몸으로 하는 일도 있습니다.  시간을 드리면서 일합니다.  잘하는 것입니다.  일하는 성도가 많다면 그 교회는 좋은 교회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일할 사람이 없습니다.

교회가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예배도 일입니다.  예배만 잘 드려도 충성입니다.  수요예배에 잘나오지 않던 이가 어느 날 교회에 나왔습니다.  아니 어떻게 나오셨어요.  목사님이 공 예배를 드리라고 하셨잖아요.  그 말을 듣고 보니 얼마나 고맙던지요.  우리가 일하는데 몇 가지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1) 일하는데 자기 주장은 하지 않아야 합니다.  (2) 겸손히 있어야 합니다.  교만하지 않아야 합니다.  (3)  일할 때에는  지혜가 따라야 합니다.  일은 잘하는데 지혜가 부족하여 다른 이와 충돌합니다.  물론 자기가 하는 일이 정당하고 잘하는 것이 틀림없습니다만 지혜가 필요합니다.  (4) 일할 때에는 힘을 다하여야 합니다.  일하는 사람이 남에게 밉게 보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일 하는 건지 안 하는 건지 알 수 없게 하는 사람입니다.  시간만 가고 힘만 들지 흔적이 보이지 아니합니다.  최선을 다 해야 합니다. 일 열심히 하는데 누가 욕하는 것 보았습니까? 교회가 하는 일이 있습니다.  기도하는 일입니다.  좋은 교회, 건강한 교회는 사람이 교회에  발걸음들이 계속 이어지는 교회입니다.  놀더라도 교회에 와서 놉니다. 사람들이 계속 모이는 데가 잘되는 곳입니다.  장사하는 집에 사람이 모여야 물건을 팔고 못 팔고는 다음에 문제입니다.  우선 모여야 되는 것입니다.  교회에 사람이 자꾸 모여야 합니다.  시간마다 기도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지속되어야 합니다.  자신을 위한 기도 중보기도 하는 것 이것이 충성하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뜨겁게 기도하는 사람이 문제 일으키지 않습니다.

좋은 교회는 일합니다.  무슨 일을 합니까? 전도하는 일을 합니다.  모든 계획이 전도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어느 기관이 야유회를 나갑니다.  거기에 불신자가 초청되었나? 를 생각해야 합니다.  운동경기를 합니다.  우리들끼리 하는 운동보다는 불신자가 초대되어 같이 운동해야 합니다.  전도의 토양을 만들어야 합니다.  지역 주민들을 위한 즉 불신자들을 위하여 배려가 있어야 합니다.  일 중에 일은 전도하는 일입니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은 불신자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을 사랑하여야 합니다.  만나면 친절해야 합니다.  그의 이름을 알아내고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그들의 영혼을 사랑하여야 합니다.  영혼구원을 위해 투자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주께서 엄청난 축복으로 갚아 주십니다.

소그룹을 위한 일을 하여야 합니다.  사랑을 베풀 수 있어야 합니다. 소그룹이 살면 교회는 부흥합니다.  말씀을 나눕니다.  관계를 새롭게 합니다.  영적인 나눔이 있어야 합니다.  소그룹에서 같이 기도하고 은혜를 체험하게 되어야 합니다.  소그룹의 리더는 많은 희생을 하게 됩니다.
지상에 많은 교회가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가장 좋은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아니 가장 좋은 교회입니다.  주님께 칭찬 듣고 사람들에게 칭송을 듣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성도님들이 보람을 느끼고 감격이 있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말씀을 지키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교회의 사명입니다.  그리고 일하는 교회가 됩시다.  주님이 기뻐하시고 우리들은 축복을 받는 좋은 교회가 되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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