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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구원의 기회 (눅 19: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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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조병우 목사

세계는 빈인빈 부익부 현상이 점점 깊어져 갑니다. 가진 자들은 점점 더 많이 가지게 되고 없는 자들은 점점 빈곤해져 간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못사는 나라들을 보면 자원이 부족해서 못사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자원이 넘치는 나라들이 오히려 못사는 경우가 많고 자원이라고는 하나 없는 나라들이 반대로 잘 사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자원이 많은 나라들은 사람들이 게으르고 자원이 없는 나라 사람들은 부지런하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시기를 자원이 많아서 부자가 아니라 부지런함이 바로 부라고 했습니다. 자원이 없어서 가난한 것이 아니라 게으름이 바로 가난이라고 했습니다. 세계적으로 잘 사는 나라 가운데서 자원이 없는 나라들이 많습니다. 정말 어떤 나라들은 물 한 방울까지도 다 수입해서 살아가는 나라도 잘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원이 없기 때문에 성실함으로 오히려 풍요를 누리면서 사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핸디캡이라는 것은 그 자체로 보면 분명히 마이너스 요소임에 틀림없지만 그것을 극복하려는 사람에게는 오히려 유익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려서부터 타고난 약점이나 부족 때문에 더 열심히 노력해서 성공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가난한 가정에 태어나서 너무도 어려운 어린시절을 보내었기 때문에 열심히 돈을 벌어서 부자가 된 사람도 있고 제대로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더 노력해서 상류사회의 멤버가 된 사람도 있습니다.

인생이 가지고 있는 핸디캡 가운데 신체적인 핸디캡은 좀처럼 극복하기 어렵습니다. 신체적인 핸디캡 가운데 하나가 바로 키입니다. 키가 작은 것은 교정할 수 없습니다. 키가 작은 것은 참 모호한 핸디캡입니다. 키가 작다고 일하는데 지장을 받는 것도 아니고 키가 작다고 머리가 나쁜 것도 아니며 키가 작다고 재주가 적은 것도 아닙니다. 키가 작다는 것이 사람이 살아가는데 불리하다는 요소는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옛날부터 사람들은 큰 키를 선호한 것으로 보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눅 12:25) 『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고 했습니다. 현대인의 성경을 보면 "너희 중에 누가 걱정한다고 해서 자기 키를 한 치라도 더 늘릴 수 있느냐?" 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키가 작은 이유로 걱정을 하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보면 키가 작은 분 가운데서 큰 일을 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나플레옹도 키가 작은 사람이었고 우리나라의 박정희 대통령이라든가 한국의 성자 손양원 목사님도 키가 매우 작은 분이었다고 합니다. 손양원 목사님을 만나는 사람은 세 번 놀란다는 말이 있습니다. 첫째 너무 작은데서 놀라고 둘째 목소리가 너무도 우렁차기 때문에 놀라고 셋째는 그 분이 전하는 말씀이 너무 은혜스러워서 놀란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 키 작은 한 사람이 나옵니다. 그는 여리고에 살았던 세리장 삭게오였습니다. 키가 작았던 삭게오는 자신의 신체적 열등감을 소유로 극복하려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자신에게 있는 약점을 극복하는 내용이 소유일 때가 많습니다. 공부를 잘 하지 못하는 학생의 마음 속에는 공부는 못했지만 내가 돈을 많이 벌면 결국 내가 성공한 것이다고 생각합니다. 힘이 없는 사람도 돈만 많이 벌면 얼마든지 사람들을 굽신거리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유대 사회에서 세리는 돈을 쉽게 벌 수는 있지마는 이웃에게 마음으로 미움을 받았던 사람이었습니다. 세리가 하는 일이 구조적으로 자기 동족을 괴롭게 하고 로마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사람들입니다. 탈무드에도 미워해도 괜찮은 사람을 말하고 있는데 살인자 강도 그리고 그보다 더 미워해도 되는 사람이 세리라고 했습니다. 세리는 바로 사람들에게 뱀처럼 취급당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오면 다 피해갔습니다. 그래서 삭게오의 집을 죄인의 집이라고 했습니다.

