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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혀를 바르게 사용하십시오 (약 3: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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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박춘수 목사

말을 바르게 사용하십시오
유태인의 탈무드에 이런 우화가 소개됩니다.
랍비가 어느날 하인에게 시장에서 맛있는 것을 사오라고 심부름을 시켰습니다. 그러자 하인은 혀를 사가지고 왔습니다.며칠후 랍비는 다시 그 하인에게 오늘을 좀 싼 것을 사오라고 시켰습니다.이번에도 하인은 또 혀를 사가지고 왔습니다. 그러자 랍비는 “요전에는 맛있는 것을 사로라고 하니까 혀를 사가지고 오더니 오늘 싼 것을 사오라고 했는데 또 혀를 사오니 어떻게 된 것이냐?”하고 물었습니다.그러자 그 하인은 대답했습니다. “혀는 아주 좋으면 그보다 더 좋은 것이 없고 나쁘면 그보다 더 나쁜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예화는 혀가 때로는 나쁘게도 사용될 수 있고 좋게고 사용할 수 있는 양면성이 있음을 우리에게 깨우치는 내용입니다. 만일 나쁘게 혀가 사용되어져서 나쁜말을 하게 되면 그 미치는 결과는 엄청납니다. 반대로 바르게 잘 사용되어 좋은 말을 한다면 또한 미치는 효과가 엄청납니다.

그리스도인이 되어졌을때 우리의 삶에 가장 나타나야 할 변화중에 하나가 바로 말이어야 합니다.하나님의 나라의 새로운 백성이 되어진 것만큼 말의 습관도 변해야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여전히 세상 속에 나타나는 말의 문제가 우리들에게도 나타나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 야고보서에서 야고보 기자는 교회 속에 말로 인한 실수가 있음을 바라보았습니다. 그것이 지금 우리 교회에도 모든 교회에도 계속 나타나는 문제일 수 있습니다.이것은 무엇을 우리에게 말합니까?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말이 금방 바뀌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동적으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말의 습관을 바뀌기 위한 노력들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본분에서 그리스도인들의 혀의 위력을 우리에게 소개합니다. 혀를 소개하면서 그 미치는 힘을 여러 가지에 비유하면서 왜 말을 바르게 사용해야 하는지 말씀합니다.

1. 말은 삶의 방향을 결정짓습니다.
1-4절에 보면 혀를 소개하면서 재갈과 키를 비유합니다.
먼저 오늘 본문 1절에서는 내형제들아 너희는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을 알고 많이 선생이 되지 말라고 합니다. 이것을 역으로 해석하면 교회 속에 많은 지체들이 선생이 되기를 좋아한다는 사실입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사람들 앞에서 남을 가르치는 선생이 되는 것을 모두가 좋아합니다. 그런데 선생이 되어서 남을 가르치는 일은 좋은 일이지만 선생에게는 더 무거운 책임이 요구된다는 사실입니다.
가르치는 사람은 책임을 지는 사람입니다. 만약에 교사가 남에게 말로 그렇게 가르쳤는데 그렇게 행하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오히려 더 무서운 심판을 받을 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 속에 가르치는 자리에 있는 분들은 조심해야 합니다. 저도 목회자로서 남을 가르치고 인도하는 입장에 설때가 많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조심하는 것이 남을 가르치면서 자신을 가르치지 않는 것입니다. 사실 그럴 가능성이 많습니다. 남을 가르치는 자리에서 나의 갖고 있는 지식을 자랑하고 나의 앎을 나타내려고 하는 위험이 많습니다. 무엇보다도 그 가르치는 가르침은 먼저 자신을 향한 가르침이 되어야 합니다. 만약에 남을 가르치면서 자신을 가르치지 않는 위치에 있는 선생이라면 심판의 대상이 될 것입니다.
