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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마십시오 (약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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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박춘수 목사

우리는 그저께 충격적인 뉴스를 대한 적이 있습니다.
한중학생이 18번에 걸쳐서 건물에 불을 질러서 경찰집계에 의하면 2억원 이상의 피해액을 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학교에서 왕따당하고 가정에서 무관심하게 내버려둔 것이 원인이었다고 합니다. 이 학생은 초등학교 때부터 반 친구들로부터 집단 따돌림을 당했다고 합니다. 왕따를 견디다 못한 이 중학생은 압박감에서 벗어나는 수단으로 주택가에 불을 지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집단 따돌림으로 받은 마음의 상처가 방화로 이어진 것입니다.중학교 진학 뒤에도 반 친구들의 따돌림은 수그러 들지 않았습니다.그럴 때마다 김 군의 불장난은 더 깊어갔습니다.기자가 “왜 불을 질렀느냐” 인터뷰를 하자 그는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얘들이 막 때리고 꿈에서도 계속 나와서 집에서도 무서웠습니다. 그래서 내가 생각만 하면 계속 불을 지르게 된 것입니다" 결국 친구들에 의해서 무시당하고 왕따당한 상처를 불을 지름으로써 해소를 한 것입니다.
학교 속에서 왕따의 문제는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것은 학교 속에 학생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교회 속에서도 이런 왕따의 문제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 속에 야고보기자가 말씀을 전하고 있는 교회에도 이런 따돌림의 문제가 있었습니다. 야고보는 교회 속의 이런 문제를 솔직하게 직면하고 있습니다. 숨기거나 위장하지 않고 이 문제를 꺼내놓는 것은 이것이 바로 해결되어 교회가 건강하게 교제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 교회에는 이런 따돌림의 문제가 없습니까? 혹시 우리는 끼리 끼리 의도적으로 만나면서 다른 사람을 의도적으로 따돌림시키는 일을 하지 않았습니까? 안따깝게도 저는 새가족들에게 우리교회 이야기를 종종 들을 기회가 있는데 이런 말을 합니다. “너무 끼리 끼리 모이는 것같습니다”. “너무 파고들어가기 어려운 것같아요”라고 말을 종종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 교회뿐만이 아니라 역사가 있는 교회는 이런 분위기와 문제가 대부분 있습니다.
왜 이런 문제가 우리에게 일어나는 것입니까?

우리는 사람을 판단합니다. 우리의 눈과 마음으로 사람을 판단하면서 어떤 사람은 무시하고 어떤 사람은 친구로 삼기도 합니다. 내 성격에 맞는 사람 내 마음에 맞는 사람만 취하고 그렇지 않는 사람은 멀리합니다. 우리가 사람을 외모로 취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교회 밖에서는 더욱 심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사람들이 모인 교회 안에서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때로 돈이 없다는 이유로 사람을 무시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외모가 이상하다고 무시하기도 합니다. 특히 이 세상에서 우리는 돈이 없다는 이유로 사람을 사람대접하지 않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제가 외국에 가면서 비행기를 탔는데 보니까 돈에 따라 자리가 달라지더라구요. 돈을 조금내고 탄 이코노믹석은 불편합니다. 돈을 조금 내고 탄 사람들은 소음이 심한 뒷자리에 나리가 좁습니다. 같은 비행기를 탔는데 돈에 따라 사람을 다르게 대하는 것을 보면서 좀 기분이 나빳던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돈을 많이 내고 타는 로얄석이 있습니다. 그 자리는 일단 자리가 소음이 덜한 앞자립니다. 그리고 자리가 넓습니다. 모든 서비스가 특별하게 대접을 합니다.

오늘 교회 안에서 이런 차별이 있을 수 있습니다.초대교회 속에 이런 차별로 인해서 교회가 아픔이 있었습니다. 이런 아픔과 문제를 우리가 겪으면서 다시한번 우리는 교회 속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교제를 회복해야 합니다. 과연 우리는 어떻게 사람을 만나야 합니까?


1. 사람을 믿음으로 만나야 합니다.

