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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축복의 길 (창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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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임대식 목사

오늘은 추석 연휴가 시작되는 날입니다. 우리 민족은 옛 조상 때부터 추석 한가위를 가장 큰 명절 중의 하나로 여겼습니다. 풍요롭게 농사를 짓고, 여유롭게 맑은 하늘의 가을 달을 바라보면서 온 동네와 세상이 그 기쁨을 함께 누리는 계절입니다.

추석이 오면 두 가지 일로 분주합니다. 하나는 고향을 찾는 일입니다. 고향을 찾아 어르신들을 만나 뵙고, 흩어졌던 가족들을 만납니다. 마음 속 깊은 곳에 감추어져 있던, 고향이란 단어가 풍기는 훈훈한 정감을 나누는 날입니다.

또 하나는 성묘의 계절입니다. 조상들의 묘를 찾아 가다듬으면서, 그 분들의 생전 삶을 회상하고, 생명의 주인이시오, 가정의 선한 목자 되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날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날에 과거 조상들의 삶이 나에게 감동을 주듯, 오늘 나의 삶의 발자취가 후대에 길이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조상들의 길을 오늘 내가 더듬어보며, 나 또한 복된 인생의 길을 걸어가는 귀한 삶의 흔적을 남겨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됩니다.

저는 성경을 보면서 유감스럽고 안타까운 대목을 가끔 만나게 됩니다. 그 하나가 솔로몬 왕의 종말입니다. 솔로몬은 아버지 다윗의 유업을 이어받아 21살에 왕이 되었습니다. 그의 생애는 화려했습니다. 지혜의 왕이라고 후대에 일컬어 집니다. 그가 누린 영화는 참으로 대단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인생의 종말은 아름다운 기록 하나 없이 흐지부지 끝나고 맙니다. 오히려 그의 학정으로 말미암아 그의 죽음과 동시에 나라가 두 동강이가 나고 맙니다. 얼마나 유감스러운지 모릅니다. 얼마나 안타까운지 모릅니다.

그러나 다른 분, 아브라함의 생애를 보면 얼마나 귀하고 복된지 모릅니다. 아브라함은 모든 믿는 자들의 조상이라고 로마서 4장 11절은 말씀합니다. 신약 성경의 첫 장은 아브라함과 더불어 시작합니다. 그리고 바울 사도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아브라함의 영적 후손이며, 아브라함이 받았던 복이 우리의 복이 된다고 설명합니다. 무엇보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벗, 하나님의 친구’라는 별명을 갖고 계신 분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확실히 아브라함은 오늘 우리 신앙인의 본보기가 되는 분입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아브라함은 그 가문이 좋았던 것은 아닙니다. 그의 집안은 우상을 만드는 형편없는 집안이었습니다. 또 재산이 많아 떵떵거렸던 것도 아닙니다. 대단한 권세가 있는, 소위 뼈대 있는 집안도 아니었습니다. 한 나그네요, 순례자에 불과한 초라한 한 사람이 이렇게 후대에 기리 기억되는 믿음의 조상이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점이 이렇듯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 되게 한 것일까, 우리는 과연 어떻게 살아야 아브라함처럼 믿음의 조상의 길을 걸어갈 수 있겠는가, 추석을 맞으면서 오늘 말씀을 통해 생각해 보게 됩니다.

믿음의 조상의 길은 첫째로 새로운 미래를 향해 떠나는 삶을 사는 길입니다. 오늘 말씀 1절,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에 순종해 아브라함은 새로운 미래를 향해 떠났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먼저 지금까지의 삶에서 떠나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새로운 미래를 향해서 떠나야 합니다. 습관적인 삶에서 떠나 새로운 도전을 향해 나가야 합니다. 평안한 삶에서 떠나 새로운 앞날을 개척해 나가야 합니다. 떠나지 못할 때 생활과 신앙의 진보는 없습니다. 성장이나 성숙이 없습니다.

우리 자녀들이 장성했지만, 사랑하는 부모님의 품을 떠나지 못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무리 사랑스럽고 복된 자녀라 할지라도 때가 되면 새로운 가정을 이루기 위해 떠나야 합니다.

