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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인생을 허비하지 마십시오.(엡 5: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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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정근두 목사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구도자 여러분, 인생은 낭비하기엔 너무나 소중합니다. 어떻게 우리는 그 고귀한 삶을 낭비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 에베소서 5:15-17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자세히 주의하여”라는 단어에 주목하십시오.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주의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주의하여”라는 말의 반대는 무엇일까요? 무관심하다는 말 일 것입니다.

성경은 “지혜 없는 자 같이,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라”고 말합니다. 목적 없이 “표류하는 인생을 살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오히려 “주어진 모든 기회를 잘 붙잡아서 십분 활용하여 지혜롭게 살아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하시기를 원하는지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살아가는 삶이 가장 지혜로운 삶일 것입니다. 

정말 솔직하게 대답해 보십시오. 하나님이 여러분의 인생에서 여러분이 행하기를 기대하고 계신 것이 무엇인지 정말로 알기 원하십니까? 우리 중 대부분은 ‘그렇다’라고 대답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우리는 다음주부터 40일 동안 하나님이 우리들 삶에서 무엇을 행하기 원하는지 자세히 살펴보려고 합니다. 오늘은 예비적인 질문을 세 가지를 드리려고 합니다.

첫째는 하나님은 내 인생에서 무엇을 바라는가? 얼만큼 내가 하기를 바라는지 그 문제를 먼저 다루어 보겠습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삶 전체를 원하십니다. 성경은 우리가 이전에 즐기던 일들을 계속 하면서 신앙생활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곳은 한 곳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전부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10%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50%를 바라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은 99%를 원하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원하십니다.

로마서 6:13을 보십시오.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이 구절은 우리가 온전히 그리고 온 몸으로 헌신하기를 말하고 있습니다. 바로 우리의 전부를 드리도록 요구하는 말씀입니다.

루이스는 ꡒ기독교가 될 수 없는 유일한 한 가지는 바로 적당히 중요한 것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ꡓ라고 말했습니다. 기독교는 적당히 중요한 것이 될 수 없습니다. 전부가 아니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분의 말이 진실이라면 우리의 남은 인생 전체를 결정지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분의 말이 진실이 아니라면 우리는 당장 모든 것을 다 때려치우고 돌아가서 여러분이 하고 싶은 대로 아무렇게나 살아가도 좋습니다.

아주 많은 사람들은 중간 지점에서 바라보기 좋아합니다. “하나님이 내게 뭘 원하시는지 모르겠어.”라고 말합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적당히 중간 입장에 서 있습니다. ꡒ시간이 나면 신앙생활 열심히 할게요ꡓ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마치 ‘신앙생활’을 ‘인생이란 피자’의 한 조각쯤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사회생활, 직장생활, 가정생활 등등의 여러 조각 중에 하나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은 인생이라는 피자 한판을 원하시는 것이지 한 조각을 바라시는 분은 아닙니다. 1주일에 이레를 다 하나님을 위해 살기를 바라시지 하루를 드리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24시간 가운데서 QT하는 30분을 하나님이 바라시는 것이 아니라 숨 쉬는 모든 순간을, 깨어있는 시간과 잠자는 시간 전부를 하나님께서는 바라고 있습니다.  “하나님, 제 인생의 10%를 드릴게요.”라고 말하는 것은 그분께 어울릴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전부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여기에서도, “다하고(whole being)”라는 말이 나옵니다.

신약성경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NIV)

겸하여 섬겨서는 안 된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섬길 수가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의 최고 우선순위에 두 가지를 함께 둘 수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나님과 재물만이겠습니까? 돈 말고도 우리 삶에 있어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는 것들이 많습니다. 우리가 하는 일이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 할 수도 있고, 오락, 스포츠, 취미 같은 것이 하나님을 밀어내고, 삶의 중심에 자리를 잡을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친구들이 그 자리를 차지할 수도 있습니다. 학업이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나는 전부를 원한다. 나는 너의 인생 전체를 원한다.”고 말씀하시면서 하나님을 다른 어떤 것과 함께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제 솔직하게 대답해 보십시오. 여러분은 각자의 삶에서 어디에 우선  순위를 두고 있습니까? 직업인으로서 성공입니까? 가족 부양입니까? 은퇴 후의 생활 보장을 위한 투자입니까? 좋은 건강입니까? 이 모든 것은 중요하지만 다만, 그것들이 우리 삶의 최우선이 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나 외에 다른 신이 네게 있게 말찌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 외에 최우선에 두는 모든 것은 우상이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 거리를 걷고 있을 때였습니다. 한 남자가 예수님께 걸어왔고, 예수님은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남자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예, 저는 주님을 따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주님, 우선 제가 잠시 집에 가서 처리해야 할 일을 좀 처리하고 다시 오겠습니다.”

