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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세상과 연합하지 말라 (창 34: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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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피영민 목사

8 하몰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 아들 세겜이 마음으로 너희 딸을 연련하여 하니 원컨대
그를 세겜에게 주어 아내를 삼게 하라 9 너희가 우리와 통혼하여 너희 딸을 우리에게
주며 우리 딸을 너희가 취하고 10 너희가 우리와 함께 거하되 땅이 너희 앞에 있으니
여기 머물러 매매하며 여기서 기업을 얻으라 하고 11 세겜도 디나의 아비와 남형들에
게 이르되 나로 너희에게 은혜를 입게 하라 너희가 내게 청구하는 것은 내가 수응하리
니 12 이 소녀만 내게 주어 아내가 되게 하라 아무리 큰 빙물과 예물을 청구할지라도
너희가 내게 말한 대로 수응하리라 13 야곱의 아들들이 세겜과 그 아비 하몰에게 속
여 대답하였으니 이는 세겜이 그 누이 디나를 더럽혔음이라 14 야곱의 아들들이 그들
에게 말하되 우리는 그리하지 못하겠노라 할례 받지 아니한 사람에게 우리 누이를 줄
수 없노니 이는 우리의 수욕이 됨이니라 15 그런즉 이같이 하면 너희에게 허락하리라
만일 너희 중 남자가 다 할례를 받고 우리 같이 되면 16 우리 딸을 너희에게 주며 너
희 딸을 우리가 취하며 너희와 함께 거하여 한 민족이 되려니와 17 너희가 만일 우리
를 듣지 아니하고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우리는 곧 우리 딸을 데리고 가리라

(서론)

창세기 34장에서 주시는 하나님의 메시지는 ‘교회는 세상과 연합해서는 안 된다’
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우리들에게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같은 이야기를 창세기 34장에 기록해 놓으신 것입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다산 정약용 선생은 조선 말기에 유명한 실학자였습니다. 이 분
이 백서 사건에 연루가 되어 전라도 강진으로 귀향을 가게 되었습니다. 19년 동안 귀
향 생활을 하는 중에 500여권의 책을 저술하기도 한 위대한 학자입니다. 귀향 생활을
하는 동안 아들들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에서 정약용 선생은 우리들에게 귀한 가르침
을 주고 있습니다. 정약용 선생은 편지에서 “사람에게는 두 가지 저울이 있는데, 하
나는 옳고 그름을 측량하는 저울이고, 다른 하나는 손해와 이익을 측량하는 저울이
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에 등장하는 네 가지(옳음, 그름, 손해, 이익)를 가지고 순
열 조합을 해 보면 네 가지 종류의 인간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좋은 일을 하
고 이익 보는 사람’, ‘좋은 일을 하고 손해 보는 사람’, ‘그른 일을 하고 이익 보
는 사람’, ‘그른 일을 하고 손해 보는 사람’이 그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좋은 일
을 하고 이익을 보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야곱의 아들들은 그른 일을 하고 이익을 본 사람들입니
다. 부전자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만약에 성경을 인간이 단독으로 기록했다
고 한다면 창세기 34장과 같이 자신들의 조상의 치부를 드러내는 본문은 빼고 기록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의 원저자는 성령님이시기 때문에 우리를 교훈하고, 책망
하고, 바르게 하고,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한 것이라면 어떤 사건이라도 정직하게 기록
하셨습니다.

본문의 사건은 간단합니다. ‘열네 살 정도 먹은 야곱의 딸 디나가 세겜성을 구경하
러 갔다가 그 성의 왕자에게 붙잡혀서 겁탈을 당하게 되고 이로 인해 야곱의 아들들
이 세겜성의 모든 남자들을 속이고 다 죽였다’는 내용입니다. 이 이야기의 기록 목적
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사람이 세상과 연합될 때 큰 위험이 온다’는 것
을 알려주시기 위함입니다.
교회 역사 2천년을 돌아볼 때, 하나님의 교회는 세상으로부터 핍박을 받을 때 도리
어 부흥했습니다. 그러나 세상과 연합되고 잘 통할 때는 하나님의 교회는 여지없이 부
패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교회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 313년에 있었던 밀라
노 칙령입니다.  콘스탄틴 황제가 로마의 황제가 된 후 로마가 네 개로 갈라져서 정
권 다툼을 할 때 콘스탄틴은 기독교의 하나님께 기도를 해서 전쟁에 이기게 됩니다.
그 빚을 갚기 위해서 이 칙령을 발표한 것입니다. 지금까지 로마 황제가 핍박하던 기
독교를 합법적인 종교로 인정해 주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놓고 어떤 분들은 “기독
교가 로마를 정복하고 승리했다”고 말씀하시기도 하는데, 제가 볼 때 기독교는 밀라
노 칙령으로 말미암아 지속적인 부패를 겪게 되었고 ‘중세 천 년은 기독교 부패의 역
사’라고 볼 수밖에 없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한국 교회가 극복해 나가야 하는 문제가 바로 이것입니다. 교회와 세상
이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성도와 세상 사람들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다
는 것입니다. 우리는 창세기 34장을 통해 세상이 어떻게 교회를 삼키려 하는지, 또 교
회는 삼키려 하는 세상에 어떻게 대항해야 하는지를 배워야 합니다.

