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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택한자들의 한같은 기도 (눅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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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김성덕 목사

요16:23-24절에
[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지금까지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
이 예수님의 약속이 사실이라면
기도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최상의 선물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하나님이 주신 선물인데 왜 그렇게 기도를 부담스러워 합니까? 그것은 한마디로 말한다면 믿음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말씀 마지막 결론이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고 하십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기도하는 교우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럼 오늘 예수님의 기도의 비유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말씀도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항상 기도하다가 낙망치 말아야 될 것을 비유로 하신 말씀입니다.
기도하다가 낙망치 말라는 말은
기도에는 반드시 응답하신다는 조건이 붙은 약속입니다.
본문말씀의 한 설교제목 가운데
pavntote(판토테) 기도라는 말이 있어요
이게 무슨 기도인가 했더니
항상 기도하고 라는 항상 이란 말이 판토테입니다.
예수님은 이 판토테 기도를 우리의 기도에 적용하실 때
7절에 "밤낮으로 부르짖는다"는 뜻으로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의 기도에는 중단이 없습니다. 더군다나 낙심이 없습니다.
판토테 기도의 원조되시는 예수님의 기도
오늘 저와 여러분들의 기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1968년 87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난 <헬렌 켈러> 여사가 남기고 간 말입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낙심은 금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도의 좋은 응답을 하시기 직전에
마귀는 항상 사람이 실망할 수밖에 없는 강력한 낙심을 준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밤이 깊을수록 새벽이 가까웠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현재 우리 마음 속에 아주 강력한 낙심이 자리를 잡고 있으면
그것은 반대로 곧 좋은 일들이 일어날 징조라 믿으시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럼 기도하다가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2>
우리의 기도가 어떠해야 합니까?

예수님은 기도하다가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우리의 기도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비유를 통해 말씀하십니다.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관이 있는데
한 과부가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달라고 합니다.
처음에는 재판관이 듣지 아니하다가
가만히 생각해보니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나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면서 재판관이 과부의 원한을 들어주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불의한 재판관도 번거럽게 하는 과부의 원한을 들어 주었는데
하물며 하나님께서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예수님의 이 비유는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 기도를 들어주시는 분임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기도의 자세입니다.
불의한 재판관이지만 과부가 자기를 번거롭게 하니
그 번거러움 때문에 원한을 풀어준 것처럼
너희도 내게 기도할 때 한 두 번 해보고 마는 그런 기도가 아니라
응답될 때까지 번거럽게 기도하면 꼭 들어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기도에 관한 성경의 약속이라면 마7:7절을 들 수 있습니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이 말씀이 눅11:9절 이하에도 나오는데
누가는 이 기도의 약속을 기록하기 전에
예수님의 기도에 관한 비유를 한 가지 먼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눅11:5절 이하에 한 밤중에 떡 세덩이를 빌리려 온 친구에게
벗됨으로 인하여는 일어나 주지 아니할지라도
강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소용대로 주리라 하시고는
구하라 찾아라 두르리라고 약속합니다.
영어성경 Amplified Bible에는 이 구절을 <3>
계속해서 구하라, 계속해서 찾으라,
계속해서 두드리라, 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기도하려거든 계속해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즉시 응답이 없더라도 계속해서 번거럽게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중국에는 '모소'라는 대나무가 있다고 합니다.
그 대나무는 산이나 밭에 심어놓아도 5년 동안은 땅 밖으로 전혀 솟아오르지 않고 땅속에서 뿌리만 사방으로 퍼져나갈 뿐이라고 합니다.
그러다가 5년이 지난 다음 해부터는 하루에 한 자씩 무성하게 자라는데 불과 6주만에 15미터 이상, 키가 자란다고 합니다.
이런 현상은 우리의 기도 응답과 거의 흡사합니다
그러니 낙심하지 말고 계속하여 강청하는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강청하다는 말의 의미는 [ 귀찮게 졸라되는 것 ]을 말합니다.
그것도 염치없이 뻔뻔스럽게 졸라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어떤 경우에 이렇게 뻔뻔스럽게 졸라되듯이 매달립니까?
꼭 주신다는 확신을 가질 때입니다.
이런 확신 속에 번거럽게 기도한다면
반드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실 것입니다.

