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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가족 (엡 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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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정근두 목사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His unchanging plan has always been to adopt us into His own family by bringing us to Himself through Jesus Christ. 에베소서 1:5 (NLT)

그리스도안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이 복된 예배의 자리에 함께 참석하신 사랑하는 이웃여러분 우리 울산교회는 비전 성취를 위한 목적이 이끄는 삶 40일 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주일 살핀 우리의 삶을 향한 첫 번째 목적은 ‘하나님을 더 잘 알고, 더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예배라고 부릅니다. 예배가 우리 삶의 첫 번째 목적인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기쁨을 위해서 지음 받은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두 번째 목적, 하나님의 가족이 되는 것을 살피려고 합니다. 하나님은 온 우주를 만드셨습니다. 만드실 때부터 계획을 가지고 계셨어요. 여기에 사람이 살도록 하고 그 사람들이 정말 하나의 가족이 되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의 본래적인 계획입니다. 그래서 그 가족들과 더불어 하나님의 영광을 나누고자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오늘도 이 땅을 사는 모든 사람들이 당신의 권속이 되기를 바라십니다.

오늘 본문 5절을 보십시오. ꡒ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ꡓ 성경은 하나님의 가족을 세워 가는 것을 기록한 책입니다. 역사의 의미는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가족을 세워 가는 계획은 이 땅에서 시작되어서 영원토록 이어질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그 영원 속에서 살도록 의도된 존재입니다.

우리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불변의 목적은 ꡒ뭇사람을 공경하며 형제를 사랑하는ꡓ(벧전 2:17)데 있습니다. 이것이 인생의 두 번째 목적입니다. 이를 원하시는 이유가 있습니다.

보십시오. 육신의 가족들은 결국에는 모두 흩어지게 됩니다. 그렇지만 여러분의 영적인 가족은 영원히 지속됩니다. 우리는 육신의 가족과 형제자매로서 함께 지냈던 기간보다 훨씬 더 긴 기간을 우리는 영적 가족들과 함께 보내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가 영적인 가족들을 사랑하는 것을 배우기를 원하십니다.

사랑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을 닮아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이 서로 사랑하는 것을 바라십니다. 그리하여 천국에서 영원히 살 준비를 훈련을 이 땅에서 하기를 원하십니다.

ꡒ예배ꡓ를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처럼 ꡒ교제ꡓ라는 말도 그렇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교제하면 그냥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는 정도 차라도 한잔 곁들이던지  밥이라도 한번 같이 먹으면 오늘 좋은 교제했다고 그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교회에 가서 다 함께 하는 것을 “교제” 그렇게 합니다. 다음주일 또 만납시다. 그러면서 헤어집니다. 그러면 좋은 교제를 가졌다고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면 성경이 말하는 교제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가족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ꡒ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ꡓ(요일4:12)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같이  형제를 사랑할 수 있을까요? 그 지침을 성경에서는 분명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ꡒ내가 이것을 씀은 하나님의 가족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쳐주기 위함이라 ꡓ(딤전3:14-15)

교회는 가족입니다. 건물이 아닙니다. 어떤 기관도 아닙니다. 조직이나 클럽도 아닙니다. 교회란 가족입니다. “제가 나중에 좀 시간이 나면 교회에 가지요.” 그렇게 말했을 때는 사람들은 건물을 가리켜서 그렇게 말을 합니다. 교회가 마치 건물인 듯이 생각합니다. 그러나  교회는 이 건물에 모인 사람들의 모임이 바로 교회입니다.

교회는 우리가 가는 그 장소가 아니라 우리가 모인 이 자리에 모인 우리들 자신이 바로 교회입니다. 우리는 서로 서로에게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의 성도가 나누는 교제는 네 가지 레벨이 있습니다.

첫 번째 단계의 교제: 하나님의 가족에 속하기로 선택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교회가족을 찾고 택해야 합니다. 사람들과 관계하기로 결정해야 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ꡒ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 하나님의 식구들이라.ꡓ(엡2:19) 고 말하고 있습니다.