이 남자의 대답에서 한 부분을 주목해 보십시오. ‘주님, 우선 제가’라는 부분입니다. 그것은 잘 생각해 보면 모순입니다. ‘주님’이라고 부르면 그분이 우리 삶에 대해서 최후의 명령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 제가요, 우선, 일단은, 먼저”이런 말을 함께 사용할 수 없습니다. 주님이라고 불렀으면 그분이 말씀 하신대로 순종해야 됩니다. 즉각적인 순종, 그것이 그분을 주님으로서 예우하는 것입니다. ‘제가 우선은요...’라고 말하는 순간, 불렀던 주님이라는 사실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인생에서 누가 주님이 될지를 선택해야 합니다. 여러분 자신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입니까? 하나님이 먼저입니까 여러분 자신이 먼저입니까? 어느 부분에서는 “내가 먼저”라고 하나님께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소위 믿음이 좋다고 하는 신자들 가운데서도 이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 저 정말 주님을 위해서 살게요. 그런데요, 제가 일단 결혼할 사람부터 찾겠습니다”, “하나님, 주님을 위해 살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일단 아이들부터 키워서 독립시키고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나님 저는 정말 하나님을 위해 뜨겁게 살 준비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일단 제가 경제적으로 독립을 해야겠어요. 우선 밀린 집세부터 갚고서 열심히 섬길게요. 일단 취업을 하구요, 일단 애들 대학 학비를 마련하고 나서”라고 말합니다.

여러분의 삶에서 하나님이 최우선이 아니라면 무언가 잘못되어 있습니다. 누가복음 14장에서 한 예수님의 비유를 기억하십니까? 한 왕이 아주 큰 잔치를 열고서 밖으로 나가서 모든 사람들을 이 근사한 잔치에 초청했습니다.

그런데 초대받은 사람들이 모두 참석할 수 없다는 말을 하면서 변명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등장하는 사람이 이렇게 말합니다. ‘제가 밭을 한 뙈기 샀는데, 가서 좀 살펴볼 일이 있습니다. 죄송하지만 못 가겠습니다’다음 사람은 ‘황소 열 마리를 샀는데, 지금 몰고 나가는 참이었어요. 그래서 부득이 못 가겠습니다’ 또 다른 사람은 ‘전 방금 결혼했어요. 그래서 잔치에 갈 수가 없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한 사람은 자신의 부로 인해서 참석을 못 하겠다는 것입니다. 잔치에 참석하고 나서 밭을 둘러봐도 밭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열 마리 소를 운행해 보는 것이 그렇게 꼭 앞에 두어야 될 일은 아닐 것입니다. 잔치 참석하고 와서도 예복 벗어놓고 얼마든지 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결혼을 갓 했다고 잔치에 못갈 이유가 있습니까? 두 사람이 동부인해서 가면 되죠. 사람들은 이렇게 주님의 초대에 대해서 변명을 하기를 좋아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변명을 주로 하고 있습니까? 이 시간 저는 우리 인생에 있어 중요한 비밀을 하나 말씀드리겠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우리의 인생에 최우선으로 두면, 하나님께서 다른 모든 것을 돌보아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최우선으로 여기면 그분이 우리의 삶을 우선적으로 보장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잠언 3:6) 세상에 성공하고 싶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성경이 말하는 성공의 비결에 대해서 귀담아 듣지를 않습니다. 인생에서 하나님을 최우선으로 여겨라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최우선으로 보살펴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최우선으로 두면, 하나님이 너의 노력에 아름다운 관을 씌워주실 것이다.”라고 약속합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인생에서 제일 먼저 던져야 할 질문은, 하나님께서 내게 무엇을 원하시는가? 입니다. 하나님은 바로 우리의 전부를 원하십니다. 기억하십시오. 세상과 하나님의 중간 지점에 서서 양쪽에 발을 걸치고 있으면 우리는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두 번째 예비적인 질문이 있습니다. 어떤 대가를 지불해야 하나?

인생을 낭비하지 않으려면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할까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바라시는 모든 것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의 모든 잠재력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어떤 것이 필요할까요?

