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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소문 난 교회 ② (살전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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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박재신 목사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우리가 너희 무리를 인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 너희를 말함은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쉬지 않고 기억함이니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
  이는 우리 복음이 말로만 너희에게 이른 것이 아니라 오직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이니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떠한 사람이 된 것은 너희 아는 바와 같으니라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도를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는지라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지므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

  신약 성경에서 소문난 교회가 두 곳이 있다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첫째는 안디옥 교회이고 둘째는 데살로니가 교회 입니다.
  (행11:22) 예루살렘 교회가 이 사람들의 소문을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까지 보내니 ......
  (살전1:8)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지므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
  지난 주에 안디옥 교회에 관한 말씀을 살펴보았습니다.
  ① 안디옥 교회는 이방인 선교에 관한 성령의 소리를 들을 줄 아는 교회였습니다. 
  ② 신약교회 최초로 선교사를 파송하고 지원하는 교회였습니다.
  ③ 각 계층의 성도들의 마음이 복음 안에서 온전히 일치를 이룬 교회였습니다.
  성령의 소리를 듣고 복음 안에서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이방선교를 감당했던 안디옥 교회는 당연히 소문난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안디옥 교회는 부흥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안디옥 교회 성도들을 향하여 “그리스도인” 들이라고 일컬었습니다.
(행 11:26)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소문이 좋아야 부흥합니다.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를 수 있게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란 그리스도의 사람들이라는 말입니다. 그리스도를 닮았다는 것입니다. 이런 소리를 듣게 합시다. 그러면 교회는 부흥합니다.
  소문이 좋은 안디옥 교회에 주님의 손이 함께하였습니다. 그래서 행 11:21절에 보면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다한 사람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라고 했습니다.
  이 수다한 사람들이 행 11:24절을 보면 큰 무리로 부흥하게 되었습니다.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더라”
  소문이 잘나면 수다한 사람들이 몰려와서 큰 무리로 부흥합니다.

  오늘 우리교회를 이런 교회로 만듭시다.
  어제 대학병원에 심방을 갔습니다. 주차장에 차를 주차시키려고 하는데 남자한사람과 여자 둘이 내 차 앞을 지나치려다가 한 여자 분이 저를 유심히 처다 보는 것이었습니다. 어디서 많이 본 것 같기도 하고 해서 나도 바라보고 있는데 내게로 다가오더니 “저 혹시.....  옛날에 덕진교회 계시던.....  ”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서야 머리에 불현듯 생각이 났습니다.
  “아 그래요. 이름이 소...... ”
  그 남편 이름이 소씨라는 것 까지는 생각이 났는데 이름이 생각이 나지않아 소.... 하고 말끝을 흐리자 그 여자 분이 “그래요 맞아요” 라고 기뻐했습니다.
  20년 전에 덕진교회 전도사로 있을 때 청년이었는데 둘이 결혼해서 직장을 따라 교회를 떠났던 소상균형제와 박영란 자매였습니다.
  꼭 20년 만에 만남이어서 반가웠습니다.
  지금은 대전에서 한밭대학교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고 합니다.
  잠깐 옛날의 기억을 더듬어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함께 있던 박 영란 자매의 동생이라는 분이 말을 했습니다. 그 자매는 전북대 직원이었습니다.
  그는 내가 양정교회 목사라는 소리를 듣고 언니보다 자기가 더 반가워했습니다. 말로 양정교회에 대한 소문을 많이 들었는데 여기서 목사님을 보니 너무 반갑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소리를 들으면서 우리 교회가 소문이 나긴 났다보다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무엇이 뜨거운지 “뜨겁고 은혜스러운 교회”라고 사람들이 말하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교회를 축복하시는 것인 줄 믿습니다. 소문나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속으로 감사했습니다.
  저는 우리교회가 지금보다 더 좋은 소문이 나서 전주와 전국으로 퍼저 나가기를 바라는 맘으로 이 말씀을 나눕니다. 안디옥 교회의 아름다운 모습이 우리교회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오늘은 신약 성경에서 두 번째로 소문난 교회로 소개되고 있는 데살로니가 교회에 관하여 살펴보고자 합니다.
  살전1:8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지므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
  데살로니가 교회는 바울이 더 이상 말할 필요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소문난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지므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 라고 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데살로니가 교회는 어떤 교회이며 어떤 성도들이기에 각처에 소문이 났을 까요? 

  실천이 있는 믿음이 소문났습니다. 
  살전 1:5절에 보면 복음이 말로만 증거된 것이 아니라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증거되었다고 햇습니다.
“이는 우리 복음이 말로만 너희에게 이른 것이 아니라 오직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이니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떠한 사람이 된 것은 너희 아는 바와 같으니라”
  이것은 말뿐인 신앙이 아니라 말의 실천이 있는 신앙을 말하는 것입니다.
  믿음에는 실천이 있어야 소문이 납니다. 믿음에 따른 실천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덕(德)있는 믿음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이 말뿐이면 결코 믿음의 좋은 소문이 날 수 없습니다.
  말 뿐인 신앙이 아니고 실천적인 믿음이라는 것을 말합니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믿음은 말로만 증거하는 믿음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가진 믿음에 실천이 있었습니다.