1절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너희가 받았으니 사라을 외모로 취하지 말라
주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만나주셨는가? 어떻게 우리를 받아주셨는가? 생각하여 보십시오. 무조건적으로 우리를 선택하시고 받아주셨습니다. 어떤 만남의 커트라인이 있지 않았습니다. 성경의 예수님께서는 그당시 유대사회에서 죄인이라고 만나주지 않았던 세리마태를 만나주시고 제자삼아주셨습니다. 무식하고 가난한 어부였던 베드로와 같은 사람들을 받아주시고 만나주셨습니다. 지금도 우리 주님이 우리를 만나주실때에는 커트라인이 없습니다. 주님은 죄인들을 만나주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인생을 만나주십니다. 돈이 있고 부자이고 명예있는 사람만 만나주신다면 오늘 우리 중에 얼마나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까? 우리가 주님을 이렇게 만났다면 이제 우리가 다른 사람을 만날때에도 조건없이 주님 안에서 믿음으로 만나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돈 때문에 만나고 학교 때문에 만나고 사업 때문에 만나고 취미 때문에 만납니다.그래서 끼리끼리 모인다라고 합니다. 그러나 교회는 다릅니다. 교회의 만남은 사회적인 신분과 취미와 특기에 따라 만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만난 근거는 예수님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교회안에서는 세상에서 갖고 있는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우리가 목욕탕에 들어갈 때 모든 옷을 다 벗고 들어갑니다. 교회안으로 들어오실때에도 이런 세상의 모든 것들을 다 내려놓아야 합니다. 내가 배운 세상의 학교의 졸업장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내가 직장에서 부장이나 사장이라는 계급장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내가 통장이 몇 개되고 집이 몇채되는 부자라는 자부심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오직 예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우리는 서로 만나야 합니다.

마틴 부버라고 하는 사람이 쓴 베스트 셀러 중에 ‘나와 너’라고 하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에서 저자는 오늘날 사람들이 나와 너 인간대 인간의 만남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나와 너의 만남이 아니라 나와 그것의 만남이 된다는 것입니다. 돈 지식 명예와 같은 그것들로 인해서 우리의 만남들이 변질되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교회안에서 사람을 만나거나 사귈때 세상적인 기준이 들어와서는 안됩니다.
만일 교회당안에 금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왔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우리가 귀빈대접을 하고 교회에서 그분은 특별하게 대접하여서는 안됩니다.만일 교회당에 더러운 옷을 입고 별로 돈이 없는 가난한 사람들이 들어올때 들어오든지 말든지 무시해서는 안됩니다. 세상에서도 차별당하고 때로는 무시당하면서 사는 것이 힘든데 교회까지 만약에 그런 곳이라고 한다면 여러분 이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는 것입니다.
혹시 우리 중에 교회에서 귀빈대접을 받으려고 생각하시는 분이 있습니까? 돈이 있으니까 지식이 있으니까 명예가 있으니까 그런 마음 생각을 갖아서는 안됩니다.

여러분 교회에서는 우리 모두가 VIP입니다.
만약에 사람이 차별대우받는다고 생각하여 보십시오.그러면 상처받습니다. 돈이 없다고 무시하고 외모가 못생겼다고 무시하고 이런 저런 이유로 무시하면 상처받습니다. 그러므로 교회 속에서 먼저 그리스도인된 우리가 매사에 교회 속에서 만남을 갖든지 말을 하든히 행동을 하든지 조심해야 합니다.
제가 처음 부임하여 시무하던 면소재지의 30여명 모이는 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한 권사님이 계셨습니다. 그 교회를 그 시어머니가 개척하시고 줄곳 그분이 알게 모르게 물질을 많이 헌금하시면서 교회를 주도적으로 세워가시던 분이셨습니다. 이분은 남편이 집사님이신데 광업소의 사장을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그 집 맞은편에 같은 교회에 집사님이 살고 계셨습니다. 그 맞은편 집에 살고 계시는 집사님은 항상 그 권사님에게 상처를 많이 받으셨습니다. 사소한것같지만 2가지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는 교회에 오셔서 헌금을 하실때에 지갑에서 빳빳한 돈으로 꺼내어서 일일이 세면서 봉투에 넣는다는 것입니다. 자기는 헌금하고 싶어도 헌금하지 못하는데 저렇게 교회당에 와서 저렇게 돈을 직접 보란 듯이 세어서 헌금을 해야 하는가? 그것이 상처가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다음은 새한복이나 새옷을 입고 교회에 와서는 "이옷은 얼마짜리고 누가 사준것이고 어디에서 샀다“라고 자랑하는 것이 상처가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조용히 권사님에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헌금은 집에서 준비하여 오시고 교회의 만남 시간에는 옷자랑 집 자랑 가구자랑 이런 것들은 하지 말아주십시오”라고 말을 드렸습니다. 감사한 것은 권사님이 어떤 나쁜의도로 그런 것은 없엇기 때문에 즉시 고쳐주었습니다. 먼저 주님을 알고 주님을 체험한 주님의 백성들은 주님처럼 약자들을 배려하고 생각하여 주어야 합니다.

