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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먹고 남는 풍요 (막 6:3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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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김성철 목사

예수님의 생애 가운데 우리 인간들에게 베푸신 역사는 놀라운 것임과 동시에 풍요한 것임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은 진리 없는 시대에 진리를 보여주심으로 어두운 역사를 빛의 역사로 변화시키심으로 풍요케 하셨습니다. 희망을 상실하고 절망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소망의 말씀을 주셔서 희망을 가지게 하심으로 풍요한 삶을 살게 하셨습니다.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붙잡힌 용서받을 수 없는 여인을 용서하신 일이 라든지, 귀신 들린 자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심으로 자유케 하신 역사라든지, 각종 병든 자들을 고쳐주신 일들, 죽은 자들까지 살리신 일들은 모두가 사람들의 행복을 되찾게 하시는 풍요한 일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인간들에게서 풍요한 삶을 창조하시고 성취시키시는 분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과 함께 인생의 삶을 살아감으로 풍요한 삶을 이룰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양과 질적으로 풍요한 삶을 만들어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 동북쪽 해안 벳세대 들에 계시다는 소문을 듣고 수많은 사람들이 말씀을 듣고자 모여들었습니다. 그들 중에는 각종 병인들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복음전파와 함께 여러 가지 말씀의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아울러 각종 병인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고쳐 주셨습니다. 무리들은 예수님의 곁을 떠날 줄 몰랐습니다. 그들 가운데는 벌써 몇 일째 예수님을 쫓아다니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날이 저물었습니다. 제자들은 걱정이 되어 예수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이곳은 빈들이요 때도 저물어 가니 무리를 보내어 두루 촌과 마을로 가서 무엇을 사먹게 하소서” 이 때에 예수님은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에게 가지고 있는 것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뿐이었습니다. 이것은 요한복음(6:8-9)에 보면 한 어린아이가 준비해온 작은 도시락으로 어린 아이 혼자서 한끼의 식사로 먹을 수 있는 소량의 음식이었습니다. 이 음식으로는 많은 무리들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는 모인 무리로 배불리 먹고 남는 풍요한 일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그 결과를 성서본문에서는 “다 배불리 먹고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떡을 먹은 남자가 오천명이었더라” 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풍요의 역사를 만들어 내신 것입니다.

이 놀라운 풍요는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의 네 복음서에 모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사건은 우리에게 허황된 사건으로 인식시키기 위하여 기록된 말씀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놀라운 풍요를 우리에게 전해주기 위하여 기록된 말씀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풍요케 하시는 역사는 어느 시대나 가능한 역사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방법을 가질 때입니다. 풍요케 하시는 예수님의 역사에 참여하는 데서입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이러한 일을 가능케 한 것은 무엇이라고 하겠습니까?

하고자 하는 믿음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고 하셨습니다. 그곳은 빈들이었습니다. 빈들이란 광야를 뜻하고 그곳은 양식을 얻을 수 없는 곳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불가능한 것을 하시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입니다.
예수님의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는 말씀은 불가능한 명령처럼 여겨집니다. 그렇지만 예수님 자신이 하고자 하시는 분으로 우리에게 하고자 하는 자가 되도록 ‘너희가 하라’고 하셨습니다. 풍요의 역사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하려고 하는 믿음에서 나타나는 역사입니다. 문제에 직면하여 문제를 외면하거나 피하거나 포기하는 태도는 문제를 더욱 어렵게 만드는 것이 됩니다. 그러나 그 문제에 직면하여 해결하려는 적극적인 믿음의 태도는 풍요한 역사를 만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야이로 회당자의 딸을 고쳐주시기 위하여 야이로의 집을 향하고 계셨습니다. 그 때에 열두 해를 혈루병으로 고생하는 여인이 예수님의 옷에 손만 대어도 나으리라는 믿음으로 예수님의 옷깃을 만짐으로 고침을 받았습니다. 이 여인은 혈루병을 고치기 위하여 많은 의원을 찾아다녔습니다. 그러나 괴로움을 더할 뿐 아무 효험도 없이 병은 더욱 중해갔습니다. 가지고 있던 재산도 모두 허비하고 말았습니다. 그러함에도 여인은 자신의 문제를 체념하거나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여인은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무리가운데 섞여 예수님의 옷깃을 만짐으로 고침 받았습니다. 불행한 삶을 풍요한 삶으로 변화시켰습니다. 여인의 하고자 하는 믿음의 태도는 풍요한 삶을 이룬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드러나는 하나님의 풍요는, 인간이 예수님의 지시에 따라 하고자 하는 믿음에서 나타나는 축복의 역사입니다. 예수님은 밤이 맞도록 고기를 잡지 못한 시몬 베드로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눅5:4) 고 하셨습니다. 시몬이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눅5:5) 고 했습니다. 하고자 할 때 고기가 많이 잡혔습니다. 그것도 그물이 찢어질 정도였습니다. 예수님은 중풍병자에게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막2:11) 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하고자 하는 믿음을 가지고 행할 때에 일어나 걷게 되었습니다. 나사로가 죽은지 나흘이 되어 이미 무덤에 묻혀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돌무덤에 찾아가 무덤을 막아둔 “돌을 옮겨 놓으라? 요11:39)고 하셨습니다. 말씀에 따라 하고자 하는 믿음으로 돌을 옮겨 놓을 때에 나사로를 다시 살리셨습니다.