  어느 신학자가 한국 교회를 통렬하게 비판하면서 쓴 글에 “한국의 복음주의 교회들이 갖고 있는 가장 치명적인 약점은 삶이 결여된 것이다” 라고 했습니다. 삶이 결여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기는 하지만 그 말씀대로 살지는 않는다는 말입니다.

  6·25 때 아이젠하워 장군이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그는 부산의 유엔군 참전용사들의 묘소를 참배할 계획이었습니다. 미군 당국은 당황했습니다. 말이 묘소이지 황량한 벌판이었기 때문입니다.
  때는 늦겨울이어서 잔디를 구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 당시 현대 상사의 정주영 사장이 그 소식을 듣고는 미8군 당국자를 찾아가 자신이 묘지에 풀이 나게 할 테니까 돈을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들은 급한 나머지 그에게 실비의 3배를 주기로 하고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그 길로 정주영 사장은 그 주위의 보리 밭을 모두 사들였습니다.
  때마침 보리 싹이 새파랗게 솟아오르고 있었으므로 그것을 파내어 묘지를 입혔습니다. 예정한 날 아이젠하워 장군은 유엔군 묘소를 참배하고 돌아갔습니다. 묘지마다 새파란 싹이 덮여 있었으니까 보기에는 좋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흘 뒤 묘지는 누렇게 변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보리에 뿌리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만 하고 행하지 않으면 결국은 그 영혼이 메말라 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어빙 젠슨이 쓴 '독자적 성경 공부'라는 책에 나오는 글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교회 밖에서 기다리던 한 남자가  문을 막 나오는 사람에게 "설교가 끝났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아니오, 말씀은 마치셨지만 아직 끝난  것은 아닙니다."라고 그 사람은 대답했습니다.
  교회에서 얻은 성경 지식은 우리 일상생활에 적용하지 않는 한 완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설교가 마쳐지면 끝났다고 생각하고 곧장 잊어버립니다. 그러나 설교는 마쳤어도 끝난 것이 아닙니다. 삶과 연결되고 생활 속에서 실천되어야 합니다.

  약 2:17절을 보면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고 했습니다.
  실천이 없는 믿음은 결국 죽은 믿음입니다. 죽은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서 살아있는 것처럼 생각하니 자신에게 속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야고보서 1:22절을 봅시다. “너희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라고 했습니다.

  실천이 있는 믿음이 되어야 좋은 소문이 퍼지게 되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세 가지 면에서 실천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3절에서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 그리고 소망의 인내입니다. ① 믿음에는 역사가 갖추어져야 덕이 된다. 그리고 ② 사랑에는 수고가 수반 되야 덕이 됩니다. ③ 소망에는 인내가 갖추어져야 덕이 됩니다. 이 세 가지 덕을 세우면 믿음의 좋은 소문이 나게 될 것입니다. 

  1) 믿음의 역사 
  믿음은 학술이나 구호가 아니라 믿음은 힘이요 생명이입니다. 힘 있는 자는 잠을 자도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꿈틀거립니다. 믿음이 있는 자는 그 열매를 보아 믿음을 알 수 있습니다. 주여 주여하는 자가 천국 가는 것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므로 간다고 했습니다.
  (마 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2) 사랑의 수고. 
  사랑에는 수고가 따라야 덕이 있는 믿음이 됩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는 기꺼이 자신의 수고를 아끼지 않습니다.
  성자 다미엔 27살에 나환자들만 사는 섬에 가서 사역을 했습니다. 우리나라의 소록도와 같은 곳입니다.
  어느 부활절에 기도하는데 음성이 들렸습니다. “너는 이 나환자들을 얼마나 사랑하느냐” 는 주님의 음성을 들은 것입니다. 그후 다미엔은 그들과 함께 자고 함께 식사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도 나병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그때 비로소 자신이 예수님과 나병환자들을 사랑하는 것이라는 증거를 얻었습니다.
  그는 죽기까지 1,200명의 나환자들의 시체를 장사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사랑의 수고는 억지도 피동도 아니고 자원해서 합니다.
  60년대에 예수병원 안과에 찾아와 “내 눈 좀 빼 주소” 라고 말하는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러자 안과 과장이 “아니 왜 산 사람이 눈을 뻬려 하십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교회 건축하다 중단 된 것 보고 가슴 아파 눈이라고 빼서 연보하려고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감동 받은 안과 과장은 안과 과장은 그 분에게 “당신의 눈을 사겠다” 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돈을 준 다음 “당신의 눈을 사서 당신에게 선물로 드립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건축한 교회가 전미동 하리교회입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교회에서 가까이에 있는 송천동 아름다운 교회 문사무엘 목사님의 부친의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면 눈이라도 뺄 수 있습니다.
  갈라디아 교인들이 그랬습니다. 갈 4:15절을 보면 “너희의 복이 지금 어디 있느냐 내가 너희에게 증거하노니 너희가 할 수만 있었더면 너희의 눈이라도 빼어 나를 주었으리라” 라고 고백하였습니다.