1. 성도가 틈을 보이면 세상은 틈새 공략을 한다.
마귀와 세상은 성도들이 틈을 보이면 그 틈을 타고 들어와서 틈새 공격을 합니다. 따
라서 우리는 절대 틈을 보이지 말아야 합니다. 본문에서 아버지 야곱이 보인 틈은 무
엇입니까?
첫째, 야곱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척하면서 불완전한 순종을 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35장 1절에 볼 수 있듯이 벧엘로 내려가는 것입니다. 야곱이 ‘이스라
엘’이 되었기 때문에 다른 곳에서 살지 말고 하나님의 집에서 살라는 것입니다. 하나
님의 집은 ‘벧엘’입니다. ‘엘’은 ‘하나님’이고, ‘베트’는 ‘집’입니다. 그렇
지만 야곱은 이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한 동안은 가나안 땅이 아닌 숙곳이라고 곳에
서 살았습니다. 후에 양심에 가책이 느껴져 요단강을 건너와 세겜에 정착한 것입니
다. 세겜은 가나안 땅 경계 지역입니다. 들어오긴 들어왔어도 경계에 살짝 걸친 상태
로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양심을 무마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좇
아 가나안 땅에 들어왔다.’ 그렇지만 그 마음속에는 하나님의 말씀에 완전히 순종하
지 않았다는 틈이 있었습니다. 둘째, 야곱은 딸 디나를 교육하는 데서도 틈을 보였습
니다. 저는 34장을 읽으면서 ‘왜 딸이 겁탈을 당했는데도 야곱은 잠잠한가?’라는 의
문이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디나가 레아의 딸이기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야곱이
정말 사랑한 라헬의 딸이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 같습니다. “세겜 동네는 위험한
곳이니 조심해서 다녀라”라는 교육은 당연히 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야곱은 디나에
게 아무런 교육도 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렇게 야곱은 불완전한 순종과 자녀 교육
부재의 틈을 사단에게 보였기 때문에 사단은 그 틈을 타고 들어온 것입니다.
그렇다면 디나는 틈이 없을까요? 34장 1절을 봅시다. “레아가 야곱에게 낳은 딸 디
나가 그 땅 여자를 보러 나갔더니.” 왜 나갔습니까? 공부하기 위해 나간 것이 아닙니
다. 세겜 땅의 여자들이 어떻게 하고 다니는지 유행을 보러 나간 것입니다. 디나가 세
상 유행을 추종하는 땅이 된 것입니다. 이런 틈을 보이니까 세겜 땅의 왕자 세겜이 틈
을 타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세겜은 어떤 왕자입니까? 34장 19절에 보니까 “그는
그 아비 집에 가장 존귀함일러라”라고 했습니다. 존귀한 자, 즉 요즘 말로 ‘킹카’
입니다. 디나가 거닐고 있는데 이 킹카가 나타났고 틈을 보였기 때문에 그만 넘어가
고 만 것입니다. 또한 디나는 겁탈을 당했다면 아버지께 와서 땅을 치며 억울함을 하
소연해야 하는데 세겜 왕자 집에 눌러 앉아 살고 있습니다. 26절을 보겠습니다. “칼
로 하몰과 그 아들 세겜을 죽이고 디나를 세겜의 집에서 데려오고.” 이렇듯 디나의
행실도 완벽하게 정숙하지 못했다고 여겨집니다.
이런 틈은 어디에서 나타납니까? 우리의 일상적인 가정생활에서 나타납니다. 우리 그
리스도인의 싸움의 본질은 영적인 싸움이고,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
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고 말하면 매우
거창한 싸움을 상상합니다만 그렇지 않습니다. 진짜 영적 싸움은 우리의 작은 가정생
활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작은 일상사에서 틈을 가지고 있을 때 사단은 그 틈을 타
고 들어오는 것입니다.

