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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감사로 제사를 드리며 .... (시 50: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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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박재신 목사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극히 높으신 자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여러분 171조라는 숫자가 얼만큼 큰지 생각해 보셨습니까?
  지금 우리 나라가 외국에 지고 있는 빚이 171조원이라고 합니다. 한국은행이 2003년 1월 2일 발표한  ‘국가채무의 안정성 분석과 재정수지 목표수준 추정’ 보고서에 따르면 2002년 말 우리나라의 부채는 171조 1000억 원이 된다고 했습니다. 
  171조원이라는 숫자가 얼마나 큰지 저도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171라는 숫자의 뒤에 0이 12개가 더 붙어야 하는 숫자입니다. 171,000,000,000,000
  만일 이 돈을 어떤 사람이 하루에 1억원씩을 쓴다고 해도 1,710,000 날 동안 써야 합니다. 즉 4,684년 동안 매일 1억원 써야하는 엄청난 돈입니다.
  지금부터 쓴다고 하면 서기 6,688년에 바닥이 날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수의 개념은 전혀 상상이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나라의 빚이 많다고 생각합니까?
  아주 많은 수입니다. 자손 대대의 빚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에게 진 빚은 얼마나 될까요
  예수님은 한 생명을 천하보다 더 귀하다고 하시면서 그 천하보다도 귀한 목숨을 우리를 위해 아낌없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이 천하가 얼마나 값이 많이 나갈까요. 그런데 천하보다 더 우리를 사랑하시고 귀히 여기시는 하나님께 진 빚을 돈으로 계산해 보셨습니까?
  우리는 하나님께 빚 진자들입니다. 
  우리가 값을 수 없는 너무 많은 빚을 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합당하게 갚는 유일한 길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감사’입니다. 그래서 수천억의 사람들이 세세토록 찬양을 돌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알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미국의 ‘미시간’ 호수에 배 한 척이 침몰했을 때, 노스웨스트 대학의 학생 한명이 뛰어 들어가 물에 빠져 죽게 된 사람 23명을 구출해주었습니다. 수 십년이 지난후에 ‘토레이’ 목사님이 한 교회에서 설교하면서 예화로 그때 그 사건을 이야기 하면서 그 청년의 용기를 칭찬했는데, 마침 그때의 청년이 백발노인이 되어 앉아 있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토레이 목사님은 깜짝 놀라면서 그 노인에게 "그때 사건을 통해 가장 인상에 남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노인은 "예! 단 한사람도 고맙다는 말을 한 일이 없었던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인생은 이렇게 감사할 줄을 모르고 살아갑니다.
  감사를 잊고 사는 것이 인생입니다.

  옛말에 "원수는 돌에 새기고 은혜는 물에 새긴다"는 말이 있습니다.
  원수 갚을 일은 돌에 새겨서 결코 잊지 않는데 비해 은혜를 입은 것은 물에 새겨서 금새 잊어버린 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가 형님 밑에서 개만큼도 대접을 받지 못하고 지냈다고 불평하니까, "당신은 개만큼도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이다"라고 책망했다고 합니다.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은 결국 무례한 사람입니다.
  은혜는 고사하고 하나님이 계신 것조차 부인하고 하나님 목전에서 온갖 더러운 악을 행함으로 살아계신 하나님을 무시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는 것입니다.
  악인들이 죄를 지으면서 교만한 얼굴로 하나님이 보지 않고 있다고 말합니다. (시10:4) 그리고 어리석어서 마음에 하나님이 없다하면서 그 소행은 한없이 부패하고 가증합니다. 시14:1-3절을 읽어 봅시다.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저희는 부패하고 소행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 살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다 치우쳤으며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

