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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는 교회 (살전 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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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김성철목사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쉬지 않고 기억함이니........” (데살로니가전서 1:3)

왕심리교회는 창립 96 주년을 맞이했습니다. 이 교회를 세우시고 교회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역사에 감사드리면서 오늘의 교회의 모든 영광을 삼위일체 되시는 하나님께 돌립니다.
왕십리지역의 복음의 역사는 최순성(김윤제 장로 자당)씨가 임산부로 중태에 빠졌을 때에 동대문교회 심이라 전도사의 주선으로, 볼드윈 박사가 설립한 동대문 부인병원에서 치료받은 뒤에 복음을 받아드려 최씨 일가를 비롯하여 이웃에 사는 몇 사람이 예수를 믿게되어 동대문교회에 출석하게 되는 데서부터였습니다. 이 들은 주로 최순성씨와 홍순호 씨의 집에서 속회를 모여 예배를 드리게 되었고, 동대문 교회 참석하기에 거리가 멀어 밤 예배는 독자적으로 최순성씨 아버지인 최석훈 댁에서 모이게 되었으며, 1905년에 이르러는 주일 낮 예배도 독자적으로 모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1908년에 이르러 이들은 심판서씨댁 사랑채를 얻어서 신영희씨 인도로 50명 정도가 예배모임을 지속하게 되었고, 김인권전도사가 파송됨으로 교회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왕십리 교회의 시작이 된 것입니다.
왕십리교회건물의 역사는 1911년 벙커 선교사의 주선으로 지금의 꽃재 동산에 아름다운 벽돌건물의 교회를 세우게 되었고, 전쟁 후 1955년에는 미국의 스미쓰 씨의 봉헌으로 ‘스미스 기념예배당’으로 새로운 교회를 건축하게 되었으며, 1976년에 오늘의 교회를 건축함으로 지금의 교회가 되었습니다.

왕십리교회의 역사는 민족복음화와 함께 민족의 수난과 변화의 역사와 함께 한 교회였습니다. 처음교회가 시작될 당시 복음을 받아드린 창립 멤버들의 기도와 전도의 열정은 이미 교회가 세워지기 전부터 용두리까지 복음을 확장하는 역사를 일으켰습니다. 이것은 왕심리교회의 기도와 전도 영성의 전통이 되었습니다.
교회는 교회창립과 함께 개화기 문맹퇴치를 위해 여학교를 개척했고 이것을 모체로 이화부속 왕십리 여학교를 세워 22회의 삼천여명의 졸업생을 배출했습니다. 1926년에는 야학 왕십리여자학원을 설립하여 무산아동들에게 배움의 길을 인도했고, 벙커목사의 부인에 의해 시작된 유치원은 오늘의 꽃재 선교유치원의 모체로 지역의 조기성장교육에 큰 몫을 다했습니다.

교회는 민족의 수난과 함께 시대적 책임을 다했습니다. 3.1 만세운동 시 이필주 목사님은 3.1운동 33인중에 한 분으로 참여했고, 6.25 전쟁 중에는 교회가 문을 닫는 고난 중에도 지하에 숨어 나라구원을 위하여 기도의 책임을 다했습니다. 이러한 모든 것은 왕십리교회 사회참여의 영성의 전통인 것입니다.
그 밖에 교회 안에서 이루어진 96년간의 교육과 봉사와 선교역사는 이루다 말할 수 없는 엄청난 역사이고, 이 모든 것은 교회의 주인이신 그리스도께서 이 교회를 통하여 이루어 오신 역사입니다.

왕십리교회의 역사는 그리스도의 역사이고 성령의 역사입니다. 왕십리교회가 교회로 지속할 수 있고 생명력 있는 교회로 존속하고 성장한 데는 교회가 하나님의 교회로와 그리스도의 교회와 성령의 전으로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교회는 그리스도의 피로 값 주시고 사신 것이기에 앞으로도 철저히 그리스도의 교회가 되는데서 무너지지 않고 세상을 구원하며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권세 있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사랑하시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역사와 사건이 드러나고 그리스도의 명령과 약속을 이루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로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것은 그 교회가 하나님의 사랑 받는 교회였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해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4절)이라고 칭찬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는 교회였습니다.
96주년을 맞이하는 우리 왕십리교회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럼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는 교회의 모습은 무엇입니까?