2. 세상의 공략목표는 교회와 연합하는 것이다.
우리가 이런 틈을 가지고 있을 때 세상은 우리를 공략해 오는데 세상의 목표는 교회
가 세상과 연합하게 만들어서 교회의 모든 것을 빼앗는 것입니다. 세상의 본질이 그렇
습니다. 무엇을 주는 것 같지만 빼앗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무엇인가를 빼앗는 것 같
습니다. “시간 내라, 십일조 해라.” 그렇지만 하나님은 더 주시기 위해서 달라고 하
시는 것입니다. 세상은 빼앗아가기 위해 미끼로 주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본문을 보면 세겜의 아버지 하몰이란 사람은 아들이 겁탈을 해서 잘못을 저질렀는데
도 야곱에게 와서 사죄하기는커녕 떳떳한 자세로 찾아와서 “우리 아들이 당신의 딸
을 연련하니 당신 딸을 우리 아들에게 아내로 주시오”라고 제안합니다. 더 나아가
“우리 딸과 당신의 아들들이 통혼을 하게 해서 민족의 경계를 없애고 한 민족이 되
게 합시다.”라고 제안합니다. 이렇게 하면 야곱이 땅과 기업을 얻게 될 것이라는 것
입니다. 하몰의 아들 세겜의 말도 가관입니다. 11절, 12절을 봅시다. “세겜도 디나
의 아비와 남형들에게 이르되 나로 너희에게 은혜를 입게 하라 너희가 내게 청구하는
것은 내가 수응하리니 이 소녀만 내게 주어 아내가 되게 하라 아무리 큰 빙물과 예물
을 청구할지라도 너희가 내게 말한 대로 수응하리라.” 세겜은 평소에 돈을 주고 여자
를 사는 버릇이 있었는지 소녀만 주면 큰 돈을 주겠다고 제안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제안이 얼마나 달콤합니까? 하지만 이들의 본심은 무엇입니까? 21절부터 23절까지 보
겠습니다. “이 사람들은 우리와 친목하고 이 땅은 넓어 그들을 용납할만하니 그들로
여기서 거주하며 매매하게 하고 우리가 그들의 딸들을 아내로 취하고 우리 딸들도 그
들에게 주자 그러나 우리 중에 모든 남자가 그들의 할례를 받음 같이 할례를 받아야
그 사람들이 우리와 함께 거하여 한 민족 되기를 허락할 것이라 그리하면 그들의 생축
과 재산과 그 모든 짐승이 우리의 소유가 되지 않겠느냐.” 하몰이란 자의 속셈은 분
명합니다. 하나가 되면 야곱의 것을 다 빼앗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을 불신자들의 자녀에게 주지 마시기 바랍니다. 조금 부족해도
우리는 신앙 있는 사람과 연합해야 합니다. 우리 서로가 신앙을 서로 격려하고 키워주
어야 합니다. 창세기 6장 2절에 보면 노아 홍수가 일어나기 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
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라
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결과가 어떠했습니까?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들의 딸을 거
룩하게 만들었습니까? 아닙니다. 사람의 딸들이 하나님의 아들들을 부패하게 만들어
서 세상도 부패하게 되고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신 것을 후회하면서 홍수로 심판을
하게 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틈새가 있을 때 틈새를 타고 들어와
서 교회의 모든 것을 빼앗는 것이 세상의 전략인 것입니다.

3. 수동적인 교회는 승리할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런 세상을 향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교회는 수동적이어
서는 안 됩니다. 소극적이어서도 안 됩니다. 이런 교회는 결코 승리할 수 없습니다.
창세기 34장을 볼 때 이상한 점은 ‘야곱 같은 사람이 이번 일에 왜 이렇게 수동적일
까?’하는 것입니다. 형의 장자권과 축복권을 빼앗을 때는 매우 적극적이던 사람이 딸
의 사건 앞에서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습니다. 5절을 봅시다. “야곱이 그 딸 디나를
그가 더럽혔다 함을 들었으나 자기 아들들이 들에서 목축하므로 그들의 돌아오기까지
잠잠하였고.” 어떻게 이럴 수 있습니까? 하몰과 세겜이 찾아와서 하나님의 사람들을
업신여기면서 통혼을 하면 예물을 주겠다는 제안을 하는데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
는 것입니다. 오히려 아들들이 주체가 되어 “할례 받지 못한 백성과 통혼할 수 없으
니 할례를 받으라”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이 대화 가운데서도 야곱은 아무런 말도 하
지 않습니다.

