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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당신에게 우선순위가 있습니까? (학 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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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곽주환 목사 

우리가 마시는 음료수 중에 2%가 있다. 2%가 부족할 때에 마시라는 광고를 낸다. 이것을 마시면 부족한 2%로가 채워진다는 의미로 선전을 한다. 재미있는 광고이다. 나는 이 광고를 볼 때마다 생각하기를, 과연 우리는 2%만 부족한 상태로 살아가는가? 주변의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당신은 정말로 만족하며 삽니까? 정말로 2%만 부족합니까?라고 물으면 아닙니다. 2%가 아니라 20% 이상은 만족하지 못하고 그냥 그렇게 살고 있다고 말할 것이다.

어디에 가면 새로운 만족이 있을까하여 여기 저기를 기웃 기웃거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모른다. 어떤 사람이 결혼을 53번째 했다고 한다. 짧게는 이틀을 함께 살았고, 길게는 20년을 살았다고 한다. 이번에 결혼한 53번째의 신부는 전에 결혼해서 살다가 이혼한 사람하고 다시 재혼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 사람은 어떤 이유에서 이렇게 결혼을 많이 했는지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이 사람을 만나도, 저 사람을 만나도 참된 만족이 없기 때문에 혹시나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만족할까하여 결혼하고, 결혼하고 했을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질병 중에 하나는 만족이 없고, 참된 기쁨이 없고, 흥이 없이 그냥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게 보여 진다. 본문의 말씀은 이러한 모습을 향하여 “많이 뿌릴지라도 수확이 적으며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실지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꾼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
왜 이렇게 먹어도 배부른 만족이 없고, 추워서 옷을 입었는데도 따뜻한 만족이 없고, 돈을 벌어서 주머니에 넣어 두었는데도 기쁜 만족이 없는가? 내가 자식과 함께 가정을 이루고 살아도 내 삶에 참된 만족이 없이, 기쁨이 없이 왜 이렇게 그냥 그렇게 살아가는가?

그 이유를 본문은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다. 삶의 우선순위가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삶의 우선순위가 먼저 하나님을 향하여 있어야 하는데 삶의 우선순위가 다른데 있기 때문에 우리의 인생에 참된 만족이 없다고 가르쳐주고 있다. 삶의 우선순위가 올바로 되면 삶의 현장에서 만족과 기쁨을 누리며 살지만, 삶의 우선순위가 바뀌면 참된 만족과 기쁨을 누릴 수 없다고 가르쳐 주고 있다.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후에 기록된 말씀이다.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올 때에 그들의 중요한 이유 중에 하나는 성전을 재건하는 일이었다. 무너진 성전을 다시 세우려고 하는데 몇 가지 어려움을 겪는다. 사마리아 사람들과의 갈등이 있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이스라엘에 남아있었는데 그들의 피가 섞였다. 유대인의 순수혈통을 지키지 못한 그들이 성전을 짓는데 참여한다고 하니 유대인들과 갈등을 겪게 된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이었다. 둘째로는,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었다. 황폐한 땅에서 물질과 재료도 없는데 어떻게 성전을 짓겠는가? 우리는 돈이 없어서 성전을 짓지 못한다는 분명한 이유를 갖고 있었다. 세 번째로는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사람들이 5만명 정도인데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돌아오려면 시간이 더욱 필요한데 급히 지을 필요가 뭐가 있겠는가? 그들은 이러한 이유를 앞 세워서 성전이 황폐한 체로 그냥 남겨두었다.

