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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준비없는 신앙생활 (마 24:4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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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김이봉 목사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뇨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의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
리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저에게 맡기리라 만일 그 악한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동무들을 때며 술친구들로 더불어 먹고 마시게 되면 생각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의 받는 율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마태복음 24장 44절-51절)

1. 신앙생활은 재림신앙으로 사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의 목적은 마지막 날에 구원 얻는데 있습니다.
이것을 믿고 사는 것을 재림신앙을 갖고 사는 것이라고 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약속한 것이 있습니다.
'내가 다시 너희에게 오리라'고 하였습니다.
재림(再臨)을 약속하였습니다.
초기 기독교의 신앙생활은 이 <재림신앙>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1세기가 다 되도록 주님은 다시 오지 않으니 재림신앙은 흔들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저들의 시간은 물리적 시간 개념으로 이해하였습니다.

그러므로 1세기 말부터 교회 안에는 이단들이 생겨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재림에 대해 부정하는 말과 심지어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사실 자체까지 부인하려는 자들이 생겼습니다.
'곧 다시 온다던 예수님이 왜 오지 않는가?'
'이거 뭐가 잘못된 것이 아닌가?'
이런 의구심에서 시작되어 결국 재림을 부인하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바로 이점을 경계하면서 성도들의 재림신앙을 일깨웠습니다.

오늘 21세기의 현대인들에게도 이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재림신앙은 변함이 없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약속은 일점 일획이라도 변치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신앙생활을 보면, 재림에 대한 신앙은 점점 관념적으로만 이해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성경이 그렇게 말하였으니, 그런 줄 아는 정도입니다.
또 재림을 교리적으로만 인정하려고 합니다.
그러면서, 모두 현실주의적으로 세속화 물결에 휩쓸리게 되었습니다.

2. 재림신앙이 없어지면 기도도 없어집니다. 

우리는 주님이 가르쳐 준 주기도문을 항상 외웁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臨)하기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이해도 달라졌습니다.
전통적 개념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장소(Place)적 개념으로 이해하였습니다.
그러나 요즘에 그렇게 이해하는 신학자들은 거의 없어졌습니다.
요즘에는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주권(主權)의 시행을 의미한다고 말합니다.
즉 모든 우주는 하나님이 지으신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주권이 시행되도록 기도하라는 것이라고 그렇게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천당(天堂)이란 개념이 없어졌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나라가 하나님의 정의가 실현되도록 하면 된다고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연히 몸의 부활도 믿지 않으려고 합니다.
부활신앙은 기독교의 근본적인 신앙임에도 불구하고 부활신앙에 대한 확신 없이 살고 있는 크리스천들이 많아졌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내가 다시 오리라'고 하면서 여러 곳에서 비유로 설명하였습니다.
그것이 선한 청지기 비유이고, 달란트 비유입니다.
한 포도원 주인이 먼 곳으로 가면서 종들에게 포도원을 맡기고 떠나갔다는 예화이고, 또 한 부자가 종들을 불러 한 사람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씩 맡기고 떠났다고 하였습니다.
여러 해 후에 주인이 와서 계산하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거기에는 두 가지로 분류된다고 하였습니다.
주인을 기다리며 주인의 것을 잘 관리하고 재산을 증식시킨 종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주인의 것을 가지고 매일 친구들과 허랑 방탕하며 술 취하여 놀다가 갑자기 주인을 만나게 되는 종이 있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착하고 신실한 종이 있는가 하면, 악하고 게으른 종이 있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주님은 다시 심판의 주로 오신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을 등한히 여기고 사는 사람은 준비 없이 사는 사람입니다.
주인의 것을 가지고 낭비하는 삶을 사는 격입니다.
기도하며 산다는 것은 준비하면서 사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게 되면 기도의 내용도 달라집니다.
주님 맞을 준비를 하면서 살아야 하기에 그것을 위해 기도하게 됩니다.
기도는 미래를 준비하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기도는 자신의 종말을 위한 준비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요즘 기도 없이 사는 크리스천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재림신앙은 눈곱만큼도 생각지 않습니다.
그래서 주님 다시 오실 때 마치 이 세상은 노아의 때와 같겠다고 하였습니다.
노아의 때가 어떤 세상이었습니까?
120연간 노아가 홍수를 예고하면서 방주를 지으라고 하였지만, 누구 하나 노아의 말에 귀기울여 관심을 갖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오직 자기 앞에 놓여진 기회들을 잡으려고 시집가고 장가들고, 팔고 사고, 먹고 자는 것 외에 다른 것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이것이 노아의 시대상이었습니다.

요즘이 바로 그런 세상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기독교 신앙이 이제는 먹고 마시는 일에만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웰빙의 문제만 생각하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분명히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하였는데, 요즘 현대 크리스천들이 먼저 구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과 다를 바가 하나도 없는 것이 아닙니까?
우리의 생각들속에 꽉 들어찬 생각은 하나님의 나라가 아닙니다.
먹고 자고, 시집가고 장가들고, 무슨 옷을 입을까? 어떤 집에서 살까?
하는 것 외에 무엇이 다른 것이 있습니까?

