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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공하라(5) (눅 21:3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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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고신일 목사

34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35  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
36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21:34~36) 
 
<목회기도>

찬양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하나님 아버지!
할렐루야 찬양대의 찬양을 받으신 줄 믿고 감사 드립니다.
할렐루야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목소리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 돌리려는 마음으로 모인 이들이 찬양,
하나님, 저들이 일평생 찬양하며 살도록 건강 주시고 지혜 주시고
저들이 배우고 일하는 곳의 어려움이 없게 하여 주시옵소서.
무엇보다 가정이 평안케 하여 주시기 원합니다.
하나님, 지금우리가 사는 세상은
바로 살려고 해도 바로 살기가 어려운 때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몸부림치지만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이방인처럼 보이는 시대입니다.
하나님, 이런 때 빛 되고 소금 되게 살아갈 믿음과 용기와 담대함을 주시옵소서.
하나님, 여기 답답하고 기막힌 속사정이 있는 이들이
떨리는 가슴 억누르고, 나오는 한숨을 잠재우며 앉아 있습니다.
하나님, 저들이 얽히고 묶이고 갇힌 상태에서 놓임 받게 하여 주시옵소서.
안절부절 하는 이들은 평안을 되찾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귀한 시간 우리와 함께 있지 못한 사랑하는 이들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군대에, 객지에, 외국에 나가 있는 기둥교회 성도들
어느 곳에 있든지 하나님 돌보심의 은총을 힘입게 하여 주시옵소서.
병상의 환자들을 긍휼히 여기셔서 우리가 받는 은혜를 저들도 받으며
기쁨과 감사가 넘쳐서 건강하게 예배의 자리에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 부족한 종의 목소리에 기름 부으셔서
능력있게 말씀 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할렐루야!
"할렐루야"라는 말은 "안녕하세요"를 대신하는 인사가 아닙니다.
최근 어떤 사람이 쓴 책에 보니 "할렐루야"하지 말고
"안녕하세요"라고 해야 한다고 하던데 그것도 어리석은 말입니다.
 
"할렐루야(Hallelujah)"는 '여호와를 찬송하라'하는 히브리어입니다.
이 말은 보통 승리하거나 환호할 때 또는 감사할 때…
하나님을 찬양하는 감탄사로 사용되었습니다.(참조, 시148:14, 149:9, 계19:1,6)
그러므로 우리가 만나면 "할렐루야"하는 것은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하나님을 찬양하며 사십시다'하는
권면과 명령이 섞여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할렐루야"는 우리끼리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를 대신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 한번 오른손 들고 우리의 마음에 담긴 생각을 표현합시다.
[할렐루야!]
하나님께 영광돌리며 사시기 바랍니다.,
 
 
사도행전(2:5~12)에 보면
그때 각처에서 다른 말(방언) 하는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그런데 사도들이 말씀을 전할 때 각 사람의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어
"어찜이뇨"(8절), "어찐 일이냐"(12절)하며 놀랐던 기록이 있습니다.
말이 다른데도 알아들은 것에 대해 이상히 여겼고, 신기해 했습니다.
오늘 말씀은 고신일목사가 전하지만 각처에서 다르게 살다 모인 여러분들
각자에게 필요한 말씀으로, 은혜의 말씀으로 전해지기를 축원합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교회 구석구석에…
인터넷에 접속해 있는 분들에게까지 감동으로 역사하실 줄 믿습니다.
옆의 분에게 인사하시기 바랍니다.
"귀한 자리에 잘 오셨습니다."
한번 따라합니다.  "나는 혼자가 아니다. 나는 함께 하시는 분이 계신다"
우리는 혼자가 아닙니다. 우리와 함께 계시는 분이 계십니다.
우리를 천하보다 귀히 여기셔서 우리와 함께 계시는 분이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살기 힘든 세상
 
최근에 보도된 내용을 보면 북한이 핵탄을 보유했다고 단정짓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우리나라도 핵폭탄 정도는 쉽게 만들만한 실력이 있다고 판단되어
국제원자력기구(IAEA)에서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스운 것은 핵폭탄을 가지고 있는 크고 힘있는 나라에서
다른 나라는 만들지 못하도록 관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위험한 것을 자기들은 가져도 되고 우리는 안 된다는 소리에
약한 우리는 말 한마디 못하고 조사 당하고 있습니다.
핵폭탄을 보유하지는 말아야 하겠지만 우리로선 몹시 기분 나쁜 일입니다.
 