야곱의 아들들
야곱의 아들 중에 시므온과 레위가 세겜 성의 남자들이 모두 할례 받아 가장 고통스
러운 삼일 째 되는 날 찾아가서 모두 죽였습니다. 왜 시므온과 레위가 죽였습니까? 디
나의 친오빠들이기 때문입니다. 레아가 나은 아들들이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창세기
34장에서 지도력을 완전히 상실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후에 아들들이 세겜 남자들을
다 죽이고 재물을 약탈해 올 때 겨우 한 마디 합니다. 30절을 봅시다. “야곱이 시므
온과 레위에게 이르되 너희가 내게 화를 끼쳐 나로 이 땅 사람 곧 가나안 족속과 브리
스 족속에게 냄새를 내게 하였도다 나는 수가 적은 즉 그들이 모여 나를 치고 나를 죽
이리니 그리하면 나와 내 집이 멸망하리라.” 겨우 한다는 소리가 세상을 무서워하
고, 두려워하는 소리입니다. 그러니까 아들들이 야곱을 책망합니다. 31절을 보겠습니
다. “그들이 가로되 그가 우리 누이를 창녀같이 대우함이 가하니이까.” 이 문제에
있어서는 아들들이 야곱보다 옳은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야곱의 아들들의 허물도 많습니다. 종교적인 거룩한 할례를 이용해서 거짓말
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족속을 멸하시기를 원하셨지만 지금은 때가 아닙니
다. 시기가 너무 빨랐습니다. 게다가 사람만 죽이고 복수하면 되는데 재물과 아내들
과 아이들까지 빼앗아 왔습니다. 강도 같은 짓을 한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이
아들들을 야단치셨다는 말씀이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야곱의 아들들은 가나안 족
속과의 연합을 단호하게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비록 소수이지만 11명의 아들들은 강력
한 공격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세상이 타협, 화해, 연합의 목적으로 다가올 때 비
록 비겁한 방법을 쓰긴 했지만 단호히 거절을 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소
수의 담대한 사람만 있어도 다수의 강력한 세상을 이기는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은 야
곱처럼 세상을 향해 두려워하고 걱정하는 사람을 원치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비록 소수라도 담대한 마음을 가지고 세상이 주는 걱정과 두려움에 대해 승리할 수 있
다는 강한 자신감을 가진 사람들을 필요로 하는 줄 믿습니다.

(결론)
미국의 유명한 풋볼 코치들은 “수비만 하는 팀은 이길 수 없다”는 말들을 자주 합
니다. 하나님의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세상과 타협하지 말고 세상
을 공격해서 승리해야할 줄로 믿습니다. 예전에 대흥침례교회 안종만 목사님께서 저
희 집에 오셔서 기도해 주신 내용을 저는 잊지 못합니다. 그것은 “하나님 아버지 이
사람을 세상과 구별하여 세우신 것을 감사합니다.”라는 기도였습니다.
우리는 구별된 사람입니다. 우리가 세상으로부터 구별성을 가지고 세상의 공격을 막
아내고 도리어 적합한 방법으로 세상을 공격하며 나갈 때 세상과의 싸움에서 이길 줄
로 믿습니다. 세상은 교회를 넘어뜨릴 수 없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하나
님의 집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위대한 것입니다. 성도들은 위대하고 존귀한 자들입
니다. 성도는 세상에서 쓰러질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이기는 존재입니다. 넉
넉히 이기는 존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16장 18절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
니다. “너는 베드로(반석)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여기에서 ‘권세’라는 것은 ‘문’을 의미합니다. 마귀의 세력
은 수동적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음부의 문을 부수는 것입니다. 부수게 되면 음부
의 문은 부수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들은 일어나서 잃어버린 영혼들을 붙들고 장
악하고 있는 마귀의 진영을 깨뜨려야 합니다. 우리의 가정을 넘어뜨리기 훼파하려는
마귀의 세력을 분연히 일어나서 다 깨뜨리시고 날마다 승리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
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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