미국의 유명한 설교가인 브룩스는
[ 그림에 있는 불은 불이 아니고, 죽은 사람은 사람이 아니며,
끊질기게 하지 않은 기도는 기도가 아니다. ]
우리의 기도의 자세는 항상 번거롭게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끈질기게 강청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반드시 응답해 주실 줄 믿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가 기도하다가 낙심합니까?
3. 우리가 기도하다가 낙심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7절)
기도하다가 낙심하는 이유? 본문말씀 가운데서 그 이유를 말하자면
1) [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 믿음을 보겠느냐? ]는 8절 말씀같이
믿음이 없어 기도하다가 낙심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이란 바로 하나님의 자녀를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기도에 있어서 가장 먼저고 기본적이고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입니다.
주기도문에서도 말하는 것과 같이 [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시여 ]
이 친권적인 관계가 이뤄질 때만이 끈질기게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기도하면 그것도 뻔뻔스러울 정도로 강청하면
우리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께서 들어주실 줄 믿습니다.
기도는 너무 잘하려고 하기보다 <4>
자녀가 부모에게 조르듯이 끈질기게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준 기도의 묘수입니다.

2) 7절에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 같은 기도를 하지 않기 때문에
기도하다가 낙심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말씀은 기도에 관한 교훈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주의해서 자세히 보면 일반적인 기도의 교훈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혹 하나님은 내 기도에는 응답하지 않기 때문에
나는 교회는 나오지마는 기도하지 아니한다는 교인들 있지요
오늘 본문은 그런 교인들한테 하시는 말씀입니다.
왜? 기도하다가 낙심하고 아예 기도를 하지 않습니까?
바로 택하신 자들의 원한 같은 기도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말 가운데 보면 외국어로서는 도저히 그 느낌과 감정을
다 나타내지 못하는 말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멋이라든지 또 본문말씀에 한, 같은 말은
외국어로서는 그 표현을 다 할 수 없는 말입니다.
우리는 한이 맺힌 민족입니다. 가난과 눌림에 한이 맺힌 민족입니다.
얼마나 못 살았어면 자식 낳아 입 든다고
남의 집에 식모로 주든 때가 엊그저께 같습니다.
그리고 저희 국민학교 다닐 때, 압박과 설움에서 해방된 민족이라고
여자 애들이 고무줄 놀이하면서도 이 노래 불렀어요.
그래서 우리 민족은 한이라는 말이 가슴에 엉어리저 있습니다.
제2의 애국가 -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한이 담긴 노래입니다.
우리나라가 근대화되고 이렇게 잘 살 수 있게 된데는
우리 국민 모두가 열심히 일하고 노력한 대가이겠지만
박정희 대통령의 업적도 결코 무시할 수 없습니다.
나라가 너무 가난하여 많은 노동자들을 독일에 광부로 송출하고
임금을 담보로 돈을 빌려 왔습니다.
그때 독일을 방문한 박대통령은 광부들의 고생하는 모습을 보고
연설 도중 통곡을 하고 말았습니다.
자기도 태어나면서부터 가난 속에서 수 없이 어머니가 낙태를 시도하기까지 했으니 너무 가난하게 살았기에 광부들의 아픔은 곧 자신의 아픔이었던 것입니다.
돌아오면서도 차 속에서 계속 눈물을 흘리자
당시 70세였던 독일의 <뤼브케> 대통령이 손수건을 꺼내주며
[ 울지 마오, 돌아가서 잘 사는 나라를 만드시오 ] 하고 위로했다고 합니다. 그때 박대통령은 입술을 깨물고 "할 수 있다"고 다짐했고
돌아와 시작한 운동이 곧 새마을 운동이었다는 것입니다.
가난에 한이 맺힌 대통령 때문에 <5>
이 나라가 가난에 벗어나는데 동기부여가 된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한이 맺힌 기도는 반드시 들어주실 줄 믿습니다.
구세군의 창시자인 월리암 부스는
[ 당신이 하나님께 기도할 때는 거기에 생사가 달려있는 것 같이 하라 ] 고 했습니다.
한이 맺힌 기도가 있는 교우들 되시기 바랍니다.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이 아니하시겠느냐? 라는 예수님의 말씀 속에는 어떤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까?

