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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족들이 모여 감사하는 추석이 된다면... (시 5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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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성완석 목사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시편 50편 23절 말씀

  크신 하나님이 오늘도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염려거리, 근심, 걱정거리 많은 인생살이 속에서도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사실을 기뻐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고, 우리 자녀들이 잘 되는 것 보며 기뻐하십니다. 복된 주일에 모여 예배드리는 것 기뻐 받으실 줄로 믿습니다. 유대인들의 전통 가운데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아들들을 불러놓고 축복을 해줍니다. 그런데 이 축복이 그냥 희망사항으로 끝나지 아니하고, 그대로 이루어지더라! 아멘! 우리 가정과 자녀들이 유대인들보다 더 잘 되는 길이 있다면 날마다 시간마다 자녀를 가슴에 부둥켜안고 축복하는 거예요. 그러면 그 축복이 우리 가정과 자녀들의 앞날에 복의 열매로 나타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눈으로 보게 될 줄로 믿습니다. 간증거리가 생겨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의 가정에 일어나는 역사들이 귀한 간증거리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주님 영광 받으시는 가정되어지기를 축원합니다.

  ♬ 여호와 나의 목자 내게 부족 없네

  이번 주간이 추석입니다. 흩어져 살던 가족들이 만나게 되고, 서로 정을 나누게 될 것인데, 늘 생각해도 지난날은 아쉽더라는 거예요. 생각한대로 잘 되어진 일들이 있는가 하면 잘 안 되어진 일들 때문에 후회되는 일들이 있더라는 거예요. 아무리 아쉬워도 지난날은 돌릴 수가 없습니다. 이미 지나가 버린 일은 어쩔 수 없더라! 중요한 것은 우리의 앞날이더라! 지금까지 살아왔던 날들보다 앞으로 주어진 인생을 잘 살아서, 다시 만나게 될 때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인생이 결심한다고, 어금니를 문다고 다 되는 것은 아니에요. 우리의 결심과 애쓰는 것 위에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하시고, 돌보심이 함께 하셔서 열매가 나타나고 역사가 나타나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이 시간이 우리에게 새로운 결심과 새로운 출발의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결심과 다짐마다 하나님께서 크게 복을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의 걸어가는 앞날에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놀랄만한 믿음의 증거와 열매들이 나타나기를 축원합니다. 점점 나아져 가는 복된 인생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술 마시던 사람이 술을 끊고, 잘못된 습관을 고치고, 윤리적으로 이전보다 나은 사람된다고 근본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좋은 사람되고, 착한 사람되고, 부모에게 효도하고, 나라에 충성하는 사람되는 것이 유교의 시작이고 끝입니다. 유교가 우리나라를 지배하고 있는 동안 우리민족은 가난과 저주로 불쌍하게 살던 나라였습니다. 사람의 문제는 윤리나 도덕으로 해결 할 수 없다는 증거가 된 것입니다. 믿음의 눈을 열고 볼 줄 알아야 합니다. 누구에게나 잘 되고 싶은 마음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결심한다고, 어금니를 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축복하셔야 됨을 다시 한번 깊이 깨닫는 시간 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 붙드시기를 바랍니다. 축복의 바른 길을 깨달을 뿐 아니라 그 길로 걸어가시기를 축원합니다. 

  무엇보다 명절을 지내면서 우리 마음 속에 감사를 회복할 수 있다면 더 큰복이 임하는 명절이 될 줄로 믿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에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구약에서의 제사는 오늘날로 말하면 예배입니다. 감사로 예배를 드리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신다는 것입니다. 또 감사로 예배로 드리면 주께서 구원을 보이신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믿고 의지하고 따라가는 하나님은 능력의 하나님, 살아계신 하나님, 세상의 역사를 손에 쥐고 계시는 크신 하나님이에요. 이런 하나님앞에 감사를 회복하므로 더욱 사랑받는 복된 길을 걸어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역사를 일으키는 믿음! 축복받는 믿음이라고 하면 거창하게 생각을 합니다. 그렇지 않아요. 마음 잘 쓰면 축복입니다. 마음 잘 쓰면 생각한 것 이상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정원에는 잡초가 나기도 하고 좋은 화초가 자라기도 하는데, 잡초는 심지 않아도 잘 나고 가꾸지 않아도 잘 자라더라는 거예요. 잡초와 좋은 화초가 함께 있으면 어느 사이에 잡초가 무성해지고 화초는 시들시들 해집니다. 잡초를 제거하는 일이 정원을 가꾸는 일이에요. 부지런히 김을 매서 잡초를 제거해 주어야 좋은 정원 되는 거예요. 우리 마음도 마찬가지예요. 같이합니다. "마음 잘 쓰면 축복입니다. 마음 잘 쓰면 생각한 것 이상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아멘! 