삭게오는 여리고의 세리장이었습니다. 여리고는 지리적으로 보면 끊임없이 이어지는 광야 길목 가운데 있는 오아시스와 같은 곳입니다. 여리고는 이스라엘 지역에서 가장 돈이 많이 거래되는 곳이었고 상인의 중심지였습니다. 때문에 삭게오는 돈을 버는 일에 순풍의 돛을 단 듯이 쉬웠습니다. 그의 창고는 재물로 가득 찼고 매일 매일 재산이 늘어갔습니다. 그는 자신이 목표한 삶을 이루었습니다.

문제는 곳간에는 물질이 가득 채워지고 있는데 그의 마음 속은 점점 공허로 채워지는 것입니다. 소유만 있으면 행복할 줄 알았던 그 확신이 허무한 것임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는 밤이 되어도 잠이 이루지 못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대로 살아서는 안 된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이것은 삭게오 만의 생각이 아닙니다. 세상의 것으로 만족하고 살려는 모든 사람들의 느낌입니다.

그 때 삭게오는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예수님의 이야기를 들을 때에 그의 마음이 움직여졌습니다. 그가 예수님께 대해서 마음이 움직인 데에는 두 가지 요인이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는 주님의 가르침 때문이었고 다른 하나는 예수님의 삶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주님의 가르침은 삭게오의 가치관과는 달랐습니다. 주님이 복이 있다고 말씀하신 내용은 자신의 삶과는 하나도 맞지 않았습니다. 마음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했고 우는 자가 복이 있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삶이 자신과 달랐습니다. 자신은 분명히 많은 것을 가지고 있음에도 아무도 자기 자신과 이웃이 되려는 사람이 없었는데 주님은 가는 곳마다 인산 인해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자신은 사람에게 멸시를 받고 있는데 주님은 사람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분명히 주님의 삶의 가치관은 자신과 달랐음을 알게 된 것입니다. 자신은 자기 하나만을 위해서 살아가고 있는데 주님은 약한 자, 병든 자를 찾아가시고 고쳐주시는 삶을 살고 있음을 듣고 있었던 것입니다.

삭게오는 주님은 만나야 하겠다는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주님만이 자신에게 삶의 해답을 주실 것으로 믿었습니다. 만약 이번 기회에 주님을 만나지 못하면 평생을 후회할 것 같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삭게오는 주님을 한 번 보아야 한다는 마음을 가졌기 때문에 주님 앞으로 갔고 사람들이 많아서 더 가까이 갈 수 없을 때 나무 위로 올라갔던 것입니다.

믿음의 기회는 항상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의 기회는 어쩌면 한 번의 기회인 것입니다. 그 기회를 놓치면 다시 돌아오지 안을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실제로 예수님은 여리고를 떠나서 예루살렘에 올라 가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만약 삭게오가 그 때 주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그는 영원히 구원의 백성이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삭게오는 주님을 만나므로 두 가지 기회를 붙잡았습니다. 하나는 주님을 자기 집에 모실 수 있는 기회와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이웃을 섬길 수 있는 충성의 기회입니다. 삭게오를 만난 주님은 삭게오의 집으로 가시겠다고 했습니다. 삭게오는 주님을 통해서 구원의 기회를 붙잡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예수님 앞에서 충성의 기회를 붙잡은 사람인 것입니다.

기독교는 논리적 이해가 아닙니다. 예수님께 대해서 객관적으로 알고 있는 신앙고백이 아닙니다. 내가 주님을 만나는 것을 말합니다. 내가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났다는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어떤 목사님이 그런 고백을 했습니다. 자신은 믿음의 가정에 태어나서 늘 하나님의 말씀을 배웠지만 성경 말씀이 다른 학문과의 차이를 발견할 수 없었고 주님 만난 삶과 일상적인 삶에 구분을 하기가 매우 어려웠다고 합니다. 그런데 주님을 만난 후에 하나님의 말씀이 왜 살아 있는지 믿음의 삶이 왜 다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삭게오의 믿음은 배워서 가진 믿음이 아닙니다. 들어서 알게 된 믿음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를 만난 후 가진 믿음입니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는 어떻게 주님을 만나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살아계신 그리스도를 만납니다. 이 만남은 우리에게 세상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놀라운 삶의 변화와 감격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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