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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계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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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석기현 목사

어느 목사든지 한 교회를 담임하게 되면, 어찌하든지 그 교회를 좋은 교회, 훌륭한 교회로 만들고 싶어 하는 마음은 꼭 같을 것입니다. 물론 교회의 장로나 집사나 권사나 성도들 중에서도 자기 교회를 지극히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들이 지극한 사람들이 많이 있겠지만, 적어도 그것이 목사가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에는 결코 따라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목사보다도 훨씬 더 교회를 아끼는 분이 계십니다. 바로 교회의 주인되시고 머리되신, 그 교회를 세우시기 위하여 당신의 피로 값 주고 사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런 예수님이시니 당신의 교회들이 정말 좋은 교회, 훌륭한 교회가 되기 위한 방법 역시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계실 것이 분명합니다. 바로 그런 내용의 말씀들이 성경의 마지막 권인 요한계시록 첫 세 장들 속에 아주 구체적으로 집약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그 각각 다른 말씀들 가운데 단 한 줄, 그 일곱 교회들 한 교회 한 교회마다 꼭 같이 내리신 단 한 줄의 공통적인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라는 저 유명한 구절입니다. 이것이 계속되는 반복의 말씀이라 해서, 예수님께서 별 의미 없이 그저 무슨 상용어구처럼, 무슨 형식적인 끝맺음 말씀처럼 하신 것은 결코 아닐 것입니다. 다른 말씀들은 일곱 교회들마다 다 다르게 하셨는데 유독 이 말씀만은 꼭 같이 하신 이유는, 그만큼 이 말씀이 요긴하고 어느 교회에나 공통적으로 적용될 가장 근본적인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문제 많은 교회가 자기 개혁을 하고 좋은 교회로 탈바꿈하기 위해서도 이 말씀이 적용되는 것이고, 비교적 모범적인 교회가 더 좋은 교회로 성장하기 위해서도 역시 꼭 같은 이 말씀이 적용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유독 이 말씀만 일곱 번이나 꼭 같이 반복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우리의 귀에 익은, 하지만 어쩌면 너무 귀에 익은 까닭에 무심하게 지나쳐 버리기도 쉬운, 그러나 결코 가벼운 말씀일 리가 없는 이 구절을 함께 상고하면서, 경향교회가 더욱 ‘좋은 교회’ ‘훌륭한 교회’가 되기 위하여 주님께서 주시는 가르침을 받고자 합니다. ‘귀 있는 사람은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어야 한다.’는 이 말씀은 과연 어떤 뜻입니까?

1. 우리는 말씀의 주체가 바로 하나님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바로 「성령이」라는 단어가 이 말씀의 주체가 누구이신지를 명백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 다시 말해서 계시 사역의 최고 정점은 물론 말씀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화육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성자 하나님께서 승천하신 이후부터는, 성령 하나님께서 그 계시 사역을 주도하고 계십니다. 다른 사람 아닌, 예수님께서 그렇게 선언하셨기 때문입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요 14:16)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 승천 이후 ‘영원토록’ 즉 오늘 이 시대까지 포함되는 이 인류의 남은 모든 역사가 다 성령 시대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성령께서 하실 제일 중요한 것이 무슨 사역이 될 것인지조차 분명히 가르쳐 주셨습니다. 바로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요 14:26)고 하신 말씀입니다. ‘모든 것을 가르치신다’는 말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가르치신다는 뜻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할 것이다.’란 성령께서 특별히 그 하나님 계시의 정점이요 주제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것을 깨우치게 해 주실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성령께서 하시는 일의 요점이 간단하게 정의됩니다. 성경 말씀을 깨닫게 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만드는 바로 이것이 성령의 주요 사역이요 가장 큰 사역인 것입니다.
오실 보혜사 성령께서 그런 일을 하실 것이라고 예언하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셨으니, 여기 요한계시록에서도 꼭 같은 말씀을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계시록은 예수님께서 이미 승천하신 이후에, 즉 이미 성령 시대가 시작된 이후에 주신 특별계시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라고 하신 것입니다. 당신이 친히 사도 요한에게 환상을 통한 계시를 주시면서도, ‘내가’라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성령이 하시는 말씀을 들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선 ‘성령’이 ‘하나님’이심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성령은 무슨 놀라운 이적 따위를 사람들에게 보여 주기 위하여 목사가 필요할 때마다 마음대로 부를 수 있는, 무당이 굿할 때 부르는 귀신같은 존재가 아닙니다. 소위 무슨 강신술사들 마냥 책상을 공중에 띄웠다가 내렸다가 하는 따위의 장난을 시킬 수 있는 존재가 결코 아닙니다. 성령이 목사 폐 속에 들어 있다가 그 목사가 ‘쉬’하고 불어 내면 할 수 없이 밖으로 튀어나와야 하는 그런 가련한 존재도 결코 아닌 것입니다.