여러분 교회 속에서 우리가 만날 때 세상 만남과는 달라야 합니다.
교회 속에서 어떤 만남을 갖고 있습니까? 오직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만나십니오.어떤 사람을 중심으로 파가 형성되고 당이 형성되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우리가 만나는 목적도 주님 때문에 만나는 생산적인 만남 주님 때문에 이루어지는 건전한 교제가 되기를 바랍니다.믿음의 의미있는 만남을 갖으시기 바랍니다. 내가 믿음으로 살아가는 이야기,내가 믿음으로 전도한 이야기,우리가정에 믿음으로 승리하거나 살아가는 이야기가 있습니까? 오직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 중심의 믿음의 만남으로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2. 사람을 공평으로 대해야 합니다. 5절
하나님은 공평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세상에서 물질적으로 가난한 사람을 택하여 믿음에 부자되게 하십니다. 세상에서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을 하나님이 사랑하사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하십니다.
고전1:27-29을 보십시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라고 하십니다.
왜 이렇게 하나님께서 약한 자들 없는 자들 가난한 사람들을 구원하십니까? 아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고 합니다.
복음 성가 중에 ‘나’라고 하는 노래가 있습니다.
송명희 시인이 지은 시입니다.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나 남에게 있는 건강있지 않으나 나 남이 없는 것 있으니
나 남이 못본 것을 보았고 나 남이 듣지 못한 음성 들었고
나 남이 받지 못한 사랑 받았네 나 남이 모르는 것 깨달았네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가진 것 없지만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없는 것 갖게 하셨네

하나님이 공평하심을 믿으십니까?
정말 우리가 이 말씀을 믿는다면 모든 사람을 공평하게 대하여야 합니다.여기 공평하게 대한다는 것은 저 사람도 하나님이 사랑하시고 하나님이 복을 주시는 귀한 한 인격체로 우리가 존귀하게 대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저 사람이 나보다 성경을 모를 수 있습니다. 찬송을 좀 못부를 수 있습니다. 또 저 사람이 나보다 돈을 좀 덜 가질 수 있습니다. 나보다 외모가 못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 사람에게는 또 하나님이 더 그 사람이 남이 없는 것을 더 주실 수 있습니다. 아름다운 마음이 더 있을 수 있습니다. 성실함이 더 있을 수 있습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도록 우리에게 주신 특별한 것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종종 우리는 삶에서 하나님이 공평하지 못하다라고 생각이 드는 경우가 있습니다. 나는 다른 사람에 비해서 가치없는 인생이라고 느끼는 경우가 있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잘하는 것이 없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왜 하나님은 나의 키를 이렇게 작게 하셨을까? 나의 얼굴을 이렇게 못생기게 하셨을까? 나의 아이큐를 이렇게 낮게 하셨을까? 손재주가 없을까? 노래를 못부를까? 그렇게 열등감을 갖는 분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특별히 나면서 장애인으로 세상에 태어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럴 경우에 그 마음에 하나님에 대한 원망함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요한복음 9장에 보면 날때부터 소경된 사람이 있었습니다. 제자들이 보고 주님에게 말씀합니다.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뉘죄때문입니까? 부모의 죄때문입니까? 자기 죄 때문입니까? 그 부모죄때문입니까?”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함이니라”고 하십니다. 비록 장애가 있어서 불편하지만 하나님은 그 사람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십니다.
우리 주님은 이땅에 오셔서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셨습니다. 모두가 하나되게 하셨습니다.그 차별의 벽 분리의 벽을 무너뜨리시고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하나되게 하셨습니다.

