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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서머나 교회: 면류관을 받을 신앙 (계 2: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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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황영복 목사

1. 본문에 기록된 서머나 도시는 어떤 곳이었습니까?

서머나의 명칭은 "몰약"이라는 뜻으로 스미르나라고도 불렀습니다. 몰약은 감람과에 속하는 관목 어린 싹인 송진에서 얻는 수지로서 성경에서는 섬유나 방부제 등의 목적으로 사용된 향료입니다. (출 30:23, 에 2:12, 시 45:8, 요 19:39)

서머나의 위치는 터키 3대 도시중 하나인 현재 이즈밀입니다. 현재 300만 인구가 살고 있는 항구도시로 아름답기가 아시아의 제일이라고 일컬어지는 서머나는 동방의 문지기였다. 특히 당시 유럽으로 가는 출구인 서머나는 에베소도시가 점차 쇠퇴하자, 가장 관심을 끄는 지역으로 급성장하여 갔다. 특산물로는 연초, 건포도, 대리석, 의류, 피혁 수출로 유명한 지역이었습니다.

2. 서머나교회의 복음 전도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7교회 가운데 칭찬을 받은 교회는 서머나교회와 빌라델비아교회 뿐입니다. 다른 교회들은 우리 주님에게서 꾸중을 들었으나 이 두 교회는 주님께로부터 오히려 힘과 용기와 희망을 주는 위로를 받았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선한 수고가 없이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신자에게 결코 칭찬을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얼마나 충성되게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애쓰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선한 열매를 맺는가를 헤아려 보시고 칭찬하시는 것입니다.

서머나 교회가 칭찬받은 이유는 서머나 지역이 황제 예배의 센타가 되었지만 신앙으로 생기는 고난을 잘 참았고, 장차 올 고난에 대하여서도 두려워하지 않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서머나 교회는 역사가들도 칭찬한 교회였습니다. 당시 서머나 교회가 있었던 곳은 지금도 2000년이 지난 지금 인구의 1/3이 신자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우리 미스바교회도 이와 같이 주님께서도 칭찬하시고 , 세인들에게도 칭찬을 받을만한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이런 교회를 향하여 좋은 상급을 준비하여 놓으셨는데 [생명의 면류관] 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경기에는 여러가지 모양의 상급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아마추어 경기에서는 우승 트로피 혹은 메달이 많고, 프로 경기에서는 거액의 상금까지 곁들여 있어서 선수들의 사기를 북돋웁니다. 이것들은 우승자가 누구인지 알고 준비한 것은 아니다. 그럴 수는 없다. 오직 우승하는 사람에게 주려고 준비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위하여 예비하신 면류관이 천국의 진열대에 있다는 것을 매우 감격스러운 일입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지 못하고 파멸의 깊은 수렁으로 곤두박질하고 있다면 나를 위하여 천국에 마련하신 생명의 면류관은 다른 사람이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천국은 침노하는 자에게 주어진다고 말씀하셨고, 나중된 자가 먼저되고, 먼저된 자가 나중된다고 말씀하셨으며, 두렵고 떨림으로 노의 구원을 이루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옥에 떨어지는 영혼을 보고 마음 아파하실 것이며, 주인이 바뀐 수많은 면류관을 보고 더 마음 아파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생명의 면류관을 이미 구주로 영접한 자들에게 씌워 주시기 위하여 예수님을 희생하시면서까지 십자가를 지신 것이니다. 그러므로 서머나교회를 향하여 들려주신 하나님의 말씀이 여기 앉아계신 여러분들에게도 나타나 여러분 개인과 우리 교회를 위하여 마련해 주신 생명의 면류관을 결코 빼앗기지 않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서머나 교회의 칭찬이 곧 우리의 칭찬이 되고, 우리가 그 빛나는 생명의 면류관을 받아 쓸 주인이 됩시다. 서머나 교회 신자들의 신앙은 어떠한 신앙이었기에 칭찬을 받고 면류관을 받을 수 있었습니까?