오늘 우리는 '공존(co-survival)이냐? 공멸(co-destruction)이냐?'
하는 문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사실 핵전쟁이 일어나면 세상엔 승자도 없고 패자도 없습니다.
모두 같이 멸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핵이 무서운 것입니다.
과학이 발달하고 생활에 편리한 발명품들은 계속 쏟아져 나오는데
세상은 왜 더 살기가 어려울까요?
 
성경에는 과학이 계속 발달하고 경제가 좋아지고 또 좋아지면
결국 지상에 천국(paradise)이 오리라는 언급은 없습니다.
여전히 세상은 세상일 뿐입니다.
요즈음 뉴스에는 잔인하고 끔찍한 사건, 테러, 살해… 등의 보도가 줄을 잇고 있습니다.
우리 주변으로 음란과 향락의 파도가 심하게 밀려오고 있습니다.
국회에서는 매춘을 옹호하는 발언이 나오고
TV, 영화에서는 가정파괴를 부추기고 있습니다.
'쉽게 이혼한다', '이혼하기가 쉽다'는 보도의 반복은
은연중 사람들에게 이혼해도 좋다는 생각을 갖게 해 줍니다.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처럼 결혼했다 쉽게 이혼 많이 하는 나라가 없습니다.
아무튼 요즘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일들이 많고
차마 귀 열고 들을 수 없는 일들이 많습니다.
눈앞에 보이는 것, 귀에 들리는 것만 생각하면 우리나라는 희망이 없어 보입니다.
그래서 요즘 연세 드신 어른들이 툭툭 내던지시는
"말세여, 말세… 이 나라 이러다 망하지"라는 말씀이 귀에 와 닿습니다.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오늘 본문(눅21:34~36) 말씀에도 '말세'를 대비하여 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천국에 소망을 둔 크리스챤입니다.
비록 이 땅에 발을 딛고 살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사람입니다(빌3:20).
작더라도 빛이요, 작더라도 소금입니다.
이 세상에 살지만 천국을 볼 줄 아는 사람이기 때문에 크리스챤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세상 돈벌이도, 운동도, 장기나 바둑 같은 게임도…
모두 '몇 수 앞을 내다보느냐?'에 따라 승패가 좌우됩니다.
멀리 내다보고 노력하는 인생이라야 성공하는 삶을 살게 되고
남이 탄식하고 슬퍼할 때 웃을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오늘 교회에 온 이유는 무엇입니까? 왜 예수 믿고, 왜 예배드립니까?
예수 믿기 때문에, 예배드리려고… 왔습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은 백성이기에…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비록 '말세'로 보여지는 이 세상에 발을 딛고 있지만
천국을 사는 사람이기 때문에 오늘 여기 모인 것입니다.
 
 
방탕한 세상
 
지금 이 세상은 어떻습니까?
오늘 본문 34절에 정확히 설명되어 있습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눅21:34)
 
지금 이 세상은 방탕합니다.
국어사전에 "방탕하다"는 말은 "술과 여자에 빠져 행실이 나쁜 것"과
"마음이 들떠 갈피를 잡을 수 없는 것"을 말합니다.
마음에 기준이 없어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는 것을 말합니다.
지금 세상은 흥청대고 먹고 마시고… 엉망입니다.
방탕치 않으면 바보 취급당하는 세상입니다.
물론 인간의 마음 속에는 악을 선호하는 마음과 향락적인 성품이 함께 있습니다.(전9:3)
그래서인지 지금 세상은 아이와 어른의 구별이 없고,
예의와 무례를 구별키 어렵고, 질서와 무질서를 따지기 어려운 세상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교회도 안(內)과 밖(外)의 구별도 없습니다.
요즘에는 신앙의 거룩함과 세상적인 즐거움이 적당히 섞여서
교회에서는 거룩한 신자이고, 교회 밖에서는 예수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처럼
세상 즐거움도 적당히 즐기며 사는 신자들이 많아졌습니다.
갈라디아서 5장 21절에 보면 방탕은
결국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게 되는 것이라 했습니다.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갈5:21)
 
