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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할 말이 있습니까? (롬 7: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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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장흠 목사

사람을 만나 인사할 때 언어구사를 어떻게 하십니까? 우리들은 보통 날씨로 인사합니다.  지난해 많이 더웠지요.  오늘 날씨가 참 좋습니다. 아니면 식사 여부로 인사합니다.  인사할 때에는 듣는 이에게 칭찬이 들어 있어야 합니다.  긍정적이고 호의적인 인사말이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듣는 이에게 구체적인 내용이 훨씬 우호적입니다.  무엇보다 상황이 참 중요합니다.  즐겁고 축하할만한 일이 있을 때에는 같이 기뻐하는 마음을 보이면서 말해야 합니다.  슬픔을 만난 사람에게는 위로의 말로 인사하는 겁니다.  그러나 상가 집에 가서 인사말은 쉽지 않습니다.
어느 대학생이 친구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는 말을 듣고 문상 차 갔습니다.  뭐라고 인사하였는가 하면 안녕하세요? 그때 상주는 대답하기를 안녕하지 못합니다.  그랬답니다.  그 다음 분위기는 어떠했겠습니까? 문상인사는 뭐라고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얼마나 애석하십니까?  사람들이 흔히 할 말이 없을 때가 있습니다.  언제입니까? 화가 나면 할 말이 없다고 합니다.  할 말이 없을 때가 있습니다.  자랑스럽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겨우 두 살짜리 아이인데 어찌 나 똑똑하고 분명한지 누구에게도 지지 않습니다.  누가 큰소리치면 자기도 큰소리칩니다.  겨우 소변을 구분한지 몇 차례입니다.  그 아이가 어느 시간에 분간을 못하고 볼 일을 보았습니다.  자기 엄마가 뭐라고 나무랍니다.  혼냅니다.  이 아이 좀 보세요.  전혀 관심을 두지 않고 딴전을 피웁니다. 왜 할 말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자랑스럽지 못한 짓을 했기 때문입니다.  이론을 제기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부끄러운 일을 했을 때 할 말이 없어집니다.
로마서 7:1절 이하에서 율법이라는 남편이 죽었을 때 자유자가 된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러면 율법은 나쁜 것이냐? 나쁘다고 말할 수 있느냐 하는 겁니다.  그 율법 앞에서 할 말이 있느냐? 율법이 하는 일이 있습니다.

1.  율법이 죄라는 것을 알려 줍니다.

