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영원한 복음 (롬 1:13-17)

  • 잡초 잡초
  • 493
  • 0

첨부 1


- 설교 : 서해원 목사

우리가 신앙 생활하면서 많이 사용하는 단어 중에 '복음'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복음은 '복된 소식, 좋은 소식, 기쁜 소식'이란 뜻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기쁜 소식일까요? 세상에서 인간을 위한 가장 좋은 소식이 무엇입니까? 바로 '예수그리스도'입니다. 주님이 탄생하실 때 천사가 목자에게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전한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그분의 탄생, 사역, 죽음과 부활이 좋은 소식입니다. 그분에 관한 모든 것이 복음입니다. 그래서 신약의 처음 성경을 '복음서'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복음의 특징은 한마디로 영원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원한 복음'입니다. 제가 신학교에 다닐 때 학장이셨던 목사님이 늘 이런 말을 강조하셨습니다. "당 년에 거두려거든 곡초를 심고, 10년에 거두려거든 나무를 심어라. 100년에 거두려거든 사람을 심고, 영원히 거두려거든 복음을 심어라." 그분은 이제 고인이 되셨지만, 오랜 세월이 지난 뒤 제가 목회의 현장에 있다 보니 이 말이 절실히 생각이 납니다. 인간세계에 영원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모두가 100년 안에 결말을 봅니다. 그러나 100년이 지나 영원토록 결실을 보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복음만이 영원한 것입니다. 복음을 심으면 영원히 거둘 수 있다는 것입니다.

본문은 영원한 복음에 사로잡혀 복음을 위해 평생을 살다가 한 인생의 아름다운 신앙의 고백과 그의 가르침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그가 누구입니까? 바로 본문을 기록한 '사도 바울'입니다. 그는 복음이 무엇인지 안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복음을 위해 평생을 투자했고, 그리고 복음 안에서 생을 마친 사람입니다. 이런 그의 열정이 지금까지 온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알게 되었고, 바로 우리도 알게 되었습니다. 본문을 포함한 로마서 1장을 대하면서 우리는 그가 복음에 대해 어떤 자세로 살았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복음 앞에서 보여주었던 그의 마음은 과연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우선, 감사의 마음이었습니다.

로마서는 바울이 로마교회에 보낸 편지입니다. 바울은 이 편지를 쓰면서 처음부터 여기까지 거의 문장을 쉬지 않고 써내려 갔습니다. 본문을 포함한 1장의 가장 큰 주제가 바로 '복음'입니다. 이 짧은 말씀 안에 복음이라는 말이 자주 반복됩니다. 이런 복음을 말하면서 그가 보여주려고 했던 의도는 복음으로 인한 감사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1장을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는 먼저 자신이 복음을 위하여 선택받은 일꾼이 된 것을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1장 1절에 이렇게 시작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그리고 그는 복음이 무엇인지를 안 것에 대해서도 감사합니다. 그래서 곧 바로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가 이어지는 것입니다. "이 아들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복음 앞에 자신을 부르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복음의 주인공이신 예수님을 알게 하신 것을 감사하더니, 이젠 복음으로 낳은 성도들로 인해 감사하는 것을 봅니다. 8절입니다. "첫째는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 모든 사람을 인하여 내 하나님께 감사함은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

그러면서 본문까지 이어지는 것입니다. 바울은 복음 앞에 정말 감사했습니다. 그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감사가 전도의 동기였습니다. 이것이 바울의 인생에서 우선적으로 배우는 교훈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해야 하는 가장 큰 동기가 있다면 바로 감사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누구입니까? 나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내가 어떻게 주님을 알게 되었습니까? 우리도 바울처럼 어느 날 복음을 접했습니다. 주님이 나에게 찾아오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죽음과 부활이라는 놀라운 복음을 듣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구속의 은혜로 감격했던 사람입니다. 지금도 주님을 생각하면 눈물부터 나오지 않습니까?

그야말로 놀라운 은혜가 나에게 임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은혜를 주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더욱 필요한 은혜를 주실 분입니다. 그 은혜는 세상이 알 수도 없고, 줄 수도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은혜를 받고 삽니다. 그런데 은혜를 알고, 은혜를 받고 사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마음의 자세는 감사라는 것입니다. 은혜와 감사는 함께 갑니다. 은혜가 있기에 감사하고, 감사하기에 은혜가 더욱 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감사하는 자를 기뻐하십니다. 은혜 앞에 우리가 평생 잊지 말아야 할 것이 감사입니다.

감사는 표현이 되어야 합니다. 감사는 마음에 간직하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감사의 마음이 있으면 반드시 그것이 표현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감사를 찬양으로 표현하고, 기도로 할 수 있습니다. 물질로도 표현할 수 있고, 봉사로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귀한 감사의 표현은 바로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평생 바울의 다짐이었습니다. 바울은 주님을 안 뒤, 정말 감사했습니다. 그래서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복음 앞에 감사의 마음이 있습니까? 주님을 알게 된 놀라운 구원과 은혜 앞에 진심으로 감사하십니까? 그렇다면 힘써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나만 복음을 아는 것으로 행복해서는 안 됩니다. 다른 사람도 알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전파해야 합니다. 이 귀한 사명이 우리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감사의 마음으로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빚진 자의 마음입니다.

