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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거룩하신 하나님 (사 6:1~5, 요 8:12~18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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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강석공 목사

유다 왕 웃시야는 반 세기 이상 왕위에 앉아서 나라를 크게 강성하게 만든 아주 유능한 지도자였습니다. 때문에 웃시야 왕이 죽자 백성들은 큰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선지자 이사야가 자신이 소명 받은 사건과 웃시야 왕의 죽음을 시기적으로 일치시킨 것을 볼 때 그도 또한 지도자를 잃은 나라의 장래를 크게 염려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이사야는 원래 웃시야 왕의 서기관이었습니다(대하 26:22 참고). 그가 자기 스스로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들 중에 거주한다고 외친 것을 보면 그도 웃시야 왕의 권세를 많이 의지하고 지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어쨌든 웃시야 왕이 죽었기 때문에 그는 더 이상 웃시야 왕의 서기관 직을 수행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웃시야 왕의 서기관 직은 잃었지만 그는 오히려 더 중요한 직책을 맡게 되었습니다. 그는 만군의 주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귀중한 직책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가 웃시야 왕을 의지하고 지낼 동안에는 다만 땅의 것밖에 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웃시야 왕이 죽고 없어지자 그 동안 그가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세계가 눈 앞에 활짝 펼쳐졌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로 세워진 유다 나라가 무너지기 시작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울러 지금까지 듣지 못했던 소외된 자들의 울부짖는 소리도 들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의 심정은 마치 절망의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는 것과 같이 비참했을 것입니다.

  실의에 빠진 그가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의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했습니다. 하나님의 보좌는 높이 들린 보좌였습니다. 그 하나님을 모시고 섰는 스랍들이 소리를 높여 노래하고 있었습니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사 6:3) 스랍들의 노래 소리와 함께 성전 문지방의 터가 요동했습니다. 또한 성전에 연기가 충만했습니다.

  그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모습을 보고 이사야는 과연 어떤 반응을 나타냈습니까? 놀란 그의 반응은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사 6:5 상반절) 높이 들린 보좌 위에 앉으신 하나님을 보고, 그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노래하는 스랍들의 소리를 듣고, 성전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는 것을 느낀 그는 엄청난 영혼의 충격을 경험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가 왜 자신이 망하게 되었다고 외쳤을까요? 그 까닭은 부정한 사람인 그가 거룩하신 하나님을 보았기 때문에 자신은 망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고 외쳤던 것입니다.

  그렇게 부르짖는 이사야에게 그 스랍들 중 하나가 부젓가락으로 제단에서 집은 핀 숯을 가지고 날아와서 그의 입술에 대며 참으로 놀라운 사실을 선포했습니다.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사 6:7) 입은 말씀을 전하는 사자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게 사용하는 신체 기관입니다. 때문에 이 장면은 그의 죄가 사함을 받는 사건임과 동시에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할 자격을 얻는 사건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왔습니다.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가 즉시 대답했습니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선지자가 도대체 무엇입니까? 거룩하신 하나님의 일꾼입니다. 때문에 옛 사람이 죽고 다시 태어나야 비로소 선지자, 즉 거룩하신 하나님의 일꾼이 될 수 있습니다.

  이 땅 위에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먼저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를 인정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와 반대로 결코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성경의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을 볼 것 같으면 그 두 부류의 사람들을 아주 잘 소개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때가 되면 뱀, 곧 마귀 사탄의 준동이 극에 달하게 됩니다. 때문에 믿음을 지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음을 지키는 순결한 자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 있을 것이라고 성경이 전하고 있지 않습니까?(요한계시록 14:1~5 참고) 바로 그들의 모습이 요한계시록 15장에 그려져 있습니다.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서서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온갖 협박과 공갈, 그리고 온갖 유혹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믿음을 지킨 자들입니다. 그들은 짐승을 찬양하는 대신 모세와 어린 양의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그들은 전능하시고 의로우시며 참되신 만국의 왕을 찬양하고 오직 그 왕께 경배합니다.