교회에서 많이 선생이 되지 말라는 말은 결코 신앙은 말이 다가 아니요 지식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가르침은 은사에 불과하고 가르치는 자는 하나님이 주신 직분에 불과합니다. 은사가 직분이 우리의 신앙을 보증하는 것이 아니요 우리의 영성의 전부가 아닙니다. 나는 단지 주님의 주신 은사를 따라 직분을 따라 그 사명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르치기를 잘한다고 그 사람이 대단한 것도 아니요 그 자리가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남을 가르치는대로 자신을 가르치면서 그런 가르침의 삶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조금 알고 배운 것을 갖고 남을 가르치고 남 앞에 서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가 알고 지식으로 나를 떠벌리고 자랑하는 것이 믿음이 아닙니다. 믿음은 아는 것을 아는 것으로 여기지 않고 겸손해지는 것입니다. 믿음은 아는 것으로 인해서 더 알기 위해서 주님앞에 자신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정한 앎은 우리의 삶에 새로운 방향을 결정짓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말에 실수가 많습니다. 이점을 우리가 먼저 인정해야 합니다.
2절에 말씀에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라고 합니다. 우리 중에 말에 실수가 없는 사람이 있습니까? 조금 있고 더 있고 차이일뿐이지 모두가 말에 실수할 것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가 실수할까요? 말에 실수는 사실 때로 인생의 실수를 낳게 합니다. 말로 인한 실수로 부부관계가 깨어지기도 합니다. 친구관계가 망가지기도 합니다. 사업이 망가지기도 합니다. 왜 이렇게 말에 실수가 많은 것입니까? 혀를 잘 통제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는 혀를 재갈과 키에 비유합니다.
재갈은 달리는 말을 제어할 수 있는 장치입니다. 말의 입에 재갈을 물려서 달리는 말의 속도와 방향을 결정짓게 합니다. 아무리 큰 말이지만 그 입에 재갈을 물리고 말을 탄 사람이 조정하면 큰 말이 조정이 되어집니다. 다음에 혀는 배의 키와 같습니다. 거대한 배가 움직이는 힘은 키에 달려있습니다. 작은 키를 움직이는데 따라서 배는 방향이 결정되어집니다. 말에 비해서 재갈은 작지만 배에 비해서 키는 너무 작은 것이지만 방향이 결정되어집니다. 이와 같이 우리의 몸에 혀는 작은 것이만 혀의 사용에 따라서 우리의 인생의 방향이 결정되어집니다.
그런데 여러분 말에 재갈을 물려서 사용하는 것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많은 노력과 훈련이 요구됩니다. 배에 키를 아무나 조작하지 못합니다. 많은 훈련이 요구됩니다. 우리의 혀는 말의 재갈과 같고 배의 키와 같이 제어하고 사용하는 법을 바로 통제할 때 우리의 말은 바르게 되어질 것입니다.
말을 바르게 사용하기 위해서 정말 중요한 것은 바르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바르게 생각하고 말을 하면 경우에 합당한 말을 할 수 있습니다. 무조건 침묵하는 것이 능사는 아닙니다. 말을 해야 할때 말을 할 줄 알고 말을 참아야 할때 참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마음이 부정적인 생각을 낳지 않는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분노의 마음이 있는 사람은 부정적인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남에게 상처주는 말을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이 은혜로 날마다 채워져야 합니다. 생각들이 날마나 새롭게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나보다는 남을 생각하고 나보다는 공동체를 생각하고 나보다는 하나님을 먼저 생각하는 성숙한 마음이 필요하고 절제된 마음이 필요합니다. 그런 마음과 생각을 통해서 표현되는 말과 우리의 모든 삶들은 피차에 유익을 주는 방향으로 만들어 줄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혀를 주셨습니다. 이 혀를 통해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우리에게 주신 복음을 증거하고 우리가 피차에 아름다운 대화를 통해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2. 말은 삶의 엄청난 힘을 낳습니다.
6절에 보면 혀를 불로 비유합니다. 불은 한번 발하면 모든 것을 태웁니다. 아무리 작은 불이지만 이것이 옯겨 붙기만 하면 아무리 큰 것이라도 다 태워 없앨 위력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혀는우리의 삶에 엄청난 영향력을 끼치는 잠재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생의 바퀴를 불사른다고 합니다.
여기 생의 바퀴를 불사른다는 말은 무엇입니까? 여기 바뀌라는 것은 마치 차의 바뀌처럼 우리의 인생의 차바뀌를 의미합니다. 차바뀌는 기름으로 굴러갑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인생의 바뀌는 무엇으로 굴러갈까요? 말로 인해서 굴러갑니다. 우리의 인생의 출생에서 죽을때까지 모든 인생의 전체가 말의 힘으로 되어집니다.
