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빈 그릇을 채웁시다. (왕하 4:1-7)

  • 잡초 잡초
  • 439
  • 0

첨부 1


- 설교 : 오주철 목사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어려운 시대에 민족의 지도자가 된 여호수아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여기에서 "강하게 하라"라는 말의 히브리어는 '하자크'인데, 이 말은 '달라붙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호수아 자신에게 강한 힘이 있기 때문에 강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더 가까이 달라붙으면 그가 강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힘의 원천이 여호수아에게 있기 때문에 그가 담대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닙니다. 힘이요 능력이 되시는 하나님께 바짝 달라붙었더니 그가 담대할 수 있었다는 말입니다.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는 말은 하나님을 더 가까이 하고, 하나님을 더 의지하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할 때에 그는 강할 수 있습니다. 마음을 담대하게 할 수가 있습니다. 태산준령과 같은 여리고 성이 내 앞을 가로막고 있어도 나는 두려워하지 않을 수가 있는 것은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십시오. 더 가까이 하십시오.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을 즐겨하십시오.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는 말은 하나님을 더 사랑하라는 말입니다. 성경에 주를 사랑하는 자는 해가 힘있게 돋음 같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자손이 천대까지 복을 누릴 것이라고도 했습니다. 여러분이 이 말씀을 믿는다면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을 더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삶의 정황이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하나님 사랑하기를 게을리 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는 것은 그 무엇보다도 먼저 해야 할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우리들에게 들려주시는 음성은 강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자주 하는 말이지만 교회의 마당만 밝고 다니는 종교꾼이 되지 마십시오. 종교꾼에게는 힘이 없습니다. 종교꾼에게는 감동이 없습니다. 종교꾼에게는 어떠한 믿음의 역사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은 조그마한 저항에도 쉽게 넘어집니다. 인생의 작은 파도 앞에서도 쉽게 좌절합니다. 절망합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고 애곡하여도 울지 않는 냄새나는 종교꾼을 싫어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강한 믿음의 사람이 되십시오. 강한 용사가 되십시오.

믿음의 여정에는 언제나 강한 저항이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제대로 된 믿음 생활을 하려고 하면 거기에는 강한 저항이 있어요. 먼저는 내 마음에 있는 육신의 법이 나를 주저앉히려고 합니다. 그래서 자꾸만 없는 것을 보게 합니다. 부족한 부분만을 보게 합니다. 그래서 할 수 없다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그래서 나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그리고 주변의 환경이 나로 하여금 시험에 들도록 합니다. 그래서 비난이라는 수렁에 허덕이도록 만듭니다. 그래서 아무 것도 아닌 일에 상처를 받고, 시험에 빠져듭니다.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 안에서 그러한 모든 어두움의 세력으로부터 자유하십시오. 위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다고 했습니다. 부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권세와 능력이 주의 손에 있다고 했습니다. 모든 자를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도 주의 손에 있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붙잡으시기를 축복합니다.

영국의 철학자 조지 버클리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는 하나님의 축복이 약속되어 있다" 시편 112편 1절과 3절에서 시편 기자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할렐루야,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 부요와 재물이 그 집에 있음이여 그 의가 영원히 있으리로다" 이 말씀을 믿으시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전심으로 믿는 그 사람과 가정을 보호하시고 복을 내려주십니다. 그 나라를 강하게 세워주십니다.

엘리야와 엘리사 시대는 성경에서 기적이 가장 많이 나타난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그 시대야말로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어두운 시대였습니다. 보십시오. 아합과 이세벨이 통치하던 그 시대는 이스라엘 역사에서 우상이 가장 성행하던 때였습니다. 때문에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생명을 보존하고자 숨어야하는 시대였습니다. 어린아이들에게까지 조롱을 받아야 하는 시대였습니다. 이 어두운 시대, 정상적으로 하나님의 능력이 전파되지 못하는 시대에 기적이 많이 나타났습니다. 모세 시대와 예수님과 사도 시대에도 마찬가지로 기적이 많이 나타난 시대입니다. 그 시기는 하나님의 말씀이 가장 어렵게 전파된 시기이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하는 여러분, 어두운 시대라고 해서 절망하지 마십시오. 삶이 힘들고 어렵다고 해서 주저앉지 마십시오. 어두운 시대에 하나님의 역사는 더 강하게 일어납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에 하나님의 은혜는 더 강하게 다가옵니다. 그리고 지금이야말로 하나님의 은혜와 역사를 더 절실하게 사모해야 하는 때입니다.