크리스천의 삶은 단지 믿기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속하는 것을 포함합니다. 여러분과 저는 울산교회라고 하는 신앙공동체에 속하기로 결단한 사람들입니다. 교제는 이 결단 위에서 시작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태어나면 즉시 한 가족이 되고 한 나라의 국민이 되고 인류의 일원이 되는 것은 이것은 나의 선택이 아니라 태어나면 자동적으로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가족이 되는 것은 선택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결단을 통해서 선택하는 것입니다.

“저는 예수 믿는 사람인데요. 요즘엔 교회는 안 나갑니다” 그런 희귀한 말을 하는 사람들이 가끔 있어요. 그것은 말이 안 되는 것입니다. 마치ꡒ저는 축구 선수입니다. 그런데 아무 팀에도 속해 있지 않습니다.ꡓ그게 됩니까? 

ꡒ저는 플루트 연주자입니다. 그런데 저는 어느 오케스트라에도 관현악단에도 속해 있지 않습니다.ꡓ속해있지 않는 관현악단이 그렇게 의미가 있겠습니까? 어느 소대에도 속하지 않은 군인, 그건 탈영병이지 제대로 된 군인이 아닙니다.  속한 교회가 없는 크리스천은 고아와 같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느 가족에 속하도록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이번 주에 읽을 『목적이 이끄는 삶』에는, 우리는 왜 교회 일원이 되어야 되는지를 배울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속해 있고 서로에게 가족이 되기로 결단한 사람들입니다.

주일이 되면 어느 교회를 가야 될지 몰라서 여기에 한번 갔다가 저기에 한번 갔다가  이러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래서 어떤 연세가 드신 권사님이 그러시더군요. 목사님, 우리는 “길 잃은 어린 양ꡓ이 아니고 ꡒ길 잃은 늙은 양ꡓ입니다.

이번 주에는 이 교회에 나가고, 다음 주에는 저 교회를 나가고 열심은 있어서 아침은 이 교회 나가고 저녁엔 저 교회 나가고 이렇게 열심을 내기는 하지만 영적으로 자라기 위해서는 한 교회에 소속이 되어 있어야 됩니다.

돈만 있으면 밥 주는 밥집들이 많이 있지만 가정이 있어야 돼요. 집에서 주는 밥을 먹어야 제대로 삶을 살수가 있습니다. 돈벌려고 파는 밥하고, 식구들에게 줄려고 준비하는 밥하고는 차원이 다릅니다. 그것은 사랑 양념이 들어가고 정성이라는 것이 들어가고 사람은 그 가운데서 먹고 살 수 있도록 하나님은 의도하셨습니다. 외식만 해 가지고 여러분 살 수 있습니까? 교제의 처음 단계는 우리가 가족에 속하도록 선택을 해야 합니다.

두 번째 단계의 교제: 서로 우정을 나누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우리가 지음을 받았다고 말하지 않습니까? 그렇죠? 그러면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하나님은 성부하나님 성자하나님 성령하나님 함께 서로 바라보면서 교제를 나누시는 분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모습대로 지음을 받았으면 우리도 서로 바라보면서 교제를 나누고 살도록 지음 받았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뜻글자 한문은 사람인(人)자 사이간(間)자, 사람은 사람사이에 있어야 사람구실을 할 수 있다는 겁니다. 무인도에서는 사람답게 산다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새로운 날이 될 때마다 하루를 마감하고는 ‘보시기에 좋았더라’ 그렇게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마지막 날에는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에덴동산에도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지 못한 것이 있어요, 뭐지요?

하나님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다른 말로 말하면 우리는 서로를 위해서 지어진 존재입니다. 인생은 독주가 아닙니다. 인생은 협연입니다. 인생은 독창하는 것이 아니라 합창하는 장소입니다. 

