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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말씀 때문에 행복해 진 사람 (눅 5: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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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임경택 목사

가을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외로운 계절이라고 합니다. 고독의 계절 남자의 계절 . .
남자와 여자는 감성의 차이가 있는 존재인것 같습니다.
봄은 여자의 계절이라고 합니다. 여자들의 경우는 아무래도 춥고 어두운 겨울을 보내다가 화창한 봄이 오게 되면, 본능적으로 화사한 화장과 예쁜 옷을 입고 맘도 설레는가 봅니다. 그러나 남자는 목표지향적인 존재들입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지만 하나님이 그렇게 감성의 차이를 두고 창조하신 것입니다. 결과를 보고 달리는 것입니다.
가을은 결실의 계절이고 보면, 남자는 내가 한 해동안 무엇을 했나? 하면서 고민하는 것 같습니다.
남은 열매는 없이 . . . . 잎은 한 잎씩 떨어지고 앙상한 가지를 남기는 계절입니다.
그래서 고독하고 외로운가 봅니다. 그러나 열매있는 사람들은 고독하지 않습니다.
기독교는 가을을 고독의 계절이라 하지 않습니다. 열매의 계절, 결실의 계절이라 합니다.
감사의 계절이라 합니다. 또 책의 계절, 말씀의 계절이라 합니다.

기독교의 힘은 계시에 있습니다. 우리 기독교와 다른 종교의 차이는 ‘계시성'에 있습니다.
세상에 많은 종교의 특징은 ‘기적과 정성’입니다. 사람들이 종교를 가지는 이유는 기적을 바라고 종교를 갖는 것입니다. 다른 것은 없습니다.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이다”는 말을 기억하면서 지극정성을 다하고 있습니다.
정성을 다하면 하늘이 감복(感服)해서 도와 줄 것이라는 자기중심의 종교입니다.
이 땅의 종교는 자기의 뜻만을 이루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모든 신앙이 자기에게 달려 있습니다. 정성만 다하면 신이 받아 줄 것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같이 질병이 많은 세상에서 병들지 않는 기적을 바랍니다.
수없이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는 오늘 세상에서 교통사고 나지 않기를 비는 것입니다. 그래서 새 차사고 돼지머리 올려놓고 비는 것입니다. 비행기를 타고, 최첨단의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오늘, 이런 미신적 행위는 마치 양복입고 짚신 신은 듯합니다.

너무 어울리지 않지만 이런 일은 오늘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특징은 다릅니다. 기적과 정성이 아니라, ‘계시와 진리’입니다.
나의 유익만 이루어지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땅에 임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 목적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룰려면 하나님의 명령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계시 하셔야 알 수 있습니다. ‘계시’는 ‘열어 보인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당신의 뜻을 열어 보여 주셔야 알지요. 그렇지 않고서는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내 중심으로, 정성만 다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계시해 주신 그 진리대로 사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고 하지만 오늘의 현실은 참 독서하는 사람들이 적은 것 같습니다. 대중매체들을 통해서 독서 캠페인을 벌여 오고 있지만 작년 통계를 보면 ‘국민 독서 실태 조사’에서 한국인의 1인당 독서량은 월 1.6권이라고 합니다. 주간 평균독서시간은 2.9시간. . .성인 중 43.6%가한 달에 한 권도 책을 읽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나이 들수록 독서량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만화의 시대, TV, 컴퓨터, 인터넷 등 동영상의 시대를 맞아서 깊이 생각하는 독서 보다는 감각적인 것들에 더 익숙해 있는 것 같습니다.

성경을 읽는 것도 참 게으른 것 같습니다. 성경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집집마다 쌓였습니다. 종류별로 개역판, 영한성경, 해설성경 등 . . 있으면 뭐합니까? 우리가 성경을 가까이 하지 않는 이유는 너무 삶이 편안하기 때문인것 같습니다.