3. 준비하며 사는 사람에게는 기도처럼 소중한 것이 없습니다.
기도는 만사를 성취케 하는 문이기 때문입니다.
세계역사를 바꾸어 놓은 사람들 보면 모두 기도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신앙인은 어떤 일을 하든지 먼저 무릎 꿇고 기도하고 시작합니다.
왜냐하면 기도 없이 하는 일에는 하나님의 보증이 없기 때문입니다.

18세기 영국을 구해 냈던 <죤 웨슬리>의 어머니는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19명의 자녀를 낳아서 훌륭한 사람으로 길러낸 위대한 어머니였습니다.
어느날 한 문학인이 와서 웨슬리의 어머니<수산나>에게 물었습니다.
'자녀들을 훌륭하게 길러낸 비결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나는 우리 아이들이 머리가 크기 전에, 좀더 정확히 다섯 살이 지나기 전에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는 법을 가르쳤습니다." 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기도하는 법을 어려서부터 배운 사람에게는 다른 것이 그 마음에 들어와 자리 잡을 수 없습니다.
머리가 커서 굳어진 후에는 기도하는 법을 가르칠려 해도 불가능합니다.
다섯살 이전에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준 부모들은 자녀교육에 실패자라고 결코 볼 수 없습니다.
만일 그런 것이 없이 자유분방하게 키운 자식들이라면, 과연 그들이 하나님과 그의 나라를 위해 생각하면서, 준비하면서 사는 사람들이 될 수 있겠는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이런 면에서 남한의 크리스천들이 크게 반성해야할 일입니다.

성경에는 기도로 키운 위대한 어머니들이 많습니다.
눈물의 기도로 얻은 아들을 어려서부터 엘리 제사장에게 맡겨 신앙의 훈련을 받아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길러낸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가 그런 어머니였습니다.
그녀는 쉬지 않고 기도한 어머니였습니다.

그런가 하면, 아들에게 신앙을 넣어준 <야곱>을 보시기 바랍니다.
<요셉>이 그렇게 많은 억울하고 눈물겨운 역경에서도 굴하지 아니하고 끝까지 믿음을 지켜 애굽의 총리대신의 자리에 올라갈 수 있었던 것은 일찍이 물려받은 아버지로부터의 기도의 신앙교육이었습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비록 친부모는 아니었지만, 사촌 오빠였던 <모르드개>의 밑에서 신앙교육을 받았던 에스더는 페르시아의 왕후에 자리에서 얼마든지 영달을 누리며 살 수 있었겠지만, 민족과 나라를 구하기 위하여 생명을 건 모험을
했던 것은 다 일찍이 받은 신앙교육이었습니다.

모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에게 젖을 먹이면서 눈물로 기도로 키운 어머니 <요게벳>의 기도의 덕분으로 위대한 민족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다윗의 조부 오벳을 낳았던 모압 여인 <룻>도 기도하는 시어머니, <나오미>의 신앙교육이 열매를 맺은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역대 왕들도 보면 기도하는 왕이 통치할 때는 나라가 평안하고 부강해졌습니다.
세계사를 통틀어 보십시오.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믿음으로 행한 사람들이 나라를 건지기도 하였고, 민족의 위대한 지도자들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기도하는 사람들을 살피고 있습니다.
땅이 저주를 받는 것은 우상을 섬긴 결과이었습니다.
대신 통회하고 눈물로 기도하면 하나님은 하늘에서 들으시고 그 땅을 고치겠다고 하였습니다.
기도가 하늘 문을 열고 비를 내리게 하였고,    그 기도가 적군의 침입을 막기도 하였습니다.
이것은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교회의 기도가 있는 한 하나님은 이 나라를 버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기도가 형식으로 치우치고 체면으로  이어질 때 반드시 깨우치는 방법으로 하나님은 징치할 것입니다.
요즘 우리나라는 국민 통합을 이루는 일이 제일  급선무라고 봅니다.

제각기 네편, 내편으로 갈라집니다.
무조건 상대방을 밀어내 버리려고 합니다.
그래서 얻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들 양편에 각각 들어가 있는 오늘의 크리스천들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적어도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들이라면, 말씀 안  에서 하나 되고, 성령의 하나되게 하심에 복종해야 할 것입니다.

그 하나됨은 우리가 다 종말적인 존재들이란 의식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주님이 오심을 바라보는 신앙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주님 앞에서 우리의 종말의 날은 반드시 올 것입니다.
그 종말이 개인적으로는 나의 죽음일 것이고, 역사적으로는 재림의 날일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종말이든, 종말은 우리의 현실로 나타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준비 없이 살다 그 날을 맞는 사람들이 되지 말고, 항상 깨어 기도함으로 그 날을 준비하면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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