사도행전 2:44에서 성령이 임한 새로운 공동체의 모습을 설명하면서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ꡓ 다 함께 있어 통용하고 우리는 서로 만나지 않고서는 우정을 개발할 수가 없습니다. 서로 나누지 않고서는 우정을 키워나갈 수 없습니다. 자주 만나야 가까워지는 법입니다. 함께 어울려야 합니다.

정말 깊은 우정을 오랫동안 나누는 사람들을 보셨습니까? 10년, 20년, 30년 전부터 40년 전부터 우리는 서로 친구야 이런 사람들, 혹시 여러분은 이런 친구를 가지고 있습니까? 정말 행운아입니다. 하지만 정확하게 분석해 보면 그것은 행운의 문제가 아닙니다. 운이 좋아서 그런 관계를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관계하기로 결심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의식적이든 아니든 우리는 그 친구와 더불어서 시간을 보내기로 해 봤기 때문에 그런 우정이 지속되는 것입니다.

요즘 사람들은 너무 바빠서 할 일이 너무 많아요. 성취해야 일들이 너무 많다 보니까 서로 만나서 우정을 나누는 이런 것은 그냥 곁다리로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우정의 시간을 할애 하다보면 이 경쟁에서 밀린다는 느낌마저 들 때가 있어요.

우리 인생에서 소중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전 까지는 깊은 우정을 만들 수가 없습니다. 신실한 우정은 공짜로 생겨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그 우정을 만들기로 시간을 내겠다고 결심해야 합니다. 운이 아니라 선택입니다. 서로 나누는 것이 없이 우정을 만들어 갈 수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나누어야 할까요? 서로의 경험을 나눌 수 있습니다.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처럼 친구는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할 수 있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깎아 주기도 하고 깎이기도 하고 그런 관계입니다. 간접적으로 우리는 인생경험을 넓혀 갈 수 있습니다. 다 자기가 경험하고 살려면 배우기 전에 우리의 인생은 끝나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생은 그렇게 길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다른 사람들의 경험을 통해서 단 시간에 많은 것들을 배우기를 원하십니다.

또 성경은 우리 가정을 열어서 나누라고 말합니다. 서로 교제를 나눌 필요가 있습니다. 가정을 오픈하기 위해서 근사한 집 적어도 40평, 50평, 60평되는 집이 있어야 되겠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마음만 열면 우리는 현관을 열 수 있습니다. 멋진 집을 가지고 있어야, 그래야 된다면 저를 비롯해 가정을 오픈하기 힘든 사람이 많을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까 저도 너무 큰집에 가보면 생각이 많더라고요. 저는 아무 때나 가도 만날 수 있는 그런 환경, 우리 집이 보통 그렇거든요. 아무 때나 들어가면 정리된 데는 정리되어있고 정리 안 된 데는 안 되어 있는, 그런 환경에서 저는 살아서 그런 집에 가면 편안한 느낌이 오히려 있습니다. 먼지 하나 없이 싹싹 닦아 놓은 집에 가면 신경 쓰이잖아요. 우리 집 배나 되는 넓은 집에 가면 어디에다 차를 대야 될지 헷갈리고요.

왜 우리가 집을 서로 오픈 해야 됩니까? 그 이유는 사람들이 많은 군중 속에서는 교제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작은 소그룹에서 우리의 교제를 나눌 수 있습니다. 아니면 일대일(one-on-one) 만남을 통해서 그 교제를 깊게 할 수 입습니다.

오늘 예배하는 이런 환경에서는 교제를 나눈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이런 예배를 드리고 여러분이 내려가면서 “나 오늘 어떤 사람을 깊이 사귀게 되었어” 그렇게 말하면서 갈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이 환경은 교제하기에 좋은 환경이 아니라 예배하기에 좋은 환경입니다. 함께 찬양하고 함께 기도하고 같이 말씀 듣고 그렇게 하기에는 이것이 좋은 환경이지만 속속들이 교제를 나누기 위해서는 가정을 열어야 합니다. 집에 가서 앉으면 좋습니다. 저는 겨울에는 옛날 살던 고향을 생각합니다. 친구들끼리 모여 이불 밑에 발을 뻗고 둘러앉으면 아주 좋은 소그룹이 아닙니까?