오늘 본문이 기록된 당시 북 이스라엘은 아람 나라의 잦은 침입으로 나라는 점점 쇠퇴해지고 백성들은 살기가 힘들었습니다. 모두가 살기 어려운 시대에 선지자의 생도 중에 한 사람이 두 아들과 빚을 남긴 채 죽고 말았습니다. 과부가 된 생도의 아내는 채주에게 빚 독촉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이 과부에게는 빚을 갚을 능력이 없었습니다. 결국 채주는 당시의 법에 따라 빚을 갚지 못하는 과부의 두 아들을 종으로 삼기 위해서 데리고 가겠다고 합니다. 남편을 잃은 것도 서러운데, 감당할 수 없는 빚에 다가 두 아들을 빼앗기게 된 이 여인이 선지자 엘리사를 찾아가서 도와달라고 간청을 하게 됩니다.

엘리사는 그 여인에게 집안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에 그 여인은 아주 절박하게 대답을 합니다. "한 병 기름 외에는 아무 것도 없나이다" 집안에 남아 있는 것이라고는 기름 한 병밖에 없다는 이 여인의 대답은 그만큼 절망적인 상황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엘리사는 여인에게 동리에 나가서 빈 그릇을 빌되 많이 빌리라고 합니다. 그리고 아들과 함께 문을 닫고 한 병의 기름을 빈 그릇에 부어 차는 대로 옮겨 놓으라고 합니다. 이 여인은 엘리사의 말에 순종하여 두 아들과 함께 그릇마다 기름을 채우게 되었는데 이제는 빈 그릇이 없게 되자 병의 기름도 그치게 됩니다. 이 놀라운 사건을 경험한 여인은 엘리사를 찾아가서 상황을 보고하였더니 그 기름을 팔아서 빚을 갚고 남는 것으로 두 아들과 함께 생활하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고난이 축복으로 변하게 된 비밀을 발견하게 됩니다. 문제가 변하여 축복이 된 교훈을 깨닫게 됩니다. 보십시오. 남편은 죽었습니다. 가정에는 빚더미만 남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두 아들은 종으로 채주에게 끌려 가야할 상황입니다. 이것보다 더 절박한 고난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이것보다 더 절망적인 상황이 또 있을까요? 그런데 이 여인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는 것입니까? 우리는 본문의 말씀에서 인생 여정에서 삶이 고난을 당했을 때에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분명히 가르쳐주고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렇다면 인생 여정에서 고난을 당했을 때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첫째로, 삶이 힘들고 어려울 때에 하나님 앞에 나와서 기도하셔야 합니다.
당시에는 가장 불쌍한 사람을 지칭할 때에 고아와 과부라고 했습니다. 실제로 당시의 사회적 정황은 고아와 과부는 자신의 힘으로 살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엎친데다 덮친 격으로 감당할 수 없는 빚을 떠 안았습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를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엘리사는 4절에서 이 여인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본문 4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너는 네 두 아들과 함께 들어가서 문을 닫고 그 모든 그릇에 기름을 부어서 차는 대로 옮겨 놓으라."

여기에서 "문을 닫는다"라는 말은 골방을 만든다는 말입니다. 골방을 만든다는 말은 기도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마태복음 6장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기도할 때에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시는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왜 골방에 들어가서 문을 닫고 기도하라고 했을까요? 사람을 의식하면서 하는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만 의지하면서 간절히 드리는 것이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울부짖는 기도를 통해서 주님과 나만의 고요한 시간을 갖도록 문을 닫으라는 뜻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골방 기도는 위력이 있습니다. 골방 기도는 이적을 만나게 합니다. 골방 기도 때문에 모세가 모세 되었고, 야곱이 야곱 되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기도는 가난한 성도의 자산입니다. 약한 성도의 강한 무기입니다. 고난 당한 성도의 피난처입니다. 믿으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많은 성도들은 기도의 위력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염려합니다. 낙망합니다. 절망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기도할 수 있는데 왜 염려하십니까? 모든 염려를 주께 맡기시기 바랍니다. 염려하기 전에 먼저 기도하고 걱정하기 전에 먼저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을 전심으로 믿는 성도들 앞은 언제나 활짝 열려져 있습니다. 능히 여리고 장벽을 무너뜨릴 수 있고 홍해를 건널 수가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루마니아 작가 게오르규는 '제 2의 찬스'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의 하나님께서 나에게 제 2의 기회를 주셨으므로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또 하나의 기회를 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그래서 실패는 성공의 발판이 되고, 오늘의 낭패는 내일의 소망이 됩니다. 전반전이 있으면 후반전이 있습니다. 비가 올 때가 있으면 비가 갤 때도 있는 법입니다. 밤이 오면 반드시 아침이 옵니다. 이것을 믿는다면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 앞에 나오십시오. 그리고 그분 앞에서 간절히 구하고 두드리고 찾으십시오.