공평하신 하나님을 믿는다면 나도 사람을 공평하게 대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우리의 판단으로 사람을 무시하거나 우리의 판단으로 함부로 사람을 대하는 것을 싫어하십니다.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 믿음으로 행하지 않고 나의 의와 판단으로 행하는 것은 믿음과 행함이 다른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교회 속에서 우리에게 사람을 대할 때 정말 필요한 태도가 무엇입니까?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셔야 합니다.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그대로 받아주셨습니다. 누가복음 15장에 보면 아버지는 탕자를 그대로 받아주셨습니다. 더러운 옷 냄새나는 몸 그대로 받아주셨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이땅에서 세리나 죄인들을 그대로 받아주셨습니다. 무겁고 수거의 짐을 진 사람들을 그대로 받아주셨습니다.교회는 이 세상에서 죄인들이 오는 곳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사람들이 오는 곳입니다. 아무 조건없이 모든 사람들이 올 수 있도록 받아주셔야 합니다. 주님께서 사람들을 받아주실때에 회개하고 변화받은 사람만 받아주셨습니까? 아닙니다. 그냥 받아주셨습니다. 그리고 났을때 그 안에서 회개의 변화가 일어났던 것을 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가 자꾸 사람을 판단하여서 저 사람은 괜찮을 것같으니까 받아들이고 저 사람은 안될 것이라고 생각하여서 조건적으로 받아들이면 안됩니다. 모든 사람을 그냥 받아들여야 합니다.

가끔 보면 교회 중에서 이런 교회들이 있습니다. 어떤 교회는 의사 변호사 판사같은 지성인들만 많이 모인 교회가 있습니다. 어떤 교회는 또 젊은이들만 대부분이 모인 교회가 있습니다. 어떤 교회는 나이든 사람만 모인 교회가 있습니다. 여러분 교회는 모든 사람들이 다 올 수 있어야 합니다. 나이를 떠나서 지식을 떠나서 돈을 떠나서 모든 사람들이 올 수 있는 모임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가 비본질적인 것으로 사람을 판단해서 왕땅시켜서는 안됩니다.
이미 초대교회에도 이런 문제가 많았습니다. 로마서14장에 보면 음식을 먹는 문제로 판단했습니다. 고기만 먹을 것이냐 채소를 먹을 것이야의 문제로 싸웠습니다. 날을 지키는 문제로 싸웠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비본질적인 것은 항상 다양한 의견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문제로 싸우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런문제로 상대방을 판단하고 내가 옳다라고 주장하는 것이 옳지 않습니다. 그런데 안따깝게도 우리나라 교회는 이런 것이 너무 많이 발달되어 있습니다.
성 어거스틴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본질적인 것에는 항상 일치를 그러나 비본질적인 것에는 항상 관용을 그리고 모든 것을 사랑으로”
어른들의 입장에서 요즘 젊은 사람들의 머리모양 옷차람 이해가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찬송부르는 것들이 이해되지 않습니다. 분명히 교회 속에 세대차기 납니다. 다른 것이 있을 수 있습니다.그러나 이때 교회가 “머리가 그게 뭐야 그런 머리를 하려면 우리 교회 나오지 말아”“옷차림이 그게 뭐야 그런 옷차림이라면 우리 교회에 안되”라고 해서는 안됩니다. 일단 받아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차츰 말씀을 통해서 가르치고 권하여야 합니다.주님의 인격으로 우리가 사람을 대하여야 합니다. 공평하게 언제나 일정하게 우리가 사람을 대하는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3. 사람을 사랑으로 대해야 합니다.