  결국 이러한 사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시 36:1-2절을 보면 “악인의 죄얼이 내 마음에 이르기를 그 목전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다 하니 저가 스스로 자긍하기를 자기 죄악이 드러나지 아니하고 미워함을 받지도 아니하리라 함이로다” 라고 기록하였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무시하는 행위인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을 무시하고 사는 인생들을 향해 사1:3절에서 다음과 같이 선포합니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미물인 소도 임자 즉 주인을 알고 자신의 밥 그룻이 어디에 있는지 압니다. 그런데 인생들은 주인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자신이 자기의 주인이 될 수 있을 까요. 아닙니다. 자기는 스스로 자신의 주인이 될 수 없는 법입니다. 자신의 목숨하나 마음대로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만이 여러분의 주인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안다고 했습니다.
  구유는 밥 그룻입니다.
  소나 나귀는 제 밥그릇이 주인에게 있음을 잘 압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렇지 못햇습니다.
  우리 인생의 밥그릇이 어디에 있습니까?
  여러분의 직장이 여러분의 밥그릇입니까? 아니면 여러분의 사업장입니까? 아니면 직장 상사나 사장이 여러분의 밥그릇을 가지고 있습니까?
  아닙니다.
  우리인간의 밥그릇이 하나님께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한다”고 말씀하였습니다. 즉 인간은 하나님의 은혜에 배은망덕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1923년 9월 1일 일본 요코하마에 관동대지진이 발생했습니다.
  20만명이 사망, 2백50만 명의 이재민을 만들었습니다. 그 때 미국은 어느 나라 보다 더 앞장서서 구호대를 파견하여 음식과 옷 그리구호 약품을 공수하여 이재민을 구호하였습니다. 6개월 동안 150척의 배를 동원해서 식량과 생활필수품 등을 실어 날랐습니다.
  당시 히로히토 일본 천황은 직접 친서로 감사의 표시를 당시 클리지 미국 대통령에게 전달하면서 “일본 모든 국민은 미국에 정말 감사한다, 이 은혜는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하는 내용의 자필 친서를 보냈습니다. 그러나 18년도 못되어 일본은 2차 대전을 일으켰습니다. 미국의 아름다운 섬 하와이를 쑥밭으로 만들었습니다. 진주만 기습공격 사건은 배신과 배약의 상징인 것입니다 .

  일본만 그렇습니까?
  모든 인간은 지금도 하나님의 은혜를 원수로 갚으려 하고 있습니다.

  본문 말씀에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시간 드리는 우리의 예배가 하나님께 감사로 드리는 제사가 되어야하겠습니다.
  성도가 하나님께 신앙고백을 나타낼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것은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감사라는 것은 단어 자체가 받은바 은총에 대한 보답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받은 은혜에 대한 보답, 그것이 감사입니다.
 
  1. 우리가 받은 은혜는 무엇입니까?

  1) 생명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오늘 살아있음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자기의 생이 아무리 어렵고 힘들며 불행하다고 느끼더라도 우리는 우리의 생명을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고 내가 지금 어떤 형편에 있든지 살았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럽고 즐거운 일인지 알 수 없습니다.
  여러분 함부로 생을 저주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우리를 창조하시고 아름답게 하신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인생이 힘들고 어렵거들랑 도우시고 은혜주시기 기뻐하시는 아버지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하십시오.
 
  2) 구원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천만인 중에서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부르사 하나님 자녀 삼으셨습니다. 이것이 내가 원해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원한 게획과 작정 안에서 되어졌다면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할 것 밖에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요15:16에서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3) 우리를 사랑하시고 신뢰하시는 은혜를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택하신 그의 자녀들을 귀중이 여기십니다. 신33:12절의 말씀을 보면 “베냐민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여호와의 사랑을 입은 자는 그 곁에 안전히 거하리로다 여호와께서 그를 날이 맟도록 보호하시고 그로 자기 어깨 사이에 처하게 하시리로다” 라고 했습니다. 
  베냐민으로 표현된 “여호와께 사랑을 입은 자” 가 바로 저와 여러분입니다. 하나님께서 날이 맞도록 보호 하시고 자기 어깨사이에 있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2. 어떻게 감사를 드려까요
  제사란 말이 하나님께 드린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려야하는데 어떻게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릴까요?
 
1) 입술로 찬송을 드려야합니다.
  이사야43:21절에서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찬송을 부를 때는 힘껏 그리고 정성껏 부르십시오. 찬송 중에 거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시22:3절에 보면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거하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 라고 했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노래는 부를 때까지 노래가 아니며, 종은 울릴 때까지 종이 아니고, 사랑은 표현할 때까지 사랑이 아니며, 축복은 감사할 때까지 축복이 아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입술로 “감사합니다”하고 표현해야 합니다. 인간은 시간과 공간 속에서 언어를 가지고 살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하고 표현하는 것이 좋습니다.

  어느 성도에게 하나밖에 없는 독자 외아들이 갑자기 죽었습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4가지의 감사를 하나님께 드렸다고 합니다.
  첫째 내 아들이 죄 안 짓고 깨끗하게 신앙 생활하다 주님의 품에 갔으니 감사하고,
  둘째 내 마음이 이제는 주님만 바라보게 되었으니 감사하고,
  셋째 이제 하늘나라를 향한 마음이 더욱 강렬해졌으니 감사하고,
  넷째 이런 상황 속에서도 감사하는 마음을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라고 말입니다. 얼마나 감격스러운 감사입니까? 이것은 진정 은혜 받은 크리스챤의 마음에서만 생기는 것입니다.
  감사하다는 말을 하십시오. 그것이 입술의 열매가 되어 축복의 열매를 따게 할 것입니다.

