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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영적 침체에서 벗어나라 (창 3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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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피영민 목사

1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2 야곱이 이에 자기 집 사람과 자기와 함께 한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 중의 이방 신상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케 하고 의복을 바꾸라 3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나의 환난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나의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단을 쌓으려 하노라 하매 4 그들이 자기 손에 있는 모든 이방 신상과 자기 귀에 있는 고리를 야곱에게 주는지라 야곱이 그것들을 세겜 근처 상수리나무 아래 묻고 5 그들이 발행하였으나 하나님이 그 사면 고을들로 크게 두려워하게 하신 고로 야곱의 아들들을 추격하는 자가 없었더라 6 야곱과 그와 함께 한 모든 사람이 가나안 땅 루스 곧 벧엘에 이르고 7 그가 거기서 단을 쌓고 그곳을 엘벧엘이라 불렀으니 이는 그 형의 낯을 피할 때에 하나님이 그에게 거기서 나타나셨음이더라 8 리브가의 유모 드보라가 죽으매 그를 벧엘 아래 상수리나무 밑에 장사하고 그 나무 이름을 알론바굿이라 불렀더라

(서론)

  폴란드에 유명한 전설이 있습니다. 폴란드의 ‘크라코우’라고 하는 지방에 ‘시몬’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이상하게도 시몬은 밤마다 생생한 꿈을 꾸게 됩니다. 그 꿈의 내용은 ‘체코의 수도 프라하에 있는 다리 밑에 보물이 숨겨져 있으니 가서 파라’는 것이었습니다. 여러 날 반복해서 꿈을 꾸게 되니 시몬은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살던 마을을 떠나 먼 여행에 오르게 됩니다. 긴 여행 끝에 시몬은 프라하에 있는 다리에 도착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다리에 경비병이 서서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테러범이 다리를 폭파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습니다. 시몬은 그 경비병에서 자신의 꿈 이야기를 하고 다리 밑을 파게 해 달라고 부탁을 하게 됩니다. 그러자 경비병은 어이없어 하며 웃습니다. 그리고는 시몬에게 “나도 밤마다 생생한 꿈을 꿉니다.”라고 말합니다. 시몬이 무슨 꿈이냐고 묻자 경비병은 “크라코우라고 하는 지방에 가면 시몬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의 부엌 밑에 큰 보물이 숨겨져 있다는 꿈을 날마다 꾼다오. 그렇지만 나는 크라코우로 가질 않는데 당신은 그 꿈 때문에 이곳에 오셨소?”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시몬은 “정말 그렇습니까?”라고 놀랬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크라코우 마을로 돌아와서 자기 집 부엌 밑을 팠습니다. 그런데 진짜 보물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이 보물로 잘 살았다는 전설입니다. 이로 인해 생긴 속담이 “보물은 크라코우에 있고 그 지식은 프라하에서 얻는다.”입니다.

  야곱의 행복은 벧엘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집 벧엘에서 단을 쌓고 하나님께 예배하고 그 자리에 정착하고 살았더라면 야곱은 평생 행복하게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며 살 수 있었을 것입니다. 벧엘에 행복이 있다는 것을 야곱이 깨닫게 되기까지 3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20년은 밧단 아람 외삼촌 집 하란에서 깨닫게 되었고 나머지 10년은 숙곳과 세겜에서 깨닫게 된 것입니다.