대답은 단순합니다. 요즈음 사람들에게는 아주 인기 없는 단어 중 하나입니다. 그것은 바로 “훈련”입니다. 전 교인 40일 훈련, 훈련이라는 단어입니다. 우리는 훈련받지 않고서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제자와 훈련, 이 두 말은 서로 깊은 연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훈련 없이는 그 누구도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디모데전서 4:7은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훈련(연습)하라”고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훈련이란 무엇입니까? 훈련은 이후에 더 나은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서 지금의 어려움을 직면하여 싸우는 것입니다. 훈련을 위해서는 지금의 만족을 잠시 뒤로 미루어 두어야 합니다.

잘 훈련된 직업인을 보십시오. 그들은 하루를 계획에 따라 움직입니다. 일정을 정하고 약속 시간을 철저히 지킵니다. 또 우리 중 어떤 이들은 신체적인 훈련을 잘한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하루도 운동을 거르지 않습니다.

우리 중 어떤 이들은 좋아하는 텔레비전 프로를 절대 놓치지 않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들 중 대부분은 식사를 거르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부분에서 잘 훈련되어 있습니까? 일반적으로 훈련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부분에서 우리는 훈련을 잘 받을 수가 있습니다.

만약 절대로 식사를 거르지 않는 것처럼 아침에 묵상하는 시간을 거르지 않으면 우리 신앙생활이 어떻게 변할까요? 회사에 출근하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 잘 할 수 있으면 우리의 삶이 어떻게 변할 수 있을까요? 절대 놓치지 않고 보는 텔레비전 프로처럼, 주일날 예배드리는 일을 소중하게 생각한다면 우리의 신앙이 어떻게 변할 수 있을까요?

훈련의 의미를 가진 또 다른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습관(habits)”입니다. 습관은 훈련의 결과로 온 것입니다. 여러분이 습관적으로 하는 일이 무엇인지 말씀해 보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이 어떤 분인지를 말해 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이 습관적으로 진실을 말한다면, 여러분의 인격은 고결(integrity)할 것입니다. 습관적으로 배우자에게 아주 충실하다면, 여러분은 아주 고상한 인품을 가진 사람입니다.

우리에는 무의식적으로 계속해서 반복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습관이 되면 그것은 삶의 일부가 되고, 삶 전체가 그 습관으로 다듬어지고 통제되고 훈련됩니다. 이처럼 우리가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은 습관을 바꾸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이 변화하기 원하는 분들은 신앙 습관을 바꾸어 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좋은 습관은 아주 충실한 충복과 같지만 나쁜 습관은 우리를 얼마나 못살게 괴롭히는지 모릅니다. 게으름이라는 습관도 그렇고, 더러운 말 하는 습관도 그렇고 잘못된 습관은 우리를 완전히 난폭한 주인처럼 달려들게 되어있습니다. 좋은 습관은 우리를 잘 섬기는 충복과 같습니다.

이제 비전성취를 위한 전교인 40일 훈련기간에 목적이 이끄는 삶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살필 것입니다. 그것들은 우리의 영적인 습관들을 새롭게 개발시켜 줄 것입니다.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고 강조합니다. 마치 운동을 통해 육체를 단련하듯 경건의 훈련을 통해서 영적상태를 건강하게 만들어 가라는 것입니다.

훈련에는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하나는 버리는 훈련입니다. 말 그대도 버리는 것입니다. 일단 무엇을 버리지 않고서는 새로운 것을 잡을 수가 없습니다. 히브리서 12:1은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라고 말합니다.

두 개의 단어에 주목하십시오.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우리가 던져버릴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이 되기 위해서 멀리해야 할 두 가지입니다. 이 두 가지는 우리의 삶에서 잠재력을 약화시키고 인생을 낭비하게 합니다.

