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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님이 타신 배....사람을 낚는 배!’ (마 4: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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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박승원 목사

● 서론

AD 63년경 10월 초 길이 42미터 폭이 10.8미터인 작지 않은 배가 소아시아의 작은 항구 미항에서 출항하였습니다. 그 배는 알렉산드리아 양곡선으로서 로마로 향하고 있었는데 그 배안에는 양곡뿐 아니라  백부장에 의해 로마제국으로 압송되는 한 죄인이 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출항하는 시기가 좋지 않았습니다. 지중해바다는 보통 9월 이후부터는 항해하기를 꺼렸는데 이는 2,100미터에 달하는 그레데산맥의 영향으로 인해 기류가 서로 충돌하여 생기는 ‘유라굴로’라는 광풍 때문입니다. 특히 당시에는 나침반도 없고 별다른 동력이 없는 철저히 바람만을 의지하여 항해하는 시대였기에 날씨는 매우 중요하였습니다. 잦은 풍랑으로 어렵게 미항에 도착한 선원들이 광풍을 두려워하여 출항을 주저하고 있을 때 압송당하고 있던 그 죄인이 위험하니 이곳에서 겨울을 나고 후에 출항할 것을 권면하였습니다. 그러나 미항에는 선원들이 겨울을 보낼 편리한 장소가 없었기에 백부장 율리오는 훨씬 크고 편리한 뵈닉스 항구로 떠나자는 선장의 말을 듣고 출항을 명령하였습니다. 처음에는 남풍이 불어 항해가 수월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이내 무서운 동북풍이 불어 닥쳤으며, 심한 바람으로 인해 하나밖에 없는 큰 돛이 그만 부러지고 말았습니다. 앞으로도 뒤로도 나아가지 못한 채 이리 저리 사정없이 흔들리는 배안에서 선장을 비롯한 노련한 선원들이 애를 써보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도리어 모든 사람들이 광풍에 시달리며 이성을 잃고 부르짖을 뿐이었습니다. 할 수 없이 그들은 마지막 수단으로 배를 가볍게 하기 위해 배안에 있는 모든 짐들을 버리기 시작했는데, 배를 조정하지 못하면 강풍에 밀려 북아프리카 연안에 있는 스르디스로 밀려갈 위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곳은 유라굴로로 인해 파선된 배들이 광풍에 밀려 좌초되는 선박의 무덤입니다. 풍랑에 시달린지 3일째 되어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탈진상태에 빠진 사람들이 모두 희망을 잃고 죽어가고 있을 때에 압송되던 그 죄인이 다시 한번 그들 앞에 서서 말했습니다.

“...여러분들이 처음에 내 말을 듣고 떠나지 않았더라면 좋을 뻔 했습니다. 그러나 더 이상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제는 안심하십시오, 여러분 생명에는 아무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만 상할 것입니다. 나의 속한 바 곧 나의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씀하셨습니다. 바울아 두려워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행선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느니라....그러므로 여러분! 안심하십시오,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습니다....” 이런 바울의 말을 듣고 다시 한번 희망을 품은 사람들은 음식을 먹으며  정신을 차리게 되었고 결국 한 섬에 걸려 살게 되었습니다.

엄청난 자연의 위력 앞에서는 아무리 위대한 인간의 능력이라 할지라도 하찮은 것입니다. 아무리 오랜 선원생활로 얻은 경험과 기술이라 할지라도 광풍 앞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자연을 다스리시는 전능하신 분의 능력 앞에 두려워 떨며 엎드릴 뿐입니다. 그분이 누구십니까? 천지를 창조하시고 우주만물을 다스리시는 분이 아니십니까? 바울은 그분을 전했습니다.

그분은 바로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유라굴로에 시달리며 파선되어 죽을 뻔하였던 사람들은 사도 바울로 인해 하나님을 만나 구원받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 바울을 그 배에 태움으로 인해 그리고 그 말에 순종함으로 인해 그들은 구원을 받았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여러분도 혹시 지금 인생의 풍랑가운데에서 지치고 상하여 건강을 잃고, 가정을 잃고, 재물을 잃고, 소망을 잃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여러분의 배에 하나님의 사람을 태우십시오! 회복될 것입니다. 찢기고 상하여 돛대가 부러져 갈 바를 알지 못하는 여러분의 배에 전능하신 주님을 태우시기 바랍니다. 구원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탄 배는... 단순히 물고기를 잡는 배가 아닙니다.
‘주님이 타신 배는... 사람을 낚는 배...’입니다.