야곱이 10년의 세월을 세겜에서 보내면서 하나님께 완전히 순정하지 못하고 불완전한 순종을 하면서 엄청난 위기를 겪게 되었습니다. 야곱의 인생길에서 인생의 최저점(最低坫)을 지나게 된 것입니다. 외동딸 디나는 겁탈을 당했고 열 한 아들들은 거짓말을 하고 세겜의 남자들을 다 죽이는 피 흘리는 복수를 감행했습니다. 야곱은 영적인 지도력을 상실했고 슬럼프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창세기 34장에서 최악의 영적인 슬럼프를 맞게 된 야곱은 그러나 35장에 이르러 슬럼프 탈출 작전을 통해 다시 지도력을 회복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 가운데에도 예수님을 처음 믿을 때 은혜를 받고 성령 충만을 받고 기쁨을 누리게 되지만 살다보면 영적인 슬럼프가 오게 되어 있습니다. 주님이 멀리 계신 것 같고, 기도하고 싶은 마음도 줄게 되고, 하나님의 일을 해도 감동이 없는 상태가 올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창세기 35장에서 야곱이 어떻게 영적인 슬럼프를 탈출했는가를 살펴봄으로써 우리도 무더위의 영적인 침체에서 벗어나 다시 하나님을 찾고, 은혜 받고, 성령 충만하게 되는 경험을 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을 1:1로 들어야 한다.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단을 쌓으라 하신지라.”(창35:1) 야곱은 영적인 슬럼프, 영적인 최저점에서 일대일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야곱처럼 슬럼프에 빠져 있을 때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야곱을 꾸짖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야곱아! 내게 네게 축복의 근원이 되라고 했더니 너는 도리어 세겜 사람들에게 저주의 근원이 되었구나. 내가 너를 잘못 택하였구나. 이제 내가 너를 버리고 다른 사람을 택해야겠다”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야곱이 인생의 최저점에서 “주여, 이제 내가 다시 벧엘로 가야 되겠나이다”라고 했을 때 하나님은 오랫동안 기다리시던 탕자의 아버지와 같은 심정을 가지고 야곱을 기쁨으로 맞아주셨습니다.

  인간은 참으로 이상한 존재입니다. 자기의 하는 모든 일이 번창하고 잘 되면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최저점에 내려가 하는 일이 잘 안 되고 삶에 고통이 임하게 되면 그 때서야 비로소 주의 말씀을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영적인 슬럼프에 빠졌을 때 우왕좌왕 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과 조용히 일대일의 시간을 가지시고 하나님의 여러분의 영혼에 말씀하시는 그 음성을 들으면 됩니다.

  하나님이 야곱에게 전혀 새로운 말씀을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야곱이 30년 전에 에서의 무서운 낯을 피해서 밧단 아람으로 도망하던 중에 벧엘에서 잠을 자게 되었을때 하늘의 문이 열리고 사닥다리가 내려오더니 사닥다리 꼭대기에 하나님의 사자가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야곱이 잠에서 깨어 이곳에 돌로 기둥을 세우고 기름을 붓고 하나님께 서원을 했습니다. 창세기 28장 20절부터 22절까지를 보면 “야곱이 서원하여 가로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사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주사 나로 평안히 아비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하면서 하나님께 세 가지 서원을 합니다. 첫째,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둘째,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요’, 셋째,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대단히 계산적이고 미성숙한 서원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렇게 축복하시면 내가 하나님께 이렇게 드리겠습니다.’라는 식의 계산적인 서원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 서원을 기억하시고 야곱이 영적인 위기를 당하게 되니까 그 서원을 행하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영적인 침체에 빠지게 되면 세상과의 관계를 차단하고 오로지 하나님과 독대하는 시간을 가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휴대전화, 집 전화, TV 다 끄시고 “하나님, 내 영혼에 하나님의 뜻을 말씀하여 주옵소서.”하고 성경을 읽고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우리의 영혼에 말씀해 주실 것입니다. 때로는 귀에 들리는 초자연적인 현상으로 말씀하실 수도 있고, 때로는 영혼에 말씀하시는 조용한 소리를 들으실 수도 있고, 때로는 하나님의 특별한 성령충만의 은혜를 체험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실 것입니다. “네가 10년 전에 했던 서원을 갚을 때가 되었구나.” 또는 “너는 이것이 죄악이 되어 지금 영적인 침체를 겪게 되었으니 죄악을 회개하라”, “이제 너는 내게 네게 준 소명을 이룰 때가 되었으니 이 일을 수행하라”라는 말씀을 주실 수도 있습니다. 때문에 영적인 슬럼프가 꼭 나쁜 것은 아닙니다. 영적인 슬럼프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에 가장 좋은 시간이 되는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2. 우상을 제거해야 한다.