교제는 언제나 소그룹 안에서 일어납니다. 그래서 성경은 서로의 가정을 오픈하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교회가 제일 사회적인 영향력을 끼치고 성도들이 급히 자랐을 때는 이런 건물을 하나도 갖고 있지 않았던 때입니다.

초기 300년 동안에는 세상에 어떤 것도 이런 건물, 어떤 교회도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모두 가정에서 모였습니다.  요즘은 교회 개척한다고 그러면 건물부터 있어야 될 것처럼 생각합니다. 다시 한번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모든 교제는 가정에서 이루어질 그때가 제일 세상에서부터 칭송 받았고, 제일 교회가 잘 성장을 했습니다.

여러분이 소그룹에 속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성경적인 원칙이기 때문입니다. 크리스천들은 서로의 가정을 열어서 거기서 만남이 교류해야 됩니다.

세 번째 단계의 교제: 우리는 우리들의 문제를 나누어야 합니다. 만나서 우리는 서로의 문제들을 나눌 수가 있습니다. 고민거리는 나누면 줄어들고, 기쁨은 나누면 배가된다는 것을 늘 들어오시지 않았습니까? 

“애통하는 자들의 눈물을 함께 닦아주고 기뻐하는 자들과 함께 기뻐하라.” 소그룹을 만나서 어떤 때는 기뻐하지만 어떤 때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눈물을 함께 흘리기도 합니다.

여러분이 모든 사람의 문제를 다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해결하라고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들이 모든 문제를 다 고쳐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할 일은 그냥 들어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의 어려움을 나누고 나머지 사람은 들어만 주면 됩니다.

잘 들어주는 귀를 가지고 그냥 그 사람 옆에 앉아서 잘 들으면서 “그 기쁨을 그 기분을 알 것 같군요” “저도 그런 적이 있었습니다.” “이해가 됩니다” “참 힘드시지요” 그렇게 공감해 주면 주위에 공동체가 있으므로 행복할 것인데 신앙의 연도가 더 해질수록 모든 정답을 혼자서 다 알고 있는 것 같아요. 말 나오자마자 이 사람 말도 아직 안 끝났는데 정답을 가지고 나오면 얼마나 말하던 사람이 배신감을 느낍니까? 그렇죠?

집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예배의 자리에 나오는 남자들을 위해서 같은 남자로서 한 가지만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집에 들어가면 어떤 때는 아내가 피곤하다고 할 때 “여보 피곤해요“ 그러면 우리는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기사도 정신을 발휘해서 내 사랑하는 아내가 피곤하다니 이것 내가 가만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왜 그래 무슨 일이 있었는데, 내가 일을 작게 하라고  했잖아.” 이렇게 답을 제시하면 말을 하던 아내가 “참 내 마음 몰라주는 남편이네.” 이렇게 생각하잖아요.

왜 머리를 짜내어 답을 낸다고 고생하고 우리는 그렇게 따돌림을 받아야 됩니까? 그러지 말고 쉬운 방법이 있어요. 피곤하다고 그러면 “ 당신 피곤해요?” 말 그대로 받아만 주면 말하는 아내가 신이 나서 왜 피곤한지 이야기를 하고 공감하는 남편이라고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아내처럼 살건대 머리를 써서 그렇게 푸대접받을 이유가 뭐 있습니까? 보험도 안 들어 놓은 사람들이 그냥 집에서건 공동체 소그룹 모임에서건 마음을 그 사람의  심정이 되어서 들어주기만 하면 됩니다.

