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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날마다 기뻐하는 삶 (빌 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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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김광일 목사 (벧엘감리교회)

스코틀랜드의 ‘제이니’ 라는 학자는 항상 얼굴에 웃음이 떠나지 않고 기쁨이 충만한 삶을 살았습니다. 사람들은 그가 매일 천국을 다녀오는 것 같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기쁨이라는 것은 깃발과 같습니다. 성에 깃발이 꽂혀 있다는 것은 그 성에 왕이 머물러 있다는 증거입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이 기쁜 얼굴을 하고 있다는 것은 그 마음 속에 만왕의 왕이신 주님이 살아 계시다는 증거입니다. 내 마음속에는 언제나 주님이 계시기에 기쁩니다.” 우리 마음에 기쁨이 가득하고, 얼굴에 웃음이 있다는 것은 마음에 하나님이 계시다는 증거입니다. 옆에 있는 분들의 표정을 보면서 인사하시기 바랍니다. 활짝 펴 있는 얼굴을 하고 계시면 “보기에 참 좋습니다” 고 인사하시고, 굳어 있는 얼굴을 하고 계시는 분이 있다면 “얼굴 좀 펴시고 주님과 함께 사시기 바랍니다” 라고 인사하시기 바랍니다.

외국 선교사가 한국 목사님께 질문을 했습니다. “한국의 교인들은 왜 그렇게 표정이 어둡습니까? 교회 오기 전까지는 바깥에서 명랑하게 얘기하고 웃다가도 교회에 들어서기만 하면 왜 갑자기 어둡고 우울해집니까?" 목사님은 대답할 말이 얼른 떠오르지 않자 ”한국 교인들은 예배당 안에 들어서자마자 십자가의 주님을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랬더니 그 선교사는 웃으면서, “그러면 그 주님이 부활하신 것은 잊어 버렸나 보군요” 하더랍니다. 십자가도 중요하지만 사망 권세 깨뜨리시고 부활하신 기쁨도 중요합니다. 예수님의 고난만 묵상할 것이 아니라 구원을 베풀어주신 하나님을 기뻐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만 찬양할 것이 아니라 승리를 주신 주님도 기쁘게 찬양해야 합니다. 성령의 동행하심도 기뻐해야 합니다. 그러기에 신앙인의 삶 속에는 언제나 기쁨이 적극적으로 표현되어야 합니다.

본문에서 사도바울은 “기뻐하라"고 말씀합니다. 그냥 기뻐하라가 아니라 “항상 기뻐하라” 고 말합니다. 그것도 모자라 바울은 거듭해서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합니다. 바울은 기쁨이 우리 삶의 스타일이 되어야 하며, 우리 삶의 태도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그러므로 예수 안에서 거듭난 사람이라면,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산다면 우리는 기뻐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바울은 본문을 통하여 우리 모두를 기쁨으로 초대하고 있습니다. 이제 여러분들은 주님께서 명령하신 그대로 날마다 기뻐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날마다 기뻐하며 삶을 살려면,

첫째로 언제나 주님 안에 거해야 합니다

영국의 선교사 허드슨 테일러는 꿈을 갖고 중국 오지에 들어가 열심히 사역했습니다. 그러나 노력하면 할 수록 어려움이 닥쳐와 사역이 무너지고 자신의 육체에 심한 질병이 찾아왔습니다. 절망과 낙담에 빠진 그에게 여동생이 보낸 편지가 도착했습니다. "오빠는 포도나무 가지이지, 포도나무가 아니에요. 가지가 할 일은 나무에 붙어 있는 것입니다. 포도나무 가지는 줄기로부터 영양분을 빨아들일 때 절로 열매가 맺히는 거예요. 오빠, 염려하지 말고 포도나무이신 주님 안에 거하세요”. 테일러는 용기를 얻고 진정으로 주님 안에 거하기 위해 힘을 다하였습니다. 놀라운 것은 그 후로부터 사역에 열매가 맺히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는 큰 업적을 남기고 영국으로 돌아와서 "저는 사역의 승리를 간구했으나 도무지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는 주님 안에 거함을 확실히 믿었습니다. 그랬더니 승리가 찾아왔습니다" 라고 간증하였습니다.