운전하는 이들이 단속반에 걸립니다.  경찰관은 이렇게 말합니다.  귀하는 도로 교통법 몇 조 몇 항을 위반하셨습니다.  면허증을 제시하십시오.  운전자들은 대부분 나는 법규를 어기지 아니하였다라고 우겨봅니다.  어림도 없습니다.  차라리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나 바쁘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앞으로 조심하겠습니다.  싼 걸로 끊어주세요.  이것이 낫습니다.  교통법규를 어긴 사람들에게 묻습니다.  도로 교통법이 있어야 합니까? 없어야 합니까? 자유롭게 운전하고 싶은 이들이 하는 말 도로 교통법을 폐지하라 그래야 자유롭다 자유롭다는 말은 좋습니다.  그러나 도로교통법은 있어야 교통질서를 유지하고 사고를 막을 수 있는 겁니다.  사람이 세상을 바로 살아가려고 한다면 법이 있어야 하고 지켜야 합니다.  법 중에 양심의 법이 있습니다.  또 하나는 도덕법이 있습니다.  그리고 나라에는 국법이 있습니다.  신앙인들에게는 하나님의 법이 있습니다.  법은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죄를 죄로 알게 됩니다.  살인하지 말라는 율법이 있다는 것이 나쁜 겁니까? 그 율법이 있기에 살인하면 죄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 율법이 인격을 존중하고 생명을 보호하라고 주신 법입니다.  율법이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그 예로 탐내지 말라는 계명입니다.  탐심이 죄라고 아는 사람은 많지 못합니다.  그리고 탐심은 표현이 잘되지 아니합니다.  욕심이 많아 그러면서 그것이 정당하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탐심은 지나친 욕심입니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좀더 갖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사람이 범죄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탐심입니다.  바울 자신도 탐내지 말라는 율법 계명이 없었다면 죄인 줄 몰랐다는 것입니다.  이 같이 율법은 죄를 알게 합니다.  그러면 묻습니다.  죄라고 알려주는 게 잘못하는 겁니까? 의사가 건강을 위한 진찰하고 결과를 알려주는 게 잘못이 아닌 것 같이 율법이 죄를 알려주는 게  잘못이 아니라는 겁니다.  율법이 죄냐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율법이 아니었으면 죄를 죄로 알지 못했습니다. 율법은 우리가 죄인임을 알려줍니다.  그렇다고 율법이 나쁜 것입니까? 할 말이 있으면 하라는 것입니다.  죄가 무엇입니까? 사람이 사람과 그리고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지 못하는 것이 죄입니다.  행위문제 이전에 관계 문제입니다.  죄는 마음에서부터 생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은 마음으로 형제를 미워하면 살인한 것이라 하셨고, 마음으로 이성을 보고 음욕을 품으면 간음이라 하였습니다.  이렇게 말하는데 죄인 아닌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어떤 젊은이가 예수를 믿고 성경을 읽습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며 라는 성경을 읽고 묵상 하다가  이 말씀을 실천하기로 마음먹고 교회로 갔습니다.  가장 믿음이 좋고 성경을 열심히 읽고 깨달은 바는 어김없이 실천한다는 지긋하신 장로님에게 다가가 아무 이유 없이 뺨을 후려갈겼습니다.  기대와는 달리 장로님이 노발대발하시는 것입니다.  청년은 씩~씩~대면서 마태복음 5:39절을 펼쳐 보이면서 이것 보세요.  그랬더니 장로님이 청년의 머리를 툭 때리며 내가 화가 안 나겠어 성경대로라면 오른 편을 먼저 쳐야지 자네는 내 왼편을 후려쳤잖아 그러더랍니다.  누가 죄가 없습니까? 율법에 의하면 우리는 모두 죄인입니다.  그 율법의 대 주제는 사랑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사랑이 모든 관계를 맺어주는 고리입니다.  사랑하면 관계가 좋아집니다.  비교적 고부간에는 관계가 항상 불편한 관계입니다.  예전에 여자가 친정 갈 때에는 여자가 앞섭니다.  빨리 가고 싶어서 그랬습니다.  친정에 갔다가 시댁으로 돌아올 때는 여자가 뒤에 섭니다.  시어머니 시아버지가 어렵다는 겁니다.  시누이는 꼭 시누이 행세를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시집간 젊은 새댁이 시금치를 먹지 않고 성경을 읽어도 시편은 안 읽는답니다.  왜 시 자가 있기 때문이랍니다.  그러나 사랑의 관계가 깊어져 있으면 반대 현상입니다.  어느 며느리는 시어머니보고 엄마라고 부른답니다.  실제 엄마 같이 느끼기에 엄마라고 한답니다.  그러니 자연이 시어머니가 그녀를 사랑하게 됩니다.  이 여인은 행복한 며느리입니다.  사람은 사랑할 때 행복합니다.  사랑 받을 때 살맛 납니다.
사랑 받지 못하는 며느리, 사랑하지 못하는 시어머니는 행복할 수 없습니다.  율법의 대주제가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율법은 우리를 위한 것입니다.  지켜 행하면 복을 주신다고 약속까지 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율법을 지킬 수 없다는데 문제입니다.  율법이 죄를 알려 줄뿐만 아니라 정죄합니다. 너는 율법대로 살지 못하였으니 죄인이다 라고 말합니다.  그 율법 앞에서 할 말이 있느냐 그겁니다.

2.  율법이 정죄 한대로 죄가 나를 죽게 하였습니다. 무슨 말을 하겠느냐? 그겁니다.

율법은 두 가지입니다.  하라와 하지 말라입니다.  사람이 하지 말라고 하면 더하고 싶고 하라 하면 더하기 싫어집니다.  하지 말라고 하면 호기심이 생깁니다.  그러므로 하게 됩니다.  이것을 본성의 부패라고 말합니다.  부패한 인간들이 해서는 안 되는 짓만 합니다.  부패한 자유의지라는 말을 합니다.  자유 의지를 선용하는 게 아니라 악용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범죄 하게 되는 겁니다.  미국의 유명한 뉴스 해설가인 ‘폴 하비’(Paul Harvyy)는 추운 지방에 사는 에스키모들이 어떻게 늑대를 잡는가? 그 특별한 방법을 말하고 있습니다.  늑대를 잡기 위하여 날카로운 칼날에 피를 묻힌 후에 그것을 얼리는데 이것을 반복하면 나중에 칼날이 얼어붙은 피에 숨겨지게 됩니다.  이 칼날이  들어있는 피로 된 얼음덩어리를 늑대가 많이 다니는 툰드라(Tundra) 지역에 묻어 둡니다.  에스키모들은 칼날을 위로 올라오게 묻습니다.  그러면 늑대는 피 냄새를 맡고 다가와서 얼어붙은 피를 혀로 핥기 시작합니다.  늑대가 계속 피를 핥아먹으면 날카로운 칼날이 나타나지만 늑대의 혀는 이미 차가운 얼음을 핥은 중에 감각이 없어져서 자기의 혀가 갈라져서 피가 줄줄 흐르는 줄을 모른 채 더욱 열심히 계속 핥아먹습니다.  드디어 늑대는 피를 많이 흘리고 쓰러질 때까지 피를 마시다가 죽는 다고 합니다.  사람이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다음은 욕심으로 무감각해진 상태에서 계속 범죄 하다가 죽음을 맞게 된다는 교훈입니다.  신앙은 형식화고 죄에 대하여 감각이 없어졌습니다.
죄에 대하여 내성이 생겨 죄책감도 없습니다.  어떤 약을 계속 복용하면 그 약에 대한 내성이 생겨서 약효가 처음보다 떨어지게 되는 것 같이 독약도 조금씩 분량을 늘려 가면 독에 대한 저항력이 생겨서 보통 사람에게 치사량이 되는 양을 먹어도 죽지 않게 된다고 합니다.