성령은 엄연히 하나님이십니다. 성부와 성자와 꼭 같은 ‘일체’의 하나님이십니다. 아니 하나님의 삼위 중에서도 오늘 날 현재에 우리에게 가장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하나님이십니다. 구약은 성부 하나님의 시대, 신약은 성자 하나님의 시대, 그 이후 성경이 완성된 후 지금까지는 ‘보혜사 성령 하나님’의 시대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런 ‘성령이 충만한 교회’란 바로 어떤 교회입니까? 두말할 여지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는 교회’가 바로 성령 충만한 교회입니다. 안수 기도를 받으면 뒤로 벌렁 나자빠지고, 불치의 병이 기적적으로 나았다고 껑충껑충 뛰는 곳이 성령 충만한 자리가 결코 아닙니다. 무슨 소리인지 남들은 도무지 알 수 없는 소리를 지껄이는 것, 아니면 꼭 같은 단어를 무지무지 빠르게 끝도 없이 반복하는 것 - 사실 따지고 보면 그게 바로 중들이 하는 소위 ‘화두’라는 것과 비슷한 것 아니겠습니까? - 그런 방언이란 것을 할 줄 알아야 성령 제대로 받은 사람이 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하나님 말씀을 듣고, ‘나 같은 죄인이 분명히 용서 받고 지옥 가지 않고 천당 가게 되었구나!’라고 확신이 되는 바로 그 순간 그 심령의 좌소야말로 성령이 최고로 충만한 자리입니다. 우리가 이 십자가 대속, 영생 구원의 복음의 말씀을 듣고 너무너무 기뻐서 세상 다른 사람들에게 전도하지 않고는 못 배길 터질 것 같은 심령이 되면, 그 사람이야말로 적어도 방언하는 사람보다는 몇 배, 몇 십 배의 성령 충만함을 받은 성도인 것입니다. 오직 ‘성령이 하시는 말씀’을 잘 들을 줄 아는 귀가 뚫려서, 선포되는 말씀마다 바로 하나님께서 친히 하시는 말씀인 줄을 믿고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우리는 말씀의 매개체가 지상교회에 세우신 사자(使者)들인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교회들에게 하시는」이라는 단어는 그 말씀의 매개체인 지상 교회와 그 사역자들을 가리킵니다.
요한계시록에서 ‘성령’께서 ‘귀 있는 자’들에게 말씀하실 때, 그 사이에 반드시 통과하게 되어 있는 중간 단계가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교회’들이었습니다.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라고 했을 때, 그 ‘교회들에게’란 말은 그 전하는 말씀의 최종 목적지를 가리키는 말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말씀이 전달되어야 할 최종 대상은 ‘귀 있는 자’ 즉 각 개인 성도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기 ‘교회들에게 하시는’이란 말은, ‘교회가 들어야 할’이란 뜻이라기보다는 ‘교회를 통하여 성도들에게 전하여 주는’이라는 뜻으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바로 이런 의미에서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단체입니다. 교회는 ‘이것은 성경이 아니다.’라고 빼내거나, ‘이것은 성경에 첨부해야 한다.’라고 하든지, 혹은 ‘이것은 성경과 동일한 권위가 있는 말이다.’라고 말씀을 가감할 권리는 전혀 없습니다. 오직 성령께서 친히 쓰시고 친히 모으신 그 말씀을 맡아서 사람을 가르치고 세상 앞에 선포해야 할 사명만 교회가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개혁주의 교회의 삼 표식’에 제일 처음 나오는 것이 바로 ‘말씀 선포’가 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그것이 참된 교회가 해야 할 최고의 사명이요 주된 기능이기 때문입니다.
계시록에 보면 이 ‘교회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말씀 사역을 또 다른 말로써 표현할 때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교회의 사자(使者)’라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일곱 교회에 편지를 보내실 때마다 ‘아무아무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이라고 시작하셨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자’란 바로 각 교회에서 ‘말씀 전달의 사명을 맡은 사자’, 즉 당시로는 감독이고 오늘날로는 목사를 두고 한 말씀임에 틀림없습니다.