 
술 취한 세상
 
지금 이 세상은 방탕할 뿐 아니라 술에 취해 있습니다.
단순히 소주, 양주, 맥주 마시고 취하는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잘못된 것에 취한 것 모두를 말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무엇에 취해 있는가가 중요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그 속에 거하시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그리스도의 사람이어야 합니다(롬8:9).
그런데 예수 믿는 사람들 가운데도, 돈에 취해 있고, 세상 명예와 지위,
유혹과 탐욕에 취해 있습니다.
심지어 교회 안에서도 섬김과 겸손을 위해 세우는 집사, 권사, 장로 직분도
믿은지 오래 되면 받아야 하는 당연직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연말이 되어 직분을 못 받으면  삐집니다.
며칠 전에 어떤 분이 저로 인해 삐졌다고 하더군요.
그분이 권사인데 제가 집사라고 불렀다고 삐졌다는 것입니다. 죄송합니다.
제 마음에는 직분이 없이 모두 "형제님, 자매님"이라고 불렀으면 좋겠습니다.
 
그뿐 아니라 우리 주변에는 술에 취해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방탕의 아픔을 잊기 위해 술을 마십니다.
염려와 근심을 잊기 위해 술을 마십니다.
좋아서 마시고 기분 나빠서 마시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멀리 내다보는 눈을 막기 위해, 자기 현실 만족을 위해 술을 마십니다.
 
요즈음, 밤중에 다녀보면 사람들이 술 먹기 위해 사는 것 같습니다.
술은 판단을 흐리게 하여 무질서를 초래하며 몸을 망가뜨립니다.
생각을, 정신을 망가뜨립니다. 물론 신앙도 망가뜨립니다.
하나님께서 의인이라고 선택한 노아도
술에 취해 이성을 잃고 자신의 품위를 손상시켰습니다(창9:21)
 
지난 수요일(10월 13일) 신문에 나온 기사입니다.
  소주 29억병 마셨다 ; 작년 한해  <조선일보 2004. 10. 13>
[지난해 경기침체 속에 우리 국민들은 28억9860만 병의 소주를 마시고
7080억원의 세금을 낸 것으로 집계됐다. 
재경부가 10일 국회 재경위 소속 이혜훈(한나라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 국민들이 마신 소주는 총 9662만상자
(28억9860만 병, 상자당 360㎖짜리 30병기준)이고
소주 판매액은 2조 1229억원에 달했다.
이는 2002년에 비해 각각 4.6%와 11.2% 증가한 것이다.
이에 따라 지난해 소주에 붙은 세금(출고가격의 72%)도 7080억원으로
2002년 6240억원보다 840억원(13%) 늘어났다.
반면 지난해 위스키는 불황 여파로 2002년에 비해
6.7% 줄어든 1조4000억원어치가 팔렸다.
위스키 세금도 같은 기간 2620억원에서 1840억원으로 30%나 감소했다.
지난해 맥주 판매량(753만 상자)도 전년에 비해 3.7% 줄었다.
그러나 맥줏값이 올라 판매액(3조1750억원)은 소폭 증가했다.
맥주에 붙은 세금도 2002년 1조2940억원에서
지난해 1조3340억원으로 늘었다.] 

 
그러니까 소주+위스키+맥주 소비량만 합하면 6조 6979억원 어치입니다.
<다른 종류의 술은 빼고>
지금 우리나라는 술 먹기 대회를 하는 것 같습니다.
전 세계에서 온 국민이 열심히 술 먹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습니다.
 
 
생활의 염려로 찌든 세상
 
그리고 지금 이 세상은 방탕하고 술 취하여 사는 것은 물론이고
생활의 염려가 많습니다.
정치인들은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거나 미래의 희망을 제시하는데는 관심 없이
과거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고…
젊은이들은 취업이 안되어 한 숨 쉬고…
부모들은 감당키 어려운 사교육비 때문에 조기유학과 이민을 꿈꾸며…
자식 교육을 위해서, 먹고 살기 위해 죄의 자리에 앉는 부모가 있고
신앙생활하면서 자식 교육을 위해 하나님을 피하는 부모들도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피한다는 표현은 주일 안 지키고, 예배 안 드리고,
이리 저리 뛰어 다니는 부모를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가인이 버림받은 이유가 예배의 실패자였기 때문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생활의 염려,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을 외면한 것일 때는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고3이라고 해서 하나님과 멀어지고…, 먹고 살기 위해 하나님과 멀어지고…
즐기기 위해 하나님과 멀어진다면… 그것이 문제라는 말입니다.
 
사람이 세상에서 살기 위해 땀흘려 일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정한 이치입니다(참조, 창3:17~19).
그러나 그것으로 인하여, 근심하고 염려하여… 신앙생활을 바르게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결코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참조, 마6:25~31).
 