기원전 1세기경 소아시아에서 번영하던  폰 투스라는 나라가 있었답니다.  국왕의 이름은 미트라다테스였고, 그 당시 독약에 대하여 많이 개발됨에 권력투쟁에서 독약을 사용하는 암살이 유행하게 되었습니다.    그 왕은 한 가지 묘안을 고안해 냈는데 여러 가지 독약을 각각 맨 처음에는 아주 소량으로부터 시작하여 차츰 복용량을 늘려서 체질을 순응시켜 드디어 치사량의 독약이 몸 속에 들어와도 죽지 않을 수 있는 내성이 생기게 하였답니다.  미트라다테스는 40년간 권좌를 지킬 수 있었습니다.  드디어 로마와 전쟁 중에 패배하게 되었습니다.  잡혀서 죽느니 자결하려고 독약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죽지 아니합니다.  결국은 휘하의 병졸이 창으로 자기를 찌르게 하여 자결하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것을 지금도 미트라다테스 방법이라고 하여 내성을 획득하는데 응용되고 있습니다.  독약보다 강한 내성을 갖고 있는 게 죄입니다.  사단은 죄의 내성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고 인간들을 쉽게 파멸시킵니다.  처음에는 조금씩 죄 같지도 않은 죄에 인간을 접촉시킵니다.  결국은 죄에 대하여 감각이 없어집니다.  그러나 그 죄는 나를 죽게 하였다는 겁니다.  범죄하고 잘되는 사람 보았습니까? 어쩌다가 그런 사람이 있는 것 같이 보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죄는 반드시 드러납니다.  지금 숨겼다고 다른 이들이 모른다고 안심하는 것은 착각입니다.  세상에서는 숨겨질지 모르나 주 앞에 설 때 다 드러난다고 하였습니다.  또 하나는 죄 값은 반드시 지불해야 합니다.  흔히 하는 말이 외상이면 소도 잡아먹고 공짜면 양잿물도 큰 것으로 마신다고 합니다.  신용카드로 인하여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보아왔습니다.  일본도 한국도 그것 때문에 자살하는 사람이 많다고 합니다. 마귀는 우리에게 죄의 신용카드를 사용하도록 권면 합니다.  사인 할 때는 좋았는데 뒤에 청구서가 나옵니다.  죄도 그러합니다.  죄 값은 사망이라고 하였습니다.  사형 당할 대상이 바로 인간입니다.  율법 앞에 의인이 없습니다.
사형선고를 당한 사람에게 당신은 몇 년형이요, 그러면 처음에는 억울합니다.  대부분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사형집행을 당하게 되면 할말이 있는가? 대부분 할 말이 없다고 한답니다.  죄 값으로 죽게 되었는데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3. 선을 알면서 행치 못하였기에 할 말이 없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잘못을 하였어도 처음으로 몰라서 그랬다면 정상이 참작된다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알면서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인간의 고민이 여기에 있습니다.  결심한대로 행치 못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신년벽두에 나는 성경을 하루에 적어도 다섯 장은 읽겠다라고 결심하였는데 며칠 하다가 못하게 됩니다.  그때 결심은 오늘은 사정이 생겨서 못 읽었으니 내일 배나 더 읽자 그랬는데 그 약속도 지키지 못합니다.  그러다가 새해를 맞습니다.  회개 기도하면서 새로운 결심을 하지만 또 실행하지 못합니다.  이것이 인간의 문제점입니다.  바울이 말하는 대로 “내 속에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함은 없노라”( 롬 7:18) 바로 이겁니다.  신약에서 베드로라고 하는 예수의 수제자가 있습니다.  그는 분명히 선생 예수를 위하여 목숨을 바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것이 사실이었습니다.  그것이 그의 의지입니다.  그러나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아 작은 여인 앞에서 선생 예수를 모른다고 부인하였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탄식을 합니다.  “오호라 나는 괴로운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 7:24)  나는 곤고 한 사람이로다 탄식하게 합니다.  곤고 하다는 말은 못이나 철사로 계속하여 찌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괴롭다는 겁니다.  죄 앞에서 탄식할 뿐 할 말이 없다는 겁니다.

