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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십자가를 통한 교훈 (약 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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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고신복 목사

(약1:2-4) "내 형제들아 !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시험을 만날 때 우리 믿음의 성도들이 기억해야 할 말들이 있습니다. 특히 오늘의 본문 말씀 중에서 시련과 관련지어 교훈하는 단어를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믿음, 기쁨, 인내, 온전, 부족함이 없게 하심>이라는 낱말들입니다. 주님의 백성들이 어려움을 당하게 될 때는 두 가지의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훈련케 하심>이며, 또 하나는 <깨닫게 하심>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에게 있는 시련과 어려움은 분명한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시련과 어려움을 통해 얻어지는 유익함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네 가지로 정리한다면, 첫째,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죄를 범치 않기 위하여 고난을 주십니다. (출20:20)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두려워 말라 ! 하나님이 강림하심은 너희를 시험하고 너희로 경외하여 죄를 범치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둘째, 하나님을 사랑하는가 알아보시기 위하여 고난을 주십니다. (신13:3) "너는 그 선지자나 꿈꾸는 자의 말을 청종하지 말라 이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는 여부를 알려 하사 너희를 시험하심이니라" 셋째, 믿음이 간절한가 알아보기 위하여 고난을 주십니다. (고후8:22) "또 저희와 함께 우리의 한 형제를 보내었노니 우리가 여러 가지 일에 그 간절한 것을 여러 번 시험하였거니와 이제 저가 너희를 크게 믿은고로 더욱 간절하니라" 넷째, 직분을 맡길만한가 알아보기 위하여 고난을 주십니다. (딤전3:10) "이에 이 사람들을 먼저 시험하여 보고 그 후에 책망할 것이 없으면 집사의 직분을 하게 할 것이요 "

힘이 들고 어려울 때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위로를 체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52:1-6) “깰지어다, 깰지어다. 네 힘을 입을지어다! 네 아름다운 옷을 입을지어다. 너는 티끌을 떨어버릴지어다. 네 목의 줄을 스스로 풀지어다. 그들이 이 말을 하는 자가 나인 줄 알리라 곧 내니라” (시편3:3)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오 나의 영광이시오.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이시니이다” (사40:1) “너희 하나님이 가라사대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고전10:12-13)“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개인에게는 누구나 십자가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어려움의 십자가가 누구에게나 있지만 극복할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고난의 십자가를 지신 이유를 알면 우리들에게는 십자가의 고난을 능히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이 어려움을 통하여 얻는 교훈이 무엇이며, 극복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인가를 알아보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십자가의 비밀은 기독교의 핵심적인 교리입니다.
(요19:38-42)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예수의 제자나 유대인을 두려워하여 은휘하더니 이 일 후에 빌라도더러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기를 구하매 빌라도가 허락하는지라 이에 가서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니라 (39) 일찍 예수께 밤에 나아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근쯤 가지고 온지라 (40) 이에 예수의 시체를 가져다가 유대인의 장례법대로 그 향품과 함께 세마포로 쌌더라 (41) 예수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에 동산이 있고 동산 안에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새 무덤이 있는지라 (42) 이 날은 유대인의 예비일이요 또무덤이 가까운 고로 예수를 거기 두니라 "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기까지는 유죄를 선고한 산헤드린의 결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산헤드린 의회에서 예수님의 일이 심의되고 고소 내용이 작성될 때 아리마대 사람인 요셉과 니고데모는 산헤드린 회원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불참했든지, 그렇지 않으면 침묵을 지키고 있었든지 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상에서 죽으시자마자 요셉은 두려움을 모르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두려움도 없이 대답하게 로마 정부에 대하여 예수님의 시체 처리를 요청했던 것입니다. 니고데모도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죽으시자마자 어느 누구도 보지 못하던 선물을 가지고 왔던 것입니다.

숨겨진 이 두 제자들은 비겁함과 공포, 주저와 소심하고도 타산적인 은닉 같은 것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의 생존 시에는 두려워하고 있던 이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죽으시자마자 모든 사람들이 한 결 같이 볼 수 있는 방법으로 예수님에 대한 지지를 표명한 것입니다.