하나님을 외면한 세상의 염려는
성도로 하여금 불신앙을 가져오게 하여(참조, 마6:25~32)
결국 이생의 자랑거리를 위해 살아가게 합니다(참조, 요일2:15~17).
우리가 받은 바 사명을 위하여… , 혹은 자신의 부족함 때문에…
염려하고 근심하는 것은 건설적인 것입니다.(참조, 고후 7:9~11)
그러나 자신의 욕망을 채우지 못해서
혹은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함으로 염려하게 된다면(참조, 약1:5~8, 4:1~3)
그 근심이 가시가 되어 영혼을 찌르고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딤전6:9)의 깊은 잠에 빠지게 하는 것이 됩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고 했습니다(벧전5:7).
 
 
마음이 둔하여 집니다
 
방탕하고, 술 취하고, 생활의 염려로 하나님을 멀리하면… 어떻게 된다고 했습니까?
"마음이 둔하여" 진다고 했습니다.
"마음이 둔하여 진다"는 말은 의식이 없어진다는 말입니다.
마음이, 양심이 마비된다는 말입니다. 느낌이 없어진다는 말입니다.
잠시 살다가는 안개 같은 인생이라는 것도(약4:14) 잊어버리고,
죽기로 정해진 인생이라는 것도(히9:27) 잊어버리고,
일한 대로 갚으시는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도(계22:12) 잊어 버리고…
모른척 하며 마음대로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스스로 조심해야 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라고 했습니까?
"스스로 조심해하라"고 했습니다.
책임이 각자에게 있기 때문에 각자, 스스로 조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임하리라"고 했습니다.
(That day may come suddenly,~")
덫은 짐승을 꾀어 잡는 기구입니다.
무엇인지도 모르고 먹을 것을 찾으러 온 짐승을 한순간에 잡아 채는 것이 덫입니다.
 
세상이 어떻게 가더라도… 그 날은 옵니다.
재림의 날, 심판의 날, 판단의 날이 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면 가야 하는 그 날이 옵니다.
그 날에 탄식하는 자가 있고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하며 기뻐하는 자가 있습니다.
그 날은 준비된 자에게는 기쁨의 날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방탕한 자들은 늘 방탕으로 즐거울 줄 알지만 아닙니다.
술 취한 자가 날마다 즐겁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는 자가 늘 승리자가 아닙니다.
 
성경에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 지 그 답이 나와 있습니다.
34절에 "Be careful!" 조심하라 했습니다.
        스스로 조심하라 핑계 할 수 없습니다.
35절에 "왜" 그 날이 모두에게 임할 것이기 때문에
36절에 "So, be ready~" 준비하라 대비하라 했습니다.
 
 
항상 기도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36절에 준비하는 방법 두 가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나는 "항상 기도하며…"
"기도"는 하나님을 대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생각도 달라지고,
태도도 달라지고 말과 행동도 달라집니다.
애인 만나러 가는 사람은 거울 보고 또 봅니다.
지체 높으신 어른 만나러 가는 사람, 취업하기 위해 면접 시험보러 가는 사람…
생각과 태도와 복장이 다릅니다.
누구를 만나는 가에 따라 사람은 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 앞에 선다는 생각, 자세(태도), 복장이어야 합니다.
"항상" 기도한다 는 것은 [항상 하나님 앞에 서 있다]는 뜻입니다.
여러분은 '항상' 하나님 앞에 서 있는,
'항상' 하나님을 만나는, '항상' 기도하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미국 플로리다(Florida)주에 나울린이라는 목사님이 계셨는데,
그 교회에 신앙이 돈독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교회학교 총무로 충성스럽게 일하였습니다.
그의 사업이 자꾸 번창하여 십일조가 늘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너무 바빠서 교회 일을 그만 두어야 했고,
다른 도시에 지점을 내자 거기서 주말을 보내느라고
예배 출석도 못하게 되고 사업은 번창하는데 십일조는 전에 드리는 대로 드렸습니다.
그러자 나울린 목사님이 찾아가서
  "나는 자네를 걱정하고 있네. 자네는 예배에 계속 불참했어.
  자네는 일이 바빠 하나님의 일에 흥미를 잃었고 온전한 십일조도 못하고 있네"
라고 충고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목사님, 한 주일에 몇 백 불도 많은 돈인데 그만큼 십일조 하면 됐지
뭘 더 하랍니까. 또 사업이 바빠서 교회 출석을 못합니다."고 대답했습니다.
이 때 목사님은 "내가 왔으니 우리 함께 기도합시다. 내가 기도하고 가겠습니다."
둘이는 무릎을 꿇었습니다.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이에게 지나친 복을 주셨습니다.
너무 많은 사업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영혼은 죽어가고 있습니다.
이의 영혼을 위하여 이의 사업을 줄여 주시옵소서.
예전으로 되돌아가도록 이의 재산의 일부를 빼앗아 가 주시옵소서."
기도가 끝나자 그는 떨기 시작하면서
잘못을 고백하고 옛 믿음으로 돌이켰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어떠신지요?
우리는 항상 하나님 앞에 있어야 합니다.
 
