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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변화를 선택하는 믿음 (엡 4: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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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조병우 목사

비즈니스 성공비법이라는 책을 보면 사업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첫 번째 고정관념을 깨라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창의적인 삶을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어머니가 고정관념을 깨면 자녀의 창의력이 자란다는 책이 있습니다. 이 글을 보면 고정관념 속에 갇힌 사람은 자기 세계에 자신도 갇혀있고 자식도 자기 세계 속에 가두어 놓은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인생은 고정관념을 버려야 새로운 세계를 볼 수 있습니다. 때문에 하나님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고향에서 불러내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자기 세계에서 나오지 않으면 안됩니다. 믿음의 세계를 가로막는 가장 보편적인 장벽은 고정관념입니다. 오병이어 사건에서 보는 것도 빌립은 고정관념에 갇힌 사람이고 안드레는 고정관념을 넘어선 사람입니다. 물로 포도주를 만든 사건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말씀에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같이 행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이방인의 삶의 특징을 말씀하고 있는데 마음이 어두워지고 굳어짐으로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다고 했습니다. 여기에 어두워진다는 말씀과 굳어진다는 말씀은 우리들의 삶에서 항상 점검해야 되는 내용입니다. 어두워진다는 말은 장님이 되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굳어짐이라는 말은 못이 박힌다는 뜻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고정관념화 된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반복하게 되면 그 일은 우리의 도덕성을 무디게 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반복이 일의 타당성을 만들게 됩니다. 반복하다보면 그 일이 옳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게 되고 그 일이 기준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일반적인 가치관이란 고정 관념화되었다는 말입니다. 자기를 부인할 수 있는 사람이 진짜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 없는 사람은 점점 영적으로 감각을 잃어가게 된다고 했습니다. 이러한 사람의 특징은 더러운 죄에 대해서 감각이 없어진다고 했습니다. 죄가 반복되면 가장 무서운 결과가 죄에 대한 감각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이러면 안 된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나중에는 자연스럽게 되는 것입니다. 바늘 도둑이 소 도둑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죄는 반복되면서 습관이 되고 죄에 대한 감각이 없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감각 없는 자가 되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더럽다고 생각되는 것도 습관이 되면 조금도 더럽게 생각되지 않습니다. 악한 생각도 습관이 되면 악함에 대한 인식이 없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극단적으로 악한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처음부터 드러나게 죄를 짓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작은 것들이 점점 큰 것에 대해서까지 둔감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엘리 제사장의 가정을 보면 이러한 느낌을 가지게 됩니다. 엘리 제사장의 아들들은 하나님의 성전에서 성장하면서 작은 일에서부터 가볍게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성경은 이들을 불량자라고 했습니다. 이들은 제사드리는 일까지도 가볍게 생각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성전에서 수종드는 여인을 건드리게 되었고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제물에까지 손을 댄 것입니다. 이들이 처음부터 이러한 사람들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전에서 작은 부분 가볍게 여긴 일이 결국 하나님의 성전 자체를 멸시하는데 까지 발전하게 된 것입니다.

때문에 성도는 언제나 현실에서 자신을 벗어버릴 줄 알아야 합니다. 오늘 말씀에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했습니다. 그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단어는 벗는다는 말과 입는다는 말입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스스로를 벗지 못하면 스스로에게 갇혀서 그 안에서 죽게 된다는 것입니다. 새 사람이 되려면 옛 사람을 벗어 버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옛 사람을 벗어버리지 못함으로 그 안에 갇혀버린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이 되려면 반드시 벗어야 하는 삶이 있습니다.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전우익의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 라는 책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느티나무는 가을에 낙엽이 진 다음 해마다 봄이 되면 새 잎을 피울 뿐만 아니라 껍질도 벗습니다. 누에를 쳐 보니 다섯 번 잠을 자고 다섯 번 허물을 벗은 다음 고치를 짓습디다. 탈피 탈각이 없이는 생명의 성장과 성취는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탈피 탈각을 하지 못하면 주검이겠지요.

파충류나 곤충류가 성장하면서 낡은 허물을 벗어야 합니다. 탈피를 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바로 죽음을 의미합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때 맞춰 탈피를 하지 못하면 더 이상 성장할 수 없게 됩니다. 하지만 탈피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몸을 두르고 있는 껍질을 벗는다는 게 쉬울리 없습니다. 고통과 괴로움이 수반됩니다. 지금 이대로 머무르고 싶다는 유혹이 몰려옵니다. 자기 스스로에게 추상같을 수 있어야 현재의 껍질 속에서 머무르고 싶다는 유혹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보면 믿음의 사람들이 나옵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보여준 삶의 특징은 바로 옛 사람의 껍질을 벗었기 때문에 새 사람이 된 사람입니다. 믿음의 사람 모세는 애굽이라는 껍질을 벗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람으로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고향이라는 껍질을 벗었기에 믿음의 조상이라는 새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옛 사람과 새 사람의 차이점이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항상 자신의 입장에서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은 새 사람이라고 전제하기 쉽습니다. 옛 사람과 새 사람을 나눌 수 있는 경계선이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는 옛 사람과 새 사람을 나눌 수 있는 경계선을 삶의 동기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옛 사람은 욕심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새 사람은 가르침을 받은데로 하나님의 거룩함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롬 8:13)"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이 말씀은 사람이 어떤 사람이든지 자기 육체의 욕심 가운데 갇혀 있으면 반드시 죽게 된다는 뜻입니다. 참으로 무서운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면 그곳에 새 삶이 있습니다. 새 삶이란 과거와는 다른 삶을 살아가는 것을 의미하기보다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면 언제나 새로운 삶이 되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성령을 받은 후에 새로운 삶을 살았다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그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살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자유를 얻은 후에 애굽에서의 삶과 다른 점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광야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면 쉽지마는 하나님의 말씀을 벗어나면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운 삶이 되는 곳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망하고 불평하는 이유들을 보면 하나같이 육체의 문제들입니다. 그런데 바로 육체를 따라 살았던 사람들은 광야에서 다 죽었습니다. 반대로 말씀을 따라 살았던 사람들은 날마다 새로운 세계를 살았던 것입니다.

신앙생활이 바로 그렇습니다. 신앙생활은 육신의 욕심을 가지고 살 때에는 가장 힘들고 어렵습니다. 반대로 말씀을 따라 살면 가장 쉽고 평안한 것입니다. 새로운 삶이란 바로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삶입니다. 주님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했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자기의 욕심을 넘어서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실제로 예수님을 따랐던 사람들을 보면 지금까지 자신이 붙잡고 살았던 것을 놓았던 사람들입니다. 성도에게는 항상 하나님의 말씀이 삶의 해답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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