본문 14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바울은 복음에 대한 사명을 이런 독특한 방법으로 설명합니다. 로마서에서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과 사람에게 빚을 진 사람이라고 강조합니다. 그는 사랑의 빚도 있고, 육신의 빚도 진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복음의 빚을 진 사람이라고 고백합니다. 바울이 평생 복음을 위해 투자할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의 원동력은 바로 이 마음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는 빚진 자의 마음으로 살았습니다. 특히 복음의 빚진 자로 평생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전하지 않고는 안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빚을 갚아야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살면서 빚을 진 경험이 있습니까? 저는 지난 12년의 외국생활을 하면서 은행 빚을 진 적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돈을 마음대로 쓰게 해주니까 신기하고 좋아서 쓰고 싶은 대로 긁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나중에 모두 빚이 되니까 그렇게 부담일수가 없었습니다. 아무리 갚아도 줄어들지가 않는 것입니다. 저의 집사람은 월부도 빚이라고 생각해서 아예 현금이 아니면 물건을 사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빚을 가지고 사니 사는 게 사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외식을 해도 빚을 갚아야 하는데, 조그만 물건을 사려고 하다가도 빚을 갚아야 하는데, 일년에 한번 가족과 함께 휴가를 가도 아껴서 빚을 갚아야 하는데... 이것이 늘 입에 붙어 있었습니다. 당시 우리는 빚이라는 것이 얼마나 삶의 큰 부담인지를 그때서야 알았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우리에게 이런 자세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복음에 빚을 진 사람입니다. 복음에 있어서는 끊임없이 부담을 가져야 합니다. '거룩한 부담'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 중에 아무도 스스로 복음을 알게 된 사람은 없습니다. 누군가가 전한 것입니다. 처음 누군가의 헌신적인 수고와 노력으로 우리가 복음을 접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을 늘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한국의 경우는 더욱 그렇습니다. 이 땅에 복음이 들어 온지 그리 오래 되지 않았습니다. 120년 전 한국이 어떤 나라였습니까? 황무지와 같은 이 땅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누군가가 이곳에 들어 온 것입니다. 그들이 여기에서 복음을 위해 투자한 열정이 있었기에 이만큼 교회가 부흥한 것입니다.

'양화진' 이란 곳을 아십니까?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 있는 이 곳의 원래 명칭은 외국인 공원묘지로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묘지는 이 땅에 선교사로 들어와 평생 한국을 위해 일하다가 묻힌 사람들입니다. 그곳에 가면 당시 복음을 위한 그들의 삶이 얼마나 고귀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곳에 최초로 매장된 선교사는 '존 헤론'이란 사람입니다. 1885년 6월에 입국한 그는 알렌과 함께 의료선교사로 열심히 일하다가 5년만에 이질에 걸려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는 한국을 위해 일하다가 결국 이방 땅에서 자기의 뼈를 묻었던 것입니다. 그는 자기의 조국보다, 사랑하는 가족보다, 더욱 한국의 영혼을 사랑했던 사람입니다. 그의 묘비에 이렇게 쓰여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하여 자신을 주셨다..." 이 말은 곧 '나도 내가 사랑하는 한국을 위해 이곳에 나를 묻는다'는 뜻입니다.

그 뒤에 많은 선교사들이 이곳에 들어와 복음을 위해 희생하다가 여기에 묻혔습니다. 그들이 어떤 삶을 살고, 어떤 길을 걸었는지 묘비를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아펜 젤러의 묘비에는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습니다." 헐버트 선교사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히기보다 한국에 묻히기를 원하노라" 젠슨 선교사의 묘비에는 이렇게 씌여 있습니다.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느니라" 켄드릭이란 사람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에게 천의 생명이 주어진다 해도 그 모두를 한국에 바치리라"

이들의 신실한 섬김과 봉사로 황무지와 같은 한국 땅에 복음이 들어왔습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빚을 진 것입니다. 아니 우리는 기독교 2000년 역사에서 복음을 위해 순교한 많은 사람에게 빚을 진 것입니다. 나와 상관없는 그들이 오직 나를 위해 복음을 전했다면, 이제 나도 나와 상관없는 사람에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거룩한 부담을 갖고 전해야 합니다. 빚진 자의 마음으로 복음을 전파하는 일을 잘 감당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셋째, 부끄러워하지 않는 마음입니다.