본문의 여인에게는 가진 것이라고는 기름 한 병 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이것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가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기도하면서 말씀에 순종하여 빈 그릇에 기름을 부었더니 놀라운 복을 눈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앤드류 머레이는 기도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기도는 하늘의 힘을 좌우하는 지상의 유일한 힘이다" 주님께서도 기도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어려움을 당할 때에, 감당치 못하는 문제가 있다고 해서 혼자서 고민하고 염려하고 포기하고 좌절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나와서 기도하십시오. 시편 34편 15절 말씀에서 기자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여호와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 귀는 저희 부르짖음에 기울이시는도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귀를 부르짖는 사람에게 기울이신다고 하십니다. 이사야 선지자도 절망에서 방황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말씀합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그렇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찾으십시오. 하나님 앞에서 부르짖으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만나주실 것입니다. 응답하여 주실 것입니다. 넘치는 복으로 가득 채워주실 것입니다. 떠오르는 해처럼 힘차게 일어나게 하실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환난에서 부르짖어 응답 받은 이야기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갈이 광야에서 목말라 죽게 되었을 때에 부르짖어 기도했더니 생수를 얻었습니다. 생수만 얻었던 것이 아니라 자신의 아이에 대한 축복의 말씀도 들었습니다. 한나도 아이가 없어서 하나님께 기도하였더니 아들을 주셨습니다. 한 아들만 주신 것이 아니라 그 후에 더 많은 자손을 주셨습니다. 히스기야 왕도 죽을 병에 걸렸을 때에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눈물로 기도했더니 그의 생명을 연장해 주셨습니다. 요나가 기도를 통해서 물고기 뱃속에서 살아났습니다. 다니엘이 기도를 통해서 사자 굴에서 살아났습니다. 베드로가 기도를 통해서 앉은뱅이가 일어나 걷기도 하고 뛰게도 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도 기도하면 이적을 만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내가 드린 믿음의 기도가 나의 삶 속에서 힘이 되고 있습니까? 하갈이 기도를 통해서 생수를 얻었던 것처럼 기갈에 허덕이는 내 심령에 성령의 생수를 얻으시기를 축복합니다.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나온 것처럼 사망의 어두운 곳에서 나오시기를 축복합니다. 다니엘이 사자의 굴에서 나온 것처럼 환난과 곤고함에서 나오시기를 축복합니다. 기도하십시오. 기도해서 앉은뱅이가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한 것처럼 강한 용기와 힘을 얻으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은 결코 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드린 기도에는 결코 공짜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부르짖고 기도하는 사람을 통해 역사하십니다. 그의 부르짖음에 반드시 응답해 주십니다. 이 사실을 알았던 프랑스의 사상가이자 철학자인 몽테뉴는 말합니다. "기도는 하늘의 축복을 받는다"라고 말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통해서 축복하여 주십니다. 하나님 앞에 죽기 살기로 목숨 걸고 기도하는 사람의 기도를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응답해 주십니다. 여러분이 이 말씀을 믿는다면, 부르짖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삶이 힘들고 어려울 때일수록 내 믿음의 그릇을 채우는 헌신이 있어야 합니다.
본문 6절의 말씀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그릇에 다 찬지라 여인이 아들에게 이르되 또 그릇을 내게로 가져오라 아들이 가로되 다른 그릇이 없나이다 하니 기름이 곧 그쳤더라"