● 본론  A. 우리는 인생의 바다를 항해하는 배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바다와 같습니다. 바다와 같다는 것은 바다가 끝없이 평온한 듯 잔잔하다가도 어느 순간 갑자기 광풍이 불어 산더미 같은 파도를 일으키며 모든 것을 덮어 버리는 것처럼 우리인생도 그렇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풍파가 얼마나 심합니까! 나로 인하여 혹은 내 가족들로 인하여 혹은 친구들과 사업 등의 예기치 못한 일들로 인하여 고통 받고 괴로워 우는 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며칠 전 우리는 뉴스에서 참으로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습니다. 1년 동안 치매에 걸린 아내를 돌보던 92세의 노인이 93세의 아내를 목 졸라 죽이고 자신도 목을 매 자살했다는 소식입니다. 이 노인부부는 자녀들이 서로 모시겠다고 하였으나 자식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겠다고 하며 따로 살면서 자식들이 주는 생활비도 마다하고 폐지와 고물을 주우며 살았다고 합니다. 그러다 거동이 불편하여지자 3년 전 부터 막내아들집으로 옮겨 왔는데, 지난해 가을 아내가 치매로 팔다리를 쓰지 못하자 남편은 요쿠르트와 음식을 떠먹이고 대소변까지 치워내며 아내 곁을 떠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노인은 거센 인생의 풍랑을 이기지 못하고 그만 끔직한 일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이 노인이 7남매에게 남긴 유서입니다. “78년이나 함께 산 아내를 죽이는 독한 남편이 됐다. 살만큼 살았고 둘이서 같이 세상을 떠나니 너무 슬퍼하지 마라. 250만원은 상을 치르는데 써라” 노인은 장례비마저도 자식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그동안 폐지를 팔아 차곡 차곡 모아왔던 것입니다. 자녀들을 생각해보십시오! 이 얼마나 엄청난 인생의 풍파입니까? 모시고 살던 막내 아들내외를 생각해보십시오! 그 가슴에 얼마나 큰 못이 박혔겠습니까?

이처럼 예기치 못한 일들로 괴로워하며 힘들어 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인생입니다. 내가 잘해도 주변상황들로 인해 어려움을 당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우리 인생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러한 인생 가운데 어떠한 존재입니까?

바람과 파도를 두려워 할 줄 알며 , 항해사의 키에만 순종하며 나아가는 배처럼, 우리도 인생의 풍랑을 두려워할 줄 알며, 항해사 되신 주님께 순종하며 하나님께 의지한 채 종착지를 향해 항해하는 배가 아니겠습니까?  때문에 예수님이 많은 사람들 중에 갈릴리바다에서 배를 타며 물고기를 잡던 어부 베드로를 먼저 부르신 것도 아마도 이러한 이유에서가 아닐까요?   

눅5:3절을 보니 주님은 베드로 자신을 먼저 택하신 것이 아니라 빈 배 가운데 베드로의 배를 택하시고 오르셨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주님은 베드로 자신뿐 아니라 베드로의 삶의 현장을 택하신 것입니다. 누구나 목회자가 되겠습니까? 주님은 내 자신뿐 아니라 내가 살고 있는 삶의 현장을 택하신다는 것입니다. 약사이시라면 약국이 나의 배가 되어 약국을 찾는 분들이 내가 전도하여 낚아야 할 대상일 것입니다. 과일가게를 하신다면 그 가게가 나의 배가 되어 과일가게를 찾는 손님들이 전도의 대상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주님이 타신 배 입니다. 바로 그곳에서 내 몸을 살찌게 하는 고기를 잡는 배가 아닌 영혼을 살찌우게 하는  사람을 낚는 배 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B. 우리 인생의 최종 종착지는 어디입니까?.......천국
출항하는 배들은 저마다 소망이 있습니다. 그것은 배에 고기를 가득채운 채 항구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항구에서는 갓 잡은 싱싱한 고기들을 비싼 값에 팔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 배들의 종착지인 항구는 이처럼 저마다 자신의 이익을 생각하며, 자신들의 이익을 셈 하는 곳입니다. 항구는 자신이 잡은 크고 귀한 생선들을 자랑할 수 있는 곳입니다. 사람들이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바다로 나아가 얻은 온갖 귀한 세상의 소유물들을 자랑할 수 있는 곳입니다.  그러나 인생의 항구는 어떻습니까?  인생의 바다를 항해하다가 돌아가는 우리인생의 종착지는 어떻습니까?  삶에 지치고 상하면서 평생을 무엇인가를 위해 애쓰다가, 그 무엇인가로 자신의 배를 가득채운 채 돌아가야 할 우리의 본향은 어디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나라 입니다. 천국 인 것입니다.