  3) 소망의 인내
  세 번째로 소망에는 인내가 따라야 덕이 있는 믿음이 됩니다.
  아무리 믿음이 좋아도 인내가 없으면 소용없습니다. 큰 소망에는 큰 인내가 필요합니다. 인내란 기다림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진정한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재림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구원과 상급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재림을 기다리는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소망이 있는 사람은 인내합니다.
  인내라는 말은 “후포 메네스” 라는 단어로 “말없이 참으라” 라는 뜻입니다.
  건물의 기둥이 말없이 참는 것처럼 인내해야 햡니다. 모범적 교회의 신자는 말없이 참고 일하는 사람입니다.
  일 많은 교회는 겁이 안 나도 말 많은 교회는 겁납니다. 말은 안하면 안할 수록 더욱 좋고 될수있으면 적게 해야 합니다. 잘보고 잘 듣게 귀와 눈은 두 개씩이지만 그러나 입은 하나입니다. 말을 적게 하라고 야고보 선생님은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적게 하라고 했습니다.
  (약 1:19)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거니와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말없이 묵묵히 사랑하고 참아 기다리는 신앙이 될 때 덕이 있는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말만 요란하고 변덕이 죽끊 듯이 끓는 것은 덕있는 성도의 모습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반듯이 소유해야 할것이  믿음 소망 사랑이라면 이것에 따른 덕을 세우는 믿음이 됩시다.

  우리 모두가 이런 실천적인 믿음을 가질 때 우리 교회는 소문날 것입니다.
  미국의 깁슨이라는 사람은 매우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거부가 됐습니다. 어느 날 경제인 모임에서 사람들이 깁 슨에게 물었습니다.
  "빈손으로 거부가 될 수 있는 비결이 무엇입니까?"
  사람들은 깁슨의 입에서 어떤 대답이 나올 것인지 궁금했습니다. 깁슨은 장내를 한번 살핀 후 말했습니다.
  내게는 세 가지 생활신조가 있습니다.
  첫째는 고생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둘째는 술을 마시지 않는다.
  셋째는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를 지키다보니 자연스럽게 재물이 모아진 것입니다
  청중은 매우 실망스런 표정으로 다시 물었습니다.
  "그거야 우리도 모두  아는 사실이지 않습니까" 그러자 깁슨이 웃으면서 대답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당신과 내가 다른 점은 당신들은 알고 있는 것을 실천하지 않았고 나는 그것을 실천했다는 것입니다."
  실천이 없는 지식은 무익합니다.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말보다 실천을 소중하게 여긴다는 점입니다. 실패한 사람들은 항상 실천보다는 핑계가 앞섭니다.
 
  교회 바로 옆에 있는 수퍼마켓 주인은,  최근 그 교회에 새로 부임한 목사님이 '설교를 너무 너무 잘한다'고 가게에 오는 손님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건 다니지 않는 사람이건 가리지 않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손님이 잡화점 주인에게 물었습니다.
  “이번 주일에는 그 목사님이 무슨 설교를 했습니까 ?”
  그러자 주인은 “글쎄요, 무슨 설교를 했는지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는데요” 하고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손님은 어이가 없었습니다. “아니 지금까지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는 말입니까 ? 그러면서 당신은 무슨 근거로 그 목사님의 설교를 그도록 칭찬하는 거죠?”
  그러자 빙그레 웃으며 주인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전에는 외상값을  제때 갚지 않는 걸 예사로 알더니만 목사님이 새로 오신 다음부터는 외상값을 아주 잘 갚지 뭐예요”'

  교회생활을 열심히 하고 말씀을 사모하고 기도생활에도 충실한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게 전부는 아닙니다. 생활의 작은 부분에서라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본을 보이며 믿음을 실천으로 행하는 생활이 더욱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납니다. 그래야 믿음의 좋은 소문이 퍼져나갑니다.
  우리교회가 좋은 소문이 나느냐 그렇지 않느냐 여러분들의 실천에 달려있습니다.
  “참빛 예수 빛으로 전하자” 이것은 구호를 위한 표어가 아닙니다. 우리 교회 교우들이 세상에서 어떤 방식으로 살 것인가 하는 것을 말하는 하나의 기준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듣고 깨닫고 감동받는 말씀들을 생활에서 실천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실천하는 믿음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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