지금 여인에게는 견딜 수 없는 번민이 있습니다. 우선 당장에 빚을 갚아야 두 아들이 종으로 팔려 가지 않습니다. 그런데 엘리사는 빈 그릇을 빌려오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빈 그릇에 기름을 채우라고 합니다. 여러분, 빈 그릇에 채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 기독교는 비우는 종교가 아니라 채우는 종교입니다. 불교나 다른 종교에서는 마음을 비우라고 합니다. 그러나 기독교에서는 마음을 채우라고 합니다. 기억하십시오. 믿음은 비우는 것이 아니라 채우는 것입니다. 얻고 채우는 것이 바른 신앙적인 삶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요한복음 10장에서 "내가 온 것은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채우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우리가 얻는 것을 좋아하십니다. 특히 우리의 기름으로 풍성히 채우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이 여인이 기름으로 그릇이 가득 차게 된 것처럼 오늘 우리들의 심령에도 성령으로 가득 차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말씀으로 가득 차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내 것이 모자라면 다른 사람의 것을 빌려서라도 그릇을 가지고 오라는 것은 믿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하나님 앞에 나가야 합니다. 할 수 있는 대로 최대한 많은 그릇을 빌려서 문을 닫고 그 그릇에 기름을 부으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순종하는 믿음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내 이성적인 판단과 경험을 포기하십시오. 처음부터 이 여인에게는 자신의 이성적인 판단과 경험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동리에 가서 다른 사람의 그릇을 빌려 오라는 것도 이성적인 판단으로 이해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빈 그릇에 기름을 채우라는 것은 더더구나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이성적인 판단과 경험을 포기하고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이것은 그녀의 믿음이었습니다. 믿음대로 했더니 믿음대로 되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네 믿음대로 될 지어다" 오늘 여러분의 믿음의 그릇만큼이나 역사가 일어나기를 축복합니다. 기왕이면 더 큰 그릇으로 하나님 앞에서 복을 받아 누리는 저와 여러분이 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시편 81편 10절 말씀에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고 하십니다. 이사야 54장 2절 말씀에는 "네 장막터를 넓히라"고 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에 큰 믿음을 가지고 나갈 수도 있고, 작은 믿음을 가지고 나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믿음만큼만 역사하십니다. 영국의 유명한 의사였던 윌리엄 오슬러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믿음이 없다면 사람은 아무 것도 해낼 수가 없다. 그러나 믿음을 통해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여러분,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에 큰 믿음을 가지고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더 큰 믿음을 가지고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이여, 내게도 큰 믿음을 주옵소서"

미국의 조지아 주립대학교 데이비드 교수는 성공에 대해 많은 연구를 했습니다. 그는 성공한 사람들의 학력과 조건을 조사한 후에 성공의 비결은 얼마나 좋은 대학을 졸업했는지, 얼마나 좋은 환경과 집안에서 성장했는지 보다, 본인이 얼마나 크게 생각했느냐 에 달려있다고 말했습니다. 생각하는 것에 따라서 성공이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학벌을 가지고 있고, 좋은 집안에서 자랐다고 할지라도 생각이 좁고 믿음이 적으면 좁은 인생밖에 살지를 못합니다. 그러나 환경이 열악하고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했다고 할지라도 생각이 크고 믿음이 크면 하나님께서 큰 대로 역사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 앞에서 큰 믿음을 가지시기를 축복합니다. 더 큰 믿음을 가지십시오.

여인이 빌려 온 그릇이 모두 몇 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20개였으면 20개의 그릇이 다 차고, 100개였으면 100개의 그릇이 다 찬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릇을 준비한 것만큼 축복과 은총을 베풀어주십니다. 이 여인에게 그릇이 없다고 하였을 때에 기름은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준비한 것만큼 채워주십니다. 축복은 준비하는 자에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축복 받을 것을 준비하십시오. 성공할 것을 준비하십시오. 행복하게 살 것을 준비하십시오. 준비하되 더 큰 그릇으로 준비하시기를 축복합니다.