아마 여러분들 중에 혹시 소그룹에 참석을 했는데 말을 딱 끄집어내자마자 정답을 가지고 딱 나오는 선배들 때문에 마음 상해서 그 다음은 진짜 안 가고 싶어집니다. 안 가려고 해도 구역장이 전화하지요 권찰이 전화하지요, 한번 발 디디기가 무섭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

여러분 그러지 말고 이제부터는 좀 편하게 우리 소그룹 모임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안 맞으면 안 갈 수 있는 자유를 주십시오. 맞는데 찾아갈 수 있는 특권을 행사하십시오. 교역자에게 이야기해서 가보니까 “저는 아무래도 안 어울릴 것 같아서 딴 곳에 좀 해 줄 수 없을까요”라고 말하면 연결 시켜주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것 못할 것 뭐 있습니까? 그러잖아도 마음에 안 맞는 배우자 만나서 억지로 사는 집도 많은 데 소그룹까지 마음에 안 맞는데 억지로 가라면 어찌합니까. 부부야 어쩔 수 없이 서약하고 만났으니까 맞춰가야 되는데 구역은 안 맞으면 다른데 가서 맞추면 되요. 여러분이 복덕방에서 소개하는 첫 집을 사야할 의무가 어디 있습니까? 첫 집이 마음에 안 들면 “다른 집 없어요?” 하며 물어보고  다른 집을 보면 되는 것 아닙니까?

처음 데이트하고 그 남자랑 결혼해야 될 이유가 없습니다. 선을 봐도 마음에 안 들면 또 보면 됩니다. 30번 40번을 보면 좀 심합니다만 꼭 첫 번째 선본 남자랑 결혼할 의무도 없는 것이고 내가 한번 발 디딘 소그룹에서 마르고 닳도록 살아야할 것도 없습니다.

세 번째 단계는 ꡒ동역(partnership)ꡓ입니다. 동역은 내가 맡은 일을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내가 맡은 부분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본래 가족이란 그런 것이거든요.

옛날 제가 어렸을 때에 우리 집 생각을 해 보면 그랬더라고요. 작은 머슴은 작은 머슴대로 일거리를 받아서 나가고 큰 머슴은 큰 머슴대로 논 가는 일을 하러 가는 거고 머슴들만 일하러 가는 것이 아닙니다. 집에서는 아이들도 다 일해요. 우리 누님들 일곱밖에 안되지만 제가 태어났을 때는 두 분은 이미 시집을 갔었고 남은 다섯 분 중 셋째 누나가 날 아주 열심히 업고 다니면서 키웠는데 그렇지요? 하다못해 열 살만 되어도 다섯 살 짜리 동생을 데리고 다니면서 노는 몫을 감당해야 될 그것이 식구입니다. 같이 밥을 먹으면 같이 일을 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가족이면 말씀은 함께 들으면서 소그룹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교회가 되는 이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하면 얌체지요 무임승차하는 겁니다. 은혜만 받고 나는 해야 될 의무는 안 하겠다 그런 사람이 교회 공동체를 무너지게 만드는 사람입니다. 같이 밥을 먹었으면 같이 일해야 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교회에 와서 그냥 어디 앉아 있다가 영적인 무엇을 잘 받고 가기만을 원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이곳에서 섬기고 봉사하도록 여러분을 부르셨습니다.

신약에서 보니까 ꡒ서로ꡓ를 58번이나 서로 섬기라고, 서로 사랑하라고, 서로 기도하라고, 모든 짐을 함께 지라고, 서로에 대해서 잘 받아들이고 참으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말로만 행하는 사랑이 아니라 행함이 있는 사랑입니다. 속하는 것이 첫 번째 단계이고 마음을 나누는 것이 두 번째 단계이고 짐을 나누어지는 것이 세 번째 단계입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ꡒ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ꡓ(고전 3:9)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요 라는 말이 있는데 그ꡒ동역ꡓ이라는 말하고 교제라는 말하고 fellowship하고  partnership 하고는 헬라어에서는 아주 밀접한 의미를 가지는 단어입니다. 교제는 언제나 같이 짐을 지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 하는 데는 큰 사업이기 때문에 여러분이 생긴 모습 그대로 반드시 한 모퉁이 돌을 감당할 역할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참여하는 이 사역은 세상 나라를 우리 주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나라로 만드는 대 역사입니다.

