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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믿음으로 사는 삶 (히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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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임대식 목사

오늘 읽은 말씀 앞에 있는 히브리서 10장 38절을 보면 우리가 잘 아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이 말씀은 일찍이 마틴 루터로 하여금 종교개혁을 일으키게 한 원동력이 되었던 참 귀한 말씀입니다. 오늘은 종교개혁주일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믿음으로 사는 삶을 살 수 있을까 생각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믿음으로 사는 삶’을 생각해 보기에 앞서서, 믿음이란 무엇인가, 하는 점을 먼저 분명히 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과연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믿음, 신용, 신뢰 등등의 말은 서로 비슷한 말입니다. 우리 인생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꼭 필요한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이 믿음, 신뢰일 것입니다.

사람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믿음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누구나 믿음을 가져야만 살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부모를 믿습니다. 그저 부모를 의지하고 부모의 품 안에서 안식을 누립니다. 또 우리가 병원에 가서는 의사 선생님을 믿고 나의 생명을 그에게 맡깁니다. 의사를 믿지 못하는 사람은 치료를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또한 우리가 운전을 할 때 도로 표지판을 누가 언제 세웠는지도 모르면서 그저 그 표시판만 믿고 운전을 합니다. 도로 표지판을 의심하면서 운전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는 돈을 믿고 삽니다. 돈이 별것 아닙니다. 좋은 고급 종이에 몇 가지 글자를 쓴 것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그 위에 씌여진 글자를 믿고, 그것으로 서로 물건과 바꿉니다. 돈을 믿기 때문에 우리는 시장 경제를 이루어 나갈 수 있습니다. 사람은 믿어야 살 수 있지, 서로 믿지 못하고 신뢰하지 못하면 우리는 하루도 살 수 없습니다. 이렇듯 믿음은 참으로 소중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일반적인 이런 믿음과 우리 신앙인들이 소유하고 있는 믿음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세상에서 말하는 서로 믿고 신뢰하는 것과는 다른, 다른 차원의 믿음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차이는 무엇일까요? 무엇이 다른 것일까요?

바로 믿음의 대상이 다른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세상을 믿고, 세상의 규칙을 믿고, 자신을 믿고, 이웃을 믿습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 위에, 그 위에 하나님을 믿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 믿음이 그리스도인과 비 그리스도인을 갈라 놓는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인격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시고, 자비로우시고, 우리를 위해 지금 이 시간도 이 자리에 살아 역사하고 계심을 믿는 것입니다.

또한 그 분이 하신 말씀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성경의 모든 약속의 말씀, 축복의 말씀, 은혜의 말씀이 모두 나를 향한 생명의 말씀으로 아멘 하며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생각해 보면, 그 말씀에 대해 내가 순종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말씀을 따라 사는 아름다운 실천의 삶, 여기에 믿음의 핵심이 있습니다. 믿음은 이런 순종의 행위까지가 믿음인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사탄도 하나님이 살아 계신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알아듣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 말씀에의 순종은 없습니다. 오히려 불순종의 길을 걷기에 바로 사탄인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무엇보다도 순종하는 믿음을 소유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봉독한 말씀은 우리가 익히 아는 참 중요한 성경 구절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다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이 본문 말씀 가운데서 세 가지 교훈을 받을 수 있습니다.

첫째, 믿음의 사람이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약속을 누리며 사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말씀합니다. 이 실상이라는 말의 뜻은, 요즈음 말로 부동산 권리증서, 유가 증권이라고 번역하면 좋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아파트를 살 때, 모델하우스를 보고 마음에 드는 집이 있으면 계약금을 치루고 증서를 받습니다. 그러나 아직 그 건물은 서지 않았습니다. 아직 존재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그 증서를 갖고 있으면 몇 달, 몇 년 후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비록 지금은 아직 지어지지 않았더라도, 증서를 믿으며 그 집을 현실로 누리고 살아갑니다. 이와 같이 산 믿음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을 향해 약속하신 그 약속을 실제처럼 누리고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발명왕 에디슨은 학교 성적이 나쁘고 엉뚱한 질문만 해서 결국 학교에서 쫓겨났습니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만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들이 못 보는 것을 내 아들은 볼 수 있다고 믿었다. 안 보이는 것을 믿는 것이 신앙이다. 수많은 발명은 실로 볼 수 없는 것을 믿는데서부터 시작된다.” 참 중요한 교훈입니다.

미케너라는 사람은 일찍이 신대륙을 발견하고 세계로 뻗어 나가던 15세기의 유럽 국가들을 세 종류로 분류했습니다. 독일과 이탈이아는 새로운 가능성을 내다보지 못하고 바다 건너편 세계에 대해서 전혀 눈을 뜨지 못했습니다. 영국과 프랑스는 눈을 뜨긴 했지만 결심과 모험을 하기까지는 많은 시간을 소모했습니다. 그러나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보이지 않는 새 세계에 대해 믿음을 가지고 과감하게 바다로 나아갔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역사를 열어 나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 신앙인들 가운데도 세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는 죽을 때까지 배를 바다에 띄워보지도 못하고 육지에 앉아서 바다 저편에 대해 생각만 하다가마는 신자입니다. 보는 것만을 믿을 수 있다는 것은 엄밀히 말하면 믿지 않는 사람입니다.

또 하나는 15세기 영국과 프랑스처럼 어느 정도 믿음을 가지지만, 바다를 향해 배를 띄우기까지는 결심이 느립니다. 한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신념을 가지고 배를 띄워 하나님의 신대륙을 찾고 발견하는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 뒤편의 히브리서 11장 8절을 보면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갈 바를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이 앞으로 나아가라 하시니 믿음으로 내일을 바라보며 나아가는 것이 곧 믿음입니다.