산헤드린에서 두 사람의 침묵이나 불참은 예수님을 슬프게 하였지만 십자가후에는 그들이 예수님을 기쁘시게 했습니다. 십자가의 위력은 비겁한 자를 영웅으로, 망설이고 있는 자들을 그리스도를 위하여 흔들리지 않는 결단을 하는 자로 변하게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고난은 “십자가”를 뜻하고 있습니다. 십자가는 라틴어 ‘크룩스(crux)’라는 말에서 온 것인데 ‘고문대’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고문대라는 것은 인간이 만든 형벌가운데 가장 참혹한 형벌입니다. 십자가의 형벌은 고대 여러 민족들 사이에서 이미 통용되어 왔던 사형법입니다. 알렉산더 왕도 그가 점령한 지역에서 반기를 드는 사람들을 즐겨 십자가에 매달았습니다. 그는 드로사람 일천 명을 십자가에서 처형을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려 돌아 가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십자가에 매달릴 죄인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구속 사업을 성취하기 위하여 그 참혹한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고난의 십자가상에서 완전한 사랑을 이루셨습니다. 죄악가운데 있던 우리들을 구원하신 것입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에게도 고난이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고난은 사랑의 사명 때문에 하나님께서 더욱 훈련하고자 주시는 것입니다. 고난은 우리 믿음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무서운 것이 아닙니다. 고난은 사랑을 실천할 수 있도록 우리 성도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고난을 통하여 유익을 가져왔음을 체험 속에서 고백하고 있습니다. 마틴루터는 “고난은 축복을 가져다 주는 지름길이다”, 하턴풍언은 “하나님 앞에 진실 되게 살려고 하는 이는 고통을 보석으로 삼는다” .M. NL.영안은 “고난은 성공의 축대를 쌓는 것과 같다”, 지스레이는 “고난보다 더 중요한 교육은 없다”, 도미트 아스는 “고난을 모르는 사람보다 더 불쌍한 사람은 없다”, M.T.시세로는 “고난이 크면 클수록 그 영광도 크다”, 이광수는 “초년 고생은 말년 낙의 근본이라, 네가 자라면 오복이 구비하고 남이 우러러 보는 사람이 되리라”, 에머슨은 “대부분의 생의 고난은 우리 자신이 햇빛에 서 있기 때문에 생긴다”, H.W.비쳐는 “고난은 하나님의 심부름꾼이다. 어려움이 우리에게 찾아 왔을 때, 우리는 그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선물로써 하나님의 신임의 증거라고 간주해야 한다”

사명 자들에게 다가오는 고난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합니다. 대가를 치루는 일들을 통하여 다른 사람들이 평안을 얻게 됩니다.

십자가의 도를 깨닫고 십자가에 생명을 걸었던 자는 사도바울을 들 수 있습니다. 기독교 역사상 가장 큰 은총을 받은 사도바울이 그의 삶에 종말을 고하게 되었을 때, 그는 자신의 생애를 돌이켜 보면서 이렇게 외쳤습니다.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다󰡓(갈6:14). 사실 사도바울에게는 자랑거리가 많이 있습니다. 훌륭한 전통과 가계를 자랑할 수 있고, 놀라운 지성과 학문을 자랑할 수 있습니다. 많은 글을 썼기에 기록을 자랑할 수 있고, 선교하면서 나타난 이적과 기적들을 자랑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의 모든 마음을 기울여 󰡒내가 자랑할 것은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밖에 없다󰡓고 외쳤습니다.

“무엇 때문에 사도바울은 십자가를 소중히 여겼을까?” 하는 질문을 해 볼 수 있습니다. 십자가의 치욕적인 죽음은 인간의 죄가 얼마나 큰지를 알 수 있고, 죄가 지닌 무섭고도 엄청난 깊이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형틀에 죽어가는 자들을 보았다면 ‘죄의 결과가 이렇구나’하는 것을 느낄 수 있듯이, 십자가의 죽음은 죄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십자가의 자랑은 하늘과 땅에 있어서 가장 고귀한 사랑이 무엇인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십자가 밑에 나아갈 때 사람이 죄악 속에 얼마나 깊이 떨어질 수 있는가 하는 것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지루한 사랑에서 얼마나 높이 오르실 수 있는가를 깨닫게 됩니다.