여러분들이 반드시 꼭 필요한 자리가 있습니다. 자기를 발견하고 자기 몫을 감당해야 합니다. 혼자 하는 것보다 함께 하면 훨씬 쉬워요. 일하는 것 자체가 재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함께 같이 밥을 먹으면 밥이 맛이 있잖아요. 정말 일식삼찬 밖에 안 줘도 우리교회 지하실에 밥 먹는 것이 얼마나 맛이 있는지 한 가마를  삶아도 모자랄 지경이 아닙니까. 같이 먹는다는 것 같이 일하고 먹으면 더욱 기쁘고 맛이 있습니다.

테레사 수녀를 보고 어떤 분이 물었어요. 인도에 캘커타 제일 가난한 사람이 병들고 죽어 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한평생을 바친 수녀에게 물었습니다. ꡒ매일 병들고 죽어나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어떻게 당신은 견뎌낼 수 있습니까? 라고 말하니까 “제가 목욕을 시키는 모든 사람들, 제가 붕대를 감아주는 사람들, 저는 그 사람들 모습 속에서 예수님을 봅니다. 제가하는 모든 일은 예수님을 위해서 하는 일입니다.ꡓ 라고 답했습니다.

이런 태도는 마음에서부터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ꡒ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ꡓ(마25:40) 여기 있는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했다고 주님은 간주하십니다. 반대로 그들을 돌아보지 아니한 것은 곧 나를 돌아보지 아니한 것이라고 주님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 깊은 교제의 단계로 나아가서 실천을 좀 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소그룹 만나는 사람들 사이를 어떻게 도울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아이파크 같은데 사시는 분들은 새 가족 모여서 서로 도울 일들 찾기가 좀 힘들겠지요. 그러면 엘리베이터타고 내려와서 동네를 한번 들어가 보십시오. 두 사람씩만 발견해 보십시오. 도울 사람이 세 사람만 모여도 여섯 명이나 찾을 수 있습니다.

마지막 단계의 교제는 가족의 교제입니다. 형제자매의 교제입니다.  성경에는 “너희는 가족과 같은 관계가 아니다.” 라고 말합니다. 너희는 정말 한 가족이라고 말합니다. “한 피 받아 한 몸 이룬 형제여 자매여.” 라고 찬송을 합니다. 찬송을 부르면서 그 가사에 우리는 은혜를 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형제자매의 사랑을 경험한다는 것은 세상에서 쉬운 일은 아닙니다.

교제가 너무 천박해저 가지고, 교회조차도 있을 때 가졌을 때 교제를 나누지, 어려워지면 다 멀리 물러가 버리는ꡒ형제를 사랑하며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라.ꡓ 성경은 말합니다. 형제 사랑을 계속하라고 말합니다. 형제처럼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형제이기에 형제 사랑을 계속하는 것입니다.

가족과 같은 친밀함, 그것은 가족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시킬 수 있는 단계입니다. 아버지를 위해서 자기의 장기 일부를 떼어 내어주는 아들의 모습, 우리는 그런 사랑을 아무에게나 베풀기는 어려워 하지만 가족인 경우에는 정말 가끔씩은 그런 결단을 하는 아내를 보고 남편을 보고 자식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3:16은 여러분은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만큼 중요한 구절이 요한1서 3장 16절입니다. ꡒ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ꡓ

어떻게 이 단계에 교제를 나눌 수 있을까요? 우선 위기에 쳐했을 때 그들의 편에 서서 도와주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남의 일이라고 발을 빼고 싶어 할 때, 우리만큼은 손을 걷고 도와주는 것입니다. 그들이 힘든 시간을 보낼 때, 돕는 것 그것이 하나님이 의도하시는 교제입니다.