바로 그곳에 여러분은 무엇을 가득 싣고 가시렵니까? 억대의 연봉입니까? 수 많은 자격증입니까? 고액의 증권입니까? 잔고가 많은 통장입니까? 좋은 집입니까?  아니면 고액에 당첨된 로또복권입니까?

천국에서 고기가 필요하겠습니까? 아닙니다. 세상에서 얻은 많은 재산들을 주님 앞에선 자랑할 수 없습니다. 큰 권세와 명예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겠습니까? 물론 아닙니다. 우리가 나아갈 천국은 세상의 것들로 셈하는 곳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니 도리어 그것들은 짐이 될 수 있습니다. 세상에 있는 많은 소유물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인생에 미련을 갖게 합니다. 마지막 순간에도 그것들을 놓치 못해 죽음 앞에서 벌벌 떨게 합니다. 천국의 소망을 품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천국은 돈이 많은 사람을 기뻐하는 곳이 아닙니다. 높은 학력과 명예를 가진 사람을 기뻐하는 곳도 아닙니다. 물론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을 기뻐하는 곳도 아닙니다.

천국은 바로 한 영혼의 구원을 기뻐하는 곳입니다. 영혼 구원을 셈하는 곳입니다. 살전2:19절사도 바울의 말씀과 같이 주님 강림하실 때 우리가 전도함으로 구원한 영혼들이 바로 우리의 자랑이 될 것입니다. 주님을 모시고 항해한 이 세상에서 우리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낚았느냐 하는 것이 우리의 자랑이 될 것입니다.
주님이 타신 배는... 사람을 낚는 배...이기 때문입니다

C. 이런 인생의 바다에서 우리를 종착지로 인도하실 분은 과연 누구십니까?
게네사렛 호숫가에서 많은 사람들이 흰옷을 입은 한 사람을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갈수록 사람들이 몰려드는데, 그 옷 가에라도 손을 대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점점 앞으로 나아와 그 분은 뒤로 뒤로 밀려 결국 강가에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호숫가에 두 배가 있는 것을 보고는 그 중 한 배에 올랐습니다. 물가로 조금 띄기를 청한 후 배에 앉아 무리를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그 배의 주인인 시몬도 밤새 헛손질로 지친 몸을 억지로 가누며 그 말씀을 듣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말씀을 듣는 동안 시몬은 이상하게도 자신의 몸과 마음에 점점 새 힘이 솟아나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그 분을 바라보며 말씀을 듣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 뜨거운 감동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말씀을 들으며 말없이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 말씀을 듣고 땅을 치며 통곡하는 사람들, 말씀 가운데 서로 부등켜 안고 우는 사람들, 그리고 너무나도 평안한 모습으로 기뻐하는 사람들, 시몬은 그 분의 권세와 능력 앞에서 흥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분이 돌아서서 자신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그것은 참으로 황당한 주문이었습니다. 밤새도록 고기를 잡으려다가 한 마리도 못 잡고 낙심한 채 무거운 몸으로 그물을 씻던 그에겐 참으로 어이없는 주문이었습니다. 평생을 그물을 던져 고기를 잡았던 노련한 어부인 자신이 밤새 한 마리도 잡지 못한 그곳으로 나아가 다시 그물을 던지라니....그것도 그물한번 던져 본적이 없어 보이는 사람에게서 그런 소리를 들을 때 망설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 것입니다. 그러나 시몬은 이내 대답하였습니다.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왜입니까? 그분의 말씀 앞에서 변화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웬지 그분의 말씀에 믿음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순종의 결과는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말씀에 순종하였더니 밤새 한 마리도 잡히지 않던 그물에 고기가 가득 차서 그물이 찢어지고 있었습니다. 다급한 베드로는 다른 배에 있던 동무들을 손짓하여 불렀습니다. “빨리 와서 도와주시오! 고기가 많아 그물이 찢어지고 있소!” 고기를 끌어 올려 두 배에 채웠더니 두 배가 모두 잠길 정도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배를 타고 항해하는 사람들은 지도자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압니다. 훌륭한 지도자를 만나면 무서운 풍랑 속에서도 믿음을 갖고 인내하며 견딜 수 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가 만난 지도자가 누구입니까? 그분은 바로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이셨습니다. 주님은 온 갈릴리를 두루 다니시며 가르치시고, 천국복음을 전파하셨으며, 백성 중에 모든 병들과 약한 것들을 고치셨습니다. 고통에 걸린 자들, 귀신 들린 자들, 간질하는 자들, 중풍병자들, 각색 병자들이 나음을 입었습니다. 누구든지 주님의 능력을 믿고 그분의 옷 가에라도 손을 대기를 간구하고 손을 대는 자마다... 그 어떠한 질병이라 할지라도 나음을 얻었습니다.  바로 그 주님이 갈릴리 바다에서 베드로를 인도하셨고, 오늘 인생의 험한 바다에서 우리를 인도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D. 사람을 낚는 배가 되어야 합니다 → 전도의 사명
지난 8월7일자 한 신문에는 참으로 흐뭇한 기사가 한편 실렸습니다. 그것은 지난 1985년 11월 침몰직전의 목선에서 사투를 벌이던 베트남의 보트피플 96명을 구한 한 참치잡이 선장에 대한 기사였습니다. 그때 구원을 받은 사람들이 그를 美의회 관계자 등에 추천하여 유엔의 최고상인 난센상(Nansen Award) 후보자로 추천하였다는 기사입니다.