그러나 이러한 이유는 모두가 표면적인 이유이었다. 사마리아 사람들이 같이 일하자고 하니까 기분이 나빠서 못하겠다. 이것은 그들이 갖다가 붙힌 구실에 불과하다. 지금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어서 성전을 못 짓겠다. 이것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자기의 집은 훌륭하게 잘 지어 놓고, 편안하게 잘 살면서, 하고 싶은 데로 마음 데로 하면서 돈이 없어서 성전을 못 짓겠다. 이것도 역시 구실에 불과하다. 지금 바벨론에서 돌아온 사람이 5만명 밖에 되지 않는데 기다렸다가 하자. 그럴듯한 이유가 되지만 이것도 역시 성전을 짓지 않는 구실에 불과했다.
그러면 성전을 짓지 않는 근본적인 뿌리가 어디에 있는가? 빗나간 열정에 있었다. 먼저 하나님의 집을 짓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자기의 집을 먼저 짓고 싶은 빗나간 열정에 있었다.
나는 지금 어디에 열정을 쏟고 있는가 생각해 보라. 이것을 구별할 수 있는 방법 중에 하나는 내가 지금 어디에 시간을 제일 많이 쓰고 있으며, 나의 물질을 어디에 가장 많이 쓰고 있는가? 이것을 생각해 보라. 그리하면 우리는 나의 열정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 볼 수 있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나의 열정을 건강을 지키는데 쓰는 것 같다. 운동도 하고, 웰빙 음식도 찾아서 먹는다. 분명히 말하지만 건강을 지키는데 열정을 쏟는 것이 잘못됐다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운동도 열심히 해야 한다. 좋은 음식도 먹으면 좋다. 그러나 우리가 열정을 쏟는 것도 우선순위가 분명히 있어야 한다.

주일에 교회에 오시지요. 이렇게 물으면 대개 바빠서 못갑니다. 시간이 생기면 가겠습니다. 이렇게 대답한다. 하나님이 들으시고 얼마나 불쾌하게 생각하시겠는가? 그래 네가 쏟고 싶은 열정을 여기 저기에 다 쏟아 부은 다음에 나에게 찌꺼기, 남은 시간이나 생기면 교회에 오려는가? 우리가 에너지를 쏟고, 시간을 보내고, 물질을 사용하는 것에도 분명히 우선 순위가 정해져 있어야 한다.

어느 시간 관리에 대한 강사가 강의를 맡았는데 퀴즈를 내었다. 강사가 탁자 위에 항아리를 올려 놓았다. 그 옆에는 주먹만한 크기의 돌 몇 개가 있었다. 돌을 몇 개 집어 넣을 수 있습니까? 큰 돌을 하나, 둘, 셋 집어 넣는다. 큰 돌로 항아리를 가득채웠다. 강사가 묻기를 "항아리가 꽉 찼습니까?" 모두들 "네"라고 대답을 한다. 그러자 강사가 탁자 밑에서 자갈이 든 통을 꺼내었다. 자갈 몇개를 항아리에 넣고 흔들었다. 자갈은 큰 돌 틈으로 들어갔다. 항아리가 꽉 찼습니까? 묻자 이제는 사람들이 웃기만 하고 있었다. 다음에 강사가 모래가 든 통을 꺼내어다. 모래를 항아리에 부었다. 모래는 돌과 자갈 사이의 틈으로 들어갔다. 항아리가 꽉 찼습니까? 라고 묻자 모두 "아닙니다"라고 대답을 한다. 강사는 다음에 탁자 밑에서 물주전자를 꺼내어서 그 항아리에 물을 가득히 부었다. 강사가 물었다. "무엇을 배웠습니까?" 대답하기를 "우리의 인생에는 늘 틈이 있습니다."라고 대답하자 아닙니다. "핵심은 이겁니다. 만일 당신이 큰 돌을 먼저 집어 넣지 않았다면, 과연 다른 것들을 집어 넣을 수 있었을까요?"
내가 시간을 사용하는데 내 인생의 가장 큰 돌은 무엇인가? 큰 돌을 집어 넣어야 하는데, 내 인생의 가장 먼저 집어 넣어야할 큰 돌은 무엇이 차지하고 있는가?

본문은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하고 있다. 잘못된 순서, 빗나간 열정은 우리 인생에 참된 만족을 줄 수 없다. 참된 기쁨을 줄 수 없다.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은 사마리아 인들의 반대로 인하여 지을 수 없다. 경제적으로 물질이 없어서 못짓는다. 그럴 듯한 이유가 있었지만 근본적인 뿌리는 내 삶의 우선순위가 잘못되었기 때문에, 내 열정이 다른 곳으로 빗나가 있었기 때문에 성전 짓는 일을 계속해서 미루고 있었다.
사랑하는 성도여! 이번 성전을 짓는 과정을 통해서 삶의 우선 순위가 올바르게 정리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이런 저런 구실을 붙이면서 무관심하지 말고, 정말로 주님이 제일이십니다. 라는 신앙의 고백으로 이 거룩한 일에 동참하는 자들이 되기를 바란다.