모름지기 그릇이 있어야 기름을 담을 수 있습니다. 아무리 풍성하고 좋은 기름이라도 담을 수 있는 그릇이 있어야 합니다. 복을 담을 수 있는 복 그릇이 있어야 합니다. 은혜를 담을 수 있는 은혜 그릇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말에 '그릇이 크다, 그릇이 작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을 그릇이라고 했습니다. 그릇이 작아서 얻지 못한 자가 많습니다. 사도행전 9장 15절에서는 "주께서 가라사대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그릇이 큰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릇이 많은 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큰 그릇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제발 그릇이 작은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많이 채우기 위해서는 빈 그릇이 많아야 합니다. 빈 그릇이 커야 합니다. 그리고 그릇을 채우는 일에 욕심이 있어야 합니다. 이런 사람이 결과적으로 많이 가지고, 많이 얻고, 풍성하게 채웁니다. 그릇에 욕심을 부려도 좋습니다. 그릇이 커야 큰 은혜를 받습니다. 그릇이 많아야 많은 복을 받습니다. 그릇은 빌릴 수 있는 대로 빌려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채우십니다. 많이 빌리는 자가 많이 채우고 많이 얻습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그릇을 빌려다 주는 일은 하지 않으십니다. 그릇을 빌려오는 일은 우리의 몫입니다. 우리가 부지런히 최대한 많은 그릇을 빌려오면 하나님은 거기에 꼭꼭 채우십니다. 나의 처음 기름과 이웃의 그릇이 준비될 때에 하나님의 무한하신 기름이 채워집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모두가 축복을 받아야 합니다. 더 많은 복을 받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축복을 받지 못하면 결국에는 우리 하나님이 망신을 당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는 우리가 복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복을 받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영혼이 잘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이 잘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신앙에서 승리하셔야 합니다. 저는 우리 영신교회 가족 모두가 신앙에서 승리해서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아 부자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의 빈 그릇이 가득 차고 넘치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의 자녀들도 다 잘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 4절에 보면, 엘리사는 절박한 이 여인에게 "두 아들과 함께 들어가서 문을 닫으라"고 합니다. 문을 닫으라는 말은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의지하라는 말입니다. 애초에 이 여인은 세상 사람들에게서는 어떠한 도움도 얻을 수 없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을 향하는 모든 문을 닫고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의 기적의 은총은 세상을 바라보지 않고 하나님만을 바랄 때에 나타납니다. 하나님 외에 세상으로부터 무엇인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을 포기하십시오. 하나님 외에 모든 의존하던 것을 포기하십시오. 그릇이 있지만 왜 채우지 못합니까?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의존하고 바라보기 때문에 채워지지 않습니다. 세상으로 향하는 문을 닫으십시오. 세상으로 향하던 생각도 닫으십시오. 세상의 문을 열면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힘들고 어려울 때에 세상 문을 더 많이 열려고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어려울 때일수록 세상 문을 닫으십시오. 하늘을 향하는 문만 열어놓으십시오. 그리고 하나님께만 의지하며 매달리십시오. 그럴 때에 빈 그릇은 채워지는 것입니다. 이 놀라운 구원의 역사를 눈으로 보고, 몸으로 경험하고, 입으로 찬양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어떤 군목이 최전방에서 군목 생활을 하면서 짬짬이 벌통을 쳐서 꿀을 땄습니다. 아주 좋은 꿀을 따서 부대에 있는 모든 군인들에게 광고를 하기를, 누구든지 빈 그릇을 가지고 와서 꿀을 타 가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어떤 군인은 박카스 병을 가지고 왔고, 어떤 군인은 링거 병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군인은 스페어 깡통을 가지고 왔습니다. 군목은 군인들이 가지고 온 빈 병에 다 꿀을 가득히 넣어 주었습니다. 박카스 병은 박카스 병만큼, 링거 병은 링거 병만큼, 스페어 통은 스페어 통만큼 꿀을 부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에 항의 전화가 걸려오기를 공평하지 않게 나누어주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때 군목이 이렇게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누가 박카스 병을 가지고 오라고 했소? 나는 빈 그릇을 가져오라고 했고 그 빈 그릇대로 채워 줬을 뿐이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 앞에 빈 그릇을 가지고 나오십시오. 그러나 기왕이면 큰 그릇을 가지고 나오시기를 바랍니다. 작은 그릇에는 작은 것을 담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그릇이 작다면 빌려서라도 가지고 나오십시오. 우리가 빈 그릇을 가지고 나온다는 것은 믿음의 헌신을 말합니다. 이제 우리는 다음 주일 저녁에 집회를 앞두고 있습니다. 한 주간 동안 부지런히 빈 그릇들을 구합시오. 그리고 그 빈 그릇에 가득히 채움을 받는 역사가 우리 모두에게 있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성경에서 기름은 하나님의 영, 성령을 상징합니다. 기름을 부으심이란 성령으로 감동하심이란 뜻입니다. 이 한 주간의 삶이 성령으로 가득 채워진 삶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우리 그릇에 성령으로 가득 채우기를 바랍니다. 하늘 문만 열고 세상 문을 닫고 우리 각자의 그릇을 하나님의 성령으로 가득 채우는 한 주간의 삶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무엇보다도 여러분의 빈 그릇에 하늘의 놀라운 복을 가득 채우는 역사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