미국에 9.11 테러가 발생하자마자 갑자기 사람들이 성경을 사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짧은 기간 내 작년 대비 42%이상의 성경이 판매되었습니다. 도무지 인간의 지혜로는 해답을 찾을 수 없는 급박한 상황에 이르자 ‘말씀’ 앞으로 나올 수 밖에 없던 것입니다. 그러나 일년이 지난 다음 다시 본래대로 돌아가 버렸다는 것입니다. 환경에 관계없는 전천후 신앙인이 될 수는 없을까요? 우리의 기도 제목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무엘상 3장에 보면 사무엘이 어린 시절에 엘리 제사장을 섬겨 일을 할 때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희귀한 시대였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3장 1절은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異象)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시가 보이지 않는 시대였습니다. '이상'은 계시를 말합니다.
하나님이 침묵을 지키시고 계시는 때였다는 것입니다. 그 때는 위기입니다. 잠언서 29장 18절은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율법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벌 가운데 하나가 침묵입니다. 내가 잘못을 했는데 상대방이 아무 말 하지 않으면 그것은 큰 소리로 꾸짖는 것보다 더 무서운 벌입니다.
이상(계시)이 보이지 않으면 우매한 백성들은 하나님이 칭찬하시는 줄 알고 마음을 놓습니다. 교만에 빠집니다. 자기 마음대로 행합니다. 그러나 그 순간은 하나님이 분노하시는 시간입니다. 그래서 말씀이 희귀한 시대는 이와 같이 비극적인 시대입니다. 위기의 시대입니다.

오늘날은 말씀의 외형적인 부분은 풍년입니다. 교회들도 많습니다. 말씀을 전하는 매체도 여러종류입니다. 영상매체, 청각매체, 인터넷 등 . .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러나 정말 양식이 되는 말씀이 희귀합니다.
주경학자 박윤선(朴允善)박사는 "밥은 없어도 살수 있으나 물이 없으면 못산다, 물은 없어도 살수 있으나 공기가 없으면 못산다, 공기는 없어도 살수 있으나 예수가 없으면 못산다"고 하였습니다.

사람의 육신은 밥을 먹고 삽니다. 그러나 영혼은 말씀을 먹어야 힘을 얻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마4:4)고 하셨습니다. 말씀으로 사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말씀과 가까이 지내야 합니다. 그 말씀 속에서 살아야 합니다. 그 말씀에 꼭 붙잡혀서 그 말씀이 명령하는 대로 살아야 합니다. 말씀은 삶을 활기차게 하고 복 있게 하고 힘있게 하는 비결이요 근원이요 원동력입니다. 말씀은 우리를 바른 길로 안내해 줍니다. 시119:105“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말씀의 맛을 모르는 그리스도인들이 아직 많은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맛은 사모하는 자에게 임합니다. 마음이 너그러워서 말씀을 끝까지 잘 듣는 사람에게 임합니다. 하나님 말씀 듣는 훈련도 해야 합니다. 재미있고 웃음이 터질만한 말씀만 좋아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재미로 듣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재미가 가미 된다면 더욱 좋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 . .
행17:11-12에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그 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또 헬라의 귀 부인과 남자가 적지 아니하나”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뵈레아 사람들은 마음이 너그러웠고(새번역), 마음이 틔여 있어서(현대어 번역), 긍정적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지 않고 간절한 마음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말씀앞에 긍정적인 사람들이 말씀에게 은혜가 임하는 것입니다.

말씀앞에 긍정적인 사람들은 말씀이 꿀맛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찬송시간에는 안 조는데, 설교시간만 되면 졸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자신의 감격적인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시119:103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하니이다.” 라고 . . .
시편기자는 말씀이 얼마나 은헤롭고 좋았든지 꿀 송이보다도 더 달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말씀의 맛은 어떻습니까?
사람들은 음식맛을 구별하는 데에는 귀신(?)같습니다. 어디에 음식이 맛있다고 하면 차를 타고 물어물어 찾아갑니다. 음식 값보다 기름 값이 더 비싼데도 갑니다. 그런데 하나님 말씀의 맛은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말씀의 맛을 아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고 더 이상 하나님의 음성이 공급되지 않을 때, 여러분들은 그것을 인생에 커다란 위기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오늘은 영적인 상태가 깨끗지 못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오지 않는 혼탁한 영적인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성경을 읽어도 들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없고, 예배시간에 참석해도 그 설교가 내게 지금 당신의 뜻을 열어 보여 주시는 계시로 들려지지 않는 위험한 때를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영혼의 상태가 매우 심각한 상태인 것입니다. 그런데 더 심각한 것은 그것을 고치기 위해서 노력도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문제들을 심각하게 생각하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아마 싸우기를 이미 포기한 사람들 같습니다.

