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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영원히 다스리시는 하나님 (시 146:1~10, 눅 16: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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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강석공 목사 (2004년9월26일 설교)
 
  역사는 계속 돌고 도는 것 같습니다. 요즘 집권 여당을 중심으로 과거사 진상 규명에 열을 올리고 있지만 과연 제대로 파헤칠 수 있을까 의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역사의 어두운 면은 좀처럼 파헤치기 쉽지 않은 것 같고, 또한 그 상처를 치유하는 것은 더욱 어려운 것 같기 때문에 하는 말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된 후 정권이 바뀌자 사람들은 많은 것이 바뀔 것을 기대했습니다. 물론 그 동안 많은 분야에서 개혁이 시작되었고, 또 지금도 진행 중에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제대로 된 개혁을 하려면 가장 먼저 부패 척결부터 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정권이 바뀐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그렇게 많은 비리들이 터져 나오는 것입니까? 지난 정권 때의 부정, 부패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현재의 개혁 주도 세력들이 연루된 비리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개혁의 주체가 또 다른 개혁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에 정말 안타깝기 짝이 없습니다. 착잡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과연 우리는 언제나 부정, 부패, 비리 같은 것들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에서 살 수 있을까요?

  OECD에 가입하고 선진국 대열에 합류했다고 떠들고 있지만 아직도 먼 것 같습니다. 개발도상국이 아니라 후진국 수준도 아직까지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들이 한 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에 하는 말입니다. 특히 정치 수준은 얼굴을 들고 다니기 어려울 정도로 부끄러운 수준에 머물고 있지 않습니까? 나라와 민족의 장래는 아랑곳하지 않고 다만 당리당략에 사로잡혀 추한 꼴을 연출하고 있는 여, 야 정치인들의 행태는 많은 국민들을 몹시도 화나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국민들의 정서도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냄비처럼 금새 끓었다가 또 금새 식어버리는 단세포적인 반응도 큰 문제입니다. 때문에 정치인들은 국민들의 수준이 그 정도밖에 안 된다고 생각해서 어느 정도 시간만 흐르면 다 잊어버릴 것이라고 믿고 똑같은 잘못을 거듭 반복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갖게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대통령을 비롯한 위정자들을 왜 뽑아서 세우는 것입니까? 나라 살림을 잘 하라고 세우지 않았습니까? 또 각종 법을 만들고 그 법을 공정하게 집행하도록 일꾼들을 세우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그 법을 안 지키는 사람들이 도대체 누구입니까? 바로 그 정치인들이 아닙니까? 아니 대통령부터 나서서 자기에게 불리하게 적용될 법 따위는 얼마든지 안 지켜도 괜찮다고 떠들어 대고 있지 않습니까? 이쯤 되면 더 이상 할 말이 없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권력을 가진 자, 돈을 가진 자 앞에서 비굴해지는 경향을 보이는 것 같습니다. 오늘도 가진 자들을 중심으로 많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모여드는 것만 봐도 잘 알 수 있습니다. 또 현대인들은 많은 경우 바르게 사는 것보다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가진 자의 등에 업히면 성공할 수 있다고 믿고 있지 않습니까? 때문에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 부정과 부패, 불법과 비리가 근절되지 않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아니 그 어느 때보다 더 기승을 부리고 있는 것 같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거듭되는 실패를 바라만 보면서 낙심하고 좌절하고 마침내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기대할 수 없는 것을 기대한 것부터가 잘못입니다. 범죄자들이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했다면 처음부터 그 전쟁에서의 승리는 기대할 수 없는 것 아닙니까? 개혁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큰 자들에게 개혁의 주체가 될 것을 요구하며 박수 갈채를 보냈으니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짓이었습니까?

  그 옛날 이스라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이 그토록 큰 은혜를 받았으면 그 은혜를 잊지 말고 하나님을 잘 섬겼어야 마땅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것에 마음을 빼앗겼습니다. 그것은 영적으로 깊은 잠에 빠진 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잠든 그들을 깨우는 소리가 있었습니다. 시인은 잠들어 있는 이스라엘의 심령을 흔들어 깨우고 있었습니다. 시인은 분명히 선포합니다. 도울 힘이 없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고... 아울러 시인은 세상을 영원히 다스리시는 분이 누구인가를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권력을 가진 자, 돈을 가진 자를 믿고 의지하는 것이 지혜로운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시인은 전혀 다르게 말하고 있습니다.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왜냐 하면 귀인들이나 인생은 모두 다 유한하고 또 상대적인 존재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그 대신 모든 만물을 영원히 다스리시는 분을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다고 하면서 그 분을 우리에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 분은 과연 누구입니까? 그렇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그 하나님이 과연 어떤 분이시기에 그 분을 의지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합니까?