2. 자기의 십자가를 감당해야 합니다.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십자가가 있습니다. 십자가를 잘 지고나갈 수 있는 여러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인류의 역사는 고난의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난 없는 인간 생활은 생각할 수 없습니다. 가정이나 사회나 나라나 어느 곳에서도 이 고난과 불행과 비극은 있습니다. 그런데 고난과 시련을 당할 때 많은 사람들의 공통적인 태도는 그 고난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반응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고난을 부정적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그 고난 속에 파 뭍혀있는 보화를 발견해 낼 수 있어야 합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은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1:18)고 말씀하신 것을 우리들은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에게는 고통의 십자가를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아야 합니다. 고통과 고난은 우리들을 견고케 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됩니다.
조개 속에 모래 한 알이 들어가 아픔과 통증을 가져다줍니다. 그러나 조개는 그 특유의 액체를 내어 모래를 싸고 또 싸서 나중에는 그것이 진주가 됩니다. 고통 중에 생겨나는 것이 진주라는 보화입니다. 영롱한 다이아몬드도 수없는 깍임의 아픔을 통과해야지만 만들어 집니다.
동방의 의인이였던 욥이 하루아침에 재산을 몽땅 빼앗기고 10남매가 죽고 자신의 몸은 문둥병으로 만신창이가 되어 버리고 부인도 떠나가 버립니다. 친구들도 그를 구박하면서 힐난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주신자도 여호와시오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욥1:21)라고 고백하면서 고통을 이기도 나니 그 고통은 갑절의 축복을 변화되었던 것입니다. 요셉도 형들의 미움을 받아 애급으로 팔리고 보디발 집에서 종살이를 하다가 누명을 쓰고 감옥에서 13년간이나 고생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이러한 아픔 때문에 후에 총리대신이 되어서 고통가운데 있던 자들을 구원하는 사명을 감당하게 되었습니다.

강철왕 카네기에게 기자들이 와서 성공한 비결을 물었습니다. 기자들의 질문에 그는 “나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라고 대답하면서 “나는 가난하고 무식하므로 하나님께 생명 걸고 간절히 기도하다가 지혜의 선물을 받았기 때문이라” 고 하였습니다. 카네기는 가난이라는 고통 때문에 성공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미국의 축구선수로서 올림픽 결승전에서 2초전에 25m전방에서 골인을 시켜 미국을 승리하게 한 유명한 선수가 있었습니다. 『노만필』이란 이 축구선수는 어렸을 때 소아마비였습니다. 그러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하는 마가복음 9장 23절 말씀과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는 빌립보서 4장 13절의 말씀에 사로잡힌 후 그는 “나도 걸을 수 있다”라는 믿음을 가지고 노력하다가 걷게 되었고, 후에는 “나도 뛸 수 있다”라는 믿음을 가지고 난 후 그는 뛰게 되었다고 합니다.

믿는 사람들에게는 약함과 고난과 실패, 그리고 고통이 능력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에게도 여러 가지 어려운 십자가가 있습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오는 사람의 십자가가 있으며, 우리의 육체를 찌르는 질병의 십자가가 있고, 경제적으로 고통을 주는 경제의 십자가가 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를 내가 잘지고 나가게 되면 십자가가 변하여 부활의 영광을 맛보게 되는 것입니다. 경제적으로 당하는 어려움이라든지, 가정적인 문제로 인하여 어려움을 당하는 문제들과 예수님을 믿는다는 사실 때문에 핍박을 당하는 고통의 십자가를 믿음으로 지고 나가시면 언젠가는 우리들에게 부활의 날이 오게 될 것입니다. 개인에게 있는 십자가를 잘 지고 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십자가가 있는 자들은 주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 가실 때에 우편에도 강도가 있었고 좌편에도 강도가 있었습니다. 좌편의 강도는 죄로 인하여 멸망에 처하면서 주를 바라보지 못하였지만, 우편의 강도는 같은 죄의 십자가를 지고 있었지만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라고 하면서 예수님을 바라보았으며 예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였습니다. 고통의 십자가를 지고 있을 때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성 프랜시스코는 성당에서 십자가를 보고 큰 은혜를 받아 평생을 십자가만 생각하며 생활하였고 마침내 성자의 칭호를 받았습니다.

우리 자신들도 고난가운데서라도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구원을 향한 구원의 십자가를 잘 지게 되면 우리들의 모습을 통하여 많은 사람들이 쉼을 얻게 될 것이며, 구원의 반열에 서게 될 것입니다.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지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고 하신 것처럼 우리 자신들이 정말로 하나님 앞에서 우리 자신들을 부정하고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열정이 있다고 하면 우리들은 하나님 앞에서 크게 쓰임을 받을 것이며 고난에서 승리 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우리 민족에게 IMF라는 고난이 수년전에 찾아 왔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총체적인 침체로 인해 고난을 받고 있습니다. 사람에게는 떨쳐 버릴 수 없는 고난의 문제가 가정, 그리고 자신, 그리고 공동체에 늘 임합니다. 그러나 고난의 십자가가 여러 성도들에게는 능력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오늘도 여러분의 고난이 십자가의 틀 앞에서 부활의 능력으로 나타날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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