I. 환란과 궁핍과 훼방 속에서도 믿음으로 살아 온 사람들에게 면류관을 주십니다.

우리 주님께서 성도들의 처지를 알고 계시다고 하는 말 처럼 힘과 용기와 소망이 되는 것은 없다. 우리 인간은 두가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는 알지만 하나님은 모르기를 원하는 마음.
나는 부족하게 알지만 하나님께서는 자세하게 알아 주시기를 원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본문에 보면 하나님이 알고 계신 것은 궁핍과 환란이었습니다. 여기 나오는 환난이란 말은 qlifis로서 중압에 눌려 부서지는 것을 말합니다. 기름 짤 때 위에서 내리 누르는 것을 의미 합니다. 참깨를 짓누르면 기름은 아래로 빠지고 깻못만 남습니다. 바로 그 상태를 의미합니다. 즉, 여기서 말하는 환난은 전쟁이나 지진 또는 질병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 나오는 궁핍은 프토케이안(ptwceian) 입니다. 저들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재산을 몰수 당해야만 했고, 빈털털이를 감수해야만 했습니다.

이러한 환난과 궁핍속에서 예수를 믿고, 그러한 환난 가운데서 믿음을 지켜가고 있었습니다. 예수 믿어서 복 받는다는 얘기도 아니고, 잘 산다는 얘기와는 정 반대 입니다. 오히려 보세요. 예수 믿기 때문에 가난해야 했고, 매 맞아야 했고, 쫓겨나야 했고, 추방 당해야 했고, 죽어야 했습니다. 그러한 신앙으로 인한 어려움을 하나님께서 알고 계실 뿐만 아니라 실상은 부요한 자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당시 서머나는 과학과 의술이 발달하였다고 합니다. 지금으로 현대 과학과 의술이 가장 앞서있는 도시였습니다. 첨단 장비를 갖춘 저택에서 사는 사람들에게 너희의 환란과 궁핍을 안다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서머나교회의 교인들의 물질적인 궁핍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의 상태, 영적 부요를 말씀하고 계신 것이었습니다.

본문의 훼방은 bcasfhmian이라해서‘욕설’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퍼붓는 비난, 조소, 욕설 말입니다. 그것도 이방인이 아닌 자기 동족으로부터 말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런 어려운 환난 가운데 승리할 수 있었을까?

궁금하지 않습니까? 그 비결이 본문에서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내가.... 아노니"입니다. 이것이 그 궁금증의 열쇠입니다. 여기서 ‘내가'가 누굽니까? 주님입니다. 즉, 주님이 아신다는 생각, 주님만이 아신다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서머나 교회는 주님이 우리의 고통을 아신다는 믿음으로 위로를 얻고, 용기를 얻었습니다. 주님이 나의 궁핍한 사정을 아십니다. 여러가지 불이익을 아십니다. 억울함도 아십니다. 동족으로부터, 친척으로부터 받는 훼방도, 조소도, 욕설도 아십니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하나님은 아시고, 주님은 아십니다. 여기서 힘을 얻고 용기를 얻게 됩니다.
우리 인생에 있어서 온갖 시련은 육체를 단련하기도 하지만 영혼을 단련하기도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신앙때문에 당하고 있는 환란과 궁핍과 핍박과 훼방을 알고 있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사도행전 14:22 “또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 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고 했지만 하늘에서 받을 상급, 눈물로 심은 것을 기쁨으로 풍성하게 거두실 미래의 복을 약속하시고 위로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 인정된바 된 인생은 행복한 인생인 것입니다.

2. 장차 올 고난(Suffering)을 두려워 하지 않는 자에게 면류관을 주십니다.

(V.10)"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하지말라"는 것은 그리스도를 위한 의인의 고난을 의미한다. 루마니아의 공산세계에 복음을 密輸出하던 범브렌트 목사는 옥중에서 성경을 읽으면서 "두려워 말라"는 말씀을 세어 보았더니 365번 기록되어 있더라고 하였다. 이 숫자는 1년 365 번에 꼭 하루씩 해당되는 수였다.