7절은 하물며 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말씀은
하물며 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하물며 라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앞에 말과 극단적인 대조를 이루는 부사입니다.
세상에 불의한 재판관도 과부의 원한을 들어주는데
하물며 너희 아버지가 되시는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이
너희의 한 맺혀 하는 기도 들어주지 아니하겠는냐?
들어주실 줄 믿습니다.
문제는 바로 택하신 자들의 원한 같은 기도입니다.
후안 카를로스의
[우리 기도의 대부분은 하늘나라에서 잡동사니 우편물처럼 취급당합니다 ]
라는 제목의 기도에 관한 책이 있는데
여기에 보면 눅18: 오늘 본문말씀에 대해 이렇게 해석하고 있습니다.
과부의 기도는
우리의 필요를 위해 일상적으로 드리는 기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과부의 원수에 대한 원한은
바로 오늘 하나님의 백성들이 가지고 있는 원수에 대한 원한입니다.
원수가 누구입니까? 바로 사탄입니다.
사탄은 곧 세상입니다.
우리는 끝없이 원수 마귀를 물리치고 세상과 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탄과 세상에 원한, 이것이 오늘 과부의 원수에 대한 원한이요
택하신 자들의 원수에 대한 원한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누가 그의 택하신 자들입니까?
바로 밤낮 부르짖는 교회를 말합니다.
교회는 이 세상의 사탄의 세력과 밤낮으로 싸워야 합니다.
기도로, 그것도 한맺힌 번거러운 기도로 싸워야 합니다.
과부는 [ 주님 제 병을 고쳐 주옵소서, 가난에서 벗어나게 하소서<6>
아들 시험 합격하게 하소서 라고 기도하지 아니했습니다.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오늘날 과부는 누구입니까? 교회인 우리들입니다.
오늘 우리의 원한은 무엇입니까?
풀지 아니하면 가슴에 엉어리가 메칠 수 밖에 없는
우리들의 원한은 무엇입니까?
바로 우리를 타락하게 만들고 우리를 유혹하여 넘어지게 하는
원수 마귀에 대한 원한입니다.
이 땅에서 구원받은 하나님 백성으로서, 사탄의 궤계를 물리치고, 죄를 멀리하며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어
행복한 교회, 행복한 사람으로 사는 것이 우리의 한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백성에게 또 한가지 한이 맺힌 기도가 있다면
바로 영혼 구원에 대한 열망인 것입니다.
계12장에 아이를 배어 해산하게 되어 아파서 애써 부르짖는 여인이 나옵니다.
바로 신약의 교회를 말합니다.
그런데 열 뿔 달린 용이 여자 앞에서 해산하면 그 아이를 삼키려고 대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교회의 현실입니다.
사탄은 첫째로 우리가 죄로 무능하게 만들고
두 번째는 교회가 어떻게 하든지 해산을 못하도록
방해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사람들이 구원을 받지 못하도록
즉 전도를 하지 못하도록 방해를 한다는 것입니다.

어느 권사님의 간증입니다.
재혼을 했지만 믿음 있는 남편을 만나서
20년 동안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살아 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권사님이 소화가 안되고 만사가 귀찮을 만큼
몸이 쇠약해졌습니다. 물론 병명도 없습니다.
꼭 몇 날 있지 않아 하나님께서 불러갈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남편을 불러 여보 내가 당신에게 고백할 게 있다 하면서 [ 당신에게 속이고 재혼했지만 장성한 아들이 하나 있다 ]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아들이 예수를 안 믿는다는 것입니다.
나 꼭 만나서 예수 믿게 하고 천국 가고 싶다고 했습니다.
남편도 그런 것 진작 이야기하지 하면서 같이 아들을 찾아가서
예수 믿으라고 복음을 전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날부터 권사님이 건강이 회복되면서 <7>
전도하는 권사님이 되었다는 간증입니다.
혹 숨겨놓은 불신의 가족 혈육 친지 없습니까?
우리는 불신의 가족 혈육을 위해 한맺힌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오늘 내게도 어떤 택하신 자들의 원한 같은 기도의 제목이 있습니까?

삿16장에 보면
이스라엘의 마지막 사사 삼손의 비참하지만 장렬한 죽음의 장면이 나옵니다.
맨손으로 사자를 염소 새끼 찢듯이 찢으며
나귀 턱뼈 하나로 불레셋 군인 일천 명을 죽이고
여우 삼 백 마리를 잡아 그 꼬리에 불을 붙이는 힘을 가진 삼손은
바로 능력받은 그리스도인의 모형입니다.
그러나 삼손이 들릴라의 꾀임에 빠져 머리가 깎이고
결국은 불레셋에게 잡혀 눈 빼이고, 놋줄에 묶여,
옥중에서 맷돌을 돌리게 되는데
삼손이 자신의 비참함을 깨닫고
다곤 신당 축제때 신당을 바치고 있는 두 기둥을 붙잡고 여호와께 부르짖습니다.
삿16:28절
[ 주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나를 생각하옵소서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이번만 나로 강하게 하사
불레셋 사람이 나의 두 눈을 뺀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하옵소서 ]
부르짖으며 두 기둥을 붙잡고 힘을 다하여 몸을 굽히니 그 집이 무너져
삼손이 죽을 때에 죽인 자가 살았을 때에 죽인 자 보다 더 많더라] 고합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러한 결단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에 서 있습니다.
사탄은 온 통 세상을 뒤흔들며
그리스도인들을 타락하게 하고 무능하게 만듭니다.
우리도 우리를 무능하게 만든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내일의 가족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제가 아플 때는
살려달라는 것이 한 맺힌 기도였습니다.