그렇다면 죄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이것은 하나님과의 약속을 어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연초에 ‘올해는 이렇게 신앙생활 하겠다’고 결심했으면 그 결심을 소중히 여겨야 됩니다. 하나님과 약속한 것이 약속한 하나님이 귀하신분 같으면 여러분은 그 약속을 소중히 여겨야 됩니다. 존귀하신 분과 약속하고 나면 그렇게 잊어버리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얼마만큼 귀한 분으로 여겨야 하는 것은 하나님과 한 약속을 어떻게 지키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자신을 속여서는 안됩니다. 약속을 식은 죽먹듯이 깨트려 버리면서도 ‘나는 하나님을 소중하게 생각해’천만의 말씀입니다. 여러분이 울산시장 하고 만날 약속을 하면, 대통령과 만날 약속을 하면 어떻게 지켜요? 형편되면 나오고 30분씩 늦게 나오고 그렇게 합니까? 하나님앞에 나와서 예배하는 시간을 그것도 열두시에 모이는데도 또 늦는 것은 심각한 반성이 필요한 일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소중한 분이라고요? 소중하게 대우 하셔야 됩니다. 죄는 하나님과의 약속을 깨는 행위입니다. “무거운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완전히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필요한 것도 아닙니다. 그것들은 벗어버려야 합니다. 3박4일 지리산 종주를 하면서 배운 것은 배낭 속의 짐은 최대한 가벼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갖다 와서 가져갔던 짐들을 저울을 내놓고 달아봤어요. 조그마한 맥가이버 칼 달아보니까 60g 나가더라고요. 집에 있는 다른 칼 찾아보니까 30g입니다. 제가 다음에는 무엇 들고 가겠습니까? 아시죠? 요즘 제가 카페오레에 맛을 들여서 등산하면서 정상에서 한잔 마시기를 원해서 그 도구들을 다 지고 갔지요. 사흘 동안 내가 결심 한 게 있습니다. ‘다음에 종주할 때는 절대 안 가져 간다’ 꼭 먹고 싶으면 인스턴트로 대체해야지 그 무거운 것을 지고 3박4일 가야 될 일은 없다는 것입니다. 

버려야 할 “무거운 것”은 아주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인간관계가 될 수도 있고 기대일 수도 있고 어떤 활동일 수도 있고 모임일 수도 있습니다. 잊지 않고 가지고 있는 고집스런 기억일 수도 있고 두려움일 수도 있습니다. 정말 오만가지의 “무거운 것”이 우리 삶에 있을 수 있습니다. 벗어버리라고 말합니다. 주님을 향해서 달려가기에 거추장스러운 것을 다 벗어버리라는 것입니다. 던져버리라는 것입니다. 주님을 가까이 하기에 방해되는 요소는 그것이 어떤 것이라도 던져버리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간혹 어떤 활동들을 끊지 못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우리가 그런 활동에 상당한 의미를 부여하고 거기에 묶여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인생의 최고의 목적을 달성하고자 한다면, 우리의 인생에 하나님에 대한 자리를 만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여지가 생겨나야만 합니다. 

우리 모두는 아주 분주하고 복잡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너무나 많은 것들로 채워지고 있습니다. 다음 주부터 40일 동안 우리는 우리의 인생에 새로운 습관들을 만들어갈 것입니다.

하루 15분간의 묵상은 우리의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것입니다. 매주 한번씩 소그룹 모임을 통해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목적을 더욱 자세히 살펴볼 것입니다. 약 5분 정도 걸리는 말씀 구절 암송을 통해서 우리의 삶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을 더욱 잘 이해되게 될 것입니다.

비전성취를 위한 목적이 이끄는 삶 전교인 40일 훈련을 시작하기 전에 어떤 것을 포기해야 하는지 결단해야 합니다. 지금도 너무 많은 일들로서 바쁘신 분들은 그 바쁜 일들을 정리 해야만 합니다. 지금도 바쁜데 거기다 40일 전교인 훈련 한다고 또 짐을 실으면 그냥 쓰러지는 것입니다. 40일 코스를 주파해 낼 수가 없습니다. 몸살이 나든지, 입원을 하든지 그렇게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미 하고 있는 일이 너무 많은 분들은 일을 줄여야 합니다.

열심히 일하는 것과 바르게 사는 것은 다릅니다. 많은 일들로 녹초가 되는 것은 결코 성공이 아닙니다. 우리 인생은 이미 너무나 분주하고 바쁩니다. 그렇지만 그 많은 것들이 똑같은 정도로 가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것을 그만 두어야 할 것인가?”에 대해 스스로 질문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삶에는 버려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그것 자체로는 나쁜 것이 아닐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고민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지만 우리가 영적으로 성장하는 데에 꼭 필요한 것들이 아니라면 과감히 버리십시오.

앞으로 40일 동안은 신문이나 텔레비전 보는 시간도 줄여야 할지도 모릅니다. 40일 동안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새벽에 우리가 읽은 말씀을 함께 나누는 시간을 가지려면 일찍 자는 것은 필수적입니다. 밤마다 그러한 시간을 가지려면 좀 늦게 잘 각오도 해야 합니다.