  교회 다닌다는 것과 믿는다는 것은 달라요. 그리스도께서 내 마음을 다스리게 될 때 각박한 세상 속에서도, 힘겨운 환경 속에서도 여유가 생깁니다. 두려움이 없어져요. 담대해 집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보장하시기 때문이에요. 인생의 모든 것이 결국은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스케줄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 믿음 회복하면 여유가 생깁니다. 남들처럼 많은 것을 남기지 못하고 행하지 못해도 낙심할 필요가 없어요. 자존심 상해할 것 없어요.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셔서 성민으로 택하셨다! 이 한가지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감사할 수 있습니다. 신실하신 하나님! 약속을 꼭 지키시는 하나님! 이루시는 하나님! 성취하시는 하나님! 내게 믿음만 있다면 이미 우리는 앞날을 하나님께 보장받은 인생인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이 우리를 부르신 것은 단순한 구원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가 잘 되고,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시더라! 아멘! 나만이 아니라 가정과 자녀와 후손까지 잘 되기를 원하시는 좋으신 하나님!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먼저 함께 있는 부모님과 가족들을 향한 감사가 회복될 수 있다면 더욱 복된 가정이 됩니다. 흔히 기독교를 불효의 종교라고 합니다. 부모나 조상을 향하여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는 이유지요. 그러나 제사를 지내는 것이 부모나 조상에게 전혀 효가 되지 못합니다. 그 음식을 부모나 조상이 먹지도 못하고, 정성을 받지도 못합니다. 참된 효도는 무엇이냐? 많은 사람들이 부모에게 효도한다는 명목으로 죽은 조상들을 위해 음식을 차려놓고 제사를 지냅니다. 효도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그 방법이 문제입니다. 효도는 부모님 살아계실 때 하는 것입니다. 돌아가신 분에게 아무리 천 번 만 번 제사를 잘 지내면 무엇합니까? 부모님이 오셔서 떡을 잡수십니까, 물 한 잔을 드시기라도 하십니까? 이 세상을 떠난 조상들에게 제사하는 것은 효도가 아닙니다. 이것은 귀신에게 제사하는 것입니다. 다만 예수 믿기 전에 조상들에게 제사 지내온 사람들이 갑자기 제사를 안 지내니 허전하고 뭔가 섭섭한 생각이 들기 때문에 그 날에 맞추어 음식을 준비하고 대신 추모 예배를 드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추모 예배를 드리지 않아도 좋고, 온 가족이 모여 찬송을 하고 말씀을 보는 것도 좋습니다. 의미있는 추모예배가 되기 위해서는 고인의 유훈을 되새기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그대로 살아가기로 결심하는 시간을 가지면 좋습니다. 또한 남아있는 어른들에게 효도하기로 결심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이미 돌아가신 분에게는 효도할 길이 없으므로 이제 남아 있는 분에게 갑절의 효도를 하기로 결심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또한 형제간에 우애있게 살아가기로 결심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아무리 부모님께 용돈을 많이 드리고 효도를 한다고 할지라도, 형제들이 만나기만 하면 싸우고 울고 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좋은 음식이라도 편하게 드실 수가 없어요. 형제간에 서로 사랑하고 어려울 때 서로 도우며 우애있게 사는 것이 정말 효도입니다. 무엇보다 신앙생활을 잘하기로 결심하는 시간이 된다면 더욱 행복한 가정이 될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면 복을 받고, 우상을 섬기면 망하게 됩니다. 지나온 역사가 증명해 줍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믿음이 좋은 왕들은 언제나 하나님만을 섬기고 하나님을 잘 섬김으로 축복을 받고 나라가 강성했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는 왕들은 하나님을 저버리고 이방종교를 따라 우상을 섬기므로 해서 저주를 받고 고통을 많이 당했습니다. 자기만 어려운 것이 아니라 함께 고통을 겪게 되더라는 거예요. 우상 숭배는 함께 망하게 합니다. 주님을 잘 섬기는 복된 가정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런데 가까운 사이일수록 감사의 표현이 있으면 좋습니다. 부부간에도 서로서로 감사하면 행복한 가정되어지고, 형제와 자매간에도 서로 감사할 제목을 찾아 보아야합니다. 혼자 있으면 편합니다. 신경쓸 것도 없고, 부담스러울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혼자 살도록 만들어지지 않았어요. 때로 부담이 되고, 염려거리가 되는 형제라도 있는 것이 더 나아요. 감사의 제목을 찾아서라도 서로 서로 감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누가 감사하며 살면 좋은 줄 모릅니까? 감사하고 싶어도 감사할 수 없는 여건,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고 해도 할 수 없는 가족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가정의 행복은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행복은 만들어 나가는 거예요. 한집은 싸움 소리가 그치지 않고, 한 집은 웃음소리가 그치지 않는 집이 있었는데, 싸움 소리가 그치지 않는 집에서 웃음소리가 그치지 않는 집에 물어 보았더니, "아! 그것은 간단합니다. 우리 집에는 나쁜 사람만 있어서 그렇습니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가령 내가 방 한 가운데 있는 물그릇을 모르고 엎질렀다고 합시다. 그러면 아내는 '제가 그곳에 물그릇을 놓아두었으니 제 탓이에요'라고 하면, 어머니는 '아니다. 나잇살 먹은 내가 보고도 치우지 못했으니 내 탓이다'하십니다. 모두가 자진해서 나쁜 사람이 되려고 하니, 싸움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답니다" 행복한 가정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행복한 가정을 만들려고 하면 어떤 경우에도 과거의 실수를 들추어 내지 마십시오. 어떤 경우라도 원망하지 말고, 받은 축복을 헤아려 보는 것이 더욱 행복해지는 비결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길에 돌이켜 생각해 보면 별일 아닌 것이 서로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남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람의 감정이란 작은 한 마디 때문에 증폭될 수 있습니다. 몇 년 전의 일인데, 중년 부부들이 야유회를 가게 되었는데, 점심 시간이 훨씬 지난 다음에 아내가 나타나 화가 머리끝까지 난 남편이 아내의 사연을 들어 보지도 않고, 친구 부부가 있는 앞에서 "이런 여편네를 마누라라고 데리고 사는 내가 한심한 놈"이라며 아내를 크게 꾸짖었습니다. 그 날 저녁 집에 돌아 온 아내는 말없이 집에서 목을 매어 자살을 한 일이 있었습니다. 부부 싸움을 하더라도 결코 해서는 안 될 말들이 몇 가지 있는데, "능력없는 남자" 아무리 화가 나더라도 남자의 자존심을 짓밟아버리는 능력없는 남자라는 말은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남깁니다. "갈라서자, 이혼하자" 이런 말도 나중에 사과하고, 화해했더라도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고 남아서 괴롭히는 말 중에 하나입니다. "집에서 놀면서 그것도 못해" 해도 해도 끝이 없고, 표가 안나 는 것이 집안 일이에요. 온갖 잡다한 집안일, 애먹이는 아이들, 하루 종일 씨름하다가 이 말을 들을 때의 아내의 마음은 얼마나 상처가 되는지, 남편들이 잘 몰라요. "아무래도 우리 잘못 결혼 것 같아" 장난으로라도 해서는 안될 말입니다. 특별히 아내가 조심해야 할 말 가운데 하나는 "돈 돈 돈, 그 놈의 돈 때문에" 이것은 환경이나 돈을 원망하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아요. 이것은 남편의 무능력으로 직결되기 때문에 듣는 남편은 심각해집니다. 치유하기 힘든 좌절감을 맛보게 되는 거예요. 나는 능력이 없는 사람이라는 열등감에 빠져 일어나기가 어렵습니다. 