8절 “너희가 만일 경에 기록한 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몸과 같이 하라 하신 최고한 법을 지키면 잘하는 것이거니와 만일 너희가 외모로 사람을 취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율법이 너희를 범죄자로 정하리라”라고 합니다.
진정한 믿음의 성도가 어떤 사람입니까? 정말 좋은 교회 건강한 교회는 어떤 교회입니까?
바로 주님의 사랑이 있는 사람이요 교회인 것입니다. 그 사랑은 바로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어떤 사랑을 베푸셨습니까? 그리스도인의 사랑은 바로 주님과 같은 사랑이 나타나야 합니다.
우선은 주님은 이익이 되지 않는 사람까지도 사랑하는 사랑입니다.주님께서 자기를 팔 사람 가롯유다를 사랑하는 것을 보면 주님의 사랑을 알 수 있다고 여겨집니다. 주님 편에서 가롯유다는 주님의 형제이고 제자이지만 배신자요 원수입니다. 주님은 네이웃을 네몸같이 사랑하라고 하시면서 그 이웃이 원수이고 배신자이지만 끝까지 사랑을 실천하셨습니다. 주님의 12명의 제자들을 끝까지 차별없이 사랑으로 대하시었습니다. 성경 요한복음 13장에 보면 주님이 마지막 만찬을 나누면서 제자들에게 수건으로 발을 씻겨주시는 모습이 소개됩니다. 그중에 가롯유다고 있었습니다. 자기를 따르지 않고 자기를 배신하고 넘겨줄 사람이라는 것을 주님은 알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그를 사랑하셨습니다. 자기에게 도움이 되지 않고 자기에게 이익이 되지 않아도 그 사람 그 자체를 받아주셨습니다. 무조건적인 사랑이셧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웃을 사랑할 때 우리는 어떤 모습입니까? 조건적으로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 사람이 나에게 득이 되면 합니다. 저 사람이 나에게 유익을 주는 사람이면 만납니다.그러나 나에게 유익이 되지 않는 사람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이라면 만나지 않습니다. 그런데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이렇게 사람을 조건으로 만나는 사람은 언젠가 그 조건이 깨어지면 결국 헤어지고 배신합니다. 인간관계는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것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다음에 그리스도인의 사랑은 먼저 베푸는 사랑이 되어야 합니다.
누구든지 사람은 사랑받기를 원합니다. 어린아이도 어른도 남자이든 여자이든 인간은 사랑받기를 원합니다.그런데 문제는 모든 사람이 받기를 원한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모두가 ‘다오 다오’하면서 사랑을 갈급해 합니다. 그래서 이 세상 속에서 대부분의 문제는 사랑받지 못하는데서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누구입니까?바로 하나님께 사랑을 받은 자들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모든 죄를 조건없이 용서하여 주었습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행함이 아닌 믿음으로 주님을 마음에 영접하는자마다 주님의 생명을 주셨습니다. 누가 사랑할 수 있는가하면 주님의 생명이 있는 사람이 사랑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고 못하고는 어떤 인간의 의지와 노력의 문제가 아닙니다. 주님의 생명이 있는 사람은 사랑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사랑하라”명령하셨기 때문에 주님의 사람들은 반드시 서로 사랑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인들의 사랑은 감정에 따른 사랑이 아니기 때문에 감정이 따르지 않아도 실천해야 할 약속입니다. 요한일서4:7-8에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사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니라”고 합니다.
왜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하는가? 사랑은 바로 하나님께 속하여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마다 하나님께 속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그 마음에 사랑의 생명을 심어놓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깨로서 난자마다 이 생명이 있고 이 사랑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신앙 생활을 하다보면 꼭 가시같은 사람이 있고 나와 맞지 않는사람이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생각하기를 왜 많고 많은 사람들중에 저런 사람을 나에게 허락하엿는가? 피하여 더 고상하고 아름다운 사람을 찾으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은 우리의 형편과 처지를 아시고 그 모든 사람을 사랑하라고 우리 주변에 두었습니다. 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지금 여기에서 사랑하지 못하면서 장차 나중에 누구를 사랑할 수 있습니까? “다른 사람은 다 사랑하여도 저 사람만큼은 안됩니다 주님”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은 누구든지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만약에 우리가 사랑을 실천하지 않고 주님 앞에 그대로 갈 경우 어떻게 될까요?13절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고 합니다. 물론 이 심판은 지옥에 가는 심판은 아닙니다. 그러나 사랑을 순종하지 않을때 우리는 분명히 주님 앞에 갈 때 책망받고 보응을 받을 것입니다.

미국의 16대 대통령이던 링컨은 자기를 공격하는 자들을 사랑으로 대했습니다. 그러자 참모들이 말을 했습니다.“각하 저는 각하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각하는 적에게 너무 친절히 대하십니다.제가 보기에 그들은 반드시 이겨야 하는 대상인데 말입니다”. 그러자 링컨이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친구여 내가 그들을 친구로 만들었을때 바로 그때가 그들은 이기는 것이라네”
미움이 있습니까? 사랑만이 미움을 이길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마다 결국은 세상에서 참 승리를 경험할 것입니다.
하나님교회 속에 사람을 외모로 차별하거나 따돌리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되어서 서로에게 아름다운 만남의 의미가 있으시기를 그래서 건강한 주님의 교회로 세워 하나님께 영광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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