16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것이 바울이 복음 앞에서 마지막으로 보인 아름다운 삶의 자세였습니다. 그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기가 깨달은 복음이 그의 인생에 가장 자랑스러웠습니다. 그래서 그는 갈라디아서에서 십자가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바울은 평생 복음과 십자가를 자랑하며 살던 사람입니다. 이것에 온 생을 투자할 만큼 자랑스러웠습니다.

왜 그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까? 계속되는 말씀을 보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복음은 그 자체가 능력입니다. 다이너마이트보다 핵 폭탄보다 더 폭발적인 능력이 복음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능력을 알았기에 복음과 함께 그는 무서워하지 않았고, 두렵지도 않았고, 부끄러워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계속되는 바울의 고백에 의하면 그는 이처럼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면서 복음의 능력 앞에 두 가지의 귀한 삶을 간증합니다. 하나는 복음을 위한 열정입니다. 그가 얼마나 로마를 가고 싶어했는지 모릅니다. 13절을 보십시오. "형제들아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한 것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너희 중에서도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로다" 여기에서 보는 것처럼 그는 로마에 가기를 몇 번이나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좀처럼 기회가 오지 않았습니다. 그가 로마에 가기를 소원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오직 그곳에도 복음을 전하기 위한 열정 때문입니다. 거기에도 복음의 능력을 나타내고 싶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이미 소아시아의 여러 지역을 다니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몇 번의 전도여행을 통해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죽음의 위기도 수없이 넘겼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는 로마까지 가기를 소원합니다. 당시 로마가 세상의 끝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로마는 가장 위험한 곳이었습니다. 거기는 믿는 자의 박해가 가장 심한 곳이었습니다. 그는 이미 죽을 각오가 되어 있었습니다. 결국 이런 그의 열정이 그를 로마까지 가게 합니다. 비록 죄수의 몸이지만 로마 땅을 밟았고, 거기에서 그의 인생을 마치게 됩니다.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능력을 알았기에 그는 복음을 위해 열정을 가졌습니다. 어디에나, 누구에게든지, 그 열정으로 살았던 것입니다.

이런 바울을 보면서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열정입니다. 나의 신앙과 주님의 모든 일은 열정을 가지고 해야 합니다. 기도도 열정이 있어야 하고, 봉사도 열정이 필요합니다. 모든 것에 열정을 가져야 합니다. 그 가운데에서 복음을 위해서는 정말 큰 열정이 필요합니다. 시시하게 해 가지고는 능력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천하보다 귀한 영혼을 주님께로 이끄는 일에 사탄의 방해가 만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우리를 안일하게 만듭니다. 복음에 대한 감각이 없게 하고, 전하는 것에 대하여 중요하지 않게 만듭니다. 그야말로 내 코가 석자인데 내가 무슨 다른 사람에게 전도를 하느냐고 반문하게 만듭니다. 더 바쁘게 하고, 나의 열정을 다른 곳으로 빼앗아 갑니다. 이 모두는 복음을 위해 뛰어들어야 할 나의 삶을 방해하는 사탄의 전략입니다. 이제 정신을 차리고 열정을 회복해야 합니다. 처음 사랑과 처음 열정으로 이 일에 뛰어들고 헌신하여 좋은 결말을 보시기 바랍니다.

또한 바울이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가졌던 삶의 태도는 믿음으로 사는 그의 삶입니다. 17절에서 그것을 잘 보여 줍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바울은 복음을 위한 열정만 갖고 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의로운 삶을 향한 열정도 있었다는 말입니다. 믿음으로 참되고 바른 삶의 현장을 만들고 싶은 열심이 있었습니다. 그는 무엇을 하는 것에만 치중하지 않고,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 가에도 늘 신경을 썼던 사람입니다. 이것이 주님을 알고, 복음의 능력을 아는 자의 마땅한 길임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여러분, 복음을 아십니까? 복음이 부끄럽지 않다고 믿으십니까? 복음의 놀라운 능력이 있는 것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우리에게 믿음으로 사는 삶의 모습이 있어야 합니다. 믿음의 능력을 삶의 현장에서 바르고 참되게 사는 모습으로 나타내야 합니다. 세상에서 빛과 소금으로 살고 보여져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통해 주님을 알게 해야 합니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 주님을 믿게 하는 통로가 됩니까, 아니면 방해를 하고 있습니까?

지금 우리 시대는 복음을 몰라서 문제가 아니라 믿음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제 나부터 믿음의 삶을 결단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믿음으로 말하고, 믿음으로 행동하고, 믿음으로 사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야 합니다. 이것이 복음 앞에 오늘 내가 결단해야 할 가장 큰 헌신입니다. 이 일은 복음을 전하는 것보다 어쩌면 더 중요한 일입니다. 믿음으로 살기를 굳게 다짐하는 열정을 결심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감사의 마음으로, 빚 진자의 마음으로, 그리고 부끄럽지 않는 마음으로, 우리는 당당히 복음 앞에 서야 합니다. 오늘 나에게 주신 이 말씀의 의미를 새기며 한 주간도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추천인 1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