1절의 말씀처럼 ‘주안에 서는 것' 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주님 안에 서 있을 때만이 나의 연약함은 주님의 전능하심으로 보호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주안에 거해야 합니다. 본문 4절 역시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의 ‘주안에서’ 라는 말은 ‘주님 때문에’ 라는 말로 해석됩니다. 즉 “주안에서 기뻐하라” 는 것은 “주님 때문에 기뻐하라” 는 뜻이 되는 것입니다. 주안에서 얻는 기쁨은 세상이 주는 기쁨이 아닙니다. 오직 주님과의 관계에서 얻어지는 기쁨입니다. 그것은 죄 사함의 기쁨이요, 하나님의 자녀가 된 기쁨이요, 하나님의 일꾼 된 기쁨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고난이 와도, 어떤 시련이 와도, 어떤 아픔이 와도, 어떤 어려움이 와도 절대적으로 빼앗기지 않는 기쁨입니다. 환경이 주는 기쁨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입니다. 바울은 감옥이라는 환경 속에서도 주님 안에 거함으로 오히려 기뻐하였습니다. “주가 나와 동행을 하면서 나를 친구 삼으셨네 우리 서로 받은 그 기쁨은 알 사람이 없도다”.
여러분의 마음이 불안하고 기쁨이 없으십니까? 주님 안에 거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기쁨이 있습니다. 이제 환경의 지배를 받는 연약한 자가 되지 마시고 주님 안에 거함으로 환경을 이겨 날마다 기뻐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기도로 염려를 극복해야 합니다.

혼자 사는 한 여인이 너무 외로워서 애완용 동물가게에 찾아갔습니다. “저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애완동물을 소개해주세요”. “여기 똑똑한 앵무새가 있습니다. 다양한 말을 구사합니다. 곧 좋은 친구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 아무리 말을 걸어도 말을 하지 않습니다. 가게로 전화 하니 “이상하네요. 그렇다면 앵무새가 거울을 좋아하니 새장 안에 거울을 넣어주세요. 자기 얼굴을 보고 행복해진 앵무새가 곧 말을 하게 될 것입니다”. 새장 안에 거울을 달아주어도 계속 반응이 없습니다. “앵무새가 운동을 좋아하니까 새장 안에 사다리를 넣어 주세요”. 사다리에 몇 번 오르락내리락 하던 앵무새는 그만 주저 앉아버립니다. 화 가난 부인에게 “이번에는 그네를 달아주세요” . 그네를 달아준 여인의 정성에도 불구하고 앵무새는 한 두 번 그네를 타더니 기운 없이 쓰러져 죽어버렸습니다. 그녀는 너무 어이가 없어 가게를 찾아갔습니다. “앵무새가 말 한 마디도 안하고 죽어버렸으니 어찌된 일입니까?” “정말 한 마디도 안 했습니까?” 부인은 가만히 생각하더니 한마디는 했다고 합니다. 여인이 죽어 가는 앵무새에게 “한 마디도 안하고 이렇게 죽는 법이 어디 있느냐” 고 소리 쳤더니 앵무새가 죽어가면서 하는 말이 “밥을 줘야 말할 기력이 있지” 하더랍니다. 결국 그 부인은 앵무새가 말을 하느냐 안 하느냐의 염려에 사로잡혀 가장 중요한 먹이 주는 것을 잊어버렸던 것입니다.

염려와 불안에 사로잡히다 보면 중요한 것을 잊어버리게 됩니다. 염려로 인해 마음이 나누어지고 혼란스러워져 판단이 서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염려가 사라지고 기쁨으로 살 수 있습니까? 본문 6절은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고 하십니다. 영어 성경은 ‘아무것도’ 와 ‘모든 일’ 을 같은 단어인 ‘everything’ 으로 표현하면서 염려할 것들을 모두 기도로 바꾸라고 번역합니다. 즉 염려할 일과 상황이 생기면 염려할 일이 생긴 것으로 보지말고 기도할 일이 생긴 것으로 알고 그 상황을 기도제목으로 삼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염려를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그리하면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십니다.