적어도 예수님께서 교회를 말씀하실 때에는 그 교회에 파송하신 당신의 사자를 아주 중히 여기셨습니다. 계시록 1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환상 중에 사도 요한에게 나타나실 때에 ‘일곱 별’을 그 손에 드시고 ‘일곱 촛대’ 사이로 다니시는 분으로 묘사되었습니다. 그리고 1장 20절에 보면 그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라고 또한 친히 밝히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께서 친히 교회의 사자들을 당신의 오른손에 드시고 사용하셔서 이 지상의 교회들을 주장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그처럼 뚜렷하고도 멋진 비디오 자료까지 동원하시면서 보여 주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교회들을 통하여 하시는’ 말씀이란, 보다 구체적으로는 성령이 ‘교회에서 성경 말씀을 선포하는 목사들을 통하여’ 하시는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제가 여러분 앞에서 목사 권위를 더 세워 보고자 하는 말이 결코 아닙니다. 성경이 정확하게 선포하는 사실이요 예수님께서 친히 확증하시고 그림처럼 보여 주시는 사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지상교회들에 부분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해서 교회 자체를 무시해서는 아니 됩니다. 왜냐하면 교회를 통하지 않고는, 은혜 생활도 구원도 체험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말씀 듣는 것이 구원의 길이요 말씀 따르는 것이 은혜 생활인데, 성령께서 교회들을 통하여 말씀을 선포하신다면, 어떻게 교회 밖에 구원이 있을 수 있다는 말입니까? 오직 성경만이 하나님 계시의 통신 언어요 교회만이 하나님 계시의 통신 기관이며 목사의 설교가 바로 오늘도 ‘교회를 통하여 하시는 하나님의 공적 선포’입니다.
‘목사님, 믿음으로 구원 받는다는데 그렇다면 교회 안 나와도 예수만 믿으면 구원 받지 않습니까?’라는 말은 아주 틀린 말입니다. 왜냐하면 예수 바로 믿은 사람은 반드시 교회 나오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는 고백이 베드로의 입에서 나온 직후, 예수님께서는 바로 그 신앙고백의 반석 위에 당신의 교회를 세우겠다고 곧바로 이어서 선포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에 대하여 바른 신앙 고백을 한 사람은 바로 그 자리에서 즉시 이 사단의 왕국에서 끌어내어 당신의 몸 되신 교회의 지체로 찰싹 접붙여 버리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예수는 믿지만 교회는 반대한다.’라는 사람은, 사실은 예수님을 바로 믿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초대교회 성도들은 신앙을 포기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저주한 배교자들을 가리켜 ‘유산된 태아처럼 교회의 모태를 떠난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는 것과 교회를 떠나는 것은 바로 동의어나 마찬가지였던 것입니다. 구원의 주인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늘도 오직 ‘교회를 통하여, 세우신 사자를 통하여’ 그 복음을 선포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바로 깨닫고 틀림없이 인정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 우리는 그 말씀의 최종 객체가 바로 각 개인 성도임을 자각해야 합니다.

「귀 있는 자는… 말씀을 들을지어다」라는 말이, 그 말씀 역사의 최종 목적지가 바로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의 영혼인 것을 보여 줍니다. 성령이 주체가 되시고, 교회가 매개체가 되는 이 말씀 역사의 최종 단계, 최종 대상, 최종 객체가 바로 각 성도들, 즉 ‘귀 있는 자’들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롬 10:17)라고 말씀했듯이, 모든 신앙생활의 첫 걸음이 바로 ‘들음’입니다. 우리는 보고 믿지 않습니다. 만지고 겪어 보아서 믿게 되는 것도 아닙니다. 오늘날 성령 시대에서 한 개인이 믿음에 이르는 유일한 정로는 오직 복음의 말씀을 ‘들음’에서 그 첫 걸음이 시작됩니다.
물론 현실적으로는 다른 방법으로 신앙의 길에 들어서게 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비록 다른 동기로 시작하더라도 결국에 진짜 믿음을 얻고 본격적인 신자가 되기 위해서는 ‘말씀을 듣는’ 이 길 외에 다른 어떤 변칙은 결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리로 사실 그 첫 한 발짝을 잘못 디디면 끝내 엉뚱한 길로 가기 쉬운 법입니다. 처음부터 말씀 통해 믿음 가지지 못하고 다른 변칙적인 방법으로 신앙생활 시작한 교인은, 평생 기형아적인 신앙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항상 불안한 교인, 항상 문젯거리 교인이 되기 십상인 것입니다.
흔히 우리는 ‘믿음 있다 하면서도 행동이 따르지 않는 기독교인 운운’ 하는 비판을 자주 듣게 됩니다. 하지만 그런 비판을 받게 되는 교인의 진짜 문제점은, ‘행동이 따르지 않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믿음이 있다고 하는’ 그 자체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행동이 따르지 않는 것은 애당초 그 믿음부터가 잘못되어 있어서 그런 것이지, ‘믿음은 좋은데 행동은 시원치 않다.’라는 말은 결코 성립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믿음이 그처럼 잘못되어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바로 바른 믿음으로 이끌어 주는 첫 걸음, ‘듣는’ 과정에서부터 잘못 나가 있기 때문입니다. 아까 인용했던 대로 ‘믿음은 (어디까지나) 들음에서 나는 것’입니다. 일단 바로 들어야 그 다음에 바른 믿음을 가지게 되고 그런 바른 믿음이 있어야 거기에 행함이 일치되어 따라 오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자신은 ‘들었다’고 생각해도 실상은 한 마디도 듣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성경 한 단어 읽으면 그 문장 채 끝나기도 전에 내 생각이 가로막고 나오고, 목사의 설교 한 마디 듣고 나면 나머지 설교 다 듣기도 전에 벌써 내 속에 반발하는 반응이 먼저 생기고 한다면, 결코 들은 것이 아닙니다. 이미 자기 생각, 선입관, 자기 지혜, 자기 고집으로 꽉 차 있는 사람의 머리 속에는, 그 들리는 말씀이 그저 귓가에서만 잠시 맴돌 뿐 한 마디도 그 마음 중심에는 들어가지 않는 것입니다.
