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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믿음에 튼튼히 터를 잡아 (골 1: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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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 1


- 설교 : 이영기 목사

고집 센 사람과 심지가 곧은 사람 둘 다 비슷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고집 센 사람은 자기 주장(그것이 옳던 그르던)에 강한 사람이고, 심지가 곧은 사람은 옳은 일에 분명한 사람입니다.
오늘 우리 사회는 심지가 곧은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온통 고집 센 사람들만 있는 것 같습니다. 국정감사를 보십시오. 그게 심지가 곧은 사람입니까? 고집이 센 사람이지.
이젠 고집들을 버려야 합니다. 심지를 곧게 해야 합니다. 말하자면 중심을 분명히 하자는 말입니다.
국가도, 교회도, 가정도, 개인의 삶도, 이 중심이 분명하면 문제될 것 없습니다.
사람 살다보면 흐린 날도 있고, 맑은 날도 있는 겁니다. 그런데, 자기 중심으로 사는 고집 센 사람들은, 맑은 날은 신이 나서 뛰고, 흐린 날은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이 그럽니다. 자기 중심의 고집 센 사람들 여유 있으면 흥청망청 이고, 돈 떨어지면 금방이라도 세상 끝난 것 같이 삽니다.
그러나 심지가 곧은 사람, 중심이 있는 사람은 언제나 변함없습니다. 있다고 해서 흥청망청 하지 않고, 없다고 해서 울상 짓지 않습니다. 있을 때나, 없을 때나, 언제나 바른 언제나 알맞게 삽니다.
문제는 그 중심이 뭐냐 하는 것입니다. 돈이 그중심입니까? 지식이 그중심입니까?
인생의 중심, 거기에는 하나님이 계셔야 합니다.
우리 백성들은 예로부터 하늘을 중심이 두고 살았습니다.
어렸을 때, 밥 먹다 흘린 것 버리면, 어른들이 그것 주워 먹으면서 “낟알 버리면 벌 받는다.”고 하셨습니다. 남이야 보든 말든 하늘 무서운 줄 알고 살았습니다.
“남의 눈에 눈물나게 하면 내 눈에 피눈물 난다”는 말도 무슨 말입니까? 그것은 인과응보 사상이라기보다는, 하늘은 반드시 옳고 그름을 판단하신다는 말이 아닙니까? 그래서 당장의 이득이 있어도 그것이 불의한 것이라면 거절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늘이 있기 때문입니다. 내 아버지는, “남의 것은 지푸라기 하나라도 들고 오지 말아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우리 민족 하늘을 중심에 두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 하늘을 일어버렸습니다.
남의눈에 눈물나게 하는 건 예사고 아예 피눈물마저 나게 합니다. 서로 헐뜯습니다. 그게 상대방보다 내가 낫다는 이야긴데, 거꾸로 보면 둘 다 못 됐습니다. 하늘이 있는 줄 알면 그렇게 하겠습니까?
하늘, 하늘을 찾아야 해요. 그리고 그 하늘 앞에서 사는 삶으로 돌아가야 해요.

그런데 하늘이 뭡니까?
옛날, 우리는 하나님을 몰랐어요. 그냥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큰 힘을 가진, 그러면서 옳고 그름을 분명하게 하시는 어떤 힘을 하늘이라 불렀고, 그 하늘에 계신 님을 하눌님이라 불렀습니다. 기독교가 들어오고, 성경이 읽혀지면서, 이제 그 하늘에 뭔지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 16절, “만물은 그의 안에서 창조되었습니다. 하늘에 있는 것들과 땅에 있는 것들,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 왕권이나 주권이나 권력이나 권세나 할 것 없이 모든 것이 그로 말미암아 창조되었고 그들 위하여 창조 되었습니다. (17절) 그는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은 그의 안에서 존속합니다. 18절) 그는 그의 몸인 교회의 머리이십니다. 그는 근원이시오 죽은 사람 가운데서 맨 먼저 살아나신 분이십니다. 이렇게 살아나심은 그가 만물 가운데 으뜸이 되시려고 하심입니다. (19-20절)하나님께서도 그리스도안에 모든 충만함을 머물게 하시기를 기뻐하시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 평화를 이루셔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나 다 기쁘게 자기와 화해시키셨습니다.”