또 결혼한 남녀가 정신적으로 그 부모를 떠나지 못하고 부모의 그늘 밑에 거하려고만 하면 그 가정이 어떻게 발전이 있겠습니까? 또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했는데, 심정적으로 아들을 그 아내에게 보내지 못하고 아직도 부모의 가슴에 품고 살면 어떻게 그 새 가정이 복될 수 있겠습니까?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떠나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사람은 순종하고 떠나야 합니다. 옛 사람으로부터 떠나서 새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람의 보호를 받던 상태에서 이제는 하나님의 보호로 만족하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과거 어머니의 뱃속에서 태어난 옛 사람의 나로부터, 이제는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새로운 존재로서의 나로 거듭나야 합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향해서, 너는 네가 속해있던 지연과 혈연 사회에서, 네 본토 친척 아비의 집에서 떠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제는 옛 사람 아브라함이 보호받던 그 세상에서, 이제는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시는 새로운 세상으로 옮기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신앙이란 옛 사람, 옛 일, 옛 행실, 옛 습관, 옛 모습에서 떠나 하나님께서 계획하시는 새로운 사람, 새로운 역사, 새로운 삶과 생활을 영위하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과거를 떠나 미래로 가는 것입니다. 인간의 과거를 떠나, 하나님의 미래로 출발하는 것입니다. 내 삶의 기반을 떠나, 하나님의 약속의 땅으로 가는 것입니다. 인간의 안전과 평안을 떠나 하나님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리게 되는 것이며,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혹 이런 명절을 맞으면서, 가족과 친척 중에 믿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외롭거나 두려움을 느끼는 분이 계십니까? 결코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가나안 땅과 같이 이방인들만 있는 곳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하나님은 나를 부르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통해 가나안 땅을 정복하신 것처럼, 이 땅을 네게 주리라고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나는 내 가족과 내 친구들에게 파송된 선교사라는 선교사적 사명감을 가져야 합니다. 또 나를 내 가족을 위한 선교사로 보내셨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혼자 외롭게 믿는 분이 계십니까? 하나님은 그 외로움 때문에 나를 부르십니다. 나를 통해 내 가족과 친척들이 모두 예수님을 믿고 큰 민족을 이루게 하려고 나를 부르신 것입니다. 이런 큰 확신 속에 신앙을 출발하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황무지 같은 가나안 땅을 향해 떠났습니다. 이방인 속에서 외롭게 하나님을 믿으려고, 후손을 통해 하나님을 믿는 수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기 위해 떠났습니다. 신앙의 길의 첫 출발은 지금 있는 이 자리에서 떠나 하나님의 미래로 향하는 것입니다.

둘째, 믿음의 조상의 길은 복의 근원이 되는 것입니다. 2절 말씀을 보면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하나님께서 친히 말씀하십니다.

사실 이 복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모릅니다. 우리는 이 복을 받아야 합니다. 이 복을 누려야 합니다. 복된 존재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복은 내가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이 주는 것도 아닙니다. 정치인이, 경제인이, 그 누군가가 복을 만들어 나에게 주는 것이 아닙니다. 복은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저 복으로 내려 주시는 것입니다.

자, 그런데 하나님은 믿음의 조상을 향해서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참 귀한 말씀입니다. 복의 근원, 이 근원이란 말은 샘터란 말씀입니다. 샘물이 계속 솟아나서 뭇사람들이 시원함을 얻듯이, 그렇게 복의 근원이 된다는 말입니다. 또 복의 근원이란 뿌리라는 말입니다. 뿌리에서 순이 나고 줄기가 나며 잎이 피고 꽃이 피며 열매를 맺습니다. 숲이 우거집니다. 새들이 와서 깃듭니다. 그 근원은 뿌리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이 바로 이와 같아야 되는 줄 믿습니다. 내가 복 받은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남보다 많이 복 받았다고 자랑해서도 안 됩니다. 또 내게 복 많이 내려 달라는 것만이 우리 기도의 중심 내용이 되어서도 안 됩니다.

우리는 복을 소유한 사람으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복을 누리는 자로 만족해서도 안 됩니다. 바로 내 자신이 복의 근원이 되어야 합니다. 내 자신이 적게는 내 가족들에게, 나아가서는 이 사회,이 민족, 온 세상을 향해 복의 근원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리고 소유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그 하나님의 복을 나누고 전하며 사는 복의 근원이 되어야 합니다.

만일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혼자 누리는 것으로 만족했다면, 그는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복의 근원으로서, 복의 샘물, 복의 뿌리로서, 오고 오는 세대에 이 복의 근원의 역할을 잘 감당했기에,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었습니다. 나 또한 복의 근원이 되기에 힘써야 합니다. 우리 가정이 세상을 향한 복의 근원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바로 이 사명, 하나님의 복을 온 세상에 나누어주는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셋째로, 믿음의 조상의 길은 꿈과 비전의 길입니다. 다시 2절 말씀을 보니 하나님은“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라”하시는 꿈을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은 그의 꿈과 비전을 바라보면서 오늘을 살아갔던 분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꿈을 안고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6절을 보면 “세겜 땅 모레 상수리 나무”에 도착했습니다.