인생에 긍정적인 말을 들은 사람은 그 힘에 의해서 인생을 긍정적으로 살아갑니다. 한마디 감동적인 말을 들은 것으로써 일생을 감동적인 삶을 살아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지도자의 한마디는 때로는 온 나라의 백성들에게 꿈과 용기를 줄 수 있습니다.

지금은 그렇게 활성화되지 않았지만 저희가 학교생활하던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웅변대회를 많이 했습니다. 5월이 되면 부모공경 웅변대회를 하거나 녹음이 푸르르면 자연보호 웅변대회,6.25가 가까우면 반공웅변대회등 다양한 웅변대회가 많았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중학교때부터 웅변대회에 참가하였습니다. 고등학교때에는 학교 웅변대표로 늘 참여하여 입상도 하기도 했습니다.그런데 웅변을 잘하는 분들의 말을 들으면 정말 내 마음이 그렇게 하고 싶어지고 그런 행동으로 옮겨지기도 합니다. 과거 제2차 세계대전때에 영국의 윈스턴 처칠수상은 웅변을 잘 하는 분이었습니다. 그의 웅변을 통해서 많은 젊은이들이 애국식을 갖고 전장에 참여하여 영국을 위기로부터 구했습니다. 당시 독일의 공격을 받던 영국은 굉장히 위태로운 상황이었습니다. 프랑스가 함락되고 러시아가 독일의 공격을 받고 유럽 전체가 독일에 넘어간 상황에서 영국국민들은 두려움으로 떨고 있었습니다.그러나 1940년 6월 4일 그가 국회에서 행한 연설에서 “국기를 내리고 항복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입니다. 바다에서는 대양에서도 싸울 것이고 해안에서도 싸울 것입니다. 결코 항복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그의 당당한 연설문은 용기를 주어서 영국인 독일을 물리는 불씨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미국의 많은 흑인들이 미국사회에서 무시당하고 억울한 삶을 살았었지만 마틴 루터킹 목사가 행한 설교문에서 “나에게는 한가지 꿈이 있습니다”라고 하는 설교를 통해서 수많은 흑인들이 꿈을 갖고 인생을 사는 기회가 되었습니다.이것은 어떤 유명한 사람만이 그런 것이 아닙니다.우리의 일상 속에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들입니다.
정태기 목사님의 상담 중에 경험한 이야기입니다.강원도 홍천의 어느 깊은 산골에 가난한 농부의 딸이 살았습니다.어머니가 일찍 세상을 떠났고 아버지는 재혼을 했지만 삶에 너무 갈등이 많아서 자살을 하고 말았습니다.그래서 동생들과 함께 계모 밑에서 자라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지독한 가난 속에서 계모는 온갖 학대를 했습니다. 어린 나이인데도 집에서는 공부를 할 수 없을정도로 일만 열심히 해야 했습니다. 말이 학생이지 친구들과 놀시간도 없고 매일 일만 하고 옷차림은 완전히 거지모습이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왕따를 당하는 외로운 삶을 살았습니다.
어느날 이 소녀 아이가 학교에서 운동장을 가로질러 혼자 힘없이 걸어오고 있었는데 누군가 자기의 등을 부드럽게 손으로 쓸어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돌아보았더니 바로 담임선생님이었습니다. 이 선생님의 별명은 ‘얼음선생님’이었습니다. 하도 웃지 않아서 학생들이 붙여준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선생님이 자기를 보고 환하게 웃으면서 그 아이에게 이렇게 말을 해주었습니다. “영주야 넌 보통 놈이 아니야”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에 우연히 일지를 갖고 학교 교무실에 가다가 복도에서 교무실에서 선생님들의 대화를 우연히 듣게 되었습니다. 그때 담임선생님이 말을 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우리 반 영주 말입니다. 그 어린 녀석이 너무 대견스럽습니다. 형편으로 보면 학교를 다닐 수 없을 터인데 그렇게 고단하게 일하고 학교에 나와서 공부하는 것을 보면 너무 신통합니다. 그래서 아이들을 가르치다가 그 아이의 까만 눈동자를 보면 금방 목이 메고 눈물이 나오는 적이 많습니다”라고 하는 소리였습니다. 담임선생님이 자기를 칭찬하는 것이엇습니다. 아무도 자기를 칭찬해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아무도 자신을 상대해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담임선생님이 자신을 위해 눈물을 흘려주셨다는 이 소리를 듣고 이 소녀는 감동을 입게 되었습니다.