그 주인공은 바로 경남 통영에서 우렁이 양식업을 하는 전세용(64)씨입니다. 그는 1985년 싱가포르를 출발해 부산으로 향하던 참치잡이 원양어선 ‘광명 87호’의 선장이었는데, 남중국해를 항해하다가 곧 부서질 듯한 목선에 매달려 “살려달라”고 외치는 난민들을 발견하고는 망설임 없이 선원들과 합심해 구조에 나서서 이내 물속에 빠져 죽어가던 97명의 귀한 생명을 구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일로 인해 큰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이들을 부산으로 데리고 들어온 그는 정치적 망명을 주선한 혐의로 정보기관 등으로부터 숱한 조사를 받아야 했고, 소속사인 K해운에서도 일자리를 잃어 2년 반을 실업자로 보내야 했다고 합니다.  그 후 19년의 세월이 흘러 당시 난민 대표 피터 응엔씨 부부는 그를 간절히 찾았으며, 수소문 끝에 그를 만나 감격의 포옹을 하며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내 삶은 당신의 덕택이었으며, 눈을 감을 때까지 당신을 못 잊을 것입니다.”  자신의 생명을 구해준 사람에 대한 감사가 이러할 찐대, 전도함으로 그 영혼을 구원해 준다면 그 감사가 어떠하겠습니까? 

그냥 지나쳐도 될 것을 자신의 희생을 감수하면서 죽어가는 사람을 살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힘든 조사를 받으며 또 그로인해 직장을 잃고 2년 반을 실업자로 지내면서도 그는 결코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해 후회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누구하나 알아주지 않고 잊혀진 채 19년의 세월을 힘들게 보낸 그였지만, 자신의 판단으로 인해 구한 96명의 생명들을 다시 만난 전씨는 “물에서 발버둥치는 강아지라도 건질 판인데 귀중한 생명을 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 아니냐?” 고 하며 자신은 인간으로서 당연한 일을 한 것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생명을 구하는 데에도 한 사람의 이러한 희생이 필요했습니다. 하물며 영혼을 구하는 일은 어떻겠습니까? 영생을 얻고 기뻐하면서 여러분께 감사할 영혼들을 생각하십시오! 양 아흔 아홉 마리를 놔두고 한 마리를 찾기까지 한 영혼을 찾으시는 주님께서 기뻐하실 일을 생각하면서 여러분의 배에 가득한 고기를 버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빈자리를 채울 영혼을 구하는 일에 여러분의 마음과 시간을 드리십시오! 여러분의 배에 타고 계신 주님께서 고기가 아닌 사람을 낚는 배가 되기를 간절히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귀한 양곡들을 싣고, 양곡만 실었겠습니까? 각종 귀한 보물을 싣고 로마로 향하던 사람들이었지만 거센 풍랑 앞에서 그것들이 귀하게 보였겠습니까? 양곡이 목숨보다 귀하겠습니까? 아니면 보물이 하나 뿐인 생명보다 귀하겠습니까? 그들은 모든 짐을 다 내어 버렸습니다. 배를 운행케 하는 기구도 다 내어 버렸습니다. 죽음 앞에서 그것들이 아무것도 아님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의 항구에서 그것들은 참으로 아무것도 아닙니다.