모레 상수리 나무란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시골 마을 동네 어귀에 큰 나무가 서 있는 것과 비슷합니다. 또는 서낭당이나 당나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은 무슨 뜻이겠습니까?

아브라함이 처음 당도한 땅은 아무도 살지 않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비워 둔 신천지가 아니었습니다. 그곳은 혼자서 무사태평하게 차지할 수 있는 땅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이방 종교가 가나안 사람들의 영혼을 사로잡고 있는 곳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처음부터 편안하게 호강하고 살 수 있는 기름진 초장으로 인도한 것이 아니라, 가나안 사람들의 신전이 있는 세겜 땅으로 데리고 가서, 하나님이 가라고 한 땅의 참모습을 보게 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그곳에서 7절 말씀을 보니 “단을 쌓”았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제단을 쌓은 것입니다. 지금은 바알 신당이 있는 땅이지만, 그 땅을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확보했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 살 땅임을 확신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그 꿈에 살았습니다. 그 비전을 안고 살았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꿈과 비전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아브라함이 거처를 옮길 때마다 남겨둔 것이라고는 돌 제단 밖에는 없었습니다. 그가 남긴 것은 돈이 아닙니다. 명성이 아닙니다. 오직 믿음의 제단, 비전의 제단을 후손들에게 남겼습니다. 그 후손들은 그 제단들을 보고, 그 제단들을 기억하고, 그 꿈과 비전을 이어받으며, 그 믿음을 전해 받은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진정 꿈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영감을 받았고, 지칠 줄 모르는 힘을 공급받았습니다. 그 꿈을 붙들고 살았고, 그 비전을 바라보며 살았습니다. 그 꿈을 이루는 것을 자신의 소명으로 삼았습니다. 꿈으로 설레는 가슴을 모험으로 이루어 나갔습니다.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고 잠언 29장 18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요엘 2장 28절을 보면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환상을 볼 것이니라”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영이 임하면, 성령이 임하시면, 꿈을 꾸고 비전을 품고, 환상을 본다는 말씀입니다.

신앙인의 꿈은 하나님의 약속된 축복입니다. 꿈과 환상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인류 역사상 영광의 한 페이지를 남긴 사람들은 거의 꿈의 사람들이었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하나님과 약속된 축복을 꿈으로 받고 살았고, 오늘 우리도 역시 축복을 꿈과 비전으로 받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자신이 후손들에게 위대한 조상으로서의 복된 길을 보여주기를 원한다면, 나에게 반드시 꿈이 있어야 합니다. 나에게 환상이 있어야 하고, 비전이 있어야 합니다. 나 개인적인 것에서부터, 우리 가정과 교회와 민족의 꿈을 가져야 합니다. 아브라함처럼, 우리 뒤를 이어갈, 하늘의 별처럼 빛날 믿음의 후손을 꿈꾸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결국 꿈에 살다가 꿈에 죽어간 사람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큰 민족ㅇ르 이루리라는 꿈은, 이스라엘 대대손손 이어가는 꿈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꿈은 수천년을 내려오면서 결국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바라기는 오늘 이 시간 우리 모두가, 하나님이 주시는 꿈으로 가득한 삶을 사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꿈과 비전으로 설레이는 가슴을 활짝 열고 사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가정과 교회의 믿음의 조상으로 사시기를 바랍니다. 과거 아브라함에게 꿈과 비전을 주신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한 축복을 내려 주실 줄 믿습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된 것은 결코 쉽게, 저절로 된 것이 아닙니다. 과거를 단절하는 결단의 신앙 속에, 복의 근원으로 살며, 하나님의 꿈과 비전을 바라보며 오늘을 세워 나가는 가운데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훗날 내 후손이 나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나는 그들에게 무슨 유산을 남겨 줄 것인가, 추석을 맞으며 우리는 진지한 질문을 내 자신에게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바라기는 모든 성도님들 믿음의 조상의 길을 걷기로 다짐하시는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진정한 축복의 길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과거 아브라함을 인도하신 우리 하나님께서, 하늘로서 나리는 은혜와 복을 바라보며 믿음의 길을 열어 나가시는 우리 성도님들을 도와주실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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