다음날부터 이 소녀에게 이상한 증세가 나타났습니다. 우선 굶어도 배가 고프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옷을 잘 못입어도 주눅들지 않았습니다. 당당하게 인생을 살 수 있었습니다.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를 가난해서 진학을 할 수 없게 되자 그는 담대하게 면장님을 찾아갔습니다.그리고 사정을 이야기하고 꼭 나중에 갚을 테니 입학금을 좀 대어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중학교를 입하하고 중학교 고등학교를 졸업할때까지 장학금을 받았습니다.그리고 명문대학을 입학까지 하고 아르바이트하면서 학교를 다녀서 드디어 졸업하고 좋은 직장에 취직을 하게 되어 지금 대기업의 중견간부로 활동하면 산다는 것입니다. 그녀가 문득 처지는 자신의 삶 속에서 포기하지 않고 살아올 수 잇엇던 힘은 선생님의 그 때 한 마디 말의 힘이었다고 합니다. “너는 보통 여자로 살아서는 안된다”라는 것입니다. 한마디의 말의 힘은 한인생에 다이다마이트와 같은 힘을 발휘했습니다.특히 마음을 알아주는 말의 힘은 대단합니다. 1960년 미국의 케네디 공학연구소에서는 ‘마음을 알아주는 말’이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실험을 했습니다.왜 동시에 출발한 동업종의 회사들이 어떤 회사는 몇 년안에 망하고 어떤 회사는 성장을 거듭하는가? 관심을 두고 연구했습니다. 우리의 상식으로는 기술이 앞선 회사가 성장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미국 전역을 연구한 결과는 달랐습니다. 기술의 회사공헌도는 15%였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회사를 성장시키는가? 그것은 인간관계였습니다.회사발전의 85%가 인간관계였습니다.  그런데 인간관계가 어떻게 됩니까 ?말에 의해서입니다.
저는 이것을 교회에 적용을 했습니다. 어떤 교회는 부흥하는데 어떤 교회는 부흥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 중에 하나가 말이 살아있는 교회는 부흥합니다. 그러나 말이 죽은 교회는 부흥하지 못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마음의 따뜻한 말을 하시기 바랍니다. 남을 죽이는 말이 아니라 살리는 말을 하기를 바랍니다.

가장 우리가 삶에서 경계해야 할 말이 무엇입니까? 분노의 말입니다.
불이 작은 것이지만 큰 집을 불사르는 것같이 아주 작은 말 한마디가 우리 삶에 악한 영향을 끼칩니다. 특히 분노로 하는 말은 하나님의 교회를 불살라 버릴 수 있습니다. 생의 바뀌를 불사른다는 것은 한 사람의 인생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요 교회의 전체의 운명에도 그런 영향력을 줄 수 있습니다. 아무리 노력하여서 가정과 기업을 이루어가다가도 불한번 나면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듯이 교회도 말한마디 때문에 교회의 모든 것들이 불타고 해를 당할 수 있습니다. 불을 내는 사람도 문제이지만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사람도 문제입니다. 처음 나쁜 말을 하는 사람도 문제이지만 불을 옮기듯이 사람 저 사람에게 말을 옮기는 사람도 문제인 것입니다.그러므로 우리가 항상 조심하셔야 합니다. 시편의 시인이 기도하듯이 내 입술에 파수꾼을 세워주셔서 온전한 말의 증인이 될 수 있기를 힘쓰시기 바랍니다. 말로써 이웃 사이에 평화를 불러 일으키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지키면서 거룩한 말의 도구로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3. 말은 인생의 열매입니다.
8절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라고 합니다.