너무나 오랫동안 패배의 삶을 반복하면서 살았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이것은 참 심각한 병입니다. 시험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저 그렇게 살아갈 뿐입니다. 말씀을 통해서 승리한 경험이 없기 때문입니다. 말씀의 능력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말씀에 매달리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일 없이는 죄를 이길 수도 없습니다. 참 기쁨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게 살아 갈 수도 없습니다. 그리고 능력있는 기도생활도 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기도해도 어둠 속을 헤매는 것과 같은 막막함만 느낄 뿐입니다. 이번 가을이 말씀회복의 계절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말씀회복으로 여러분의 삶에 놀라운 변화가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낙심의 삶을 살아 가다가 예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행복한 인생이 된 사람을 보게 됩니다. 그 사람은 베드로입니다.
예수님이 가시는 곳 마다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었습니다. 하루는 예수님께서 갈릴리 호숫가에서 말씀을 전하시려고 하는데 많은 무리가 몰려왔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너무많아 호숫가에 있던 배를 빌려 타고 말씀을 증거 하시게 되었습니다. 그 배는 시몬 베드로의 배였습니다. 말씀을 다 증거 하신 후 예수님은 시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시몬은 어부입니다. 밤새도록 그물을 던졌으나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그런 베드로에게 예수님은 명령하십니다. “깊은데로 가서 . . ”베드로의 성격으로 봐서 짜증을 낼 수도 있지만 그 말씀을 듣고 순종합니다.

사실 시몬은 밤새도록 고생하였지만 그날따라 한 마리 고기도 못잡았다. 이른 아침에 깊은곳에는 고기가 없는데 그 깊은데로 가라는 것입니다. 도무지 이성적으로, 경험, 상식에 맞지 않는 말씀이다. 전혀 납득이 가지 않는 명령입니다. 베드로의 거친 성격에 이렇게 순종하는 모습을 보면 신통망통합니다. 하나님께 복받을 사람은 이렇습니다.
교부 철학자인 터툴리안은 “불합리한고로 나는 믿는다”고 했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도 불합리한 일입니다.
믿음은 지식이나 경험이나 이치에 맞기 때문에 믿는 것이 아닙니다.
나에게 명령하신 하나님을 신뢰하기 때문에 그 분이 하신 말씀도 신뢰하는 그것이 참 믿음입니다. 그 분이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음을 빋는 믿음이 있기에 그분이 어떤 말씀을 하시든지 순종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그분이 말씀으로 창조하신 하나님이심을 믿습니까? 그 하나님은 지금도 말씀으로 창조하실것을 믿습니까? 태초에는 말씀으로 창조하셨음을 믿지만 지금은 믿을 수 없다면 믿음이 아닙니다.