 
항상 깨어 있어야 합니다.
 
항상 기도하는 것과 함께 항상 깨어 있을 것을 명하고 있습니다.
"깨어 있으라"는 말은 [각성하라, 경계하라, 예비하라]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세상의 유혹, 육신의 탐욕,
이 세상의 걱정 때문에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처럼 살게 되기가 쉽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캄캄한 어둠에 묻혀 있다 해도 눈 부릅뜨고 볼 것 보고 할 것은 해야 합니다.
보다 넓은 세계, 하나님이 약속한 곳을, 약속된 미래를 내다보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보고 살아야 합니다.
예수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 된 사람, 천국을 보장받고, 영생을 보장받은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보기에 영락없는 제 정신이 아닙니다.
 
그래서 초대교회는 예수 믿는 사람들을 향해 "저희가 새 술에 취하였다"(행2:13) 했고…
바울은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만일 정신이 온전하여도 너희를 위한 것이니"(고후5:13)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미쳤습니까? 여러분 미쳤습니까?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우리를 바라보고 미쳤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하나님이 어떤 역사를 하시는지,
하나님이 어떤 약속을 하셨는 지 모르는 사람들은
우리를 향해 미쳤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제 2차 세계대전 때 포로가 되어 독일군 포로 수용소에 있었던
영국 군인 맥도날드(Murdo McDonald) 목사는
어느 날 새벽에 있었던 감격을 간증하였습니다.
 
자기 친구인 전기 기술자가 라디오를 조립하여 비밀리에
영국 BBC방송을 듣고 전쟁 상황을 수용소 내에 전달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새벽 그 친구가 제일 먼저 맥도날드 목사님을 흔들어 깨웠습니다.
"그들이 왔네!(They have come)"
이 말은 연합군이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성공했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들이 왔다"는 소식, 기다리던 소식, 기쁨의 소식이 온 수용소에 퍼지자
포로들은 기뻐서 마당으로 나가 춤을 추고
"그들이 왔다(They have come)고 소리질렀습니다.
그때 연합군 상륙의 뉴스를 듣지 못한 독일군들은
'이 사람들이 집단으로 미쳤구나' 생각하며 총을 겨누고 지켜보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 포로들에게 실제적인 변화가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벽은 여전히 높고, 철망도 쳐 있고 독일군이 총을 겨누고 있고…
그들은 여전히 고통받는 포로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아군이 전진해 오고 있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된 후부터
기쁨이 넘치고, 용기가 생기고, 기다림에 부풀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하는 것 사람들이 다 이해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하늘나라를 바라보고, 영생을 바라보고 사는 것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보면 미쳤다고 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죄악이 관영하고 고통이 있다 하더라도
다시 오실 그리스도를 맞을 소망과 기쁨으로 기다리며 살아야 합니다.
언제 지구의 종말이 오든, 언제 주님이 다시 오시든,
언제 하나님이 부르신다 할지라도…  잘~ 준비하고 살면 되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삶에 충실하고, 가정에 충실하고, 신앙생활 바르게 하고,
'그 날'을 준비하며 살면 됩니다.
듣기 싫어도 들으셔야 하는 말입니다.
"뜻밖의 그 날"은 반드시 옵니다.
여러분 자신이, 여러분 가정이, 우리 교회가…  항상 기도로 준비하며
깨어 있는 삶을 살고 매순간 순간 성공적으로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삶을 살면 됩니다.
기쁘고, 행복하고, 사랑하며 영원한 소망 속에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는 삶의 성공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언제 그날이 닥친다 할지라도, 언제 주님 다시 오시든지,
언제 하나님이 나를 부르시든지 부끄러움 없이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할 수 있는
준비된 삶의 성공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는 믿음의 성공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다시 오실 예수님 거룩하신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2004년  10월 17일 주일 낮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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