무언가를 버리지 않고 새로운 일들을 하루 일정에 더해 넣을 수가 없습니다. 성경은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라고 말합니다. 우리 인생의 스케줄에 하나님을 최우선으로 두려면 값을 지불해야 됩니다. 그러나 그 지불되는 값은 가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받을 상급이 충분히 보상해 주고 남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돌아보면서 “이렇게 살아서는 안돼”, “이렇게 신앙생활 해서는 안돼”라고 느껴본 적이 있는 사람 같으면 그렇게 말하면서 남은 삶을 마감 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이 지금 살고 있는 삶에 만족 하신다면 더 달리 훈련 할 이유가 없겠습니다. 그러나 ‘이게 아닌데’나는 지금보다 주님을 더 사랑하고 싶다는 소원이 있다고 하면 여러분 자신을 훈련에 내어 맡겨야 합니다.

예수님은 자매들 가정에 방문을 했습니다. 언니는 주님 오신다고 너무 바빠서 정신이 없었어요. 그런데 동생은 철딱서니 없이 주님 옆에 앉아만 있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동생 때문에 화가 났는데 나중에는 데리고 앉아있는 주님한테도 화가 난겁니다. “주님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지 아니하시나이까? 저를 명하사 나를 도와주라 하소서”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 앞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마르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는 것 같구나. 그러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 한가지만이라도 족하니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말씀은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과 설거지를 하는 일 중에 무엇이 더 중요한지는 삼척동자도 안다.”라는 의미입니다.

손님 접대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더라고요. 저는 옛날에 손님만 초대하면 접대하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초대하는 사람 있고, 접대하는 사람 따로 있다는 것을 세월과 함께 배우게 되었습니다. 손님이 오면 음식만 준비하지 않더라고요. 음식 준비하는 만큼이나 집안 청소 한다고 시간이 들어가야 되더라고요. 집을 말끔히 치우고 음식을 준비하는 것 중요한 일이지만 모처럼 오신 예수님과 시간을 함께 하는 것, 그건 더 중요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하고 있는 일 중에서 많은 것들이 어쩌면 주님을 위해서 하는 일들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일 것입니다. 그 가운데서 더 소중한 것은 여러분 자신이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이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마르다와 같이 짜증을 내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해야 할 일을 하느라 하나님께 집중하지 못하고 마음이 분주한 적은 없습니까? 삶이 너무나 바빠서 40일 동안 ‘전교인 훈련’을 듣는 순간에 ‘목사님은 우리 삶을 알아? 몰라. 지금 그렇지 않아도 헉헉대는데 또 훈련이라니?’그러실지 모르겠습니다. 삶이 너무 바빠서 40일 동안이나 하나님께 집중하는 이 전교인 훈련마저 참석할 시간이 없지는 않습니까?

사람들은 평균 25,550일을 삽니다. 제 같은 사람은 그 가운데 2만날은 이미 살았습니다. 남은 날은 5,550일 정도밖에 없습니다. 그 중에서 40일을 나머지 살아갈 5,500일을 위해 보내기로 결심하는 것입니다. 40일을 보내는 것이 남은 5,510일을 보내는데 유익하다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많은 일로 마음이 분주하지만, 모든 일이 전부 다 똑같은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기억합시다.

“마리아는 더 나은 것을 택했다”는 구절에 주목하십시오. 인생은 선택입니다. 우리는 우리 삶에 주어진 모든 것을 다 할 수는 없습니다. 아무도 우리의 머리에 총부리를 대고 모든 일을 해야 한다고 위협하지 않습니다.

하나님도 우리가 모든 것을 다 하기를 기대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모든” 일들 중에 거의 대부분은 우리 스스로 해야 한다고 한 것들입니다. 헉헉대면서 살기를 하나님은 원치 아니하십니다. 하나님은 감사하면서, 찬송하면서, 서로 돌아보면서 살기를 바라십니다. 명령처럼 꼭 해야 하는 일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냥 그 일들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는 영적으로 성장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문제는 우리가 그 시간을 할애할 결심이 되었냐는 것입니다. 마리아처럼 더 나은 편을 위해서 결단해야 됩니다.

