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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우리는 축복 받은 사람입니다. (롬 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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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박충웅 목사 (2004.9.26 )

금년 9월 15일자 신문에 대단히 기분 좋은 기사가 났습니다. 그도 굉장히 많은 지면을 차지했습니다. 세계적인 토크쇼를 진행하는 미국의 사회자 오프라 윈프리라는 여자 이야기 입니다. 그는 1986년부터 19년째 이 방송을 진행하는 사람입니다. 9월 13일 이 방송을 진행하면서 방청객 276명 전원에게 1대당 3200만원하는 승용차를 선물로 주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돈으로 90억입니다. 이날 깜작 쇼는 세계적인 자동차 회사인 GM사의 협찬으로 이루어 졌습니다. “여러분의 소원을 이뤄줄 수백만 달러의 선물이 기다리고 있다.”는 충격적인 말로 토크쇼가 시작 되었습니다. 곧 11명의 이름을 부릅니다. 그들은 얼떨결에 나와 “여러분이 새 차를 기다리셨죠! 축하합니다.”하며 자동차 열쇠를 받았습니다. 순간 스튜디오는 흥분했습니다. 이 11명이 행운을 만끽할 사이도 없이 나머지 방청객 모두에게 차를 선물로 준 것입니다. “꿈은 이루어진다.”는 주제로 방송한 이날 토크쇼에 온 방청객은 다 고물차를 더 이상 운전할 수 없는 전국의 힘든 사람들이었답니다. 그도 19살 때 사촌 오빠에게 성폭행을 당했습니다. 14살에 미혼모가 되었던 불행한 검둥이였습니다. 그는 100Kg이 넘는 뚱보였습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미국이 가장 존경하는 여성으로 그 위에 올랐습니다. 그는 포브스지 선정 여성 최초로 억만장자가 되었습니다. 자가용 비행기가 여러 대 있답니다. 그의 재산은 9억 800만 불 가량 된답니다. 그는 어려운 사람에게 집도 사주고 장학금도 줍니다. 멋있는 사람이지요. 그러나 그것만 부러워 할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는 인정을 받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분을 통해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런 은혜를 믿음으로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할 희망 가운데 기뻐하고 있습니다. 이것뿐만 아니라 우리가 고난 중에서도 기뻐하는 것은 고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된 인격을, 연단된 인격은 소망을 갖게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 소망은 우리에게 실망을 주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우리의 마음에 그 분의 사랑을 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롬 5:1-5) 이 성경은 하나님을 믿음으로 의롭게 된 사람에게 주시는 복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신분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입니다. 우리의 사회생활에는 두 가지 인격적 공동사회(Gemeinschaft)와 비인격적인 이익사회(Gesellschaft)가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단체라도 화목하지 않으면 사회적 명분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죄인입니다. 의인은 없습니다. 에덴동산에서부터 죄인입니다. 누구도 깨끗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원수였습니다. 그런데 그 아들 예수님이 오셔서 하나님과 우리를 화해 시키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는 축복 받은 사람입니다.”라는 말씀으로 같이 은혜 나누고자 합니다.

Ⅰ.우리는 죄인입니다.