믿음의 역사가 있는 교회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믿음의 역사와 함께 믿음의 역할을 다하는 교회였습니다. 그 믿음의 역사는 “복음의 능력과 성령의 큰 확신으로”(5절)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사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는”(9절) 믿음의 역사를 이루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이러한 믿음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 믿음의 역사가 있도록 믿음의 역할을 다하는 교회였습니다. 우리 교회도 복음의 능력과 성령의 확신으로 믿음의 역사를 이루어 가는 교회가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믿음의 역사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믿음의 역할입니다. 믿음을 나타내는 것이며 믿음의 증인이 되고 믿음이 자라도록 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에 복음의 씨를 뿌렸습니다. 핍박을 받으면서 열정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바울이 전하는 말씀을 받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으로 그들의 믿음이 자랐습니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데살로니가 전서 2장 13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쉬지 않고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 이 말씀이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느니라”

교회의 교회 됨은 믿음의 역사에 있습니다. 믿음의 역사가 있을 때 교회입니다. 교회는 예수를 믿는 곳이고 예수를 믿게 하는 곳입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고 그 예수님의 은혜를 나누는 곳이 교회입니다.
사도행전의 처음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의 열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전도하고 가르치고 기도했습니다. 그들의 믿음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를 드러냈습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앉은뱅이를 일으켰고 죽은 자를 살리며 귀신을 쫓아내고 이기적인 사람들을 변화시켜 이웃사랑의 사람들이 되게 했습니다. 그들의 믿음의 강한 역사는 인간영혼을 사랑하는 복음선교의 열정으로 나타나 믿는 자의 수를 더하게 했습니다. 믿음의 역사 이것은 교회의 능력입니다. 이 믿음의 역할을 다하는 교회가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는 교회입니다. 믿음의 역사를 다하는 성도가 도시기를 바랍니다.

사랑의 수고가 있는 교회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사랑이 풍성한 교회였고 사랑하기에 수고를 아끼지 않는 교회였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형제 사랑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너희가 친히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아 서로 사랑함이라” (살전 4:9)
사랑의 수고의 수고라는 말 ‘코포스’는 일을 함으로서 ‘소모되는 힘’이라든지 일을 함으로서 얻게되는 ‘고통’을 의미합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사랑을 위해 아낌없이 소모하는 교회였고 고통을 감수하는 교회였습니다.
에릭 프롬(Erich Fromm)은 그의 저서 ‘사랑의 기술’(The Art of Love)에서 사랑의 특징 다섯 가지를 말했습니다. 첫째는, 관심을 가지는 것. 둘째는 책임을 느끼는 것. 셋째는, 존중하는 것. 넷째는, 이해하는 것. 다섯째는, 주는 것입니다.