인간이 얼마나 두려움에 빠지기 쉬운 존재인가를 아시고 하나님께서 매일같이 권면하여 주시는 말씀이다. 주님은 환란과 두려움이 와도 처음이요 나중이신 내가 함께하고 있으니 투옥을 당하고 시험을 당하고 환란을 받더라도 두려워 하지말라고 미리 깨닫게 하신 것이다.

투옥은 면류관을 받을 성도들이 당하는 첫 관문이다. 요셉을 봅시다.(창 39:20) 삼손과 세례 요한 그리고 사도들 베드로와 요한과 함께 초대 교회 성도들이 겪은 투옥은 겨우 첫번째 관문이 것이다. 투옥은 우리를 파멸로 데려가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상급을 받게 하는 통로입니다. 사단이 와서 여러 모양으로 유혹의 올가미를 씌워 넘어뜨리려 하여도 분명한 것은 그것이 영원한 것이 아니라 단지 열흘이라고 하는 짧은 시간이라는 점입니다. 하나님의 의를 외치며 말씀대로 살다가 옥에 던지우고, 빈곤의 늪을 헤매는 성도들은 지금도 우리 가운데 있습니다. 교회의 멸절을 위하여 사단은 교묘한 방법으로 음모를 꾸미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련들은 우리를 잠간 동안 묶어놓을 뿐이지 영원히 결박할 수 없습니다. 욥기 23:10에 그 열쇠가 있습니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고 고백합니다.

추운 겨울에 여행하는 사람이 만난 한 여인은 아이를 업고 있었습니다. 허나 말에 태워 주었으나 엄마가 죽을 지경이 되자 말에서 내리게 하고 말을 달리게 했답니다. 아이를 찾으려는 여인이 악을 쓰며 달여왔고, 숨이 턱에 찰만큼 달려온 여인에게 아이를 돌려 주었습니다. 오히려 모자가 모두 살았답니다. 이와 같이 우리에게 허락된 고난은 우리의 유익을 위해 허락하신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가 살기를 바라시기에 고난 담함도 허락하십니다.

콘스탄틴 황제가 기독교를 국교로 정한 주후 300년 동안 얼마나 많은 기독교인들이 희생을 당하였는지 우리는 다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로마의 시가지 밑에 뚫려 있는 카타콤의 광대함은 당시의 상황이 얼마나 극심한 박해였는지를 말해줍니다.

계산에 의하면 885Km 내지 1,207Km로 보고 거기에 매장된 시체의 수는 350만 에서 600만 명까지로 보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막기 위하여 사단의 무리는 온갖 수단과 방법을 사용했지만 오히려 하나님의 일을 더욱 돕는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참 성도의 신앙은 결코 말살해 버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러가지 유혹의 올가미로 접근하여 온다고 하여도 고난의 종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며 신앙의 충성을 드리자. 생명의 면류관의 주인이 될 것입니다.

(예화) 두 마리의 꿩이 사냥꾼이 쏜 총에 맞아 한 마리는 죽고 또 한 마리는 다리를 절며 살려고 도망간다면 사냥꾼은 어느 것을 잡겠습니까? 그야 물론 산 것을 먼저 잡으러 갑니다. 이와같이 이미 그 영(靈)이 죽은 사람에게는 시험이 필요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마귀는 그 영혼이 살아있는 자는 시험을 합니다. 마귀의 시험을 이기신 예수님을 의지하여 환란과 사험을 이기시기를 복빌어 드립니다. 환란과 시험과 역경 속에서도 오직 믿음으로 충성하는 자에게 생명의 면류관을 주십니다.

3. 말씀을 듣는 귀를 가진가 면류관을 받아 쓸 주인입니다.

