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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승리의 성찬(The Last Supper Of Triumph) (고전 11: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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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이종영 목사

  예수님께서 신약교회에 명령하신 세례식과 성찬식 이 2가지 예식을 우리는 오늘 믿음으로 거행하게 됩니다. 특히 이 성례식은 은혜의 방편(The means of Grace)입니다. 우리가 이 예식의 의미를 바로 알고 믿음으로 참여할 때 큰 은혜와 축복을 누리게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오늘 아침 본문을 중심으로 “승리의 성찬(The Last Supper Of Triumph)”란 제목으로 말씀을 묵상하며 은혜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과연 최후의 만찬이 승리의 성찬이 된 이유가 무엇일까요?

1. 성찬은 반역에 대한 사랑의 승리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1) 성만찬이 제정된 밤은 역사상 최대의 반역사건이 진행되던 밤이었습니다. 최대의 반역 사건은 성만찬이 시작되기 전 사탄에 사로잡힌 가룟 유다에 의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밤에 열 두 제자들을 모으시고, 성찬을 제정하셨습니다. 그중에는 예수님을 은 30에 팔아넘기기로 언약한 가룟 유다도 참석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가룟 유다의 반역은 스승에 대한 제자의 반역이요, 조물주에 대한 피조물의 반역이며, 생명의 주인에 대한 종의 반역이요, 만왕의 왕에 대한 신하의 반역이며, 영원한 심판 주에 대한 죄인의 반역이었습니다. 이는 역사상 가장 큰 반역이었습니다.

  2)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반역자를 앞에 놓고 그의 모든 죄와 허물을 용서하시는 성만찬을 베푸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고 하셨습니다. 그의 몸은 우리의 죄 값을 지불하시기 위해 형벌을 받으심으로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한 몸이었습니다. 그의 피는 만인의 죄를 씻기 위해 흘리시는 거룩한 속죄의 피였습니다. 그러므로 성찬은 죄와 반역에 대한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의 승리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3) 죄란 약속 위반이요, 반역입니다. 죄를 범하는 자마다, 하나님의 원수가 되고, 죄와 사탄의 노예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만찬은 우리를 용서하시고, 구원하시기 위해 그 몸과 그 피를 다 주셨음을 기념하는 예식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떡과 잔을 받으면서 다시는 반역하지 않을 것을 마음에 다짐해야 할 것입니다. 배반과 복수가 승리를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신실한 사랑과 용서가 승리의 길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비록 과거에는 유혹에 넘어갔을지라도 이제부터 피 흘리기까지 죄를 대적해 싸울 것을 결심해야 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서로 사랑하고, 용서할 것을 다짐하는 은혜의 시간이 되시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성찬은 악에 대한 선의 승리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1) 가룟 유다는 시몬의 아들이요, 열심 당원이었습니다. “가룟”이란 말은 “이스카리옷(Iscariot)”에서 나온 말로,“하나님과 율법에 열심 있는 자”란 뜻입니다. 그러나 그는 마침내 사탄에 사로잡혀 만왕의 왕이시요, 만주의 주가 되시며, 만스승의 스승이 되시는 예수님을 은 30냥에 팔아넘기기로 결심합니다. 그가 군호로 짰던(마 26:48) 입맞춤이란 단어는 특별히 복수로서 “여러 번 입맞춤”을 의미합니다. 이는 가장 악독한 반역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즉, 지극한 사랑과 애정의 표현으로 안심시키고, 뒤로 돌아서서 팔아넘기려는 야비한 속임수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다의 입맞춤은 십자가상의 못보다 예수님의 심장을 더 깊이 찔렀을 것입니다.

  2)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가룟 유다의 정체를 알고 계셨음에도(요 6:64) 끝까지 선을 베풀어주셨습니다. 그 증거는 첫째, 사탄이 가룟 유다의 마음에 들어온 것을 알면서도 성찬예식에 참석케하셨고(요13:2), 둘째, 제자들의 발을 씻기실 때 가룟 유다의 발도 씻어 주셨으며, 셋째, 끝까지 회개치 않는 유다를 보시며 “너희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 하셨습니다. 넷째, 마침내 떡을 찍어 그에게 주시며 회개의 기회를 주셨습니다. 다섯째, 예수님은 모진고난과 조롱을 당하면서도 한 마디 말씀이 없으셨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상에 달리신 후,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일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

  3) 그러므로 성만찬은 모든 악에 대한 선의 승리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원수를 위하여 기도하고, 끝까지 사랑을 베푸는 영원한 승리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은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롬 12:19-21)”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성찬에 참여하는 우리들도 모든 악을 사랑으로 끝까지 선대할 것을 결심하여 참 승리를 얻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성찬은 이기주의에 대한 희생의 승리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1) 가룟 유다는 극악한 이기주의자의 표상입니다. 그러나 자신만을 위해 스승도 버리고, 의리와 신의도 저버렸던 그의 마지막 삶은 멸망이었습니다. 버틀러는 “자신만을 생각하는 사람은 구제될 수 없는 무교육자다. 비록 많은 공부를 하였다 하더라도 자신만을 위해 사는 사람은 불학무식한 사람보다 더 쓸모없는 사람이다”라고 했습니다. 또한 W. E. 글래스턴도 “이기주의는 인류 최대의 재앙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기주의의 삶은 비극적인 삶의 방법입니다. 과거 미국은 세계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희생하며 봉사했던 나라입니다. 그러나 요즘 미국은 자국의 실리를 위해 추호도 양보하지 않는 나라로 변하고 있습니다.

  2) 그러므로 요즘 세계의 많은 나라들이 미국을 비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죄인을 위하여 물과 피를 다 쏟아주셨습니다. 마지못해 주신 것이 아닙니다. 스스로 그 생명을 내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요한복음 10장 17-18절에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은 내가 다시 목숨을 얻기 위하여 목숨을 버림이라.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 했습니다. 또한 도스또예프스키는 “자기를 희생하는 것 이상으로 행복한 일은 없다”고 했습니다.

  3)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주심으로 마침내 승리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자기희생을 통해 죄와 죽음과 사탄을 이겼습니다. 온 세상의 구주가 되심으로 온 세상을 이기셨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도 이 승리의 성찬에 참여하며 그리스도의 사랑과 용서와 희생을 본받아 사명을 완수하고 세상을 이기며 하나님의 자녀로서 참복을 누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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