  이어지는 요한계시록 16장에서 우리는 마지막 재앙인 일곱 대접 재앙을 볼 수 있습니다. 천사가 첫째 대접을 땅에 쏟자 짐승을 섬기던 자들에게 악하고 독한 종기가 납니다. 둘째 대접을 쏟자 바다가 죽은 자의 피 같이 되어 바다 가운데 있는 모든 생물이 죽습니다. 셋째 대접을 쏟자 강물 근원이 피가 됩니다. 넷째 대접을 해에 쏟자 해가 권세를 받아 불로 사람들을 태웁니다. 다섯째 대접을 짐승의 왕좌에 쏟자 그 나라가 곧 어두워지며 사람들이 아파서 자기 혀를 깨뭅니다. 여섯째 대접을 큰 강 유브라데에 쏟자 강물이 말라서 동방에서 오는 왕들의 길이 예비됩니다. 일곱째 대접을 공중에 쏟자 큰 지진이 있어 큰 성이 세 갈래로 갈라지고 만국의 성들도 무너지고 또 각 섬도 없어지고 산악도 사라집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모든 무서운 재앙과 심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회개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 봉독한 요한복음 8장 12절 이하의 말씀은 자신을 세상의 빛이라고 주장하시는 예수님과 바리새인들과의 논쟁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서 주장하시는 것들이 증거가 불충분하다고 공격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증인 두 사람의 증언만 있으면 법정에서 증거로 채택되지 않느냐고 반문하셨습니다. 예수님 자신의 증거가 있고 또한 하나님 아버지께서 증거하고 계시기 때문에 자신의 증거가 참되다고 주장하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확신과 참된 용기가 없으면 결코 하실 수 없는 말씀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이사야는 자신의 죄를 자복하고 옛 사람의 죽음을 선포했습니다. 그러나 목이 곧은 바리새인들은 끝까지 반항했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빛 앞에서 계속해서 그들은 자신을 고집했습니다. 온 세상의 빛으로 오신 예수님에 대해서 반항하면 할수록 더욱 깊은 어두움과 어지러움 속으로 빠져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을 그토록 고집하는 바리새인들이야말로 그 무서운 일곱 대접 재앙을 당하면서도 전혀 회개하려고 하지 않는 악한 무리들과 흡사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빛 앞에서 우리의 더럽고 추한 모습은 여지없이 폭로되게 마련입니다. 거룩한 하나님 앞에서 살 수 있는 길은 우리의 옛 사람의 불결함과 거짓됨을 인정하며 그 모든 죄를 솔직히 고백하고 겸손히 용서를 구하는 길뿐입니다. 다시 말해서 회개하는 길밖에 결코 다른 살 길은 없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생명의 빛이신 주님 앞에 모든 죄를 고백하지 않을 것 같으면 우리는 결과적으로 하나님께 반항하는 셈이 되는 것이고 하나님의 아들을 또 다시 십자가에 못박는 무서운 죄를 저지르는 것과 같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종교개혁 기념 주일입니다. 1517년 10월 31일 부패한 교회의 개혁과 갱신을 요구하며 깃발을 높이 들었던 마틴 루터와 개혁자들을 기리는 날입니다. 오늘 특히 우리가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할 것은 거룩한 주님의 몸된 교회도 썩을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때문에 교회도 끊임없이 잘못된 것을 고치고 바로잡아 나가야 합니다.

  과연 이 땅 위에는 두 가지 부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첫째,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를 인정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둘째, 그와 정반대로 결코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과연 오늘 우리는 어느 편에 속했습니까? 먼저 거룩하신 하나님의 앞에서 자신을 제대로 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 자신을 고집하지 말고 우리의 모든 죄를 솔직히 고백하고 겸손히 회개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죄를 회개할 수 있는 것도 은혜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그 옛날 선지자 이사야처럼 이 마지막 때에 의와 평강이 넘치는 하나님 나라 건설에 귀하게 쓰임받는 일꾼들이 다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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