  2) 마음 다해 감사해야 합니다.
  마음 없이 드리는 감사는 그것이 외형적으로 어떤 형태든 그것인 빈껍질에 지나지 않습니다. 마음과 정성을 다해 드리는 감사만이 하나님이 받으시는 제사인 것입니다.

  3) 몰질로 표현해야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방법이 여러 가지가 있는데 물질로 드리는 방법이 사실은 가장 쉬운 방법이면서도 어려운 방법입니다.
  하나님은 물질로 감사를 표현하기를 강력하게 우리에게 권고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받은 은혜를 생각하여 물질로 하나님께 드리는 일에 인색함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신16:10절에 보면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칠칠절을 지키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 라고 했습니다. 
  주신 복을 헤아린다면 얼마든지 물질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릴 수 있습니다.
  물질로 감사를 아낌없이 드리는 사람은 모든 것이 주께로부터 왔다는 것을 인정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주께로부터 공급된다는 것을 믿는 사람은 아낌없이 하나님께 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의 노력이나 힘으로 얻었다 하는 사람은 인색하여 하나님께 바칠 수가 없습니다.
  어려운 때일수록 더 물질에 인색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르밧 과부의 축복은 극한 가난 속에서 하나님께 드린 물질에 있었습니다.
 
  4) 범사에 감사하는 생활로 나타내야 합니다.
  즉 은혜를 받은 사람답게 살아드리는 것입니다. 살전 5:18절을 보면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라고 했습니다. 
  영국 ‘트렌취’ 목사의 글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의 가는 평탄한 길에 조그마한 구렁텅이만 있어도 벌써 하나님을  원망하고 사람을 원망한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자기의 가는 험하고 캄캄한 길에 조그마한 빛만 비추어도 하나님의 주시는 자비로우신 빛이라 하여 감사의 기도를 올린다. 화려한 궁전에 살면서도 생이란 왜 이리 괴로우며, 기쁜 일은 하나도 없느냐고 얼굴을 찡그려 불평하는 사람이 있으며, 게딱지같은 오막살이에 살면서도 우리를 지키시는 하늘 아버지와 한없는 은혜와 사랑을 진심으로 감사하는 사람이 있다”

  그렇습니다.
  꼭 같은 은혜를 받은 자 중에도 감사하는 자는 실로 얼마 되지 않습니다. 눅17:11-19절에 보면 10명의 문둥병자가 다 고침을 받았지만 아홉은 감사하지 않았고 한 사람만 돌아와 예수님에게 감사를 드렸습니다.
  불평 원망은 쉽고 감사란 어려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민14:1-25).
  민수기 14:11절에서 불평하고 감사하지 않는 백성들을 향하여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 백성이 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하겠느냐. 내가 그들 중에 모든 이적을 행한 것도 생각하지 아니하고 어느 때까지 나를 믿지 않겠느냐”라고 말입니다.

  “제일 가르치기 어려운 수학문제는 우리가 받은 축복을 세어보는 문제이다”라는 서양격언이 있습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사람에게 기쁨을 줍니다. 항상 감사하는 자세야 말로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제사가 되는 것입니다.
  항상 또는 범사에 감사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항상은 시간적으로 언제나를 의미하고 범사는 사건으로 무슨 일이든지를 의미합니다.

  미국의 어느 교회에서 예배 중 광고 시간에 어떤 중년신사가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는 며칠 전 베트남에서 전사한 아들을 추모하는 뜻에서 하나님께 10,000불 우리 돈으로 천 2백만 원을 하나님께 드릴 것을 밝혔습니다. 그러자 뒷자리에 앉아있던 어느 여인이 갑자기 자기 남편의 옆구리를 쿡 찌르며 속삭였습니다.
  우리도 헌금합시다. 그러자 그녀의 남편은 눈을 휘둥그레 뜨면서 "우리 아들은 죽지 않았잖아...!"
  그러자 아내는 "그러니까 더 바쳐야지요?!" ...
  그렇습니다.
  감사는 평소에 해야 합니다. 무슨 특별한 일이 있어서가 아니라 우리의 삶이 그저 그렇게 전개된다할 지라도 우리는 감사할 것밖에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입술로든 물질로든 범사에 항상 감사하는 중심과 삶이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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