둘째로 영적인 침체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우상을 제거해야’ 합니다. 야곱의 집안만큼 하나님의 특별한 대우를 받은 집안이 또 어디 있습니까? 할아버지가 아브라함이고, 아버지가 이삭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불리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의 집안에 특별한 대우를 하시고 큰 은혜를 부어주셨습니다. 그런데 얼마나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까? 집안에 우상이 참 많습니다. 라헬도 그 아비의 우상 드라빔을 훔쳐 왔습니다. 나머지 가족들도 각자의 우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지금까지 가족들에게 우상을 치우라
고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 야곱은 벧엘에 올라가서 하나님께 단을 쌓고 예배를 드려야하는데 바로 우상이 걸리는 것입니다. 우상을 가지고서는 하나님께 예배할 수 없으므로 우상을 치우라고 가족들에게 비로소 명령을 합니다. 우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다른 우상을 가진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할 수 없는 것입니다. 유명한 인도의 간디 수상의 이야기를 통해서도 이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인도 사람들은 간디 수상을 ‘간디 선생’이라고 불렀습니다. 어느 날 어떤 부모가 자기 아이를 데리고 간디 선생을 찾아 왔습니다. 이 아이는 하루 종일 사탕만 먹고 밥을 먹지 않고 있었습니다. 부모가 너무 걱정이 되어 간디 선생에게 찾아온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간디 선생은 보름 후에 다시 오라고 합니다. 보름 후에 다시 오니 간디 선생이 아이더러 “애야, 사탕 그만 먹어라.” 그리고는 그만 가보라고 합니다. 기가 막힌 부모가 간디 선생에게 묻습니다. “아니, 간디 선생님, 그 말씀을 하시려면 보름 전에 하시지 왜 이제야 하십니까?” 그러니 간디 선생이 “그 때는 제가 입에 사탕을 물고 있었거든요. 제가 먹고 있는데 어떻게 아이더러 먹지 말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대답했다는 유명한 일화입니다.

  이제 야곱은 자기 입의 사탕을 제거하기 시작합니다. 가족들에게 세 가지 명령을 합니다. 첫째로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상을 버려라!”, 둘째로 “너희 자신을 정결케 하라!”, 셋째로 “너희 의복을 바꾸라!” 하나님께서 야곱과 야곱의 가족들에게 안과 밖을 모두 깨끗하게 하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야곱이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지 못할 때는 가족들에게 권위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야곱이 벧엘로 올라가서 하나님께 단을 쌓고 예배를 드리기로 결심을 하니까 “우상 숭배를 다 버리고, 우상을 제거하라!”고 담대하게 명령을 할 수 있게 되고, 영적인 지도력을 회복하게 된 것입니다.

  대만이나 일본 등 우리의 주변 국가들은 이방신상을 섬기는 사람이 많은 것 같습니다. 제가 언젠가 이들 나라를 여행을 할 때 아침에 물건을 판매하지 않는 경우를 보았습니다. 이방신상을 섬기는 의식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반면 우리 한국 사회를 보면 이방신상은 많이 제거가 된 것 같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면서 신상을 가지고 다니지는 않는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 차지하게 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모두 우상입니다. 직업에서 성공하기 위해 교회에 출석하지 않으신 분이 있다면 그분은 직업이 우상입니다. 마찬가지로 놀러가기 위해서, 돈을 벌기 위해서, 출세를 위해서, 인기를 위해서 교회에 나오지 않는 분들도 우상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보다 우선되는 것이 있으면 그것이 우상인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 5장 21절에 “자녀들아 너희 자신을 지켜 우상에서 멀리하라”고 간곡히 부탁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상을 품고 있는 한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는 절대 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상은 암세포와 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제거하는 방법 이외에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이런 우상을 야곱은 다 거두어 세겜의 상수리나무에 완전히 파묻어 버리고 벧엘로 올라간 것입니다. 영적인 침체가 있는 사람은 ‘내 삶 가운데 하나님보다 우선하는 우상은 없는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3. 과거에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라.

셋째로 침체를 벗어나는 비결은 ‘과거에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를 기억하는 것’입니다. 과거에 하나님께서 어떤 은혜를 주셨는지 기억하고 감사하게 되면 다시 새로운 힘과 용기가 솟아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이런 교육의 방법을 쓰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7월 15일부터 일주일동안 초막절 혹은 장막절이라는 절기를 지킵니다. 장막절은 무성한 가지(종려나무가지, 시내 버들 등)를 이용해 엉성한 초막을 짓고 그 속에서 일주일동안 사는 것입니다. 좋은 집을 버리고 이 곳에서 사는 이유는 ‘광야 40년 동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생할 때 베풀어 주신 은혜를 잊지 말라’라는 의미에서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왕들에게 초막절을 꼭 지키라고 말씀하셨건만 이 말씀에 순종한 왕은 솔로몬 왕 한 사람밖에 없었습니다.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후에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70년 동안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돌아와 비로소 초막절을 지키기 시작한 것입니다.