제가 군대 생활을 통해 기수단에서 공동체 삶의 맛을 보았기 때문에
개척교회를 시작한 후 제게 간절한 소원이 있다면
교회가 하나님의 가족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예친모임인데 아직은 미완성입니다만
제 목회에 남은 기간 제가 생명을 걸고 한 맺힌 기도가 있다면
바로 교회가 하나님의 가족이 되는 일인 것입니다.

오늘 내게는 어떤 한 맺힌 기도가 있습니까? <8>
꼭 그 기도가 이뤄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예수님의 기도의 비유 마지막 결론에서 우리는 무엇을 깨달을 수 있습니까?

8절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마지막 때 믿음 가지고 끝까지 기도하는 성도 참 귀하다고 합니다.
왜 기도하다가 쉬 포기해 버리고 맙니까?
믿음이 없어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응답해 주신다는 믿음이 없어 그렇습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기도로 승리하는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유태인의 지혜를 말해주는 <미드라쉬>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다윗 왕이 보석 세공인을 불러 명령을 내렸습니다.
[ 짐을 위해 반지를 만들고 그 반지에 글귀를 하나 새겨 넣어라.
그 내용은, 내가 승리했을 때 기쁨에 취해 자만하지 않도록,
또한 절망에 빠져 있을 때 수렁에서 건져줄 수 있는 글귀여야 하느니라 ]
그는 왕의 명령대로 아름다운 반지를 하나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적당한 글귀가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고민을 하다가 그는 지혜로 소문난 솔로몬 왕자를 찾아갔습니다.
[ 왕의 황홀한 기쁨을 절제해 주고
동시에 그가 낙심했을 때 격려를 줄 수 있는 말이 무엇일까요? ]
솔로몬이 대답했답니다.
[ 이렇게 쓰시면 됩니다. <이것 또한 곧 지나가리라>
왕께서 승리의 순간에 그 글을 보시면 자만심을 가라앉히게 될 것이고,
절망의 순간에 그것을 보신다면 곧 용기를 얻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
사랑하는 내일의 가족 여러분
내가 앉고 있는 문제가 영영히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믿음 가지고 끈질기게 기도한다면 이 밤은 곧 지나갈 줄 믿습니다.

신앙생활 하는 우리 모두에게는 올라야 할 기도의 산들이 있습니다.
나는 이 기도의 산을 오르기 위하여 어떤 결심을 해야할까요?

미국의 존 멕스웰 목사의 글에보면 에베레스트산 정복 이야기가 나옵니다.
1924년 영국 등반 대원들이
두 차례나 걸쳐 에베레스트 산의 정상에 도전했지만 실패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두 명의 대원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들은 몇 주 후 런던에 모여 진지한 토론을 한후
그 동안 관심을 갖고 지지해준 후원자들 앞에서 보고회를 가졌읍니다. 무대 앞면에는 커다랗게 찍은 에베레스트 산이 걸려 있었습니다. <9>
대장이 보고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보고하는 도중 그는 갑짜기 뒤를 돌아 보며 사진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 너는 우리를 두 번 정복했다
하지만 너 에베레스트 산아 ! 너는 우리를 계속 정복할 수는 없다 ]
그리고 청중을 향해 결의에 찬 모습으로 외쳤습니다.
[ 에베리스트 산은 더 이상 자랄 수 없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이 이야기에 큰 도전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앉고 있는 문제가 비록 에베레스트같은 높은 장벽이지만
대부분 문제는 그냥 버티고 있지만
우리는 다시 도전을 할 수가 있는 줄 믿습니다.

어떻습니까?
오늘 우리가 올라야할 기도의 산은 어디입니까?
진정 내 마음 속에 택하신 자들의 원한 같은 기도를 하기 위하여
나는 지금 어떤 결심을 합니까?
도전적인 기도를 결심하시기 바랍니다.

이 한이 이뤄지지 않는 한
나는 기도의 산을 오르는 일을 결코 포기 하지 않겠다는
도전적인 기도를 하기로 결심하시기 바랍니다.
꼭 내게도 택하신 자들의 원한 같은 기도가 있고
꼭 끈질긴 기도로 승리하는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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