사랑의 수고란 사랑을 위해 상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것입니다. 그 대가가 노력일 수도 있고 봉사나 구제나 헌신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형태의 대가를 지불하든지 반드시 자신의 희생이 동반되는 것, 다시 말하면 사랑 때문에 자기자신을 주는 것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헬렌 켈러’여사의 생애에 큰 감동을 받고 있습니다. 그분은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삼중고를 겪었습니다. 헬렌 켈러는 거칠고 반항적이며 병든 인격을 가지고 성장했습니다. 이런 그녀에게 가정교사인 ‘설리반’이 사랑으로 가르쳤습니다. 설리반 선생님의 사랑의 수고와 고통이 그녀를 사람되게 한 것입니다.
가정교사 설리번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릴 때 어머니가 죽고 알코올 중독자인 아버지에게 버림을 받았습니다. 함께 의지할 동생이 있었는데 먼저 죽었습니다. 불우한 고아인 설리반은 안질에 걸렸는데 그 안질이 악화되어 실명하고 말았습니다. 설리번은 두 번이나 자살을 기도했습니다. 이러한 때에 설리번은 바바라 신부를 만났습니다. 신부님은 절망하는 이 소녀에게 십자가의 사랑을 가르쳤습니다. 신부님은 불쌍한 소녀를 위하여 사랑의 수고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이 소녀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찾게 되고 절망적인 과거의 삶을 벗어나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보스턴 파킨스 맹아학교에 들어가 6년간의 노력 끝에 수석으로 졸업했습니다. 한 신문사의 도움으로 개안 수술을 받고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이런 설리반이 삼중고에 시달리는 짐승 같은 소녀 헬렌켈러의 가정교사로 자원하여 가르친 것입니다. 설리반은 무려 48년간 헬렌켈러와 싸웠습니다. 헬렌켈러의 학업과 생활을 교육했을 뿐 아니라 신앙적인 감화를 주었습니다. 마침내 헬렌켈러는 변화되었고 템플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훌륭한 문학작가가 되었습니다. 설리반의 고통을 감내하는 사랑의 수고는 버림받은 헬렌켈러를 위대한 인물이 되게 했습니다. 설리반도 박사학위를 받게 되었는데 그것은 어느 학위보다도 귀한 것이었습니다.
바바라 신부의 사랑의 수고는 불행한 설리반을 위대한 선생님이 되게 했습니다. 설리반 선생의 고통을 감내하는 사랑의 수고는 짐승과 같은 헬렌켈러를 세기의 위대한 인물이 되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고통을 감내하는 사랑의 수고로 세워지고 그 수고로 존속합니다. 구원은 막연한 이론이 아닙니다. 새사람이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며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이 구원의 역사는 인간의 영혼을 뜨겁게 사랑하는 사랑의 수고로 이루어지는 역사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랑의 수고를 하는 교회가 되어야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는 교회가 됩니다. 사랑의 수고를 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소망의 인내를 가지고 있는 교회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환난 중에도 인내하며 신앙을 지켜 나갔습니다. 주님의 다시 오심과 주님의 나라가 성취됨을 소망하며 인내하였습니다.
본문에서 바울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3절)라고 했습니다. 이는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 궁극적 소망을 두며,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인내하며 기다리고(10절) 있었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소망을 전해주고 그 소망 가운데 살아가도록 붙들어 주는 곳이 되어야합니다. 환난과 시련 중에도 주님을 소망하기에 그 환난과 시련을 통해 더욱 깊은 은혜의 세계를 소유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도를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는 자가 되었느니”(6절) 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역사를 만들어 가는 교회가 하나님의 사랑 받는 교회입니다.

어느 숲 속에서 두 사람의 벌목꾼이 백 년이 훨씬 넘어 보이는 거목을 벌채하고 있었습니다. 힘들여 이 나무를 잘랐을 때, 두 사람은 나무에서 기이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나이테 모양이 매우 독특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나무의 나이테는 나무의 수명을 반영하듯 상당히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중 다섯 개는 다른 나이테와는 달리 아주 촘촘히 위치해 있었고 그 다섯 개의 나이테 바깥쪽으로는 넓은 간격을 두고 나이테들이 위치해 있었습니다. 한 벌목꾼이 아주 조밀하게 나있는 다섯 개의 나이테를 보고 말했습니다. “이 나무는 5년간의 가뭄기간 동안 전혀 자라지 못했군” 그러자 다른 벌목꾼은 그와는 다른 의견을 말했습니다. “물론 그 가뭄기간에는 크게 자라지 못했어, 하지만 가뭄으로 인해 부족한 수분과 양분을 얻기 위해 이 나무는 깊이 그 뿌리를 내렸고 뿌리가 깊어지면서 이 나무는 전보다 성장을 더욱 촉진시킬 수 있는 조건을 갖게 되었지, 인내를 가지고 고난을 이겨냈기에 이런 거목이 될 수 있었던 거야. 이 다섯 개의 나이테 이후에 생긴 나이테를 보게. 나이테가 넓게 간격을 두고 생긴 것이 그 증거일세” 이를 조용히 듣고 있던 벌목꾼도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5년의 가뭄기간이 이 나무의 일생에서 매우 중요한 시기였군, 그래.”

사랑하는 여러분! 그리스도께 소망을 두고, 지금의 고난을 인내하며 소망 중에 살아가는 사람이 될 때에, 그 인내의 과정은 우리의 믿음의 깊이와 사랑의 높은 세계를 뿌리깊게 소유하게 하는 축복의 과정이 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약속에 소망을 두는 성도가 되십시오. 그리스도께 소망을 두고 끝까지 인내하는 교회가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는 교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도 바울은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어야 할 것(고전13:13)임을 말씀하셨습니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 이 세 가지를 가지고 살아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성도가 되십시오. 이 교회가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 소망의 인내를 이루어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는 교회가 되도록 하십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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