한 선교사가 뉴 헤브라이즈 군도에서 몇몇 원주민들이 돼지들을 잡는 것을 보았다. 이 원주민들은 돼지의 꼬리를 잘라내서 그것들을 쌓아 놓았다. 그 선교사가 원주민들에게 왜 그렇게 하느냐고 묻자, 그들은 "고기는 우리를 위한 것이고 이 꼬리들은 우리의 신들을 위한 것이라."고 대답했다. 어떤 기독교인들은 꼭 그와 같은 어리석고 죄스러운 짓을 한다. 그들은 모든 것을 자신들을 위해 먼저 취하고 혹, 남는 것이 있다면 그 찌꺼기를 하나님께 드린다. 이것은 옳지 않은 일이다. 이렇게 살아갈 때에 우리의 인생은 끊임없이 참된 만족이 없이 허탈한 인생을 살다가 그만둔다.
삶의 우선순위가 올바르게 되어야 참된 만족이 있다. 하나님 제일주의로 살아야 인생이 복을 받는다. 하나님 제일주의로 살아야 하나님 나라에 갔을 때에 상급을 받는다. 하나님은 찌꺼기를 싫어하신다. 하나님은 제일 처음 것을 원하신다.

가인과 아벨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다. 가인은 농산물로 제사를 지내고, 아벨은 양으로 제사를 지냈다.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시고 아벨의 제사를 받으셨다. 하나님이 채식보다 육식을 좋아하셔서 그런가? 아니다. 가인과 아벨의 제사에 가장 큰 차이는 아벨은 처음 것을 하나님께 드렸다. 처음 것으로 주님께 드렸을 때에 아벨의 제사를 받으셨다.
서기 1623년, 자유로운 신앙을 찾아 박해받던 조국을 등지고 신대륙, 미국 땅에 도착한 영국의 청교도들은 목적지에 닿아 짐을 풀자마자 제일 먼저 세운 건물이 교회였다 한다. 믿음이 없는 삶은 지옥생활이라고 그들은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다음 세운 건물은 학교였다. 2세들에게 참된 교육을 함으로써 바른 역사를 계승, 발전시키고자 한 것이다. 세 번째 가서야 그들은 자기네들이 거처할 집을 한 채씩 지었다고 한다. 그리고 집을 지을 때는, 누구나 교회를 중심으로 세웠고, 앞 창문을 열면 반드시 교회가 보이도록 하였다 한다. 뿐만 아니라, 마을길을 닦을 때도 사방에서 교회로 통하도록 계획을 짰다고 한다. 그들이 바로 오늘날 미국 사람들의 조상이다. 이러한 뿌리 때문에 복 받은 나라가 되었다.

결혼을 앞에 둔 두 사람이 내 방에 찾아왔다. 이 두 사람은 넉넉하게 사는 사람도 아니다. 결혼을 앞에 두고 지출해야할 것이 얼마나 많겠는가? 두 사람이 감사헌금 백만원을 담아 갖고와서 결혼을 준비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우리의 결혼과 가정을 이루게 하심을 감사하여 먼저 바치고서 결혼식을 준비하고 싶다고 찾아왔다.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그 가정을 대견하게 생각하시겠는가? 하나님께서 그 가정의 결혼을 얼마나 축복해 주시겠는가? 두 사람이 헌금을 바치면서 감격으로 눈시울이 붉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목회자로서 얼마나 보람있고 기뻤는지 모른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보자. 자기들의 집은 잘 지어 놓고 성전을 지을 수 없었던 그럴듯한 이유가 있었다. 사마리아 사람들의 반대, 경제적인 어려움, 등 그럴 듯한 이유가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책망하셨다. 빗나간 열정을 책망하셨다. 잘못된 순서를 책망하셨다. 우리는 어떤 순서를 갖고서 살아가는가?
하나님을 먼저 생각하고, 하나님 제일주의로 살아갈 때에 어떤 것으로도 채울 수 없는 참된 만족이 있다. 우선순위가 잘못되면 먹어도 배가 고프고, 옷을 입어도 추운데, 우선순위가 올바로되면 않먹어도 배가 부르고, 옷을 입지 않아도 따뜻함을 느끼는 참된 만족을 체험하게 된다. 사랑하는 성도여! 하나님 제일주의로 살아가자. 분명한 삶의 우선순위를 갖고 살자. 그래서 참된 만족도 얻고, 내 인생이 행복하고, 내 인생이 풍요로운 축복이 임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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