듣는 것보다 손발이 앞서 나가는 것, 말씀 듣고 얻는 믿음에 따라 행하지 않고 그냥 은혜 받았다고 행함으로 직통하는 것 역시 문제가 됩니다. 정말 몸만 설치는 사람, 믿음 없이 열심만 내는 사람은 결국 믿음도 없이 그저 행함만 있으면 구원 받을 수 있는 것으로 착각하는 길로 가기 마련인 것입니다.
설교 준비하는 목사 편에서 보면, 말씀 전하는 것보다 그냥 듣는 쪽이 훨씬 쉬워 보입니다. 하지만 일상 대화에서 보면, 우리 모두는 오히려 말 하는 것이 더 쉽고 잘 듣는 것이 훨씬 더 어렵습니다. 내게 말할 기회가 안 돌아 오면 입이 근질근질하지만, 남이 하는 말을 끝까지 주의 깊게 잘 들어 주는 것을 더 잘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입니다. 그런 본성이 우리 누구에게나 다 있으니, 하나님 말씀 들을 때에야 오죽하겠습니까?
그러니 정말이지 우리는 ‘잘 들어야’ 합니다. 그냥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영으로, 온 정성과 힘을 다하여 똑바로 들어야 합니다. 성령께서 하시는 말씀, 교회를 통하여, 기록된 성경 말씀대로 선포하는 목사의 입을 통하여 전하시는 말씀을 ‘귀 담아 잘 듣는 것’, 바로 이것이 예수님께서 좋은 교회를 세울 좋은 신자들을 만드시는 방법인 줄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듣는 자들’에게 약속된 사실이 요한계시록 2장 7, 11, 17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거기에 보면 ‘이기는 자에게는 이러이러한 상급을 줄 것이다’라고, ‘이기는 교회’ 대신에 ‘이기는 자’라고 하셨습니다. ‘이기는 한 사람 한 사람’ 즉 개인 성도에게 주어진 약속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약속의 초점은, 그 세 절들에서 표현은 각각 다르지만, 바로 ‘천국에서 영생하는 구원’ 이 한 가지로 동일합니다. 즉 이 세상에서 성경 말씀을 듣고 신앙 생활하는 것은 교회를 통하여서만 이루어지는 것이지만, 마지막 천당 구원은 어디까지나 개인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잘 듣고 구원의 확신을 가진 성도들이 모이는 교회가 되어야 만이 실로 주님께서 원하시는 훌륭한 교회가 세워질 수 있습니다. 또 그런 좋은 교회가 되어야 만이 그 교회 교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끝내 개인 구원을 받게 될 참된 신앙을 제대로 배우고 익히고 지키고 발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다 이 경향교회를 정말 내용이 알찬 교회, 정말 정이 가고 사랑을 쏟을 수밖에 없게 되는 교회, 정말 귀하게 여겨지고 존중되는 교회로 세우고 싶지 않습니까? 정말 남들 앞에 내가 경향교회 교인이라는 사실이 자랑이 될 수 있는 교회, 다른 문제 많고 시험 많은 교회에서 상하고 다친 교인들이 우리 교회에 왔을 때 ‘아, 정말 교회다운 교회란 이런 것이구나, 내가 이 교회에서는 정말 평안하고 은혜롭게 신앙 생활할 수 있겠다.’는 안도감이 절로 들 수 있는 교회로 만들고 싶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 오늘 그 방법을 친히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이 경향교회가 정말 이 시대에 조국과 세계를 위하여 크게 쓰일 좋은 교회, 훌륭한 교회가 되기 위하여 가장 필요한 개인 기본기는 바로 경향교회의 각 성도들이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듣는’ 이것뿐입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라는 이 말씀 받들어 정말 우리 자신에게는 은혜로운 교회, 세상 앞에서는 자랑스러운 교회, 그리고 무엇보다도 교회의 주인 되신 예수님께서 기뻐하실 좋은 교회로 함께 세워 가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아 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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