  부부간 뿐 아니라 부모가 되기는 쉽지만 제대로 된 부모 노릇하기는 참 어려운 때입니다. 인생은 1-2년 1등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에요. 단거리가 아니라 장거리 경주더라는 거예요. 위대한 사람의 뒤에는 반드시 위대한 부모가 있습니다. 위대한 업적을 이룬 사람들의 위대성을 기른 것은 대체로 어머니들이더라는 거예요. 그래서 인류의 역사는 어머니에게 달려있다고까지 말한 것입니다. 자녀들의 형성은 환경을 보고도 배우지만 가정에서 부모에게서 직간접으로 배운 것입니다. 엄마들은 툭하면 "저 얘는 지 아빠를 닮아서..." 아이의 단점을 아빠에게로 돌립니다. 사실 알고 보면 대 부분의 책임이 엄마에게 있어요. 자녀의 성격형성의 하나 하나는 엄마의 살아가는 모습 하나 하나가 영향을 끼친 것이더라는 거예요. "내가 그렇게 안 가르쳤어요" 그렇게 안 가르쳤어요. 그러나 그렇게 보여 준 경우가 많습니다. 엄마가 아이에게 늘 근심 어린 얼굴을 보여주면 아이도 어느새 근심 걱정이 많은 표정이 되어버립니다. 표정뿐 아니라, 행동을 닮아가게 되어있어요. 물론 단점이 없는 완벽한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장점이 단점을 가리게 되어 있어요. 단점을 탓하지 말고, 장점을 살려 나가면 됩니다. 부모의 본이 자녀들에게 평생 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느 장로님은 아들 3형제를 길러 모두 대학교수가 되었는데, 장로님과 자녀들 가정이 모일 때마다 빼놓지 않고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세 아들이 어릴 때인데, 아버지가 운전하고 어머니가 옆에 타고 아들 셋이 뒤에 타고 시골길을 달릴 때 오른편에 넓은 깨밭이 있더라는 거예요. 어머니가 말하기를 "여보! 잠깐만 차를 세워요. 깻잎 좀 따 가지고 가서 된장에 넣어 먹읍시다" 차를 멈추고 5명이 깨밭에 들어가서 순식간에 깻잎을 딴 후 가려고 할 때 아버지가 모두를 세우고 말했습니다. "남이 농사지은 깨에서 잎을 따 가는 것은 도둑질이다. 사가야 한다." 그러면서 지갑을 꺼내더니 1000원짜리 한 장을 둘둘 말아 깨 나무에 붙들어 매 놓고는 가자고 하더라는 거예요. 세 아들의 머릿속엔 평생 깨나무에 매달린 1000원짜리가 떠나지 않았더라! 그 이후로 모두가 아버지처럼 정직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 