지금 우리는 그 동안 어려운 시간을 보냈던 박형이 사모님의 이야기를 한번 듣도록 하겠습니다. 남편이 강도사로서 순천시민교회를 개척했을 때 당시 우리 교회 제3여전도회에서 5만원씩 후원하고 있다가 남편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접하고 당회가  20만원을 정해서 몇 년 동안 도왔던 적이 있습니다.  그 후원이 세 아이를 키우는데 어떤 의미가 되었는지  꼭 한번 말씀드리고 싶었고 또 여러분들을 만나서 감사를 표현하고 싶은 마음 때문에 7년을 기다려서 이제 용기를 가지고 오늘 예배에 같이 참석을 했습니다. 우리 박형이 사모님 나올 때 박수로 격려해 주실 까요?

“할렐루야 감사합니다. 너무 너무 오고 싶었던 교회였는데, 이곳까지 오는 시간이 7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편지로도 수없이 써서 감사하다고 전해주고 싶었지만 자신이 없어서 여태까지 못 왔습니다. 갑자기 오고 싶어서 어제 왔었거든요. 1부 예배 2부  예배 3부 예배까지 드리고 앉아 있으면서 정말 좋은 교회구나 멋진 교회구나 그토록 몇 년 동안 내가 오고 싶었던 교회인데 와서 보니까 너무 많은 것을 얻어 가는 것 같습니다. 갑자기 남편을 교통사고로 잃어버리고 아이 셋과 힘들게 살았었습니다. 교회를 개척해 놓고 교인들은 2년 동안 모여 있다가  뿔뿔이 흩어지고 아이들은 먹어도 배가 고프다고 자꾸 먹을 것을 달라고 보채니까 죽고 싶었습니다. 고아원에 맡기려고 생각도 했고요. 그런데 이 멋진 교회 울산교회에서 교회통장으로 보내주시던 그 후원금 5만원을 사고 난 소식 후 그 다음달 5월달부터 제 이름으로  된 통장에다가 그것도 20만원을 증액해서 3년간 보내주셨습니다. 그 돈 가지고 아이들과 살았습니다. 직장생활도 할 줄 모르고 돈 버는 길도 모르고 막막하게 살았었거든요. 10년 동안 한 노회 안에서 같이 교회를 섬기며 부딪히며 살았던 목사님 사모님들도 안부전화 한 통화 없었습니다. 한달 두달 가다가 울산교회도 끊기겠지 다른 교회도 다 끊어졌으니까. 저는 그렇게 생각을 했거든요. 한번도 어김없이 그 날짜가 되면 들어오는 것이 여러분의 뜨거운 정성이었습니다. 얼마나 감사하고 눈물나도록 미치도록 정말로 자랑하고 싶었는데 여러분 이제 와서 여러분께 감사하다고 내가 얘기를 드려 죄송합니다. 정말 목사님 한번 뵌 적도 없었지만 내가 울산교회에 와서 목사님을 만난다면 많은 성도님들이 계신 곳에서 묻고 싶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사람이 죽으면 가까웠던 친척들도 부모형제도 부담스러워 하면서 인연을 끊는 것이 당연한 건데 한번도 뵌 적이 없는데 어찌 저희들에게 이렇게까지 큰사랑을 보내주셨을까? 정말 멋진 목사님, 왜 그렇게 하셔야만 했는지, 꼭 묻고 싶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너무나 여러분이 부러워서 내가 가슴이 터질 것 같아요. 멋진 교회에서 신앙생활 하시는 것 정말 부럽습니다. 여러분 믿음으로 끝까지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났을 때 밑에 두 아이가 쌍둥이였는데 두 살배기가 지금 9살이 되고 큰 아이는 12살이 되어서 요즘 다 컸다고 가끔 엄마를 놀린답니다. ‘엄마는 나쁜 엄마“ 라고, 세상에 자기 아이 먹는 우유에 어떻게 물을 타서 먹이냐고 제가 소식을 들으니 참 마음이 아프더라고요. 교회가 나서지 못해도 제가 개인적으로 좀 알았더라면 그 사모님 나쁜 엄마 만들지 않도록 그렇죠? 여러분들도 같은 심정일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세상에 보내시고 아직 남기신 것은 하나님의 식구들을 돌아보고 서로 사랑하라고 남겨 두셨습니다. 여러분은 이 땅에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며 하나님의 권속들을 사랑하는 일에 참여하기를 하나님은 바라십니다. 