이 하나님의 사람 아브라함은 네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바다의 모래와 같이 창대하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살았습니다. 비록 아직은 아들 하나 없었지만, 그 약속을 붙들고 살았습니다.

이 아브라함은 또한 하나님께서 자기를 위해 마련하신 영원한 도성을 바라보고 살았습니다. 이 세상에 발을 붙이고 살았지만,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약속을 따라서 천국 시민의 감격과 확신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유가증서를 가진 사람, 아직 내 땅을 보지 못했지만, 그 땅이 확실히 있는 것을 본 사람처럼 미리 그것을 앞당겨 누리고 사는 것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했습니다. 산 믿음을 가진 사람은 한평생 성경의 모든 약속의 말씀을 그처럼 누리고 삽니다. 모든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 아직 나의 삶 속에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약속을 믿으며, 바라보며, 미리 앞당겨 누리며 사는 사람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둘째로 이 확실한 믿음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의 인정을 받습니다. 2절에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증거를 얻었다는 말씀은 선진들이, 조상들이 이 믿음으로 인정을 받았다는 말입니다. 믿음의 선배들이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 것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인정을 받았습니다.

사람의 본능 가운데 하나는 남의 인정을 받고 사는 것입니다. 남이 나를 알아주고 나를 칭찬해주고, 나의 존재가치를 알아준다는 것은 참 귀한 일입니다. 그래서 남의 인정을 받고자 재물을 모으고, 권력을 추구하며, 열심히 사는 것입니다. 이 본능이 채워지지 않으면 고독이라는 무서운 병에 걸리고 맙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시편 1편은 가장 큰 축복을 선언하고 있는데 ‘복 있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인정하고 알아주는 사람입니다.

이 조그만 나라에서도 만일 내가 대통령의 인정을 받게 된다면 내 신분이 달라지고, 지위가 달라지고, 하는 일이 달라집니다. 대통령이 인정을 안 해주면 높은 고위관직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습니다. 하물며 만왕의 왕 되신 하나님이 인정하는 삶이야말로 참으로 복된 삶입니다. 하나님은 참 믿음을 가진 사람을 인정해 주십니다.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못해도, 세상이 나의 존재가치를 인정해 주지 않아도, 하나님이 나를 알아주시고, 나를 지명하여 불러 주시고, 나를 인정해 주신다면, 우리를 그것으로 만족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인정을 받음에 우리 행복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인정을 받는 삶은 진정 복된 삶이 아닐 수 없습니다.

셋째로 믿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은 자기 삶의 본질을 알고 삶의 목적을 알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것이 언제일까요? 언제 사람은 자신의 삶의 의미와 목적을 알게 될까요? 바로 하나님이 창조주이심을 믿을 때입니다. 3절에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라’ 했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한 것을 아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믿음으로 압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신 줄을 알 때 나의 삶의 목적이 있습니다. 내 삶에 진정한 가치가 있습니다.

제가 아는 어떤 분은 창세기를 읽다가 큰 감동을 받고 하나님께로 돌아왔다고 합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창조하셨다면 나도 하나님이 창조하셨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우연히 이 땅 위에 존재하게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물이구나. 그렇다면 내 삶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고 의도가 있고 목적이 있구나. 내 삶이 그저 의미 없이 값없이 지나가는 인생이 아니구나. 그렇다면 나를 향한 하나님의 섭리와 인도하심이 있겠구나, 이런 생각이 들면서 큰 감동을 받고 신실한 믿음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진정 나라는 존재는 우연의 산물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 그냥 던져진 존재가 아닙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창조한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하나님의 세밀한 손길이 내게는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지으셨다는 사실을 알기 전까지는, 우리 삶에 참다운 목적이 없습니다. 그저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사는 것이 인생입니다.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아무리 남들이 나를 존경하고 인정하고 칭찬해도, 그 모든 것이 결국 허무한 것일 뿐입니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특별한 목적과 섭리 속에서 창조되었다는 것을 믿을 때, 나를 통하여 이루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계셔서 나를 이 땅에 보내주셨다는 믿음으로 살아갈 때, 참다운 삶의 목적과 의미가 나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런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능히 이 믿음으로 이 세상을 승리하며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 믿음의 위대함이 있는 줄 믿습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우리 기독교인을 가리켜 신자라고 말합니다. 신자란 믿음의 사람이란 뜻입니다.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어떤 일정한 대상을 믿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도 모두 믿음과 신뢰 속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특별이 우리를 구별해서 신자라고 하는 것은, 우리 믿음의 대상이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믿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인격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며 그 말씀을 신뢰해서 순종한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은 마치 유가증서를 가진 사람이 그 증서인 종이를 신뢰하는 것보다 더 큰 확신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은 이 세상이 무슨 말을 하든지 하나님의 인정을 받습니다. 하나님께 존귀히 여김을 받습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이 세상을 살면서 하나님의 섭리와 손길과 하나님의 숨결을 생활 가운데 느끼고 누리면서 하나님과 함께 살아갑니다.

진정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습니다. 인정을 받았습니다. 이 믿음으로 이 세상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압니다. 믿음은 이 세상의 모든 보이는 것들이 보이지 않는 것으로 말미암았다는 확실한 증거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언제 어디서나, 일이 잘 풀릴 때나 어려울 때나, 건강할 때나 아플 때나, 기쁠 때나 괴로울 때나,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 나를 알아주시고, 나를 도와주시며, 나와 함께하신다, 이 확신 속에 사는 사람입니다. 진정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이 믿음으로 내일을 바라보며 오늘을 일으켜 세워 나가시는 성도님들 모두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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