90평생을 같이 살던 아내를 죽이고 자신도 스스로 죽음의 길을 택한 이 노인의 잘못은 과연 누구의 책임입니까? 자녀들입니까? 복지시설을 더욱 확충하여 돌보지 못한 국가의 책임입니까? 아닙니다.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지 못한 성도들의 책임입니다. 영혼전도에 더욱 관심을 갖지 못한 교회의 책임입니다. 귀한 두 영혼을 전도치 못한 바로 우리의 책임인 것입니다. 그들로 여러분의 배에 태우십시오! 그래서 주님을 만나게 하십시오! 그들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게 도와주십시오! 우리는 교회적으로 실시하던 태신자운동인 153운동을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계속해야 합니다. 우리 동안교회는 주님이 타고 계시며, 주님이 타신 배는... 사람을 낚는 배...이기 때문입니다

● 결론

물고기의 기적을 목도한 베드로는 예수의 무릎아래 엎드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입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왜입니까? 세상죄악으로 물든 자신의 배는 주님을 모실 수 없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기억하십니까? 그런 사실을 알고도 베드로의 배를 택하신 분이 누구십니까? 바로 주님이십니다. 부족한 베드로의 배를 택하사 그 배에 타시고, 세상 고기가 아닌 사람을 낚는 배로 만들기를 원하셨던 분은 바로 우리 주님이십니다.

그 주님께서 오늘 여러분의 배를 택하시고 오르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그 배를 고기를 낚는 배가 아닌 죽어가는 한 영혼을 살리는 ‘사람을 낚는 배’로 만들기를 원하십니다. 무엇을 버리시렵니까? 여러분 모두 하시던 일을 버려두고 신학교에 가라는 소리가 아닙니다. 단지 세상 고기로 가득 차 더 이상 다른 것을 실을 수 없는 여러분의 배에 작은 공간을 허락하시면 됩니다. 바로 주님이 여러분을 통해 구원하기를 원하시는 영혼을 태울 수 있는 조그마한 공간만 허락하시면 되는 것입니다. 그 공간을 갖고 채우기 위해선 전도하는 일에 여러분의 시간을 드려야 합니다. 세상에 관심을 두고 바라보던 여러분의 눈길이 이제는 주님의 눈이 되어야 합니다. 가득 찬 고기에만 관심을 두던 여러분의 마음이 이제는 주님의 마음이 되어 복음을 듣지 못한 채 죽어 가는 영혼들의 아픔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결실의 계절인 가을입니다. 우리 인생도 곧 결실의 계절을 맞이할 터인데, 주님 앞에서 평생을 모아온 결실물을 드려야 할터인데 과연 무엇을 드리시렵니까?

많은 찬송시를 지은 매리 앤 톰슨 여사의 아들이 장티푸스에 걸려 생사를 헤매고 있을 때입니다. 그녀는 고열로 시달리며 언제 죽을지 모르는 아들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보면서도 한편으로는 하나님께 감사한 마음을 가졌다고 합니다. 참으로 원하지는 않지만 혹시라도 주님이 아들을 부르신다면 돌아갈 영원한 천국이 있고 곧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소망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 그녀의 마음속에 흐느끼는 주님의 탄식이 들려왔다고 합니다.

“너의 아들은 천국에 소망이 있지만, 복음을 들어보지도 못한 다른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계속되는 주님의 탄식을 들으면서 3년 만에 작시한 것이 우리가 잘 아는 찬송가 255장 [너 시온아 이 소식 전파하라] 입니다. 그 2,4절의 가사는 이렇습니다. 죄 사슬에 얽매어 있는 사람 하도 많아 다 셀 수 없구나,
이 형제들 다 건져내기 위해 주 예수 복음 널리 알리자! /네 자녀도 이 복음 전파하라 늘 기도와 온 재물 드려서, 이 복음을 힘써 전파하면 영광의 상을 네가 받으리

나만이 아닙니다. 자녀들까지도 입니다. 또 배안에 있던 다른 모든 것들을 포기하고 복음전파를 위해 희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 배에 타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쾌락을 좇는 생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좇는 삶을 살도록 해야 합니다. 고기가 아닌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이 타신 배는... 사람을 낚는 배... 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삶의 현장이  사람을 낚는 배 로 변화되기를 축원합니다. 천국을 향해 나아가는 우리의 배에 한 영혼을 구원하여 얻은 금 면류관들로 가득 차 주님께 칭찬 듣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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