그러나 복음으로 우리는 할 말이 있습니다.  “나는 할 말이 있다.” 

  1) 율법은 죄를 알려주고 죄 값으로 죽게 되었다고 말하지만 복음은 예수의 보혈로 너희 죄는 사하여졌다고 말씀합니다. 
여기에서 죄 사함을 받았다는 말은 구원받았다는 말입니다.  나는 할 말이 있습니다.  나는 죄에서 사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죄 사함 받았다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할렐루야)  누가 묻기를 당신은 그리스도인입니까? 예 그렇습니다 라고 대답하였다면 왜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거룩한 삶을 살기 때문입니까? 술 담배를 하지 않기에 그리스도인입니까? 아닙니다.  우리의 죄를 예수의 보혈로 사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근자에 힘있는 사람이 법정에서 재판을 받았는데 1심에서 3년 6개월을 받았는데 상고심에서 1년 6개월로 줄었습니다.  그 사람 줄이 좋구만 그럽니다.  감형되는 이유가 있습니다.  자기를 위하여 한 일이 아니고 죄질에 대하여 많이 뉘우침을 참작하여 감형한다는 겁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 죄를 감해 주는 게 아니라 무조건 사하여 주신 답니다.

율법이 너의 죄는 주홍같이 붉다 태산보다 많고 크다고 할 때 우리 주님은 널 무조건 모두 용서하였다라고 하십니다.  철저한 믿음의 집안에서 자녀들을 교육합니다.  주일은 교회에 꼭 다녀야 한다 동생이 하루는 교회에 나가지 않고 헌금으로 맛있는 것을 사먹었습니다.  이것을 형이 보았습니다.  그것이 약점입니다.  동생을 종같이 부려 먹습니다. 너 아빠한테 이를 거야 그러면 동생은 형이 하라는 대로 합니다.  괴로움을 당하던 동생이 하루는 아빠를 찾아와 아빠 나 잘못했어.  아빠는 무슨 일을 잘못 했다는 거니.  나 지난 몇 일 주일에 교회가지 아니하였거든.  그리고 헌금으로 맛있는 거 사먹었어 용서해주세요.  다시는 그런 일이 없을 거예요.  아빠가 웃으면서 그래 다시는 그런 짓 하면 안돼.  아빠로부터 용서받은 동생은 기쁨이 있습니다.  매이지 아니합니다.  다음에 형이 심부름을 시킵니다.  안 하지요.  야 아빠한데 이를 거야.  그때 하는 말 일러 겁날 것 없어 그럽니다.  동생이 전과 같지 않습니다.  자신이 있습니다.  담대합니다.  왜 용서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범죄 한 우리에게 율법이 자꾸 고발합니다.  마귀가 고발합니다.  걱정할 게 없습니다.  두려울 게 없습니다.  우리는 십자가에서 피 흘려주신 예수의 보혈로 이미 용서함 받았습니다.  사죄의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느니라고 할 말이 있습니다.

  2)  할 말이 있습니다.  예수의 죽음과 부활이 나를 살게 하였다 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다 이루었다 라고 선언하십니다.  우리는 죄로 인하여 예수와 함께 죽었습니다.  그러나 예수의 부활로 인하여 살게 되었습니다.  율법은 우리를 죽이려고 하였으나 은혜는 우리를 살립니다.

  3) 할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죄인이었으나 예수의 보혈로 용서함을 받았습니다.
예수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나니 라고 하십니다. 예수를 믿음으로 무조건 구원을 얻었습니다.  믿고 행함으로 준비된 축복이 있습니다.  나는 구원 얻었다.  할 말이 있지 않습니까? 율법이 죄를 알려주고 그 죄가 우리를 죽게 하였으나 할 말이 생겼습니다.  나는 예수의 의로 구원을 받았고 하나님의 보호가운데서 할 말이 많아지는 귀한 성도님들이 되어지기를 축원합니다.  ~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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