그래요.
1)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만물의 으뜸이 되십니다. 만물은 그의 안에서 창조되었습니다.
요한복음 1장 3절,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하늘에 있는 것들, 땅에 있는 것들, 보이는 것들, 보이지 않는 것들, 왕권, 주권, 권력, 권세 할 것 없이 모든 것이 그로 말미암아 창조되었습니다.
그분이 곧 하나님이십니다.
요한복음 1장 1절,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 하나님으로부터 만들어진 것이 세상입니다.
더욱이 사람은 하나님께서 만드셨습니다. 흙으로 만드셔서 그 코에 하나님께서 당신의 생기를 불어 넣으시니 사람은 생령이 되었습니다. 살이 움직이게 되었습니다.
만들어진 것은 만든 이가 없으면 존재할 수 없는 것입니다.
부모에 대한 공경의 시작은 그분들이 나를 세상에 내셨다는 것입니다. 옷 해주고, 밥 해주고……. 그런 것은 2차적인 것입니다. 부모님이 아니면 내가 세상에 태어날 수 없었다는 것, 그것이 부모 공경의 시작입니다.
우리 민족은 “하늘이 사람은 냈다”고 생각합니다. 하늘이 부모님을 내시고, 하늘이 부모님을 통해 나를 내셨습니다. 그래서 하늘과 부모를 공경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물질만능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부모도 입혀주고, 먹을 것 주고, 가르치고…….그것으로 기준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좀 해 준 것 같으면 감사하고, 좀 내 마음에 모자라면 감사는커녕 원망합니다. 부모가 나한테 해 준 것이 뭐냐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나를 만드셨다”고 고백합니다. 그런데 그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 이란 고백 보다, 이제는 하나님께서 “내게 무엇을 주셨다”는 것이 고백의 기준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좀 괜찮으면, 마음에 들면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러고, 좀 괜찮지 않으면, 마음에 들지 않으면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만드셨다.” 보다는 “하나님께서 내게 무엇을 주셨다.”는데 고백의 초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니에요. 그분이 무엇을 해주시든 안 해주시든 그분은 나를 만드신 내 하나님이십니다. 욥의 고백과 같이 설사 다 빼앗아가는 경우라도 하나님은 내 하나님입니다.
이탈리아의 시인 로버트 부라우닝은, “내 가슴을 열고 보십시오. 내 가슴에는 이탈리아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을 것입니다.”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그가 이탈리아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탈리아라는 나라가 그에게 무엇을 해 주었든 안 해주었든, 자신이 이탈리아 사람이기 때문에 자기 조국 이탈리아를 으뜸으로 여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마음을 열어 젖혔을 때 그 속에 무슨 글자가 새겨 있습니까?
마땅히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새겨져 있어야만 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여러분을 만드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2) 그분은 구원에 있어서 으뜸이 되십니다.
예수님의 이름은 구약에는 없습니다. 물론 여호수아, 예수아라는 이름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로서 예수라는 이름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처음부터 예수 그리스도를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분이 구원에 있어서 으뜸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구약에서, 광야의 불 뱀에 물리면 장대에 높이 달린 놋뱀 처다 보면 생명을 건졌습니다. 신약엔, 예수께서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처럼 인자로 높이 들리라. 그래서 누구든지 쳐다보면 구원을 얻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 40년 동안 먹은 것이 만나입니다. 이 만나는 신명기 8장에,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고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6장에, 5병2어의 기적을 나타내시고, 예수님은 당신이 곧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떡 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구약과 신약 그리고 오늘에서도 구원의 으뜸이 되신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 어느 곳에서나 구원을 찾고 있으며, 죄의 용서를 구하고 있으며, 영생의 소망을 찾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고해성사를 하기도 하고, 선행을 하려고 애쓰고, 자선사업도 하고 그럽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평안을 찾지 못하고, 확신을 얻지 못하고, 아무런 소망도 지닐 수가 없습니다.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은 우리에게 주신일이 없기 때문입니다.”(행4:12)
금보다 은보다 더 귀중한 것 있습니다. 생명입니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오.”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생명, 그 생명이 곧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그리스도, “그분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며, 그분으로 말미암아 죄 용서가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금과 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당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흘리신 보혈에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에 전쟁이 일어날 기미가 보이자 왕들은 애굽에다가 도움을 요청합니다. 갖가지 선물을 보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애굽을 의지하고 말라고 하십니다. 그들의 말을 의지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면 하나님께서 구원하리라고 하십니다.