성령이 교회들에게 주시는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귀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의 기도를 귀 기울여 들으시는데 하물며 ,성도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아서야 되씁니까? 귀를 가졌지만 듣지 못한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져도 무슨 말씀인지 깨닫지 못하는 것은 귀가 어두워서 그렇습니다. 성령님은 마치 우리가 학교에서 뵈어 온 자상한 선생님처럼 우리에게 깨닫도록 감동하시고, 진리를 가르쳐 주십니다. 신학적으로 이것을 점진적 계시라고 말합니다. 희미하던 약속이 확실하게 깨달아 지도록 반복하여 말씀하시고, 자신의 약속을 우리의 역사와 삶속에서 성취하시는 하나님은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려고 예수님의 부활 승천하신 후 보혜사 성령님을 선물로 주셨습니다.오순절 마가 다락방에 임재하신 성령님은 사모하며, 믿음으로 구하는 모든 성도들에게 선물로 하나님은 주십니다. 이 성령님은 진리의 영이 되시끼에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하시고, 온전한 진리의 사람이 되도록 인도해 주십니다. 할렐루야! 우리가 하나님을 증거할 때에 땅끝까지 그리스도의 증인이되는 선교를 하려고 할 때에 어떻게 증거할 것인지 무엇을 말할 것인지 가르쳐 주십니다. 여러분은 성령을 통하여 들려주시는 말씀을 듣습니까? 현대에 교회를 통하여 들려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경험하면서 살고 있습니까?

나누는 대화에서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듯 합시다. 어른들이 계시면 앉고 일어서는 것이며, 음식을 나눌 때에 드려야 하는 예법이며, 나아가 어른들 앞에서 말씀을 경청하는 일에도 주의해야 합니다. 어른들의 말씀이란 대개가 먼저 산 인생의 지혜가 대부분입니다. 어른들의 지혜에 귀를 기울이지 않다가 마지막에 후회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하물며 성령이 깨우쳐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다가 구원받지 못하여 영원한 지옥형벌에 던지운다면 그것은 얼마나 불행한 이야기입니까? 겸허한 영혼이 되어 성령님이 말씀을 동하여 감동하시고, 기도하실 때 감동하시고, 성경을 읽을 때에 감동하시고, 주의 이름으로 회의 할 때에 감동하시고, 사건을 만날 때, 하나님의 사자인 목회자가 신앙으로 지도 할 때 감동이 오고 깨달아 질 때에 아멘으로 순종하시기를 복빌어 드립니다.

서머나 교회는 모든 교인들이 환란과 궁핍 속에서 선한 일을 행하며 영혼의 부요함을 소유한 성도, 그리스도인들이었습니다. 모든 성도들이 감격과 소망을 가지고 사는 가운데도 더러는 소외되고 무관심 속에 방치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정변이나 어지러운 시기엔 반드시 해를 끼치는 사람으로 돌변하기 쉽습니다. 이것은 6.25을 통하여 이미 경험한 바 있습니다. 당시 서머나교회도 지배층이면서 세속 문화를 건설하기 위하여 앞장 섰던 유대인들이 가장 악랄하게 사단의 앞잡이로 성도들을 괴롭혔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변에 소외받고 있는 분들을 사랑으로 감싸 안아서 사회가 결코 살벌한 곳만은 아님을 깨닫게 해 주어야 합니다. 옥에 던져도, 고난이 극심하여도, 서머나교인들은 이 시련이 지나가면 모두가 생명의 면류관을 받아 쓸 영광의 승리자가 된다는 소망을 가지고 서로 격려하고 용기를 나누는 사랑의 교인들이었습니다.

교인의 예배 참석은 필수입니다. 이 시간은 하나님의 음성을 뜯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드리는 거룩하고 구별된 하나님께서 임재하시고 기다리시는 구별된 장소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이 남겨주신 말씀에 귀를 귀울여 봅시다.??"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 갈 길을 다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딤후 4:7-8)

서머나 교회의 성도들과 같은 신앙으로 면류관을 받아쓰시는 이 귀한 믿음의 승리자와 삶이 되시기를 복빌어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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