  먼저, 시인은 우리에게 그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시라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 분은 천지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모든 만물의 원인이 되신다는 말입니다. 생명의 뿌리를 찾다가 실패한 과학자들은 우연이나 진화로 모든 것을 설명하려고 하지만 오히려 자신들의 주장의 허점만 드러낼 뿐입니다. 모든 만물을 창조하시고 오늘도 한 치의 어그러짐도 없이 다스리시는 분이 계십니다. 때문에 성경은 하나님의 창조 기사를 가장 먼저 소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창조주가 되신다 하는 것은 그 분이 만물의 주인이시라는 고백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또한 만물을 창조하신 그 분은 그 어떤 피조물에 의해서도 제한되거나 통제되는 분이 아니시라는 고백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 옛날 이스라엘은 구속 신앙과 함께 창조 신앙을 신앙의 핵심으로 삼았던 것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귀인들이나 인생은 아무 것도 창조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오히려 다른 피조물과 자신을 파괴하는 것밖에 모르는 존재이기 때문에 결코 우리가 의지할 대상이 아님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다음으로, 시인은 우리에게 그 하나님은 진실하신 하나님이시라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은 모든 만물의 주인이 되실 뿐 아니라 말씀하심과 행하심에 있어서 진실하신 분이십니다. 진실하다는 말은 거짓과 속임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또 편파성이 없고 공정하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진실하다는 뜻으로 사용된 말은 ‘아멘’과 어원이 같은 말로서 하나님이 하신 일은 모두가 ‘아멘’할 수밖에 없는 진실한 것이라는 뜻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다스리심은 언제나 그 진실하심에 기초합니다. 변함이 없으신 하나님,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항상 동일하신 분이 바로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때문에 그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그 하나님으로 도움을 삼으며 그 하나님에게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지도자들은 진실해야 합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는 진실한 지도자를 만난 기억이 없습니다. 입만 열면 크고 작은 거짓말로 우리를 속이고, 또 자신도 스스로 속이고 있지 않습니까? 이제 더 이상 지도자들의 그러한 거짓말을 알면서 속아 줄 이유가 없습니다.

  끝으로, 시인은 우리에게 그 하나님은 정의와 공평으로 다스리시는 하나님이시라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땅을 정의와 공평으로 영원히 다스리시는 분이십니다. 그 분은 특히 어려운 형편에서 고통을 겪고 있는 자들을 위하시는 분이십니다. 굶주린 자들에게 구체적으로 양식을 공급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아픔을 익히 아시기 때문에 회복되기를 원하셔서 친히 우리를 고쳐 주시는 분이십니다. 또한 그 분은 억울하게 갇힌 자를 풀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눈먼 자의 눈을 뜨게 하시며 삶의 현장에서 비참하게 쓰러진 자를 일으켜 주시는 분이십니다. 또한 의지할 것 없는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돌보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인간은 과연 어떻습니까? 지난날 남과 북의 독재자들도 정의와 공평을 내세운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거짓 구호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금방 탄로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또 다시 인간이 내세우는 정의와 공평을 기대해 보겠다는 것입니까?

  시인은 바로 그 하나님만이 공평과 정의로 영원히 역사를 다스리시는 진실하신 분이시라는 사실을 오늘 봉독한 본문 말씀을 통해서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그 하나님 앞에서 시인은 감사하는 마음으로 찬양을 결심합니다. “할렐루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찬양하라!”로 시작하여 다시금 “여호와를 찬양하라!”는 의미의 “할렐루야!”로 끝을 맺고 있지 않습니까? 그는 자신의 삶의 시작과 끝을 찬양으로 장식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하든지 그것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의 속에는 확고한 믿음이 있습니다. 때문에 그는 하나님의 다스리심에 자신의 전 존재를 온전히 맡기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광야교회 성도 여러분! 빙산은 바람이 부는 것과는 상관없이 일정한 방향으로 묵묵히 움직인다고 합니다. 바다 위에 떠 있는 모든 것들이 바람의 방향을 따르지만, 빙산은 태풍의 방향마저 거스르며 제 길을 꿋꿋이 간다고 합니다. 빙산은 자기 몸의 대부분을 바다 속에 두고 있기 때문에 바다 표면의 바람이 아니라 바다 속을 흐르는 해류의 흐름을 따른다고 합니다.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바람과 같은 것들을 의지하지 말고, 깊은 바다 속을 도도히 흐르는 해류처럼 바른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그 분의 다스리심에 온전히 우리를 맡길 수 있어야 합니다! 그 하나님을 깊히 체험한 사람들은 그 옛날 시인이 그랬던 것처럼 항상 할렐루야를 높이 외치면서 굳세게 전진할 수 있습니다! 어린 아이와 같이 단순한 믿음으로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믿고, 그 하나님의 다스리심에 온전히 자신을 맡김으로 말미암아 지금 여기서부터 그 하나님이 주시는 천국의 복을 마음껏 받아 누리는 여러분 모두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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