철학자들은 인간을 내동댕이쳐진 존재라 했습니다. 인간의 바닥은 불안과 공포와 초조라고 했습니다. 왜 인간이 떳떳하지 못합니까? 실수나 죄가 없으면 당당합니다. 경찰을 보아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죄 지은 사람은 경찰을 피합니다. 인간은 죄인입니다. 선악과를 따 먹은 아담, 하와는 숨었습니다. 그는 “두려워 숨었나이다.”라 했습니다. 배신자입니다. 뉴잉글랜드의 어느 마을의 교도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사람을 사형시키는 교수대가 있었습니다. 지금 그 교수대위에 한 여자가 있습니다. 물론 많은 구경꾼이 모여 있습니다. 그 여인은 어린아이를 안고 있었습니다. 그 옷깃에는 곱게 수놓은 진홍 빛 A자가 달려 있습니다. A는 간통(Adultery)의 머릿자 입니다. 그 여인은 헤스터프닌누였습니다. 그는 자기보다 훨씬 나이 많은 남자와 결혼했습니다. 부인이 먼저 식민지로오고 남편이 곧 뒤 따라 오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오래 자나도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는 동안 가슴에 안고 있는 이 아이를 낳은 것입니다. 이 아이는 불륜의 씨앗이었습니다. 철저한 청교도 신앙을 가진 그들이 이 여인을 간통죄로 고소했습니다. 그가 형무소에 있다가 재판 받은 결과입니다. 이런 선고를 판사가 했습니다. “헤스터 프린누는 교수대 위에 죄의 씨인 아이를 안고 세 시간 동안 구경꺼리로 세워둔 뒤 이후로부터 평생 죄의 표시인 A라는 글자를 가슴에 달고 살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여인은 끝내 이 아이의 아버지가 누군지를 말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엄격히 심문해도 남자의 이름을 밝히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마을 사람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는 학식이 많은 청년목사 데스므빌이었습니다. 이것은 미국의 호쓴의 주홍글씨의 줄거리입니다. 우리도 딱지 붙은 죄인입니다. 평생 수치스런 주홍글씨를 가슴에 붙이고 살아야 할 처지였습니다. 우리는 거룩한 척도 할 수 없습니다. 잘난 척도 못합니다. 교수대 위에서 사람들의 저주와 욕을 먹어야할 사람입니다. 그래서 낙원을 잃은 것입니다. 에덴에서 쫓겨난 실향민입니다. 아무리 욕하고 저주해도 항거 할 수 없습니다. 여기 여인의 아이를 가지게 한 청년 목사는 지수 해야겠다고 여러 번 다짐합니다. 끝내 용기가 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는 강단에서 설교를 할 수 없습니다. 그러다가 몸이 점점 약해집니다. 그러는 중 여인의 남편이 나타납니다. 그는 복수하려고 합니다. 그는 자기 아내를 더럽힌 청년 목사를 알아내고 그에게 복수를 결심합니다. 그의 복수가 성공하려고 할 때 양심의 가책을 느낍니다. 그는 군중 앞에서 원수인 헤스더의 손을 잡고 자기의 죄를 고백하고 그대로 자취를 감추고 맙니다. 뭐 우리가 정말 깨끗합니까? 우리는 죄인입니다. 부정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다 그릇 행하는 고집불통 아닙니까? 정말 희망을 잃은 사람입니다. 정말 우리야 말로 돌에 맞아야 마땅한 사람입니다. 바울은 이 사건을 가장 크게 다루고 있습니다. 우리는 다 거짓되다고 했습니다. 만물보다 거짓되다고 했습니다. 현대 윤리학에서 사회악을 크게 세 가지로 지적했습니다.

첫째, 침해입니다. 남을 괴롭히는 행위입니다.

둘째가 약탈입니다. 남의 것을 빼앗는 것입니다.

셋째가 허위(거짓)입니다. 강한 자만이 남을 속이는 것이 아닙니다.

지식이 있는 자도, 부유한 자도, 가난한 자도, 잘난 자도, 못난 자도 다 속입니다. 그래서 현대 윤리학에서 가장 위험한 것이 허위라고 말합니다. 종교 개혁자 마틴 루터는 “거짓말은 눈 뭉치와 같은 것이다. 굴리면 굴릴수록 커진다.”고 했습니다. 프랑스의 속담 가운데 “인간은 진실에 대해선 얼음처럼 차지만 거짓에 대해서는 불처럼 뜨거워진다.”는 말이 있다고 합니다. 결혼할 때도 속입니다. 물건도 속입니다. 수입 농산물을 국산이라고 속입니다. 서양의 속담 가운데 “존재 간다는 것은 없는 사실을 말하는 것.”이라는 말이 있답니다. 그만큼 인간은 거짓투성이입니다. 그런데도 깨끗한 척 합니다. 우리는 누더기 옷과 같습니다. 그러니 늘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과연 남의 잘못을 지적할 자격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인간은 전적 타락했습니다. 전적 무능력 합니다.

Ⅱ.화목하게 하심.