시편39:6은 “우리의 모든 수고는 헛되게 끝난다.”(All our busy rushing ends in nothing)고 합니다. 영어로 보니까 ‘우리가 바쁘게 설쳐대는 모든 일들은 그냥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종결지어진다. 바쁘게 설쳐대지만 결국은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인생을 살게 된다’고 말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면 장수하느니라. 그러나 악인의 삶은 짧아지느니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최우선에 두면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우선적으로 고려하십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2:13)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안에 거룩한 소원을 주시고 그 소원대로 살 수 있는 힘을 허락하시는 분이십니다. 진지하게 하나님을 먼저 섬기기로 결정하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삶을 우선적으로 돌봐주실 것입니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왜 나는 훈련을 받아야 하는가?

영적으로 성장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합니까? 우리 삶에 하나님과 함께 할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 다른 일들을 줄여야 합니다. 하루에 24시간, 일주일에 168시간 가운데서 남겨서 저축해놓은 시간 있습니까 여러분? 하루 24시간을 보내기 다 바빴다고요. 지금도 24시간 안에 다 넣어서 배낭 안에 꾸역꾸역 넣듯이 하루 24시간 내에 우리 그 일들을 다 해야 될 것이라고 늘 그렇게 살아왔지 않습니까? 다른 일들을 줄이십시오. 불필요한 것을 끄집어내고 정말 소중한 것으로 채워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얻을 유익이 너무나 크기 때문입니다.

지금 당장 이 생에서의 유익이 있을 뿐 아니라 죽음 다음에 영원히 누릴 유익이 보장되어 있습니다. 잘 생각해 보면 아무런 유익이 없어도 하나님이 하라고 그러시면 하나님의 백성들은 해야 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렇죠? 영적인 성숙을 위해서 훈련 받으라고 하면 훈련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훈련에는 금생과 내세의 약속이 따르고 있습니다. 

이 땅에서 아무 유익이 없다 해도, 우리가 순종해야 될 이유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자신의 삶 전체를 고스란히 포기 하셨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우리도 우리의 전부를 그 분을 위해 내어놓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12:1)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지불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가 주님을 위해 우리의 삶을 드리기를 바라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가 아니었더라면 의미 없는 존재였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주님은 우리의 삶 전부를 받으시기 합당하신 분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주님이 아니었다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 존재들 이었을 뻔 했습니다. 그렇게 살다가 그렇게 끝날 뻔 했습니다. 그렇지만 십자가의 은혜로 우리는 영생을 얻었고 우리의 삶 전부를 주님께 빚진 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사랑받기 위해서 태어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우리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서 아직도 살아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에게는 사람들이 참 소중합니다. 사람들의 영원한 운명에 대해 무언가 하는 것은 그 어떤 다른 일보다 소중합니다. 다음주부터 일어날 일들을 놓치지 마십시오. 시간이 없다면, 시간을 내십시오.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고후 6:1)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들입니다. 하나님과 같은 멍에를 메고 일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가 결코 헛되게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 인생은 곧 사라질 것이지만, 그리스도가 하신 일은 영원합니다. 어떤 다른 것도 이보다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40일이라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이 기회를 그냥 지나치지 마십시오. 우물쭈물하면서 멀리서 바라보지 마십시오. 한 사람도 그냥 우물쭈물 지나가서는 안 됩니다. 전 교인 40일 훈련을 통해서 공동체 전체가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는 자리로 나아가야만 합니다. 여러분이 그 일에 마음을 합하지 않으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나아가는 길에 걸림돌 역할을 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박국 3장2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케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

50주년 희년을 앞두고 1년 몇 개월을 남겨두고 있습니다. 이 수년 내에 주의 일을 부흥케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주의 위대하신 능력을 나타내 주십시오’ 라는 것이 우리의 기도가 되어야 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이 부흥의 한 가운데 있기를 바라십니다. 지금이 바로 기회입니다. 이 훈련을 위해서 여러분은 지금부터 마음의 준비가 되어야 됩니다.

3박4일 지리산 종주를 위해서도 저는 마음 준비를 했습니다. 주말이 되어 가는데 감기기운이 있고 어쩌면 독감 걸릴 것 같은 걱정이 되어서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모릅니다. 3박4일의 여정을 위해서도 저는 하님께 매어 달렸습니다. “하나님 제가 수년 동안 소원했던 일인데 이번에는 할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40일 간의 행군을 위해서 한 주간 전부터 우리는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합니다. 버릴 것은 버려야 합니다. 주님을 향해서 시선을 모아야 할 때입니다. 이번 비전성취를 위한 전교인 40일 훈련을 통해서 여러분 모두에게 여러분의 삶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이 분명해 지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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