사람은 죽음의 시간에 있을 때, 마지막 숨을 내쉬면서 아무도ꡒ내 졸업장을 가져다 줘” 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ꡒ내가 받았던 트로피가 한번보고 싶구나.” 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은퇴 기념으로 받은 금시계를 한번 보자.ꡓ그라지 않습니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 사람들을 그렇게 보내지 않습니다. 자기에게 가장 소중했던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어 합니다. 눈감기 전에 한번 더 보고 싶어 하는 것이 그의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그때 가서 깨닫는 것은 너무 늦은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이 진리를 빨리 깨닫게 되기를 바랍니다.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마지막 눈을 감는 순간에 “아 내가 인생을 헛살았어.” 라고 말하는 여러분들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주님 앞에 설 때에 “제가 알기만 했으면 그러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고 변명하지 않기를, 박 형이 사모님 같은 분이 지금 울산광역시에도 많이 있습니다.

삶의 벼랑 끝에 서서 정말 이 아이들과 함께 죽는 것 외에는 답이 없어 보이는 그런 처절한 심정이 될 때에 그 이웃에 있는 집사님의 얼굴을 떠올리면서 그 분 한번 만나 보며 마지막 일을 정리하고 싶다는 그런 생각들이 떠올라야 되지 않겠습니까?

울산 교회에 한번 문 두드려보고 내가 끝장을 봐도  봐야지 하고 성도들이 사람들에게 희망이 돼야 됩니다. 교회가 큰 것이 무엇이 자랑이겠습니까? 역할을 감당해야 됩니다. 우리가 좋은 교회 울산교회라고 말할 때마다 정말 좋은 교회되기로 결심을 해야 됩니다.

우리가 항시 참 부끄럽지만 하나님께서 오늘의 울산교회를 오도록 하셨으니까. 저는 여러분들을 통해서 울산 사람들이 정말 위로를 느끼게 되기를 바랍니다. 희망을 찾게 되기를 바랍니다. 울산 사는 것이 울산교회 때문에 나는 희망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그 일에 교회의 일원인 여러분들이 서게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이 땅에서의 삶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특권은 바로 하나님의 가족 일원이 되는 것입니다.  가족? 자랄 때 한번 생각해 보세요. 많이 싸우기도 하지요 그러면서 정도 듭니다. 사랑하는 것을 배우는 훈련장이니까요. 또 자라면서 남 사랑하는 것 사랑을 받아 보지 못해서 사랑하는 것이 힘든 사람도 있습니다.

진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랑할 줄을 모른다는 거예요. 사랑하면은 떠올리는 것이 성적인 사랑이나 로맨틱한 사랑 외에는 없습니다. 그러나 사랑은 다양한 종류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랑에는 깊이가 있습니다.

깊이 있는 사랑을 배울 수 있는 유일한 장소가 바로 여기입니다. 교회입니다. 그 사랑을 나누면서 그 사랑을 경험해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소그룹 공동체입니다. 마음만 아니라 여러분들 자신도 나누고 가진 것도 함께  나눌 수 있는 공동체 일원으로 서 남은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에 의해 지어졌지만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위해서 살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을 위해서 사는 하나님의 자녀 된 삶이 달라야 합니다.

이제 나는 하나님의 가족의 일원이 되기로 결단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가족과 더불어 시간을 내기로 일을 나누어 하기로 결심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정말 보혈로 한 피 받아 한 몸 이룬 교제를 나누는 우리 울산교회 좋은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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