이것은 혀를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혀를 길들이는 것이 인간적으로는 어렵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혀의 문제는 곧 악의 문제요 죽이는 독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우리의 혀 속에 흐르고 독과 악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우리의 입술로 두소리를 내기도 합니다. 찬송을 멋있게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남을 저주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그리스도인이지만 우리가 한입술로 찬송도 하고 저주도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저자 야고보는 말에 있어서 얼마나 사람이 열매를 맺는 것이 어려운 것인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의 삶에 말의 변화가 안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떻게 하면 독과 악이 흐르는 혀를 길들일 수 있습니까?
오늘 본문에서 혀의 말를 하는 것을 말씀하면 11절에서는 샘의 말씀을 하고 있고 12절에서는 나무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 중에서 한샘에서 단물과 쓴물이 동시에 나는 것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 중에서 무화과 나무에서 감람열매를 맺거나 포도나무에서 무화과열매를 맺는 것을 본적이 있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감람나무에서 감람열매를 포도나무에서 포도열매를 맺습니다. 왜 이렇게 한 샘에서 한물이 나오고 한 나무에서 한 열매를 맺는 것입니까? 그것이 창조의 법칙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열매를 맺도록 하나님께서 그렇게 물을 내도록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유일하게 사람은 한 사람의 입에서 욕도 나오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찬송도 나옵니다. 우리 찬양대원들이 얼마나 아름답게 찬송을 잘합니다. 그런데 그 입술이 일주일내에 하나님만 찬양하는 말을 합니까? 아닙니다. 그 입으로 때로 욕도 하고 거짓말도 하고 잘못을 합니다.
사람이 나무나 샘과 다른 것은 내가 나의 상태를 결정짓는다는 것입니다. 내가 영적으로 좋은 상태에 있어 기분이 좋고 마음이 좋으면 말도 좋습니다. 그러나 내가 기분이 나쁘고 마음이 좋지 않으면 언제든지 우리 입에서 거친 말이 쏱아져 나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마음의 상태를 잘 다스려가야 합니다. 영적인 상태가 좋은지 나쁜지 내가 먼저 나를 바라보고 예민하게 나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 본당 피아노를 얼마전에 바꾸었습니다. 반주자들은 알겠지만 피아노가 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습기가 있는 곳에 너무 오래 두었기 때문에 음을 내는 건반의 나무가 상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람 저 사람 마구 치다가 보니까 빨리 마모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피아노가 제 소리를 내려면 조율과 함께 우리가 관리를 잘해야 그 기능을 잘 낼 수 있습니다. 사람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자기 마음의 조율을 스스로 잘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서 제일 비싸고 귀한 악기가 바로 우리 몸입니다.
우리 몸에서 최상의 소리를 낼 수 있도록 아름다운 가치로 나를 만들어가시기 바랍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우리나라 소프라노 가수인 조수미씨를 좋아합니다. 신이 내린 목소리라고 사람들은 말을 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기쁨을 주는 노래로 얼마나 행복한 인생을 살아갑니까? 그분은 자기의 가치를 알기 때문에 절대로 목이 상하게 하는 일을 하지 않도록 노력합니다. 먹는 것도 조심하고 잠도 잘 자고 피곤하지 않도록 자기를 관리합니다.
최상의 소리를 내기 위해서 그렇게 합니다.
여러분 말은 그 사람의 인격입니다. 말은 그 사람의 얼굴입니다.
한번은 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어떤 중년의 여자분이 건너편 탁자에서 말을 하는데 육두문자가 막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거침없이 그 입에서 욕이 나오는 것을 보면서 다시한번 그 여자분의 얼굴을 바라보았습니다. 종종 그런일들이 많습니다. 겉으로 보면 괜찮게 옷을 입고 외모도 그럴듯한데 그 입에서 걸맞지 않는 말을 하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을 대충 짐작하게 됩니다.
악기에도 명기가 있고 상품에도 명품이 있듯이 사람고 명품인생이 있습니다.어디에 내놓아도 가치가 나타나는 인생 어디를 가도 빛나는 사람은 바로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이 주신 귀한 몸을 잘 관리하여서 나의 입술을 통해서 사람을 살리는 말을 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말을 하시기 바랍니다. 때가 되어서 하나님 앞에 설때에 우리가 한 말을 따라 주님의 판단을 우리가 받을 때에 우리 모두가 자랑이 되는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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