참 순종에는 조건이 없습니다. 핑계가 없습니다. 순종은 무조건 순종하는 것입니다. 잘났다고 자기 경험, 자기 지식 가지고 고집 피우면 이리 부딪치고, 저리 부딪칩니다. 그런 순종을 하시기 바랍니다. 베드로가 말씀에 순종했더니 그물이 찢어지도록 고기를 많이 잡았습니다.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때 베드로는 말씀을 주신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그 때 예수님께서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리라.”
하나님의 말씀은 단순히 알기 위해서 읽고 배우는 것이 아닙니다. 순종하고 그대로 살기 위해서 읽고 연구하는 것입니다.
(계1:3)“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성경이 기록된 목적을 말씀은 우리에게 올바른 인생의 지침을 주기 위함입니다.(딤후3: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첫째, 베드로는 주님의 말씀 때문에 창조주 하나님의 기적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에게 어떤 은혜와 복이 임하는가 ?
시편 19:11에는 “또 주의 종이 이로 경계를 받고 이를 지킴으로 상이 크니이다”고 하였습니다.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신비를 체험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어떤 이유나 조건도 내세우지 않고 묵묵히 순종하는 사람은 남이 알지 못하는 신비한 은혜를 체험하게 됩니다. 예수님이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졌을 때 예수님의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예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라고 합니다. 하인들은 아무런 이유도 달지 않고 순종합니다. 그랬을 때 물이 포도주로 변하는 기적을 맛보게 됩니다. 요2:9에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어 말씀을 따라 살면 위험에서 지켜주시는 복을 주시기도 합니다. 계3:10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라고 하였습니다. 또 명철함을 주시기도 합니다. “내가 주의 법도를 지키므로 나의 명철함이 노인보다 승하니이다”(시119:100)
시몬은 에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깊은데 가서 거물을 내려보니 (눅5:6-7) “그리한즉 고기를 에운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이에 다른 배에 있는 동무를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 하니 저희가 와서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더라”

(신28:1-8)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여호와께서 명하사 네 창고와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리시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이며”
순종에는 분명히 결과가 따릅니다. 축복입니다. 세상에서도 부모에게, 선생님에게 말 잘듣는 사람에게는 분명히 댓가가 꼭 있습니다.

둘째, 베드로는 주님의 말씀 때문에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엄청난 고기를 잡았을 때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 엎드려 가로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눅5:8)하고 고백하였습니다.
구약의 이사야 선지자는 성전에 들어갔다가 영광으로 가득찬 하늘 세계를 보았습니다. 천사들을 보았습니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 . .” 천사들의 성전의 기초까지 흔들리는 합창 소리를 들으면서 자신의 나약함을, 자신이 부정한 자인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사6:5)
사람은 자기보다 큰 존재를 만나야 겸손해 집니다. 주먹세계도 그렇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래야 겸손해 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하신 기적들 중에 표적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알게하시는 사인이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런 사인이 없으면 믿으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신앙의 초기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의 입문때에 그런 하나님의 표적 때문에 믿게 된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것은 믿게하려는 하나님의 도구입니다. 그런데 예수 믿은지 30년이 된 사람들이 지금도 기적 표적을 바라고 있다면 그동안에는 믿음이 없이 살았다는 것입니까? 뭡니까?

여러분 믿음이 성장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처음에 예수믿을 때에는 많은 역사들이 많이 나타납니다.
표적중에 나를 꿰뚫어 아시는 표적 보다 큰 표적은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는 전지전능하십니다. 베드로의 마음 깊은 곳을 꿰뚫어 보시는 분입니다. 예수님 앞에는 비밀이 없습니다. 베드로는 아무 말 안했지만 아무 것도 얻지 못한 허탈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예수님은 그를 보시고 아셨습니다. 베드로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시듯이 우리들의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십니다. 그 앞에서 깨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주님은 마음의 생각 깊은 곳을 꿰뚫어 보십니다. “대저 주는 마음의 비밀을 아시나이다”(시44:21)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족하시오며 나의 길과 눕는 것을 감찰하시며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시 139:2-4)
말씀속에서 나의 행동, 나의 생각을 찔러 보실 때 그 앞에서 주님이 하나님 되심을 깨닫는 발견이 가장 큰 발견입니다. 이런 발견이 있는 사람은 가장 큰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셋째, 베드로는 그 말씀에 순종하므로 자신의 비젼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께서 시몬에게 일러 가라사대 무서워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하시니”
(눅5:10)
사람은 누구가 다 사명이 있습니다. 사명을 알고 사는 자는 복이 있는 자요, 사명을 모르고 사는 불행한 자입니다.
나를 이 마지막 시대에 보내 주신 사명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나에게 주신 직분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알기를 원합니다.
‘내가 왜 교회 나왔는가? 나는 왜 하나님을 믿는가? 나의 사명은 무엇인가?’를 모르는 사람처럼 안타까운 사람이 없습니다. 우리는 그의 자녀입니다. 이제는 우리에게 사명이 있습니다 . 하나님에게 충성, 헌신, 봉사 . . 주님의 뜻을 따라 선교와 봉사에 쓰임받아야 하는 자들입니다.
요즘 ‘자폐증 크리스천’들이 많다는 말들을 합니다. ‘자폐증 크리스천’이란 듣기는 듣는데 깨닫지도 못하고 순종하지도 않는 사람입니다.