말씀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이고 인간은 그 말씀에 따라 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고자 할 때에 하나님의 풍요의 역사가 드러나는 것입니다. 풍요의 역사는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하고자 하는 믿음의 적극적인 태도에서 이루어지는 역사입니다. 기독교의 풍요의 역사는 불가능한 중에도 하고자 하는 믿음에서 이루어지는 역사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고자 하는 믿음으로 풍요의 역사를 만들어 가는 축복의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축사하심으로입니다.

예수님께서 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실 때 풍요의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축사하다’는 말이 공관복음에서는 ‘유카리스테오’라는 말로 쓰였는데 이는 ‘감사를 돌리다’는 뜻입니다. 또한, 요한복음에서는 ‘율로게오’는 말을 사용하였는데 이는 ‘축복하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감사의 대상이 되고 축복하시는 삶을 살 때에 풍요한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보험회사에 근무하던 베벨리 셰아(Beverly Shea)라는 한 월급쟁이가 있었습니다. 1930년대 당시 미국은 극심한 불황으로 회사마다 혹독한 구조조정과 임금삭감에 시달렸습니다. 어느 주일날 아침 그는 찬송가를 연습하기 위해 피아노 앞에 앉았습니다. 그런데 회사문제로 인해 좀처럼 마음에 안정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 때 셰아는 건반위에서 조그마한 종이 쪽지를 발견하였습니다. “주 예수 보다도 귀한 것은 없네, 이 세상 부귀와 바꿀 수 없네, 영죽을 내대신 돌아가신 그 놀라운 사랑 잊지 못해,.... 주 예수 보다도 귀한 것은 없네, 이 세상 명예와 바꿀 수 없네, 이 전에 즐기던 세상일도 주 사랑하는 맘 뺏지 못해,.... 주예수 보다도 귀한 것은 없네, 이 세상 행복과 바꿀 수 없네, 유혹과 핍박이 몰려와도 주 섬기는 내 맘 잊지 못해,.... 주 예수 보다도 귀한 것이 없네 예수 밖에는 없네.” 그것은 그의 어머니 ‘레아 밀라’가 괴로워하는 아들을 위해 적어놓은 시였습니다.

셰아는 이 시를 읽고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자신의 삶이 예수님과 함께 감사의 대상으로 예수님의 축복 속에 사는 삶임을 확인했습니다. 그는 이 시에 곡을 붙여 찬송을 만들었습니다. 이 곡이 바로 그 유명한 찬송가 102장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축복의 대상이 되는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살아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인정하시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시편기자는 시편 1편에서 악인과 의인이 삶을 말하면서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시1:6)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삶이 의인의 삶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삶을 살아갈 때에,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 함 같고 그 행사가 다 형통한,(시1:3)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IMF를 맞이했던 우리나라에 IMF를 빗댄 은어가 유행했었습니다. 그것은 “I am failed”, 나는 실패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손에 붙들려 그리스도의 축복 속에 사는 사람은 “Iam failed” 의 삶이 아니라 “I am first,” 나는 첫째가 되었다, 곧 나는 승리했다는 풍요의 삶을 만든다는 것입니다.
풍요한 인생의 삶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축사하시는 삶을 살아가는데서 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의 손에 붙잡힌 인생을 사십시오. 그리스도의 감사의 대상이 되십시오. 그리스도께서 인정하시는 삶을 살아가십시오. 그곳에 풍요의 역사가 있는 것입니다.

사용됨에서입니다.