본문은 “그는 근원이시오 죽은 사람 가운데서 맨 먼저 살아나신 분이십니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죽음에서 살아나신 분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요 사망권세를 이기신 분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렇기에 그분으로 말미암아 우리도 사망 권세를 이길 수 있습니다.
본문 20절,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 평화를 이루셔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다 기쁘게 자기와 화해시키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 하나님은 당신과 죄 인된 우리 사이를 화해시키셨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곧 구원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 구원은 그런 의미만 아닙니다.
우리 삶에서 당하는 고난이나 고통에서 이겨내는 것도 구원입니다. “하늘에 있는 것들이나, 땅에 있는 것들이나” 그 앞에 “평화를 이루셔서” 우리에게 평화를 주시는 분이 만물의 으뜸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땅에서도 예수 그리스도 그분과 살기를 원하며 그래서 예수님은 보혜사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이 세상에서 평화롭게 살아가도록 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살아가는 순간순간마다 그분은 내 삶의 으뜸이 되셔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목사님이 한 모임에 초청 받았습니다. 첫 모임이라 회장이 목사님께 기도를 부탁했습니다. 그 목사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짤막하게 기도했습니다. 모임이 마친 후 회장이 목사님께 말하더랍니다. “목사님, 목사님께서 우리 모임에 함께 계셔서 정말 기쁘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 모임 회원 중에는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앞으로 기도하실 때에는 제발 기도 중에 그리스도라는 이름을 빼주시면 좋겠습니다.”
글쎄요. 여러분이라면 어느 쪽을 택하시겠습니까? 멋진 그 모임에 남으시겠어요? 그리스도라는 이름에 남으시겠습니까?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 문제는 그리스도라는 이름이 빠졌다는 겁니다.
이 민족이 당하는 고통은 하늘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듯이 그리스도인들의 문제는 그리스도를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 존재의 근원이 되시는 그리스도안에서 살아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 구원의 근원이 되시는 그리스도안에서 살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래서 간곡히 부탁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믿음과 튼튼히 터를 잡아서 굳건히 서있어야 하고 여러분이 들은 복음의 소망에서 떠나지 말아야 합니다.”(23절)
“믿음에 튼튼히 터를 잡아서”
우리의 믿음이 뭡니까?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나이 생명 되시며, 나의 구원자가 되신다고 믿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믿음 아닌가요?
그렇다면 그 믿음에 튼튼히 터를 잡아야지요.
그리고 그 터 위에 내 인생을 세워 나가야지요.
마태복음 7장 24절 이하에, 지혜로운 자와 어리석은 자가 나옵니다.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고,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사람이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반석 위에 지은 집은 이박 오고 바람이 불고 창수가 나도 무너지지 않았지만, 모래 위에 지은 집은 심하게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이때 지혜로운 사람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것, 그것이 믿음입니다. 그 믿음의 터 위에 세워나갈 때 어떤 경우도 무너지지 않는 겁니다.
그럴 때 그 믿음은 우리에게 소망이 됩니다.
예수님은 나의 구원자라는 믿음이 있을 때, “그렇다면 지금 내가 겪은 고통도 반드시 해결하셔서 내게 평화 주실 거야”하는 소망이 생기는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믿음 안에 있을 때, 그는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자가 되고, 그럴 때 모든 것이 합력해서 선을 이루는 소망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거듭 부탁드립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믿음에 튼튼히 터를 잡아서 굳건히 서 있어야 하고 여러분이 들은 복음의 소망에서 떠나지 말아야 합니다.”
만물의 으뜸이 되시는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모든 일에 승리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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