종교 개혁자 마틴 루터는 하루 종일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세상에서 싸우다가 저녁이 되면 창가로 다가가 이렇게 기도했다고 합니다. "하나님, 이 세상이 제 것입니까? 아니면 하나님 것입니까? 이 교회가 제 것입니까? 아니면 하나님 것입니까? 당신의 세상이요, 당신의 교회라면, 그것을 친히 돌보십시오. 저는 잠을 자러 가겠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무거운 인생의 짐을 혼자 지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염려와 근심의 제목들은 하나님이 대신 져 주실 것입니다. 이제 염려를 주님께 맡기고 기도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그리할 때 우리의 삶 속에 날마다 기쁨이 충만해 집니다.

셋째로 삶의 적극적인 덕목들을 생각해야 합니다

한 소년이 골목길에서 놀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돌이 날아와 소년의 눈을 때렸습니다. 친구가 돌을 던졌는데 그것이 한쪽 눈에 명중한 것입니다. 소년은 눈을 잡고 쓰러졌습니다. 부모가 달려와 급히 병원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크게 다쳤군요. 나머지 한쪽 눈도 못 쓰게 되어 앞으로 볼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의사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습니다. 부모는 비통한 표정으로 서 있었습니다. 그때 소년은 말했습니다. "엄마, 아빠! 눈을 잃었으나 머리는 남아 있어요." 그 후 이 소년은 평생을 시각장애자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머리가 남아 큰 인물이 되었습니다. 바로 이 소년이 앞을 보지 못했지만 영국의 위대한 경제학자요, 캠브리지 대학교수요, 국무위원을 지낸 헨리 포세트입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고, 미래의 희망을 보면서 적극적인 것을 생각하며 사는 긍정적인 자세가 삶을 성공으로 이끈 것입니다.

본문 8절에 사도바울은 인생의 적극적인 덕목들을 생각하며 살라고 교훈합니다. 참된 것, 경건한 것, 옳은 것, 정결한 것, 사랑스러운 것, 칭찬할 만한 것, 덕스러운 것들, 이 모든 것들은 적극적인 것이며 긍정적인 것들입니다. 바울은 이것들을 계속해서 생각하라고 합니다. 습관이 되도록 말입니다. 부정적인 것을 생각을 하는 사람에게는 기쁨이 없습니다. 만사가 불평이고 짜증입니다. 이제 우리의 시각이 바뀌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삶을 보며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 문제가 적어집니다. 하나님이 크게 보일 때 문제는 줄어들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를 괴롭히고 억누르는 삶의 역경이 대단한 것이라고 해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그 역경과 문제는 적어 보입니다.

사도 바울은 언제 어디서나 적극적인 믿음을 가지고 인생을 개척했습니다. 그러기에 그의 삶 속에는 언제나 기쁨이 충만했습니다. 바울의 삶은 거의 굶고 헐벗고, 고통을 당하거나, 감옥에서 지냈어도 한번도 원망하거나 탄식하지 않았습니다. 언제나 환경에 매이지 아니하고 어려운 것을 가장 좋은 것으로 바꾸며 살았습니다. 감옥을 별장으로, 고난을 영광으로, 슬픔의 눈물을 찬란한 기쁨의 진주로 만들며 살았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삶 속에서 기쁨을 노래합니다.
신앙생활의 핵심은 기쁨입니다. 하나님께 부름 받은 성도의 가장 큰 변화는 기쁨이 넘치는 모습으로 달라지는 것입니다. 부디 내 안에 계신 주님으로 인하여 날마다 기쁨이 넘치는 모습이 보여지시기 바랍니다. 모든 염려거리를 기도제목으로 바꾸어 기뻐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적극적인 생각들을 통하여 만사를 믿음으로 해결하면서 기쁨이 더욱 충만해 지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가정에서 일터에서 교회에서 날마다 기뻐하며 살아가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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