또한 ‘거북 크리스천’도 많다고 지적을 합니다. 늘 한다, 한다 하면서 하지 못하는 신자들을 말합니다. 거북이는 1년 동안 안 먹어도 산답니다. 성경말씀, 설교 안듣고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거북 신자들입니다. 기도도 하지 않습니다. 응답도 못 받습니다. 충성도 하지 않습니다. 헌신도 하지 않습니다. . . . .
혹시 여러분은?
18세기 초 영국의 시인, 조셉 에디슨은 행복의 조건을 세 가지로 말했습니다. 행복하게 살기 위해 첫째, 해야 할 일이 있어야 한다. 둘째,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셋째, 마음에 소원이 있어야 한다고 . . . 사람은 꿈이 있어야 합니다.
돈 많이 버는 소원, 출세 . . . 권력 가지는 소원 . . . 그러나 가장 귀한 소원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위해서 쓰임받는 것입니다. 돈도 많이 버십시오. 하나님을 위해 쓰십시오.

권력을 가지십시오. 그것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쓰십시오. 지식과 학문, 재능을 가진다 해도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 앞에 영광 돌리기 위해서 한다면 최고로 행복한 사람인 것입니다.
우리 삶의 목적과 가치관을 이 땅에 두지 않고 하나님 앞에 둘 때, 그 사람은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창조하셨습니다. 그 목적대로 쓰임받는 사람들이 가장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빨리 그것을 아는 사람이 더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죽을 때 가서야 철드는 사람도 많습니다. 세상에서 얻은 것, 다 내 것이 아닙니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갑니다. 빨리 철드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들이죠.

우리가 가지고 다니는 1만원권 지폐, 돈은 ‘종이’입니다. 그 종이 한 장의 가치를 따지면 얼마나 되겠습니까? 한국 조폐공사에서 1만원 짜리 지폐를 만드는데 드는 비용은 90원입니다. 그런데 이 1만원권 지폐, 종이 한 장 가지고 슈퍼마켓에 가면 새우깡을 20개를 살 수 있습니다. 라면을 10봉지 사서 10명이 먹을 수도 있습니다. 그 종이 한 장으로 사이다, 콜라를 10캔 살 수 있습니다. 종이 한 장인데 말입니다. 그것이 무슨 힘이 있습니까?
그러나 그 종이는 보통 종이가 아닙니다. 국가에서, 정부에서 보증을 했기 때문에 막강한 능력과 힘을 가진 종이입니다.

베드로의 가치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과거에는 고기 숫자에만 관심이 있었다. 돈에만 관심이 있고, 세상 부귀 영화에만 관심이 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의 가치가 바꾸어졌다. 하나님을 위한 존재가 된 것입니다.
고기잡이 베드로가 예수님의 수제자가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월급도 제대로 못받는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말단 공무원보다 못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일군이 되는 것은 놀라운 복이었습니다. “저희가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 두고 예수를 좇으니라”(눅5:11) 기독교 역사에 오래 오래 기억되는 사람, 천국의 열쇠를 받았고. . .러시아 성 베테르 부르그에 가보았더니 다 베드로에 관한 것들이었습니다. (뾰또르 대제가 그 도시를 세움 -베드로라는 뜻 . . ) 주님의 말씀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순종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입니다. 오늘도 그 말씀은 살아있습니다. 히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죄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성도 여러분, 베드로처럼 말씀을 순종하십시오.
1. 기적을 맛보게 . . 2. 죄인임을 깨닫게 . . 3. 순종하므로 자신의 비젼을 알게 . .
여러분들에게 이런 놀라운 일이 있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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