  창세기 35장에서 가장 크게 느껴지는 분위기는 ‘야곱이 과거에 하나님께서 부어주신 은혜를 기억했다’는 것입니다. 2절과 3절을 봅시다. “야곱이 이에 자기 집 사람과 자기와 함께 한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 중의 이방 신상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케 하고 의복을 바꾸라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나의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나의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단을 쌓으려 하노라 하매” 지금 야곱은 하나님의 응답과, 하나님의 동행하심과, 하나님의 도우심을 새롭게 기억하고 있는 것입니다.

4. 현재 베푸시는 하나님의 축복을 신뢰하라.

넷째로 ‘현재 축복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신뢰하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복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어떤 분은 말하기를 ‘하나님은 내가 잘 하면 복 주시고 내가 잘못하면 때리시는 하나님이시다’라고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때리시면 벌써 지옥에 앉아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이 저지른 죄악에 대해 지금 징계를 내리신다면 이곳에 앉아 계실 분들은 한 분도 없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벌주시는 하나님이 아니신 것입니다. 다만 바른 길로 가게끔 권징하시는 것입니다. 이 때도 하나님께서는 복을 주시기 위해서 권징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받아야 될 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십자가에서 다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이제 하나님으로부터 새로운 축복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벧엘에 단을 쌓는 야곱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십니다. “야곱아! 나는 엘샤다이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다른 것 하나 없이 나만 소유하고 있으면 모든 것에서 충분하게 될 것이다.” ‘엘샤다이’라는 말은 ‘All sufficient God(모든 것이 충분한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또한 “네게서 왕들이 나오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 가나안 땅은 너와 네 후손에게 영영히 줄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니까 이제 야곱은 인생의 모든 슬픔을 다 감당하며 나가게 됩니다.

  창세기 35장은 야곱의 인생 가운데 가장 슬픈 장입니다. 야곱은 창세기 35장에서 어머니 리브가의 유모 드보라를 잃습니다. 유모를 잃고 상수리나무 밑에 장사하고 이름을 ‘알론바굿(the oak of weeping, 통곡의 상수리나무)’이라 짓습니다. 무엇보다 큰 슬픔은 사랑하는 아내 라헬을 잃은 것입니다. 라헬이 아이를 낳다 죽습니다. 그 아이의 이름을 ‘베노니(the son of my trouble, 내 고통의 아들)’라 짓고자 했으나 야곱은 ‘베냐민(the son of my right hand, 내 오른손의 아들)’이라고 짓습니다. 게다가 또 슬픈 일은 장자 르우벤이 자신의 첩 빌하와 통간을 한 일이 벌어집니다. 그래서 야곱은 르우벤의 장자권을 박탈해 버립니다. 그리고 늙은 아비 이삭이 나이 180세가 되어 소천하게 되고 야곱과 에서가 아비 이삭을 묻게 됩니다. 성경 어느 장도 창세기 35장처럼 슬픈 일이 한꺼번에 닥치는 장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이런 슬픔 중에서도 낙담하지 않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엘 샤다이가 나를 축복하셨다 내 후손을 축복하시고, 내 후손들 중에서 이스라엘의 왕이 나올 것이라 말씀하셨다. 그리고 이 땅을 영영히 나와 내 자손에게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으니 내가 이런 슬픔을 당할지라도 하나님의 은혜로 능히 감당할 수가 있다”하면서 이긴 줄로 믿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주목해 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야곱이 벧엘에 단을 쌓았다고 해서 야곱의 인생 가운데 어려운 일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이 어려움을 능히 감당하며 나갔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살면서 겪어야 될 일들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기도 하고, 고통을 당하기도 하는 슬픔을 겪습니다. 그러나 이런 슬픔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사랑해 주시고, 하나님이 용기와 능력을 주시면 우리는 능히 감당하며 나갈 수 있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되 독생자 예수를 대신 죽게 하시기까지 사랑하지 않으셨습니까! 그 사랑을 믿고 침체에서 벗어나게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론)

빛의 근원에서 멀어지면 어두워집니다. 이런 영적인 어두움의 현상 가운데 하나가 영적으로 침체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졌으면 조용히 하나님과 일대일의 시간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마음속에 있는 우상을 깨끗이 제거하시고 과거에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기억하시고 지금도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신뢰하며 사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벧엘의 하나님, 엘 벧엘이 크라코우의 보물입니다. 벧엘은 야곱이 축복을 누리는 최상의 장소입니다. 벧엘의 하나님께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것이 인간에게 참된 행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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