우리는 하나님과 원수 사이였습니다. 우리가 잘못했습니다. 저는 죽을죄를 지은 죄인입니다. 용서해 주세요. 어떤 벌이라도 달게 받겠습니다. 라고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인간은 목이 곧아요. 회개할줄 잘 모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먼저 화해를 청하셨습니다. 인간이 지은 죄 값을 하나님이 다 치르신 것입니다. 그 값도 외아들의 목숨이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화해의 값을 치르신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습니다. 의롭다 하심을 얻은 직접적 결과가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을 누림입니다. 우리는 실패자였습니다. 버림 받은 자였습니다. 죄로 인해 신뢰가 끊어진 상태였습니다. 하나님과 사귐이 불가능했습니다. 이제는 가능합니다. 그 관계가 회복된 것입니다. 그 관계가 회복된 사람에게 화평이 오는 것입니다. 이 “평화”라는 말은 제자들이 만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입니다. 평화의 중요성은 바울의 두 가지 비유에서도 나타납니다. 빌4:7에는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는 파수꾼에 비유했습니다. 골3:15에는 그리스도의 평강으로 우리의 마음을 주상하며 모든 잡음을 없애고 바른 생각을 하게 하는 심판관이라 했습니다. 두 가지 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지에게 평화가 있다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축복입니다. 사람은 죄인입니다. 죄인에게는 지유가 없습니다. 죄인은 벌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조건 없이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엄격한 의미에서 인간을 짝사랑 하셨습니다. 어느 날 하나님이 선지자 호세아에게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호세아야 너는 창녀 고멜과 결혼하라.”하십니다. 당시 선지자나 제사장은 이런 사람과의 결혼이 절대 금지 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그런데 고멜의 바람기가 식지 않았습니다. 창녀촌으로 달아난 그녀를 돈을 주고 사왔습니다. 그래도 몇 번인가 또 달아났습니다. 그때마다 호세아는 돈을 치르고 데리고 왔습니다. 우리는 창녀와 같은 신분입니다. 성경은 비유했습니다. 목욕한 돼지 같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죄의 향수에 젖어 있습니다. 거기에 그토록 끌리는 매력이 있나 봅니다. 다시는 그러지 않아야지 하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한쪽 발이 빠져 있습니다. 이런 인간을 하나님이 사랑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영원히 만날 수 없었습니다. 영적 불구자였습니다. 그런 우리가 하나님의 전적인 사랑으로 하나님과 화해했습니다. 바울은 이 감격을 놓칠 수 없었습니다. 우리의 복 받음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그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하였기 때문입니다.(롬 8:1)”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 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지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시자 아니하시겠느뇨.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오.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여기느니라. 내가 확신 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 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다른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 8:32-39)”했습니다. 우리는 엄청난 복을 받은 사라입니다. 천국 백성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최고의 특권을 받았습니다. 정말 이 세상은 불완전 합니다. 이 세상은 마귀가 다스리는 세상입니다. 그러다 보니 끊임없는 부정, 부패와 싸워야 합니다. 눈만 뜨면 보고 듣는 것에 겁이 납니다. 어디에 테러가 났다. 얼마 전 서울의 부자들이 사는 강남에서 생수, 아주 고급 생수가 팔렸답니다. 일본에서 수입한 생수였습니다. 그런데 값은 일반 생수 값의 20배였습니다. 그런데 수질 검사를 해 보니 세균이 득실거렸습니다. 그 물이 알고 보니 저수지 물이었답니다. 세상은 어지럽습니다. 완전하지 않습니다. 온통 뒤죽박죽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자녀로 세우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화평자이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가 아들을 우리 위해 아낌없이 주셨습니다. 십자가에 죽기까지 내어 주신 것입니다. 대단 하시지요.

맺는 말

저는 오늘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우리는 누구와도 원수를 맺으면 다 불행합니다. 원수까지는 아니라 해도 뜻이 맞지 않아 말 안하고 지내면 그것 역시 불행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산다면 얼마나 살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였습니다. 우리가 감히 하나님과 대결했습니다. 그것은 죄 때문입니다. 죄는 전염성이 아주 강합니다. 죄는 우리가 보기에 매력이 넘치게 보입니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 유혹합니다. 어느 장사도 넘어질 수 있습니다. 누구도 장담을 못합니다. 그러고 보니 하나님과의 모든 통로고 막힌 것 입니다. 이를 다시 회복시키시기 위해서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그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화해시키신 것입니다. 우리는 멸망의 자식이었습니다. 우리가 그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롭게 된 것입니다. 이젠 하나님께 담대히 나아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떳떳한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 기쁨을 누리며 주 안에서 늘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2004.9.29 -충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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