예수님께 드려진 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마리를 오천명 이상의 사람을 먹이는 데 사용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푸른 잔디 위에 백명씩 또는 오십명씩 떼를 지어 앉게 하시어 사람들의 질서를 사용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물고기 두마리와 떡 다섯개를 가지시고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제자들에게 주시며 나누도록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사용하실 때 오천명 이상의 무리가 배불리 먹고 열두 광주리가 남는 풍요의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풍요의 역사는 하나님 나라와 이웃을 위하여 사용하는 것이 될 때에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예수님이 관리하시도록 해 보십시오. 예수님이 사용하시게 될 때에 풍요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내 인생관, 내 믿음, 내 기도, 내 삶의 방식, 내 수고, 내게 있는 모든 것들은 주님이 관리하시고 사용하시는 것이 될 때에 풍요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저는 어렸을 때 장날이면 시장터에서 황소의 뿔로 아름다운 장식품을 만들고 있었던 장사꾼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은 황소의 뿔을 자르고 갈라서 갈고 문질러 예쁘고 아름다운 장식품을 만들었습니다. 뽑혀진 보기 흉한 황소뿔이 그 사람의 손에서 값비싼 장식품으로 변하는 것을 신기하게 구경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이 사용하시도록 하시길 바랍니다. 예수님의 손에 붙들려 사용되는 인생은 풍요한 삶의 역사를 이룰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손은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힌 피흘리신 손입니다. 그러므로 이 예수님의 손은 사망권세를 정복한 능력의 손으로 우리를 구원하시는 손이십니다. 이 예수님의 손에 붙들려 사용되는 삶은 위대하고 풍요한 삶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사용하시도록 드려짐으로 예수님의 기쁨과 감사의 대상이 될 때, 위대하고 가치 있는 풍요한 생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믿음이 좋고 열심이 있는데도 풍요의 역사를 이루지 못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것은 그 사람의 믿음과 열심히 예수님이 관리하시고 사용하시는 것이 되어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사회공헌도 많이 하고 봉사도 많이 하는 데 하나님의 축복된 삶을 살고 있지 못함을 보게 됩니다. 그것은 그의 공헌과 봉사가 자신의 영광이나 자신의 이름을 위한 것이지 예수님께서 관리하시고 사용하시는 것이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하여,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 (마6:1-4)
우리의 모든 것을 예수님께서 관리하시고 사용하시는 것이 되도록 합시다. 그렇게 되어야 풍요의 역사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가치는 많이 배웠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재산이 많거나 유명한 사람이라는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가치는 예수님의 의도에 따라 사용되고 있느냐에 있는 것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목회하면서 교회에 유명하고, 많이 배웠고, 물질이 많은 교인들이 많다는 것이 목회에 힘과 도움을 주는 근원이 아님을 보았습니다. 그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 사용되고 있는 교인이 얼마나 되느냐에 있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베드로는 가난한 어부출신으로 배우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는 어부로 거칠게 성장함으로 성품이 다듬어질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쉽게 흥분하며, 행동이 생각보다 앞서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한 베드로를 예수님은 부르시고 택하셔서 관리하시고 사용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쓰심에 합당하게 사용될 때, 하루에 오천명씩 회개시키는 영혼을 구원하는 “사람잡는 어부”가 되었습니다.
세금을 걷던 마태는 예수님께 불림을 받고 예수님의 뜻에 따라 사용될 때 “마태복음서”라는 복음서를 집필하는 위대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똑같은 진흙일 지라도 예수님께서 침으로 개어 소경의 눈에 바르시는 것으로 사용하실 때, 그 진흙은 소경의 눈을 고치는 귀한 것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 관리되어지고 사용되어질 때, 하찮은 것일지라도 수많은 대중을 먹이는 역사를 이루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인생의 삶은 예수 그리스도의 방법에 있을 때, 풍요한 인생의 삶이 되는 것입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는 예수님의 말씀 앞에서 지금 우리는 분명한 삶의 태도를 정해야 합니다. 하고자 하시는 주님과 함께 하는 자가 되십시오. 예수님께 나의 삶을 드리십시오 그분의 손에 나를 넘겨드리십시오, 그리고 주님의 의도대로 관리되고 사용되십시오. 보리떡과 생선 두 마리가 에수님께서 축사하시는 것이 됨으로 풍요한 것이 될 것입니다. 배불리 먹고 남게 한 그 풍요한 삶의 소유자가 되시길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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