  작은 것이라도 부모의 배려는 자녀에게 큰 영향을 끼칩니다. 일평생을 좌우하기도 해요. 고든 박사가 잊을 수 없는 회고담을 썼는데, 자기가 14살이고, 동생이 11살때의 일입니다. 아버지가 써커스에 데리고 가겠다고 해서 모두들 좋아합니다. 그때 전화가 걸려 왔는데, 사업상 중요한 의논이 있으니 곧 나와 달라는 거예요. 어머니가 "중요한 일이니 나가 보세요. 써커스는 또 올 거예요" 아이들이 실망하고 있을 때 아버지가 말하기를 "써커스는 또 오지만 저 아이들의 소년시절은 다시 오지 않아요. 사업도 중요하지만 아이들과의 약속은 지켜야지" 이 말에 중학생이었지만 얼마나 기쁨과 감동을 받았던지, 어른이 될 때까지 그 아버지의 사랑을 잊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작은 일 아무것도 아닌 일 같지만 부모의 교훈은 평생가더라! 자녀에게 좋은 생각, 좋은 습관, 좋은 믿음을 물려주는 복된 부모님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가족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 감사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데살로니가전서 5:18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하나님을 향한 것은 물론이고, 주변 사람을 향하여도 감사하는 자에게 주님은 더 많은 것으로 채우시고, 갚아 주실 줄로 믿습니다. 사람이 산다는 것 자체가 다 그림자 같은 것이고, 우리의 사는 날은 그렇게 길지 않습니다. 솔로몬 왕은 인생의 헛됨이 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다름이 없다고 했습니다. 솔로몬은 이 땅에서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누려 보았어요. 먹고 싶은 것 다 먹어보고, 가지고 싶은 것 다 가져보고, 누리고 싶은 것 다 누려보았더니 결론은 아무것도 아니더라! 왔다가 가는 것이 인생이더라! 우리는 내일 일을 알지 못해요. 다 지나가는 것입니다. 차를 바꾼다고 인생이 달라집니까? 넓은 집 들어가 살면 인생이 달라집니까? 우리가 앉는 자리가 좀 높아진다고 인생에 성공하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아요. 시 39:7 "주여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주님으로 만족하며 사는 복된 가정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주안에서 행복한 삶 사시는 복된 가정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중고를 겪었던 헬렌켈러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내일이면 장님이 될 사람처럼 당신의 눈을 사용하라. 마치 내일이면 귀머거리가 될 사람처럼 새들의 노랫소리를 듣도록 하라. 마치 내일이면 아무것도 만질 수 없는 사람처럼 모든 것을 만지며 즐기도록 하라" 이렇게만 살 수 있다면 모든 것이 달라지지 않을까요? 생각하기에 따라서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이 다 소중한 것들입니다. 내게 주어진 환경, 가족들, 주변 사람들을 감사의 눈으로 바라보는 은혜가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감사하면 나에게 변화가 일어납니다. 내 심령에 변화가 일어나고, 내 주변에 변화가 일어납니다. 내가 행복해지고, 내 삶이 의미가 있어집니다. 감사하는 자에게 행복이 오고, 복이 임합니다. 같이 인사합시다. "감사한 만큼 행복해집니다. 감사한 만큼 기쁨이 옵니다" 믿음과 감사로 우리 인생을 살맛 나는 인생으로 바꾸어 나가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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